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스님의 기도

경운스님의 기도

범어사에 경운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국민 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으나 형편이 닿지 못하여 고민하다가 결국 입산의 길을 택한 스님이었다. 가정에서부터 공부에 한이 맺혀 있는지라 절에 와서도 늘 책상머리를 떠나지 못하였다.

「저놈은 책벌레가 죽어서 태어났나봐-」

스님은 이렇게 그의 상좌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대견스럽게 생각하였다.

세상에는 공부하라고 아무리 일러도 공부를 잘하지 않는 애들이 있는데, 몸이 약해질까 걱정되니 놀면서 하라고 일러도 기를 쓰고 하는 경운 같은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경운의 꿈은 스님이 생각한 것과는 다소 달랐다. 스님은

「저놈이 저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면 틀림없이 우리나라에 큰 학승이 한 사람 날 수 있지-」

하고 그의 뒷바라지를 하며 오히려 시봉까지 하였는데 이는 불교공부를 하면서도 세속공부를 겸하여 중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또 대학과정을 이곳에서 수료하여 고등고시를 합격함으로써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을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푸른 제복에 파르라니 깎은 머리보다는 번질번질한 양복에 기름 바른 머리를 하고 높이 단위에 경판사의 복장을 하고 앉아 큰소리를 침으로써 그 위신과 그 자세로서 불법을 옹호하고 변호함으로써 부처님께 은혜를 갚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새벽 예불로부터 시작된 일과는 저녁예불에서 끝날 때까지 전혀 여백이 없었다.

그러나, 경운스님은 틈이 날 때마다 책상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대중스님들이 가상히 여겨

「어차피 저애는 책벌레이니 책이나 실컷 보도록 놓아주자」

고 하여 다른 일을 시키지 않았다.

이제 조석 예불까지도 잊어버리고 간신히 세 때 식사를 하는 일밖에 다른 일은 다 잊어버리고 공부에만 열중하였다.

그런데 이 무슨 꼴인가,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고, 공부가 어지간히 되어 내년 봄이면 한번 보란 듯이 고등고시를 치러 보려던 참인데 공교롭게도 왼쪽 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처음에는 약간 저리고 시려서 앉고 서기가 거북할 정도였었는데 차차 정도가 설해져서 나중에는 심한 통증 때문에 누워 있는 것까지도 거북하게 되었다. 어찌할 수 없어서 병원엘 가보니 병원에서는 좌골 신경통이란다. 해당되는 약은 다 써 보았으나 별 신통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마침내는 수술을 하라 하나 그 비용을 감당할 수없어서 한약방으로 가서 약도 쓰고 침도 맞아 보았다.

그러나 결코 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경운스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살아서 뭘 한담-」

「부처님 도 무정 하시지 – 」

생각하면 부처님께 숱한 신세만 졌을 뿐 베푼 것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데 괜히 부처님을 바라보고 원망하기 일쑤였다.

「에라, 이럴 바에는 중노릇을 그만 두는 수밖에 없다. 」

하고 그의 은사 고암 큰스님을 찾아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 스님이 큰 법회를 보시기 위하여 모 사찰에 가 계셨기 때문이다.

스님을 찾자마자 사정을 말씀드렸다.

「스님, 중노릇 그만하겠습니다. 」

「왜」

「이런 병신이 되어 중노릇해 뭘 하겠습니까. 부처님이 영험이 있으시다더니 부처님제자에게 병만 주는 영험인가요.」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그래 말 잘했다. 이놈, 네가 처음 중이 되었을 때 부처님을 위해서 중노릇했더냐. 먹고살기 어려운 데다가 공부병이 들려 절 핑계, 중 핑계 하여 네 공부하려고 중 노릇했지. – 」

그 말씀을 듣고 보니 하나도 틀림이 없는 말씀이었다. 그래도 할 말은 많다.

「부처님은 가련하고 불쌍한 중생을 어여삐 여겨 구제하여 주신다 하였는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네 이놈, 네가 부처님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느냐. 지은 것이 있어야 받을 것이 있지, 절 밥 먹고 고시공부나 하고, 또 출세하면 부처님 보다는 네 부모, 형제, 가족 네 자신의 영예와 이익을 위해서 출세를 꿈꾸던 놈이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한다는 말이냐.」

경운은 가슴이 뜨끔하였다.

근 10년이 가깝도록 공부밑천을 대주시면서 이래라저래라 말 한마디 없으시던 스님께서 이렇게까지 그 속 창자를 훤히 들여다보고 계셨다니 참으로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경운은 곧 풀이 죽었다.

「스님, 잘못했습니다. 」

「잘못하긴, 나한테 잘못한 일이 뭐 있느냐. 네 자신을 위해서 대단히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잘못했다고 후회만 하고 있으면 뭘 할거냐. 뉘우쳤으면 뉘우친 대로 참회불사를 해야지 -」

「참회불사를 어떻게 합니까? 」

「사람은 동물이다. 움직여야 사는 것인데 가만히 앉아 눈알만 움직이게 했으니 다리병신이 안 되고 뭐가 되겠느냐? 신앙이란 것은 놀음이 아니다. 장난이 아니라 진실해야 하고 깊은 서원이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런데 너는 여지껏 입으로만 믿고 입으로만 행하고 입으로만 증했어. 그렇다면 진짜 부처님께 참회하고 앉아 계신 부처님이 서서 움직일 때까지 기도를 해야 한다. 」

「기도는 어떻게 합니까.」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세상의 고통 소리를 관하면서 내 마음속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마음을 팅팅 비워 실오라기하나도 남기지 않는 것이다. 」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님.」

경운은 눈물을 흘리며 물러나와 다시 본사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날부터 기도를 시작하였다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이 맨몸으로 부처님 앞에 섰다.

