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도경(佛說阿彌陁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03. 하권-1
부처님께서 아일(阿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 세간의 인민 가운데 선남자 또는 선여인으로서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왕생하고자 원하는 세 무리가 있다. 덕을 지은 것이 크고 작은 차이가 있어 돌아가며 서로 미치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들이 세 무리인가? 그 중 최상이고 제일인 무리는 집을 떠나고 처자를 버리고 애욕을 단절하고 나아가 사문이 되며, 무위(無爲)의 도에 나아가 마땅히 보살의 도를 이루고 6바라밀(波羅蜜)의 경을 받들어 실행하는 자이다. 그는 사문이 되어 경과 계율을 어기지 않으며, 우정의 마음[慈心]과 정진을 갖추고 마땅히 화내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마땅히 여인과 교류하지 않고 재계(齋戒)를 청정히 하며 마음에 탐착하거나 연모하는 것이 없다.
지극한 정성으로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왕생하고자 원하며, 항상 염하되 지극한 마음으로 단절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문득 금세에서 도를 추구할 때 자연히 자리에 누워 꿈속에 멈추어 있는 가운데에서도 아미타부처님 및 여러 보살과 아라한을 보게 된다. 그 사람이 수명이 다하여 끝나려 할 때 아미타부처님이 곧바로 스스로 여러 보살 및 아라한과 함께 문득 날아와서 그를 마중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곧 아미타부처님 국토로 왕생하여 문득 7보로 된 연못에 핀 연꽃 가운데서 화생한다.
그리고 곧 자연히 장대한 몸을 받고 아유월치(阿惟越致) 보살을 이루고,문득 여러 보살과 함께 무리지어 날아가 8방 및 위와 아래에 있는 무앙수의 여러 부처님을 공양한다. 그리고 곧 지혜와 용맹을 체득하고 경의 도를 즐거이 들으니, 그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그 사람이 거주하는 사택은 7보로 되어 있으며, 허공에 머무는데 자신의 뜻에 따른 것이고, 지으려고 바라는 바에 입각한 것이다. 그 사람이 아미타부처님의 근처에 가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는 여러 사람들은 마땅히 정진해야 하며, 경과 계율을 지녀야 한다. 그와 같이 상위의 법을 받들어 행하는 자는 곧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왕생하는 일을 성취하게 되고, 온갖 무리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 이들이 바로 제1배(第一輩)인 자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가운데 중배(中輩)인 자가 있으니, 그 사람은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왕생하고자 원하는데 비록 집을 떠나 처자를 버리고 애욕을 단절하여 나아가 사문을 이루지는 못한다 하여도 마땅히 경과 계율을 지니되 더럽히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결코 없는 자이다. 오히려 더욱더 제단을 펼치고 보시를 행하여 항상 부처님 경의 말씀을 믿고 받는다.
그리고 마땅히 깊고 지극한 정성 가운데서 믿음을 일으켜 여러 사문에게 밥과 식사를 제공하고 부처님의 절을 짓고 탑을 일으키고 꽃을 흩고 향을 태우고 등불을 밝히고 온갖 색으로 물들여진 휘장을 드리운다.
이러한 법을 실행하는 자는 꼭 해야 하는 일도 없고, 하지 말아야 하는 일도 없으니 마땅히 화내거나 분노하는 일이 없고, 재계를 청정히 하고 우정의 마음으로 정진하고 애욕을 단절하여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왕생하고자 염한다. 그렇게 하며 하루 낮 하룻밤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자는 그 사람이 문득 금세에서 역시 잠자리에 있으면서 꿈속에서 아미타부처님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수명이 다하게 되었을 때 아미타부처님이 즉시 화현하여 그 사람이 자신의 눈으로 직접 아미타부처님과 그 국토를 보게 된다. 그렇게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가서 이르는 자는 지혜와 용맹을 얻게 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받들어 실행하고 베풀어 주는 것이 그와 같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중에 다시 마음속에 후회하는 바가 있게 되고 마음에 의혹하는 바가 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제단을 펼치고 보시를 하고 여러 선한 일을 하여도 후세에서 그러한 복덕을 얻게 된다는 것을 믿지 않고, 아미타부처님의 국토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그 국토에 가서 태어나는 자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경우가 있다.
비록 그렇다 하여도 그 사람이 염하는 것을 계속하여 끊지 않으며 잠시는 믿고 잠시는 믿지 않으며 의지가 오로지 머무는 곳이 비록 없는 것과 같다 하더라도 계속하여 그 선한 원(願)을 세운 것이 근본이 되어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가서 태어나는 일을 얻게 된다.
그 사람이 병들어 수명이 다하려 할 때 아미타부처님이 즉시 스스로 모습을 화작(化作)하여 그 사람이 자신의 눈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니, 입으로는 다시 말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오직 마음속에서나마 뛸 듯이 기뻐하여 ‘제가 재계하고 더욱더 선한 일을 실천하면 마땅히 지금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가서 태어나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 참회하는 바입니다’라고 뜻으로 염하여 말하게 된다.
그 사람이 곧 마음속으로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니, 과오를 참회하는 자는 그 후회가 차이 나게 감소하여 다시 미치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수명이 다하여 마침내 끝나 버리면 곧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가서 태어난다.
그러나 곧바로 아미타부처님 처소 앞에 가서 이르는 일은 얻을 수 없으니, 문득 가는 길에 아미타부처님 국토의 경계 주변에 자연히 7보로 된 성을 보게 된다. 그의 마음은 문득 크게 환희하여 그 성 가운데 머물러 곧 7보로 된 연못에 있는 연꽃 가운데서 화생(化生)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히 장대한 몸을 받고 성 가운데에 머물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5백 세를 지내야 하니, 그 성은 가로세로가 각각 2천 리이며 성 가운데는 역시 7보로 된 사택이 있다.
그리고 가운데를 중심으로 안팎으로 모두 7보로 된 목욕하는 연못이 있고, 목욕하는 연못 가운데는 자연으로 된 꽃이 있고, 향이 살라지고 있다. 목욕하는 연못 위에는 역시 7보로 된 나무들이 겹으로 줄을 짓고 있으니, 그 나무들 또한 다섯 가지 소리를 내고 있다.
그가 식사를 하려고 할 때는 자연히 그 앞에 음식이 나타난다. 온갖 맛을갖춘 음식이 뜻으로 얻고자 하는 대로 모두 나타난다. 그 사람은 성에서 역시 쾌락을 누리니, 그 성의 사물은 제2 도리천상(忉利天上)의 자연으로 이루어진 사물들에 비할 만하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성에서 나올 수 없으며, 또한 아미타부처님을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단지 아미타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마음으로 스스로 참회하고 자책하면서도 뛸 듯이 기뻐할 뿐이다.
