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순과 자오가 사형장에서 살아나다
고순은 동진(東晋)의 하남 영향(河甫 榮陽) 사람이 있었다.
성미가 사나왔던 그는 고을의 이정(吏政)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관장(官長)을 죽였다.
그의 나이 50세 때의 일 이었다. 그 죄로 그는 땅에 묻히고 목이 쇠사슬에 묶인 형벌을 받으며 곧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 때, 그는 같이 뮤여 있던 죄수들로부터 죽음을 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겠는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서쪽에 무량수불국(無量壽佛國)이 있고 거기에 관세음보살에 있어서 위급한 재난의 사람들을 구제하므로, 관세음보살님에게 귀의하게 되면 해탈을 얻지 못하는 일이 없다. 」
이러한 말을 들은 고순은 곧 지난날을 뉘우치고 신심을 일으켰다.
그는 지성껏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였다. 낮과 밤을 쉬지 않고 그는 정성껏 전념하면서 발원을 하였다.
「만약에 내가 구제를 받게 된다면 꼭 5층탑을 일으켜 많은 스님들을 공양하겠습니다. 」
그만큼 그의 마음은 불심으로 흠뻑 젖어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사나흘이 지나서 목에 감겨 있던 쇠사슬이 저절로 풀려졌다.
그 다음 날, 저자거리에 끌고 나가 죽이려고 하는데, 그의 목에 쇠사슬이 없는 것을 보고 놀란 옥리가 감사에게 알렸고, 감사가 직접 그 연유를 그에게 물었다. 그는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고순의 말을 듣고 감사는 비웃으면서 말하였다.
「네가 만약에 신통력의 도움을 받고 있다면 목을 끊어도 베어지지 않겠구나.」
감사는 그를 목 베게 하였다. 곧 번쩍이는 칼날이 그의 목을 내리쳤다.
그러나 목을 맨 끈 또한 동강이 나서 끊어졌다. 비로소 참사는 그의 신통력을 믿었다.
그리하여, 조정에 그 사실을 보고하고 사면을 얻어서 고순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뒤 고순은 탑을 일으키고 스님을 공양함으로 그 서원을 이루었다.
<繫觀世音應騎記, 觀音義梳 5, 辯正論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