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인 승려가 지옥에 떨어진 이야기
석존께서 사위국에 있는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셨을 때의 일이다.
사위성(舍衛城)에 거주하는 어느 장자에게 한 딸이 있었다. 그녀는 상당한 사람과 결혼해서 한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차츰 날이 갈수록 그녀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쪼들리기 시작했다. 거의 경제적 파탄에 이르자 생활에 쫓긴 그의 남편은 어느 날 아내에게 말했다.
『이렇게 되어 가지고는 생활을 꾸려나갈 도리가 없으니 부득불 나는 멀리 돈벌이를 나가야 되겠소. 당신도 괴롭겠지만 모든 것을 참고 내가 돈을 벌어서 돌아오는 날까지 저 아기를 데리고 고생해 주 시오. 나는 아기의 양육을 오직 그대만 믿고 떠나겠소.』
아내는 이 말을 듣자 눈물을 머금고 격려했다.
『당신이 안 계시면 모든 것이 두렵고 의지할 곳 없지만, 장래를 위해서 당신을 기다리며 애기와 무사 히 지내겠어요. 부디 너무 집안 걱정은 마시고 몸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고맙소, 그러면 모든 것을 오직 당신만 믿고 떠나오.』
그들은 애석한 이별의 말을 주고받으며, 남자는 곧 멀리 돈벌이하러 떠났다.
그런 뒤, 몇 해인가의 세월이 흘렀다. 꽃이 피고 잎이 피는가 하면 또한 꽃잎이 지고 낙엽이 날리는 계절이 오고, 누이 오고 바람이 불면 어느새 또 다음 해 봄이 돌아왔다. 이렇게 몇몇 계절이 피고는 지건만 한 번 떠난 그녀 의d 남편은 웬일인지 영영 소식조차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 자식은 장성하여 어언간 헌헌 장부한 청년이 되었다. 아비 없는 자식이란 욕을 먹듯이 그 자식도 역시 아버지 없이 제멋대로 편모슬하에서 자란 탓으로 행실이 온당치 못했다. 마침내 건들거리고 다니다가 이웃집 처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 처녀는 자기 머리에 꽂았던 머리장식을 뽑아서 그 청년에게 선물로 줄 정도로 다정한 사이가 되었다.
이것을 알게된 그 어머니는 너무나 괘씸하고 분했다. 온갖 고생과 가난을 모두 극복하며 오직 그 외아들의 참된 성장을 바라며 살아온 그녀였다. 딴 청년들은 어떻든 간에 자기 귀여운 자식은 차마 그럴 줄 모르고 믿어온 터였다.
그녀는 아들을 불러 앉혀놓고 여러 가지로 울며 타일렀다.
『얘야, 그런 짓은 정말 쓸모없는 불장난이다. 오직 헌헌한 대장부로 태어나서 좀더 착실하고 떳떳한 일을 해보려므나. 그런 짓으로 이 불쌍한 어미를 괴롭혀 주다니…. 어미 소원이니 제발 앞으로는 그런 계집애 따위는 잊어버리고 행동을 조심하고 바르게 살아다오. 멀리 떠나신 아버님도 너의 올바른 양육을 나에게 얼마나 부탁 하셨는지 아니?』
아무리 어머니가 타일러 보아도 그 아들은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어머니가 아들을 방안에 가두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밤에는 침실 문 앞에 자기 침구를 가져다 놓고 나가지 못하게 지켰다.
그러나 아들은 아무리 어머니가 그를 막아도 그 처녀에 대한 타오르는 연모의 정을 막을 길이 없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애욕의 정이 이기지 못한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하다가 왈칵 못된 마음이 생겼다.
그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저 변소에 좀 가야겠어요. 이 문을 좀 열어주세요?』
하고 문을 열어주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의 마음속을 짐작했는지 냉랭히 대답했다.
『그럴 수는 없어….』
아들은 그만 맥없이 주저앉았다.
다시 잠을 청했으나 잠은 오지 않고 도리어 그 처녀의 예쁜 환상이 더욱 그를 사로잡았다. 다시금 정욕의 불길이 이글이글 그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문을 발길로 냅다 차고 밖으로 튀어나오자 미운 어머니를 단칼에 찔러 죽여 버렸다.
