양무제가 집을 내놓아 광택사를 만들다
양나라 무제(武帝)가 아직 황제의 위에 오르기 전의 일이다.
그의 집이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광명을 놓아 사방을 비추자 그는,
「이 집은 내가 살 곳이 아니다.」
하고 집을 내어놓아 절을 만들어 절 이름을 광택사(光宅寺)라 하고, 법운법사(法雲法師)에게 명하여 맡아보게 하였다. 법운법사는 의흥(義興) 양선(陽羨)사람이다. 그가 날 때 방 안에 구름이 가득했으므로 이름을 운(雲)이라 하였는데, 일곱 살 때 출가하여 이름을 법운(法雲)으로 고쳤다. 차차 자람에 따라 성품이 인자 우아하고, 경서 연구하기를 숭상하였다.
그는 법화경을 자세히 연구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뜻과 이치에 환히 통달하여 양나라 때에 이름을 크게 떨쳤다. 그가 일찍이 어느 절에서 법화경을 강설하는데, 갑자기 하늘 꽃이 날리듯 쏟아져 내렸다.
하늘 꽃은 법당 안에까지 들어와서 공중으로 올라가 떨어지지 아니하다가, 강설이 끝나자 날아갔다. 늘 법운스님을 공양하는 스님이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도 밤낮으로 자기의 지혜로 이치를 깊이 해득하게 되기를 소원하였는데, 하루는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서 말했다.
「법운스님은 등명불(燈明佛)께서 이 세상에 나오셨을 때 이미 법화경을 강설하였는데 네가 어떻게 갑자기 그와 같은 경지에이를 수 있겠느냐.」
또 이릉현(夷陵縣)의 한 어부가 그물을 쳤다가 법화경 한 권을 얻었는데 그것은 이원사법품(泥洹四法品)이었다.
그 책 끝에, 이런 글이 있었다.
「송나라(宋) 영휘(永微) 3년에 왕보승(王賣勝)이 광택사를 세우고 법운사로 하여금 절을 맡아보게 하였다. 」
기록하고 있다. 원휘 3년이면 법운법사의 나이 겨우 10살이었고, 또 광택사란 절도 없었으니, 이것은 신령스러운 상서가 앞질러 나타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