그리고 또한 경을 듣는 것이 불가능하고, 또한 여러 비구 승단을 보는 것도 불가능하고, 아미타부처님 국토의 여러 보살과 아라한의 형상과 모습이 어떤 종류인가를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그와 같이 비교하면 그것은 덜 적합하니, 부처님 역시 자신의 몸으로 실행하여 지으신 바를 사용하여 자연적으로 얻게 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단지 모든 마음으로 스스로 그 길을 향하여 나아가려 하지만 일단 그 성에 들어간 그 사람은 본래 과거의 삶에서 도를 구할 때 마음과 입이 각각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말하고 염하는 데 정성과 믿음이 없었고, 부처님의 경을 의심하였고, 또한 그곳으로 향하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연히 자연적으로 악도(惡道) 가운데에 들어갈 것인데 아미타부처님이 불쌍하고 애민하게 여기어 위신력으로 그를 이끌어 데려가셨기에 그 사람이 그 성에 있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5백 세를 보낸 뒤에 벗어날 수 있다.
그런 뒤 아미타부처님의 처소에 가 이르러 경을 듣는다. 그렇지만 아직도 마음이 열리지도 풀리지도 않으니, 여러 보살과 아라한 및 비구 승단 가운데서 경을 들을 수 없다. 또한 가서 거처해야 할 사택도 땅에 위치하니, 사택을 자신의 뜻대로 높고 크게 하거나 허공 가운데 있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아미타부처님이 매우 멀고도 멀리 떨어져 있어 가까이에서 아미타부처님을 뵙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사람은 지혜가 총명하지 못하니, 경을 아는 것이 또한 적고 마음이 환희롭지 못하고 뜻이 열리지도 풀리지도 않는다. 그 사람은 그렇게 오래고 오랜 세월을 다시 지내게 된다.
그런 뒤 마땅히 스스로 지혜를 갖추고 뜻이 열리고 풀리며 경을 알게 되며, 총명하고 건강하고 용맹하게 된다. 그리고 마음이 환희하게 되니, 그런 뒤에야 마땅히 위의 제1배(第一輩)와 같이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단지 전세 과거의 삶에서 도를 구할 때 재계를 크게 지니지 않고 경법(經法)을 훼손하거나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과 뜻으로 의심하였고 부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부처님의 경전이 심오한 것을 믿지 않았고, 제단을 펼치고 보시하고 선한 일을 실천하면 후세에서 마땅히 그 복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참회하고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가서 태어난다는 것에 대해 믿지 않았고, 덕을 짓되 지극한 마음이 아니었으므로 그와 같이 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제2 중배(中輩)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3배(第三輩)인 자는 이러하다. 그 사람은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가서 태어나고자 원한다. 그런데 쓸 만한 것을 가지고 제단을 펼치고 보시하는 일이 없다. 또한 능히 향을 사르고 꽃을 흩고 등불을 밝히는 것도 어렵다. 온갖 색으로 채색된 휘장을 드리우지도 못하고 부처님의 절을 짓지도 못하며 탑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여러 사문에게 식사를 제공하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마땅히 애욕을 단절하고 탐착하거나 연모하는 바가 없고 경의 뜻을 재빨리 얻고 우정의 마음과 정진을 갖춘다. 마땅히 화내거나 분노하지 않으며 재계를 청정히 한다.
그러한 법을 지닌 자가 마땅히 한마음으로 염하되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가서 태어나고자 하며 밤낮으로 10일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자는 수명을 마치면서 즉시에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가서 태어나게 된다. 가히 존경할 바를 얻은 것이며, 지혜와 용맹을 얻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한 이후에 만약 다시 속으로 참회하는 바가 있고, 마음과 뜻으로 의심하고, 선한 일을 실천해도 후세에서 마땅히 그 복을 얻게 된다는 것을 믿지 않고,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가서 태어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뒤이어서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가서 태어나는 것을 얻게 된다. 그 사람이 병들어 수명을 마치려 할 때에 아미타부처님이 그가 누운 자리의꿈속에서 아미타부처님의 국토를 그에게 보여주어 마음속으로 크게 환희하게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스스로 염하고, ‘나는 여러 선한 일을 더하고 실천하면 지금 마땅히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가서 태어난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 그것을 참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단지 그렇게 염할 뿐이지 입으로 다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니,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는 자는 그 참회가 차이나게 감소하여 다시 미치는 바가 없게 된다. 그 사람이 수명을 마치면 즉시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난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 앞에 이르는 것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문득 2천 리 떨어진 곳에 7보로 된 성을 본다. 마음으로 환희하여 문득 그 가운데서 멈추게 된다. 그리고 역시 7보로 된 목욕하는 연못에 핀 연꽃 가운데에서 화생하게 되며, 곧바로 자연적으로 장대한 몸을 받게 된다.
그 성 또한 앞의 성에서 있었던 것과 똑같은 것이 있게 되니, 비교하면 제2 도리천상의 자연의 사물들과 같다. 그 사람 역시 그 성에서 5백 세를 마친 뒤에야 벗어나는 것을 얻게 되고, 아미타부처님의 처소에 이르게 된다.
그 사람은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지만 경을 듣고도 마음이 열리지도 풀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뜻으로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으며, 지혜는 밝지 못하고 경을 아는 것도 조금뿐이다.
거주하는 사택은 땅에 있으며, 그 사택에 대하여 자신의 뜻대로 높고 크고 허공 가운데 있도록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아미타부처님께서 계신 곳에서 멀고도 멀리 떨어진 곳에 겨우 가게 되니, 아미타부처님 근처에 가는 것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제2 중배(中輩)인 자가 의심하여 겪게 되는 것과 역시 같다. 그 사람은 오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역시 지혜가 열리고 풀리게 되며, 경을 알고 용맹을 갖추고 마음으로 마땅히 기뻐하고 좋아한다. 그런 뒤에야 제1 상배(上輩)인 자와 같이 된다.
왜냐하면 전세 과거의 삶에서 도를 구할 때 마음속으로 참회하고 의심하여 잠시는 믿고 잠시는 믿지 않았고, 선한 일을 실천하면 그 복덕이 모두 자연적으로 성취되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공덕에 따라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은 바가 있으니, 각각 자연히 향하여 가는 바가 있는 것이다. 경을 설하기도 하고 도를 실행하기도 하지만 억만의 세월이 지나도 결코 서로 미치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도를 실천하여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그 사람이 그렇게 한 이후에 모두 마땅히 아유월치 보살의 지위를 얻는다. 그리고 아유월치 보살인 자는 모두 마땅히 32상(相)과 자마금빛의 몸의 색깔과 80종호(種號)를 갖추게 되고, 또한 모두 마땅히 부처를 이루게 된다.