그러나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어머니의 단말마의 형상을 보자 비로소 그는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두려움으로 전신을 떨었다.
『아아! 어머니, 용서해 주세요. 아아! 이 일을 어쩌나!』
가슴은 회한으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그 길로 절을 향해 달려갔다.
『대덕님. 저는 출가 하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저에게 불제자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거기에 모여 있던 승려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처음은 어리둥절했으나 간절히 출가하고 싶다는 그의 염원을 받아들여 삭발을 시키고 받아 들였다.
스님이 된 그는 멀리 타국으로 떠났다. 거기서 열심히 정진하고 정계(淨戒)를 굳게 지키며 선정(禪定)을 수습하고 또한 경전(經典)을 즐겨 외웠다.
그러던 중, 어떤 장자가 이 스님의 덕이 높음을 매우 감격하여 공양을 하고 그를 위해서 큰 가람을 건립하여 그 주지로 삼았다. 이 가람에는 많은 승려들이 사방에서 운집해 모여들었다. 그의 가르침을 받자 모두들 그 스승을 존경해 마지않았다.
이 때, 그 주지스님은 대중을 위해서 대승경전(大乘經典)을 강의하며, 또한 선정(禪定)을 수습시키고, 연중 의식을 공급해 주며, 무엇 하나 승려들에게 불편이나 부자유가 없게 했다. 그러므로 많은 승려들은 오직 전심 수행 할 수가 있었으며, 그 중에는 아라한에 도달할 정도의 오달을 얻는 자도 있었다.
그런데 불행히 이 주지스님에게 병마가 침노했다. 병이 침중해지면서 약을 먹어도 전혀 효험이 없게 되었다. 다만 나날이 몸은 마르고 기운은 쇠퇴하여 도저히 회복할 가망은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이 주지스님은 대중 일동을 모두 모으고 이렇게 참회했다.
『나는 잘못 주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경솔히 대하고 모욕한 일도 있다. 또한 여러 제자들에게 정신 을 오히려 흐리게 한 일인들 물론 없다고 할 수 없다. 하나, 여러 승려들이여! 바라건대 나를 기쁘게 해달라. 항상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 날엔가 다하며, 높은 것도 또한 떨어져버리는 것이다. 서로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지며, 생한 자는 또한 반드시 멸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마치자, 그는 곧 숨을 거두었다.
많은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여러 가지 공양을 하고 명복을 빌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말하기를
『우리 스님은 적멸하셨지만, 대체 어떤 곳에 태어 나셨을까?』
라고 하자, 이것이 화제가 되어 그 스승의 생전 사후에 대해 여러 가지로 이야기가 벌어졌다.
이 때, 그 제자 가운데 마침 아라한의 오달을 얻은 자가 있었다. 그는 이것으로 곧 선정(禪定)에 들어가 자신들의 스승이 지금 어디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먼저 제천(諸天)에서 비롯하여 다음은 인간, 아수라(阿修羅), 축생(畜生), 아귀(餓鬼) 등 모두 골고루 살펴보았지만 그 스승은 보이지 않았다.
그럴 턱은 없겠지 하면서도 알지 못해 이번에는 모든 지옥들을 끝에서 끝까지 구석구석 모두 살펴보니 이것이 웬일, 그의 스승은 처량하게도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 그럴까? 우리 대화상(大和尙)님 재세시에는 정계(淨戒)나, 변재(辯才)나, 수행(修行)이나 모든 것을 훌륭히 정진하셔서 아직 소홀하신 것을 뵌 적이 없는데…. 게다가 사방팔방의 많은 중들을 모으고 의식까지 공급하시었는데, 무슨 인연으로 이 같은 참혹한 과보를 받으시는가?』
그 제자는 다시 선정(禪定)에 들어가 전세의 인연을 역력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스승이 자신의 모친을 살해한 업보 때문에 무간지옥에 떨어진 것이었다. 불은 사정없이 활활 타올라 그 몸은 불에 타서 오그라들고, 옥졸들로부터 여러 가지로 욕을 먹고 시달리고 있었다.
