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전이 관세음을 염송하고 감옥에서 벗어나다
동진(東晋) 때에 하내(河內) 사람으로 두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영화(永和)년중(345~356)에 병주자사(幷州刺使) 고창(高昌)과 기주자사(冀州刺史) 여호(呂護)가 각기 권력 다툼으로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그 때, 두전은 고창의 부하 관장(官長)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주의 여호가 병주를 기습하였다. 그리하여, 병주의 관원(官員)들을 사로잡아 갔는데, 두전도 그들에게 잡혀가서 6 · 7명이 함께 묶여 한 옥에 갇히게 되었다. 수갑과 쇠사슬로 몸을 묶어놓고 며칠 사이에 죽이려고 하였다.
그 때, 지도산(支道山)이라는 스님이 여호의 영중(營中)에 있었는데, 그는 앞서 두전과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두전이 잡혀 곧 죽게 감옥으로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옥문 틈으로 그는 두전을 불렀고, 두전은 저도산 스님에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위험한 어려움에서 구제될 방법을 호소하였다. 이에, 도산(道山)스님이 일러 주었다.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께 귀의하여 간절하게 청원한다면 반드시 감응이 있을 것 입니다. 」
두전은 전부터 관세음보살의 영험을 들은바가 있었는지라 도산스님의 말대로 관세음보살을 칭념하기로 하였다. 그는 오로지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였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오직 정성스럽게 관세음보살에게 의지하였다. 그러하기를 사흘이 지났다. 그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수갑과 쇠사슬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단단하게 채워졌던 수갑과 쇠사슬이 느슨하게 풀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시험 삼아 몸을 쇠사슬로부터 벗어나 보았다. 헐렁해진 수갑과 쇠사슬에서 그는 쉽게 빠져 나을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쇠사슬의 절곡에서 저절로 풀려난 것((질길자해.桎桔自解)이었다. 그 때는 밤이었다.
그는 자유로워진 몸을 벌떡 일으켜 주위를 살펴보았다. 함께 갇혀 있는 6·7명은 쇠사슬에 묶인 채 지쳐 자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두고 혼자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주저앉아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찾았다.
「대자대비하신 신통력을 입어서 저의 몸은 쇠사슬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하오나, 저의 일행이 모두 묶여 있는 것을 두고 혼자 떠날 수가 없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크신 신통력은 능히 모두를 구제하시오니, 부디 이 사람들도 함께 벗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 」
그는 간절한 기원의 말을 마치고 곧 묶여서 자고 있는 일행을 조용히 흔들어 깨웠다.
지친 잠에서 눈을 뜨는 그들을 그는 말없이 일으켜 세웠다. 귀찮아하면서 부스스 일어나는 그들의 몸에서 쇠사슬은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흡사 누가 끌러 놓은 것 같다.
쇠사슬에서 벗어난 그들은 숨어서 감옥을 지키는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 그들이 무사히 성을 넘었을 때에는 밤은 이미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
한 4 ․ 5리를 달아나다가 날이 밝았으므로 더 도망갈 수가 없어서 그들은 한 풀숲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날이 밝자 감옥에서는 그들이 탈출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 병정들을 풀어서 말을 달려 사방의 통로를 차단하게 하고는 샅샅이 뒤져서 찾아내게 하였다 도망자들을 찾는데 혈안이 된 병정들은 풀숲을 불 지르고 숲속을 짓밟으며 빈틈이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두전의 일행이 숨어 있는 곳에는 끝내 접근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서 그들이 무사히 그곳을 떠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은 그 풀숲 속에서 안전하게 숨어 있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지도산(支道山)스님이 뒷날에 강을 건너가서 사부거사(謝敷居士 光世音應驗傳의 原撰者)에게 그 일을 이야기함으로써 세상을 알려지게 되었다.
<光世音應驗記, 冥祥記, 法苑珠林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