원하는 대로, 구하는 대로 타방에 있는 부처님 국토에서 부처를 이룰 뿐이니, 다시는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로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 정진과 도를 추구하는 것이 아침과 저녁으로 동등하게 이루어지며, 부처님 도를 추구함에 있어 쉬는 일이 없고 필요한 자를 만나니, 마땅히 그것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그 구하고 원하는 바를 잃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일보살 등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천신의 제왕과 인민이 있으니, 나는 그들 모두가 너의 무리였다고 말한다.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가서 태어나고자 하는 여러 존재들이 비록 크게 정진하지 못하고 선정에 들지 못하고 경과 계율을 지니지 못하는 자라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마땅히 선한 일을 실천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살생해서는 아니 되고, 두 번째는 훔치는 짓을 해서는 아니 되고, 세 번째는 다른 사람의 부녀자를 음탕하게 질투하고 애착하여 간음하여서는 아니 되고, 네 번째는 남을 속여서는 아니 되고, 다섯 번째는 술을 먹어서는 아니 된다. 여섯 번째는 이간질을 해서는 아니 되고, 일곱 번째는 거친 말을 해서는 아니 되고, 여덟 번째는 거짓말을 해서는 아니 되고, 아홉 번째는 질투해서는 아니 되고, 열 번째는 탐착심을 지녀서는 아니 되고, 마음속으로 인색해 하거나 아끼는 바가 있어서도 아니 되며, 화내고 분노해서도 아니 되며, 우둔하고 어리석어서도 아니 되며, 버릇과 취미만을 따라서도 아니 되며, 마음속으로 후회하는 바가 있어서도 아니 되며, 의혹해서도 아니 된다. 마땅히 효도하고 순종해야 하며, 마땅히 지극한 정성과 충성으로 믿어야한다. 그리고 마땅히 불경(佛經)의 말씀을 믿고 받아야 한다. 또한 선한 일을 실천하면 후세에서 그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마땅히 깊이 믿어야 한다.
그와 같이 받들고 지니어 그러한 법에 있어 더럽히거나 잃어버리는 것이 없는 자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가서 태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극히 중요한 것은 마땅히 재계를 한마음으로 청정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밤낮으로 항상 염하되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가서 태어나는 것을 구하여 밤낮으로 10일에 걸쳐 단절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면 아미타부처님은, ‘내가 그 모두를 자애롭고 애민하게 여기어 빠짐없이 나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나게 한다’고 원하시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 사람으로서 아미타부처님의 국토를 구하고 연모하며, 또한 현명하여 집에 거주하면서도 선한 일을 닦고 도를 실천하는 자는 처자와 함께 거주하여 은혜와 호의와 애욕의 가운데에 있게 되고, 걱정하는 마음과 괴로움이 많고, 집안일과 사무도 매우 많다. 그리하여 큰 재(齋)를 한마음으로 청정히 실행할 여유가 없다. 이처럼 집을 떠나고 애욕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여도 주위가 비어 있고 한가할 때에 스스로 마음과 뜻을 단정히 하고 염을 지니고 몸으로 선한 일을 실천하고 오로지 정진하여 도를 실행하되 밤낮으로 10일에 걸쳐 실행하는 자가 있다.
그는 능히 스스로 사유하고 숙고하고 계교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지만 자신을 제도하고 해탈하고자 하는 자로서 하열한 염을 마땅히 끊고 근심을 제거하며 집안일을 더 이상 염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인과 한 침상을 쓰지 않으며, 스스로 몸을 단정히 하고 마음으로 애욕을 단절하며 한마음으로 재계를 청정히 한다. 지극한 뜻으로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나기를 염하되, 하루 낮과 밤에 걸쳐 끊어지지 않게 하는 자는 수명이 끝나면 모두 그 국토에 가서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7보로 된 목욕하는 연못의 연꽃 가운데 화생하여 지혜와 용맹을 얻게 된다. 그 거주하는 사택은 7보로 되어 있고 뜻으로 짓고자 하는 바에 따라 자재롭다. 가히 다음으로 제1 상배인 자와 같다.”
부처님께서 아일보살에게 말씀하셨다.
“8방 및 위와 아래에 있는 무앙수의 여러 천신과 인민과 비구 승단과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들이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가서 태어난다. 무리들이 함께 모여 큰 모임을 이루니, 모두 함께 7보로 된 목욕하는 연못 가운데에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두 빠짐없이 함께 하나의 커다란 연꽃 위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또한 모두 빠짐없이 스스로 도덕을 수련하고 선한 일을 실천한다.
그 사람들은 각각 스스로 자신의 전세 과거의 삶에서 도를 추구할 때 계율을 지녔고, 지은바 선한 법을 바탕으로 과거에서 미래에 이르기까지 경의 도를 좋아하고 기뻐하였다. 그리고 경을 알고 지혜를 갖추었고 공덕을 베풀고 행하였던 바가 위와 다음과 아래에 걸쳐 돌아가며 모두 충만하였다.
그런데 경을 아는 데 밝음과 밝지 못함이 있고, 지혜에 있어 깊고 얕음과 크고 작음이 있으며, 덕에 있어 우수하고 열등하며 두텁고 엷음이 있다. 그러나 모두 자연의 도를 특별히 알고 재능과 지혜를 갖추었고 건강하고 용맹스럽다.
무리들이 서로 관찰하고 비추며 예의가 있고 화합하고 유순하니 모두 스스로 솟아오를 듯 환희한다. 지혜와 용맹을 갖추어 서로 복속하거나 따라잡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들 중에는 전혀 미리 덕을 짓지 못한 자가 있다. 선한 일을 실천하되 경솔하고 유희와 같은 면이 있었으며, 그대로 믿지 않으며 헛되고 치우치고 게으른 바가 있었으니, 무엇을 행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모두 그러하였다.
때가 되어 경의 도를 모두 모아 설하지만 자연히 촉박하여 응답하는 것이 지체되고 느리다. 부처님 도의 지혜는 탁월하고 뛰어나고 초월적이고 절대적이어야 하고, 재능을 갖추고 고매하고 용맹스러워야 하나 주변에 머물면서 약해지며 일에 임하여서는 곧 후회하게 된다. 후회하는 자는 이미 나온 자이니, 그 이후 마땅히 다시 무엇을 더하겠는가? 단지 마음속에서 눈물이 흐르고 원망스러울 뿐이다. 연모하는 바도 똑같이 그러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미타부처님 국토는 여러 보살과 아라한의 무리들이 크게 취합하여 모이되 자연히 빠짐없이 집합하여 마음을 묶고 뜻을 제어하며 몸을 단정히 하고 행동을 바로 한다. 즐거이 노닐면서 환하게 통달하고 함께 서로를 따라서 날아가되 무리들이 순서를 바꾸어 가며 드나든다.
공양하되 끝이 없고 환희하는 마음은 기쁘고 즐겁다. 함께 경을 보고 도를 행하며 화합하고 훌륭하며 오래도록 습득하고 재능과 용맹과 지혜를 갖추고 있다. 그 의도를 허공과 같이 한 채 정진하고 구하고 원하니, 마음이 끝내 다시는 방황하는 일이 없고, 뜻도 끝내 다시는 퇴전하는 일이 없고, 끝내 나태함이 없다.