『너는 전세에서 용렬하고 무지한 대역죄를 지은 것이다. 이 죄는 누구에게도 돌릴 수 없다. 오직 너 한 사람이 받아야 한다.』
옥졸은 이렇게 말을 마치자 곧 시뻘겋게 달군 철추를 내리쳐 스승의 목을 내리쳤다. 스승은 피를 흘리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끔찍한 고통을 어찌 필설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이 때, 그의 제자 아라한은 이 광경을 보고 비원력(悲願力)으로써 고뇌를 제거하고 법의 위덕(威德)을 의지하여 숙명을 알게 하며, 삼보(三寶)를 염하여 그 선근(善根)을 계속했으므로 그 스승의 수명은 곧 끊어졌다.
그리하여 야마천(夜摩天)에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
스승은 야마천에 태어나자 여러 천자(天子)들과 함께 이 천(天)에 살면서 세 가지 염을 일으켰다.
一에는, 전세에 무슨 족속으로 있었던가.
二에는, 어디서 수명이 없어졌던가.
三에는, 어떠한 복사(福事)를 수행하여 천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가.
이 세 가지 것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니, 자신은 전세에서 대역죄를 범했지만 부처님의 은력을 입어서 지금 이 천상계에 태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제 일심으로 딴 것은 생각지 말고 오직 부처님을 뵙도록 노력하자. 부처님에게 친근공양(親近 供養)을 드려서 대보은(大報恩)을 해야 되겠다.』
라고 그는 오직 마음에 굳게 다짐하는 것이었다.
이 천자는 천의 복력에 의해서 자연히 많은 보물과 영락(瓔珞)이 뿌려져서 그 몸이 깨끗하고 장엄하게 단장되었다.
먼저 첫날밤에는 몸에서 빛을 발하여 그 광명으로 기원정사를 비췄다. 마치 낮처럼 모든 것이 골고루 다 보였다. 그리하여 석존께 나아가 그 발에 예배하고 천하의 여러 가지 연화와 만다라화를 부처님 위에 뿌렸다. 그것이 무릎 위까지 쌓일 만큼 공양해 드린 다음 물러나 일면에 앉았다.
그 때 마침 부처님께서는 이 천자의 마음속에 염원하는 바를 아시고, 사체(四諦)의 가르치심을 설법하시었다. 천자는 이 말씀을 듣고 해오(解悟)하여 자리를 뜨지 않고 마침내 수다원의 오달을 얻었다.
천자는 환희에 찬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 세존께서 나를 가엾게 생각하시어 우신 피는 바닥에 가득 차고, 뼈는 쌓아서 산과 같으며 악 취문(惡趣門)은 닫혀지고 생천(生天)하는 길은 열려져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의 고뇌에서 구제되어 모두 인천(人天)의 좋은 과보 속에 안주되게 하시오니, 이 얼마나 고맙고 황송한 일이 아니오리까.』
그리고 또한 게(偈)를 읊어서 석존을 찬양했다.
『이몸은 때 묻은 욕심에서 잘못을 범해
무간지옥(無間地獄)속에 떨어졌었네.
부처님의 은력으로 천상계에 태어나니,
열반의 길을 증거 받았음이라.
이 몸은 정법안(淨法眼)에 안주하게 되어,
오랜 윤회(輪廻)의 여러 악취(惡趣)와,
미래의 생과 사의 흐름을 벗어나서,
정적보리(靜寂菩提)의 기슭에 당도함을 얻었네.
백 천생에도 만나기 어려운 것을,
이 몸은 지금 모니불(牟尼佛)을 뵈었구나.
생로병(生老病)의 고인(苦因)을 넘어서,
바야흐로 세상의 넓은 공양을 받도록 하라.
칠보 영락을 바쳐 봉헌하고,
합장(合掌) 우요(右繞)하니 마음 흥쾌하구나.
그러므로 이 몸은 석존께 정례(頂禮)하여,
인천(人天)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