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자스님이 미륵을 만나 국선을 삼다
신라시대에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맨 처음 지은 흥륜사(興輪寺)에는 미륵불상을 모셨다.
불교를 신봉한지 50년 밖에 아니 되는 진지왕(眞智王) 때(西紀576-578),에 흥륜사 스님 진자(眞慈) 법사는 미륵불님에 나아가 지성으로 기도 드리면서 발원하였다.
「미륵님이 화량으로 이 나라에 태어나시어 우리들로 성안(聖顔)을 뵈옵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오랫동안 빌자 하룻밤 꿈에 어떤 노승이 나타나 일러주었다.
「네가 웅천(態川=지금 公州) 수원사(水源寺)에 가면 미륵선화(仙花=화랑)를 만나게 되리라.」
고 하였다. 꿈을 깨고 곧, 웅천 수원사를 찾아갔다.
절 문밖에 이르자 한 소년이 골격이 빼어나고 미목(眉目)이 청수하여 세상에서 보기 어려운 소년이 친절히 맞아들이었다.
법사는 기뻐하며,
「도령이 처음 만나는 나를 어떻게 이처럼 친절이 맞아주는가? 」
하고 묻자 소년이 말했다.
「나도 서라벌 사람으로서 스님이 멀리 오시는 것을 위로할 뿐입니다. 」
법사는 절에 들어가서 온 까닭을 말하자 어떤 노승이 말하였다.
「그대는 문밖에서 이미 미륵선화를 만나보고 다시 찾는가?」
법사는 아까 만난 소년이 미륵선화 임을 깨닫고 문을 나가보니 벌써 자취가 없었다.
다시 서라벌에 돌아가서 임금님께 여쭙고 친촌 ·만락에 돌아다니며 찾다가 영묘사(靈妙寺) 동북쪽 길가에서 그 소년을 만났다.
법사가,
「아 미륵선화님 ! 」
하고 맞이하여 임금님께 아뢰고 곧, 국선화랑(國仙花郎)으로 봉하여 많은 왕 ·공 ·귀족 집 소년 자제를 뽑아 통솔케 하고예의와 풍류로 교화하니 그전의 어느 화랑보다 뛰어났다.
화랑제도가 생긴지 오래지 않은 때이다. 미륵선화가 교화한 뒤에 화랑풍류도의 규범이 잡히었다.
그 뒤에 이 화랑 풍류도에서는 반드시 미륵님을 신붕하고 장차 용화세계에 같이 나기를 발원하여 화랑도(徒)를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김유신(金庾信)도 용화향도라고 자칭한 것이 그것이다.
<三國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