그렇게 하며 궁극의 시기[極時]에 이르도록 도를 구하니, 밖으로는 다소 지체되고 느슨한 면이 있어도 안으로는 급속하고 빠르다. 무엇이든 허공과 같이 포용하고 적절하게 그 가운데서 얻어내며, 그 가운데서 서로 상응하는 것을 표출한다. 그들은 자연히 장엄되고 정돈되며 검속하고 바라는 바가 단정하고 곧바르다. 몸과 마음이 청결하고 애욕이 없다. 아주 탐착하는 바가 없으며 여러 가지 나쁘고 때 묻은 것들이란 없다.
그 뜻하고 원하는 바는 모두 각각 편안하고 결정되고 뛰어나고 훌륭하다. 그리고 늘어나는 것도 없고 모자라거나 줄어든 것도 없다. 도를 추구하되 화합하고 올바르고 오류가 없고 기운[傾] 바도 없으며 잘못된 것도 없다.
그리고 도와 교법을 따르고 희망하여 경에 입각하고 따르되 감히 위배되거나 차이나는 바가 없도록 한다. 8방 및 위와 아래에 가장자리 부분이란 없다. 바라는 대로 자재로이 가고 이르는 바가 다함도 없고 끝도 없다. 모든 것이 도를 위한 것인데, 그 도는 아주 크고 매우 넓다. 그들은 오직 도만을 염하되 다른 것을 염하는 일은 없다.
근심스런 생각이란 없고 자연의 무위에 서 있고 허공처럼 걸림 없이 서 있다. 넓고 편안하고 욕심이 없다. 선한 원을 짓고 얻으며 마음을 다하여 구하고 찾는다. 다른 존재를 포용하고 애민하게 여기며 우정을 갖추고 불쌍하게 여긴다. 정진하는 가운데 예의를 표하니 모두가 합치되고, 환하게 통달하여 위배되는 바가 없다. 화합하고 유순하고 합당하고 칭찬하고, 겉과 속을 다르지 않게 펼친다. 또한 지나가고 제도되고 해탈하여 능히 함께 니원(泥洹)에 들어간다.
그리고 도덕과 함께 길이 밝게 화합한다. 자연적으로 상호간에 보호하고 지키며 유쾌한 뜻이 번성하니 참으로 번창한다. 참되게 요달하니 순결하고 순백하며, 뜻하고 원하는 바가 더 이상 없다. 그리고 청정하고 안정되어 있다. 고요하면서도 즐거워하는 것에 끝이 없다. 또한 선하고 훌륭한 것이 비교할 데가 없다. 우뚝 솟아 밝게 비추니, 밝게 비추는 것이 환하게 열고 지극히 밝고 철저하게 도달한다.
자연스러운 가운데 자연스러운 모습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의 근본이 있으니, 자연히 다섯 가지 빛을 성취한다. 그 다섯 가지 빛은 아홉 가지 색깔에 이른다. 그리고 아홉 가지 색깔은 이리저리 돌고 돌아 수백천 가지로 다시 변한다. 마치 울단(鬱單, Uttarakūru-dvīpa) 대륙의 자연과 같으니, 자연히 7보를 이루고 모든 것에 충만하여 만물을 이룬다. 빛의 정수가 참으로 밝게 모든 자질을 갖춘 채 훌륭하게 방출된다. 매우 뛰어나서 끝이 없다.
그 국토는 참으로 그와 같으니, 굳이 선한 일을 하려고 힘을 쓸 필요가 없다. 도를 염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며, 위 또는 아래에 집착하지 않는다. 환하게 통달하니 통달치 못한 주변 자리란 없다. 잘못된 뜻은 허공 가운데로 버렸으니, 어찌 각각 정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스스로 구하고 찾지 않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나쁜 것을 초월하고 단절하고 제거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가서 태어나며 5악도(惡道)는 철저히 잘라 버리니, 그것은 자연히 닫히고 막힌다. 그들이 도에 오르는 것은 다함이 없다. 쉽게 가는 자는 아무도 없지만 그 국토에는 거역하거나 위배되는 것이 없다. 자연에 따르고 자연히 끌어당기니, 어찌 세속의 일을 버리지 않겠는가?
도덕을 구하고 행하나 지극히 오래 사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하여 수명에 끝도 다함도 없으니 무엇 하러 세속의 일에 집착하겠는가? 세속의 일이란 두렵고 두려우니 함께 근심하며 생각하는 바란 영원하지 못하다. 세상 사람은 박덕하고 세속적이어서 급박하지 않은 일로 함께 다툰다. 극도로 악하고 괴로운 가운데에 처해 있으면서 몸으로 힘써 가며 생활을 다스린다. 생활 용품을 서로 공급하며 살아가니, 그렇게 하는 데는 존귀한 자도 없고 비천한 자도 없고 부유한 자도 없고 빈한한 자도 없으며, 늙은이도 없고 젊은이도 없고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다. 모두 함께 돈과 재물을 근심하니 가진 자나못 가진 자나 똑같은 것이다.
근심스런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똑같으며, 더불어 삶을 경영하는 것도 슬프고 괴로운 일이다. 누누이 상념하고 사려하며 마음으로 분주히 달리게 하니 편안할 때란 없다. 밭이 있으면 밭을 걱정하고, 집이 있으면 집을 걱정한다. 소가 있으면 소를 걱정하고, 말이 있으면 말을 걱정하고, 여섯 가지 가축이 있으면 여섯 가지 가축을 걱정한다. 노비가 있으면 노비를 걱정하고, 의복과 금전과 재물과 금과 은과 보물이 있으면 다시 모두 그것을 걱정한다.
거듭 생각하고 누누이 한숨을 쉴 뿐이다. 근심스러이 상념하며 슬퍼하고 무서워한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영원한 것이 아니니, 물과 불과 도적과 원수와 주인과 채무자와 가족에게 떠내려가고 불태워지고 묶이고 뜻하지 않게 빠지고 잠긴다. 근심의 독이 무섭게 맺히니 그것에서 풀려날 때란 없다. 분노가 가슴속에 맺혀 거친 기운에 화내고 분노한다. 병이 가슴과 배 가운데 들어 있어 근심과 괴로움이 떠나지 않는다.
마음이 딱딱하고 의지가 고집스러워 적절한 때에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한다. 혹은 앉아서 꺾이고 감추어져 몸이 다하고 목숨이 망실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리고 가야 하는데 결코 어떤 누구도 따라가지 않는다. 존귀하거나 비천하거나 부호이거나 빈한하거나 그와 같은 근심과 두려움이 있기 마련이며, 이와 같이 힘들고 괴로워해야 한다. 무리로서 맺어져 있으니 춥거나 뜨겁거나 더불어 고통스러워하며 함께 거주한다.