「부처님, 내 죽더라도 백일동안 기도를 하고 죽겠습니다. 그동안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

이렇게 하여 시작된 기도는 하루 4번 1회 3시간씩 하루에 12시간씩 지속되었다. 1회에 천수경 27편을 외우고 관세음보살 2500번을 부르면서 계속해서 절을 한나절을 할 때마다 구슬 같은 땀방울이 온몸을 적신다.

아니 참회의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부처님 용서하여 주소서. 저 같은 주제가누구를 원망하고 살 자격이 있습니까? 스스로 박복함을 한탄할 뿐입니다. 」

앞뒤로 쏟은, 눈물이 어느 정도 메말라 가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다리도 저절로 나아지는 것 같았다.

절을 하고 또 하고 또 하다 보니 다리운동이 되어서 그런지, 시리고 저런 기가 가시고 통증도 많이 줄었다. 차차 몸이 나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니 부처님을 뵙는 마음도 평화로워졌다.

기도기간이 3분의 2가 넘어 80여일이 가까워지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옛날 몸이 아파 견딜 수 없을 때는

「부처님 어서 병만 낫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던 것이

「이제 병이 나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말하자면 옛날에는 무조건 공부를 하여 출세를 해보겠다는 그 생각 하나뿐이었으나, 출세를 하면 진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도 눈물이 쏟아졌다. 목탁을 들고 손으로 치기는 하면서도 전혀 말소리를 낼 수 없을 정도로 흐느껴졌다.

그동안 너무나도 맹목적인 삶 속에 위장된 세월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부처님, 저 같은 사람도 살아야 합니까. 저 같은 사람이 살아서 무엇 합니까. 부모님도 버리고 형제도 버리고 스님마저도 버리려 했던 나, 원망과 질투와 푸념 속에 위장된 인생을 살아온 나, 내가 이러고서도 나를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 」

그런데 그때 법당 안에서 이상 소리가 들려 왔다.

「살아야지, 암 살아야지, 살아야 하고 말고- 」

깜짝 놀라 쳐다보니 부처님의 용안에서 자비 광명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경운은 눈물을 씻고 다소곳이 꿇어앉아 서원했다.

「부처님, 부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부처님의 자리에 앉아 부처님의 옷을 입고 부처님의 행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

기도는 끝이 났다.

몸도 낫고 마음도 나았다. 참으로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누워 있어도 이젠 머리 속에서 서원이 뭉텅뭉텅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튿날 주지스님께서 불렀다.

「경운스님, 관광객들이 오셨는데 안내 좀 부탁합니다. 」

옛날 같으면 이런 소리를 들으면 또 투정했을 것이다.

「뭐, 중이 관광 안내원인가 공부도 한자하지 못하게 시리 – 」

하고 혀를 차고 투덜댔을텐데,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은 하나도 없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

하고 법복을 단정히 입고 법당 앞으로 나왔다. 자기도 알 수 없는 경운이였다.

밝고 명랑한 어조로 설명을 하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환희엔 차 있었다.

관광이 아니라 도솔천 내원궁에 올라와서 법문을 듣는 기분들이었다.

안내가 끝나자 한 보살님이 물었다.

「스님은 나이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

「몇 살 먹지 않았습니다. 」

「참으로 티가 없고 명랑합니다. 나는 일본에서 온 교포입니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우동장사를 하여 큰 부자가 되었으나 타국만리에서 고독에 찌들어 얼굴 한번 펴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스님께서 어떻게나 명랑한 얼굴에 자비가 뚝뚝 떨어지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따뜻한 훈김을 맛보았습니다.

무엇인가 스님에게 도와드리고 싶은 생각이 나는데 혹 우리가 도울 만한 뭐가 없겠습니까?」

그때 옆에서 그 말씀을 듣고 있던 한 도반이 불쑥 나오면서 말했다.

「우리 경운스님은 책벌레입니다. 원 없이 책을 보고 공부하고 싶으나 형편이 닿지 않아 공부를 못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내 일본에 가서 초청하겠습니다. 일본으로 유학와 주십시오.」

이렇게 두 사람은 말로 약속하고 떠났다.

그 뒤 2개월 있다가 초청장이 왔다. 일본구택대학 철학과에 들어가게 되어 있으니 속히 들어오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일이라 놀라기도 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 후 그 스님은 곧 일본으로 들어가 금년 대학 4학년으로 내년이면 어엿한 철학사가 되어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교환 교수로 갔다가 그 스님을 만나본 모 교수가,

「경운은 한국불교의 경운(慶雲)으로서 얼마 아니 있으면 그 구름 속에 진리의 단비를 가지고 돌아와 비를 뿌릴 것이다. 」

극구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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