집이 적고 빈한한 자는 빈궁하고 곤란하고 괴롭고 결핍되어 있다. 밭이 없으니 역시 근심하며 밭을 갖고자 한다. 집이 없으니 역시 근심하며 집을 갖고자 한다. 소가 없으니 역시 근심하며 소를 갖고자 한다. 말이 없으니 역시 근심하여 말을 갖고자 한다. 여섯 가지 가축이 없으니 역시 근심하며 여섯 가지 가축을 갖고자 한다. 노비가 없으니 역시 근심하며 노비를 갖고자 한다. 의복과 금전과 재물과 세간과 음식 등등이 없으니 역시 근심하며 그것을 갖고자 한다.
한 가지가 있게 되면 그에 따라 한 가지가 적어지고, 이것이 있게 되면 저것이 적어진다. 이것저것 다 갖추겠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갖추었는데도 문득 또한 모두 흩어져 다해 버린다. 그와 같이 괴롭게 살면서 마땅히 추구하고 끌어당겨도 때에 맞추어 얻는 것은 불가능하니, 의도하고 생각해 본들 이익 되는 바가 없다. 몸과 마음이 함께 피로하니 앉아도 일어나도 불안할 뿐이다. 걱정스러운 뜻이 계속하여 따라 일어나니 힘들고 괴로운 것이 이와 같다. 노심초사하면서도 분노와 원한에서 떠날 수가 없으니 홀로 화내게 된다. 또한 맺어진 무리가 춥고 뜨거운 것에 고통스러워하며 함께 거주한다. 어떤 때에는 여기에 앉아서 몸을 마치고 천명을 끝내는 일이 있다. 그는 일찍이 선(善)을 지으려 하지 않았고 도를 행한 적이 없다. 그리하여 수명이 끝나 죽게 되면 당연히 모두들 외롭게 멀리 떠나게 된다. 향하여 가는 곳이 선한 길인지 악한 길인지 그것을 알 수 없다.
어떤 때는 세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버이와 자식이든 형과 동생이든 남편과 아내이든 가족 사이이든 안팎의 친척들이든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으니, 마땅히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여 서로 미워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서로 공급하고 제공해야 하니, 탐욕을 일으키거나 인색하게 아끼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말투와 표정이 마땅히 온화하여 서로 위배되거나 부딪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어떤 때에는 마음으로 다투어 화내고 분노하는 일이 있다. 그런데 금세에는 한스러운 뜻이 있어도 미세하게 서로 미워하고 질투한 것이지만 후세에는 점점 극도로 커져 큰 분노를 이루게 된다. 왜냐하면 지금의 일은 문득 서로 위해를 입히고자 하여 임시로는 마땅히 급하게 파괴하지 않는다 해도 자연히 슬픔의 독으로 분노가 정신을 묶고 자연히 자극적으로 식별하게 되니, 결코 그 마음이 서로를 떠나는 일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두 삶을 되풀이하며 서로에 대하여 만날 때마다 보복하는 것이다. 사람은 세간의 애욕 가운데에 살고 있으면서 홀로 갔다가 홀로 오고 홀로 죽고 홀로 태어난다. 그리고 갈 곳으로 마땅히 가서 괴로움과 즐거움의 땅에 이르게 된다. 자신이 스스로 그것을 당해내야 할 뿐 대신해 줄 자는 없다. 선함과 악함이 변화하여 재앙과 악함 등이 그 장소를 달리 한다. 그 과보는 과거에 이미 예상되어 엄격히 기다리고 있으니 마땅히 홀로 갈 곳으로 올라가고 들어간다. 멀리 떨어진 다른 곳으로 가 버리니, 가서 어느 곳에 있는지를 능히 볼 자가 없다. 선함과 악함은 자연히 행한 바에 따라서 생길 뿐이다. 그윽히 멀고 어둡게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오래되고 길다. 가는 길이 이처럼 같지 않으면 서로 모여 다시 보는 것은 기약할 수 없으니, 다시 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찌하여 여러 가지 집에 관련된 일들을 버리지 않고, 이런 저런 부분들이 강건할 때에 노력하여 선을 짓지 않고 힘들여 정진하여 세간을 건질 것을 서원하지 않는 것인가? 지극히 긴 수명을 얻어서 어찌하여 특별히 도를 긍정하고 추구하려 하지 않는가? 다시 필요하다고 구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어떤 즐거움을 구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선을 지으면 선한 것을 얻게 되는 것을 믿지 않고, 부처님 도를 실천하면 도를 얻게 되는 것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믿지 않고, 베풀고 주면 복덕을 얻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 이처럼 그 도리를 도무지 믿지 않는다. 이것을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 하나 그런 일은 끝내 있을 수 없다. 단지 이것으로 말미암는 까닭에 장차 그것을 스스로 볼 뿐이다.
그런데 다시 서로 간에 대신하여 들어 보지만 앞뒤가 상속할 뿐이다. 그와 같이 점점 서로서로 이어받아 어버이의 것이 남은 자식에게도 그대로 가르쳐진다. 선조와 조부가 평소에 선을 행하지 않고 본래 도를 실천하지 않으니, 몸으로 하는 짓이 어리석고 정신이 어둡고 마음이 막히고 뜻이 닫혀 있다.
부처님의 큰 도를 보지 못하니, 사람이 죽고 태어나며 향하여 가는 곳이 있어도 그것을 보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적절히 선하고 악한 것을 보는 자가 없으니 다시 말하는 자도 없다. 선과 악을 실행하고 사용하고 실천하여 복덕과 재앙 및 화 되는 것이 각자 다투듯이 지어지고 행하여지고 사용되어도 그곳에 전혀 괴이한 것이라고는 없다.
태어나고 죽는 도는 점차적으로 서로 간에 자리를 물려준다. 그리하여 혹은 자식이 어버이를 여의고 통곡하고, 혹은 어버이가 자식을 여의고 통곡하며, 혹은 동생이 형을 여의고 통곡하고, 혹은 형이 동생을 여의고 통곡하며, 혹은 아내가 남편을 여의고 통곡하고, 혹은 남편이 아내를 여의고 통곡한다.
위와 아래가 뒤바뀌는 것이 무상(無常)의 근본이다.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버릴 뿐 항상 얻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가르치고 말하고 열어 주고 이끌어주어도 도를 믿는 자는 적으니, 마땅히 죽고 태어나되 쉬고 그치지 않는다. 그와 같은 무리의 사람은 몽매하고 어둡고 저항하고 부딪치기만 하고 경의 말씀을 믿지 않으며, 자신의 뜻만을 유쾌하게 만들고자 하여 마음으로 계교하고 배려하는 일은 없다. 애욕에 대해 우둔하고 어리석으며, 도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화내고 분노하는 일에 미혹하며, 재물과 색을 이리처럼 탐한다. 이처럼 그것으로 말미암아 도를 얻지 못하여 마땅히 힘들여 고생하며 지극한 악취에 태어나게 되니, 끝내 멈추고 쉬는 일을 얻을 수가 없다. 참으로 애통하고 매우 마음이 상하는 일이다.
어떤 때는 가족의 안팎에 또는 어버이와 자식 사이 또는 형제 사이 또는 부부 사이에서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 있는 상황에 이르러 더욱이 서로 통곡하고 울면서 돌아가며 서로 사모한다. 걱정스러운 기억과 분노에 묶이고 은혜와 애정에 매여 계속된다. 마음과 뜻으로 집착하여 고통스럽지만 서로에 대하여 보고 싶어하고 연모한다. 낮과 밤으로 묶이고 걸려 풀려날 때가 없으니, 도덕을 가르치고 말해 주어도 마음이 열리거나 밝아지지 못한다. 은혜와 호의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그 애정과 애욕을 떠나지 못한다. 닫히고 막히고 몽매하고 어둡고 교착되어 덮이고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마음이 저절로 단아하고 바르게 되어 세속의 일을 결단하고 오로지 온 힘을 다하여 도를 실천하여 문득 궁극의 경지로 돌아 들어갈 것을 생각하고 헤아리지 못하니, 수명이 끝나고 목숨이 다하여도 도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니, 어떤 것도 할 만한 것이란 없다
모든 것이 어지럽고 거칠어지면 모두 애욕을 탐하게 되니,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많고 도를 얻는 자는 적다. 세간이 어수선하여 가히 의지하고 신뢰할 만한 것은 없으니, 존귀한 자이든 비천한 자이든 높은 자이든 낮은 자이든 부호한 이[豪]든 귀한 자이든 빈한한 자이든 부유한 자이든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젊은이든 각자 정신없이 일하고 힘들여 고생하지만 몸은 궁색하고 살생의 독함만을 품고 있을 뿐이다.
악한 기운이 지극히 어둡고 모두가 슬퍼하면서 망령되이 일을 일으키니, 하늘과 땅을 악독하게 거역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따르지 않는다. 잘못되고 악한 도덕을 먼저 따르고 그것을 좇아 마침내 방자한 짓을 하면 그의 천수가 다하지 않았는데도 문득 갑자기 그 목숨을 빼앗기고 악한 곳으로 떨어져 들어가 세상을 거듭하며 힘들어하고 괴로워한다. 그 가운데에 슬픔의 독이 돌고 돌아 수천만억 년을 지나도 그것이 멈추는 것을 기약할 수 없다. 비통하여 말할 수가 없으니 매우 가련하고 불쌍할 뿐이다.”
부처님께서 아일보살과 여러 천상의 제왕 및 인민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 모두에게 말한다. 세간에 일이 있거니와 사람이 그것을 이용하는 까닭에 도를 얻지 못한다. 너희들 무리는 마땅히 오랫동안 그것을 사유하여야 한다. 악한 것은 마땅히 버리고 멀리 떠나고 지나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선한 일을 따라서 마땅히 굳게 지니어야 하고 망령되고 잘못된 짓을 하지 말라. 그리고 더욱더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많이 실천해야 한다. 크고 작고 많고 적은 애욕의 영화로움은 그 항상함을 얻을 수 없다. 모든 것은 마땅히 나뉘고 떨어질 뿐이니, 즐거워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부처님의 경의 말씀을 깊이 믿고 수용하며 도덕을 받들어 행하는 자는 모두 나의 아우[小弟]들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경과 계율을 크게 배우려고 하는 자는 모두 나의 제자인 것이다. 또한 몸을 빼내어 집을 떠나고 처자를 버리고 재물과 미색을 단절하고 제거한 뒤 사문이 되고자 하고, 나아가 부처를 이루고자 비구가 되는 자는 모두 나의 아들이며 손자이니, 나를 만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태어나기를 서원하는 그러한 사람은 지혜와 용맹을 반드시 얻어 여러 무리의 존경을 받는다. 그러므로 마음이 구하는 바를 따르다가 경과 계율에 있어 빠트린 것이나 위배한 것이 있어서 사람들의 뒤에 있게 되는 경우를 만나서는 아니 된다. 만일 그 뜻에 의심나는 것이 있고 경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부처님께 여쭈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를 위하여 그 뜻을 풀어 주실 것이다.”
아일보살이 무릎을 꿇고 합장한 뒤 아뢰었다.
“부처님의 그 위신력을 존중하며 경을 설하시는 바가 쾌활하고 좋습니다. 저희 무리는 경의 말씀을 듣고 모든 마음으로 그것을 꿰뚫어 보니, 세상 사람들은 실로 그러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 부처님께서 저희 무리를 자비와 애민함으로 대하시어 큰 도를 열고 드러내시고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치시고 말씀하시니, 귀와 눈이 총명한 자는 길이 건너서 해탈하는 것을 얻습니다. 만약 지금 다시 태어나는 기회를 얻는다 해도 저희 무리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를 듣는다면 실로 우정의 마음이 없다든지 환희하지 않는다든지 뛸 듯이 기뻐하지 않는다든지 뜻이 열리고 풀리지 않는 경우란 없을 것입니다.
여러 천상의 제왕과 인민 그리고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고 꿈틀대는 벌레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처님의 은혜를 입고서 걱정과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한 자가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담긴 가르침과 교훈은 매우 깊고 선한 것이니, 끝도 없고 바닥도 없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로 보고 아는 바는 8방과 위와 아래와 과거ㆍ미래ㆍ현재 등의 일에 있어서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가[邊]도 없고 주변도 없습니다. 부처님을 만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 지금 저희들 무리가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서 우정의 마음을 입어 제도의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은 모두 부처님께서 전세에서 도를 구할 때 힘들여 고행하시며 학문에 열중함에 정밀하고 밝고 지극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은혜와 공덕은 두루 세상을 덮고, 또한 베풀고 행하였던 복덕과 복록은 우뚝 솟아 있습니다.
광명이 철저히 비추니 허공을 환하게 하되 끝나지 않습니다. 니원을 관통하여 들어가게 하고 법을 가르치고 법을 주고 경전을 파악하게 합니다. 제압하는 힘과 위신력으로 능히 중생의 고충을 소화하여 8방 및 위와 아래를 감동시키니 그 끝이 없고 다함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스승이 되셨으며, 법으로서 존귀한 까닭에 여러 성인들을 초월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도무지 부처님께 능히 미치는 자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8방 및 위와 아래의 여러천상에 있는 제왕과 인민의 스승이 되시어 그들 마음이 구하고 원하는 바에 따라서 크건 작건 간에 모두 도를 얻게 하십니다. 지금 저희 무리는 부처님을 만나 뵙게 되었고, 또한 아미타부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으니, 매우 환희롭습니다. 날카로운 지혜로 마음이 열리고 밝아지지 않은 자가 결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아일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말이 실로 마땅히 그러하다. 만일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서 우정의 마음으로 대하는 자는 크게 기뻐하며 실로 마땅히 부처님을 염해야 한다. 천하의 세월이 오래오래 지나야만 다시 부처님께서 계시게 된다. 지금 나는 이 괴로운 세상에서 부처를 이루고 부처님의 경과 도를 내놓아 가르치고 베풀어 주고 통달하게 한다. 그리고 의혹을 단절하고 마음을 단아하게 하고 행위를 바르게 하며 여러 가지 애욕을 뽑아내고 온갖 악의 근본을 단절하였다. 노닐고 걸어 다녀도 구속되는 것이 없으니 경전을 총괄하게 하는 지혜를 갖추었고, 온갖 부처님 도를 겉과 속에 있어 파악하고 지니고 유지하고 망라하였다. 5도(道)를 밝고 분명하게 열어 보이고 생사와 니원의 도를 바르게 정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셀 수 없는 이전의 겁부터 다시 계산할 수 없는 겁 동안 보살의 도를 실천하여 왔고, 여러 천신과 인민 및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고 꿈틀대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제도하고자 하였으니, 이미 그것은 매우 멀고도 오래되었다. 너를 따라서 도를 얻고 제도된 자는 무앙수이며, 니원의 도를 얻고 그것에 이른 자도 무앙수이다.
8방 및 위와 아래에 있는 여러 천상의 제왕과 인민 또는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 너의 무리는 셀 수 없는 겁 이전부터 지금까지 5도를 이리저리 돌고 돌며 죽고 또 태어났던 것이다. 다시 서로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면서 서로 탐착하고 연모하였다. 걱정스럽게 생각하고 슬픔의 독에 빠진 채 고통스럽게 고생해 왔으니 다 말할 수조차 없다. 그리고 금세에서도 아직 나고 죽는 일을 단절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날 부처님과 서로 만나서 함께 자리에 앉아 보게 되고 아미타부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으니, 매우 쾌활한 일이고 잘된 일이다.
나는 너희 무리를 도와서 기쁘게 해 주고자 한다. 너희도 역시 스스로 나고 죽는 고통과 괴로움을 싫어해야만 한다. 태어날 때에도 매우 아프고 괴롭고 극단적이었다. 세월이 흘러 장대해져도 역시 괴롭고 극단적이니 죽을 때도 역시 아프고 괴롭고 극단적이다. 아주 악취가 나며 곳곳이 부정하니 정결하게 요달하는 것이 가능한 자가 없다. 부처님께서 너희 무리를 위하여 빠짐없이 말하니, 너희 무리는 냄새나고 곳곳에 나쁜 습기가 배어 있는 세상을 스스로 결정코 단절해야 한다.
그리고 너희 무리는 마음을 단아하게 하고 몸을 올바르게 하여 여러 선행을 더욱더 지어야 한다. 그렇게 항상 속과 바깥을 단아하게 하되 신체를 정결하게 하고 마음의 때를 씻어 제거해야 한다. 자신의 모습을 항상 검속하고, 겉과 속이 서로 어울리도록 해야 하며, 말하고 행하는 바에 충직함과 신뢰감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능히 스스로를 건지고 해탈시키며 방향을 바꾸어 서로 상대방을 돕고 접대해야 한다. 여러 가지 애욕을 뽑아내고 정밀하고 밝고 지극한 마음으로 추구하고 서원하여 물러서지 않으며 선한 도의 근본을 묶어야 한다. 그러면 비록 한 세상을 심하게 고생한다 해도 눈 깜빡할 사이일 뿐이다. 금세(今世)에 실천한 선은 뒤에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나게 하니, 유쾌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끝이 없다.
오래도록 도덕에 어울리어 밝아지고 그런 후에 서로 보호하고 지키면 길이 악도에서의 아픔과 고통의 근심과 번뇌를 제거하고 떠나게 되며, 괴로움의 여러 악한 근본을 뽑게 되고, 또한 애욕과 은혜의 선호하는 것 등을 단절하게 된다. 그리고 길이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태어나 여러 고통과 아픔이 없어지며, 역시 여러 나쁜 냄새나는 장소가 없어진다. 또한 힘들여 고생하는 일도 없어지고, 또한 음탕함과 질투와 화냄과 분노와 우둔함과 어리석음이 없어지고, 또한 근심스러운 생각과 슬픔의 독이 다시는 없게 된다. 아미타부처님 국토에 태어나면, 수명이 1겁ㆍ10겁ㆍ백 겁ㆍ천 겁ㆍ만억 겁이 되기를 바라거나 또는 수명이 무앙수의 겁 또는 다시 계산할 수 없이 많은 겁을 머물고 멈추어 있기를 구한다면 자유자재로 너의 뜻대로 그 모든 것을 얻게 된다. 먹기를 바라거나 먹지 않기를 바라면 너희들의 뜻에 따라 빠짐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리니, 가히 그 모든 것을 얻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는 니원의 도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각자 정성들여 밝게 마음속으로 서원하는 바를 구하고 찾아야 한다. 아무쪼록 의혹하거나 마음속으로 후회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곳에 가서 태어나기를 바라는 자는 그런 과실에 연루되어서는 안 된다. 아미타부처님 국토의 경계 변두리에 있는 7보로 이뤄진 성 가운데서 5백 년을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아일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의 엄하고 밝고 귀중한 교훈을 받았으니, 저희는 마땅히 한마음으로 정진하여 구하고 찾겠습니다. 요청한 대로 받들어 실행할 것이니, 감히 의혹하고 나태한 바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아일보살 등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무리가 이 세상에서 능히 마음을 제어하고 뜻을 바로 하여 몸으로 악한 일을 짓지 않는 것은 참으로 큰 공덕이며 선한 것이다. 그것은 8방과 위와 아래에서 제1배(第一輩)이니 비교할 만한 것이 없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8방 및 위와 아래에 있는 무앙수 부처님 국토의 여러 천신과 인간의 무리는 모두 자연히 선한 일을 실천하거니와 결코 크게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교화시키는 것이 아주 쉽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이 세간에서 부처를 이루어 다섯 가지 악함과 다섯 가지 아픔과 다섯 가지 불태움 가운데 부처를 이룬 것은 가장 극적인 것이다. 여기서 인민들을 교화하여 말하되, 다섯 가지 악함을 버리게 하고, 다섯 가지 아픔을 제거하게 하고, 다섯 가지 불태움도 제거하게 한다. 그렇게 하여 그들의 마음을 항복받고 교화하며, 다섯 가지 선한 일을 지니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복과 공덕과 세간을 건지는 것과 오래 사는 것[長壽] 그리고 니원의 도를 얻게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 악함이고,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 아픔이고,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 불태움인가? 또한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 악함을 소멸시키고 다섯 가지 선한 일을 지니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과 공덕과 오래 사는 것과 세간을 건지는 것 그리고 니원의 도를 얻게 하는 것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첫 번째 악함은 이러하다. 여러 천신과 인민과 그 아래로 금수와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고 꿈틀대는 벌레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온갖 악한 일을 지으려고만 한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억누르고 다시 서로 찌르고 도적질한다. 스스로 서로 간에 죽이고 해치고 서로 물고 뜯어먹는 상황이다. 선한 일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악하고 거역하니 올바른 도란 없다. 그리하여 뒤에 재앙과 벌의 길로 자연히 가게 된다.
마땅히 갈 곳을 향하여 가게 되니 천지신명이 있어 기록하고 식별하여 죄악을 범한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 것처럼 악한 일을 저지른 것은 다른 곳에 넘겨주지 못하니 돌아가며 이어지고 상속할 뿐이다. 그런 까닭에 빈한한 자가 되고, 또는 궁핍한 자ㆍ하열한 자ㆍ비천한 자ㆍ구걸하는 자ㆍ흉측한 자ㆍ고독한 자가 되며, 그런 까닭에 귀머거리ㆍ장님ㆍ벙어리ㆍ우둔한 자ㆍ어리석은 자, 그리고 패악무도한 자가 된다. 나아가 왜소한 자ㆍ미친 자ㆍ정상에 미치지 못한 자의 무리에 드는 데에 이른다.
또한 그러한 까닭에 존경받는 자와 비천한 자, 부호인 자ㆍ귀한 자ㆍ고명한 자ㆍ재능 있는 자ㆍ명철한 자ㆍ통달한 자ㆍ지혜 있는 자, 그리고 용맹한 자가 있다. 이들은 모두 전세 과거의 삶에서 선한 마음과 우정의 마음과 효성심을 지니고 보시를 실천하고 은혜와 복덕을 쌓은 것에 말미암은 결과이다.
세상에는 관청의 일과 왕의 법률이 있다. 이 법에 의해 마련된 감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근신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악을 짓고 그 죄 때문에 법으로 정한 감옥에 들어가 재앙과 무거운 벌을 받고 극형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풀리어 벗어나기를 구하고 희망해도 제도되고 나오는 것을 얻기란 어렵다.
지금 세간에서 그러한 일이 있으니 눈앞에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목숨이 다하더라도 저 깊고 어두운 곳에 들어가 이리저리 태어나는 곳을 옮기며 여러 몸을 받는다. 그럴 때 받는 고통은 비유하면 왕의 법 중에서 고통이 지극한 극형과 같다.
그러므로 자연히 니리ㆍ금수ㆍ벽려와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고 꿈틀대는벌레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그곳에서 몸을 이리저리 옮기고 그 형태를 바꾸면서 악하고 쉬운 길을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받는 수명의 길이가 어떤 경우는 길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짧기도 하다. 하지만 영혼[魂] 또는 정신(精神) 또는 심식[識]은 자연히 그곳을 향하여 가면서 형태를 받으며 모태에 의지한다.
그리고 마땅히 홀로 가고 향할 경우도 있고 서로 따르다가 함께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돌고 돌면서 서로 보복하거나 보상하며 마땅히 다시 되돌려 되풀이한다. 그들의 재앙과 악한 일과 앙화와 벌이 가지가지여서 다하는 일이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서로 떨어질 수조차 없으니, 이리저리 그 가운데서 돌고 돌면서 세세생생 겁을 거듭하지만 벗어나는 것을 기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곳에서 해탈한다는 것은 얻기 어려우니, 그 고통은 말할 수가 없다.
천지 사이에는 자연히 이러한 도리가 있다. 일에 임하였을 때 즉시에 갑자기 그 상응하는 바가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 그 결과를 취하는 것은 자연의 도이니, 선과 악의 도는 그 결과를 만나서 반드시 그것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을 첫 번째의 큰 악함 또는 첫 번째의 아픔 또는 첫 번째의 불태움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힘들여 고생하는 것이 그와 같으니, 슬픔의 독에 빠져 큰 소리로 탄식할 뿐이다. 비유하면 극한 불이 일어나 사람의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
그런데 사람이 능히 스스로 그 가운데에 있어 한마음으로 뜻을 제어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 행위를 바르게 하며, 오로지 여러 선한 일을 실천하고 온갖 악한 일을 짓지 않는다면 그 몸으로 홀로 건너고 해탈하여 그 복덕을 얻고 오래 사는 것과 세간을 건지는 것과 천상에 나는 것, 그리고 니원의 도를 얻는다. 이것을 첫 번째의 큰 선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두 번째 악함이란 이러하다. 세간의 제왕ㆍ장자ㆍ관리ㆍ인민들이 어버이와 자식 사이, 형과 동생 사이, 가문의 권속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가 뜸해서 의리가 없고 바른 것을 따르지 않는다. 사치와 사음과 교만을 지니고각자의 뜻만을 유쾌하게 만들고자 한다.
방자하게 마음대로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여 문득 상대방을 속이고 상황을 조절하며 죽음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마음과 입이 각자 달라서 말하고 생각한 것에 진실함이 없다. 왜곡되고 아첨할 뿐 충실하지 않아서 말을 교묘하게 꾸며놓고 있지만 행동은 단정하지 못하고 순서가 없으며, 다시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고 돌아가며 서로 비방하여 원한 맺힌 관계에 들어가 서로를 모함한다.
임금이 밝지 못하여 마음으로 뚜렷이 살피지 못한 채 신하를 임용한다. 그 신하가 자기 뜻대로 일하되 능수능란하게 행동하니 임금의 형세를 아는 것이다. 임금이 자리에 앉아서 정치를 베풀되 올바르지 않으면 그 신하에게 속아 망령되이 충성스럽고 선량한 신하를 물리치니, 마땅히 천심(天心)에 부합되지 않고 도리를 심히 위배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하는 그 임금을 속이고, 자식은 그 어버이를 속이며, 동생은 형을 속이고, 아내는 남편을 속이고, 그리고 가족 안팎에 면식이 있는 사이에도 서로 싸우게 된다. 각자가 탐욕과 음심과 표독스러움과 화냄과 분노를 품고 몽롱하고 우둔하며 어리석어 욕심만을 더하게 된다. 존귀한 자이든 비천한 자이든 높은 자이든 낮은 자이든 똑같이 그러하고, 남자이든 여자이든 어른이든 젊은이든 마음은 모두 똑같이 그러하니, 욕심으로 스스로를 두텁게 할 뿐이다.
또한 가정을 파괴하고 몸을 망치면서도 앞뒤를 돌아보거나 살피지 않는다. 가족과 친척들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파멸된다. 어떤 때는 가문의 안팎에 있는 사람들 또는 면식 있는 사람들 또는 벗과 친구들 또는 고향 사람들 또는 개인적인 모임의 사람들 또는 시읍이나 마을의 우둔한 사람들 또는 시골 사람들이 이리저리 섞이어서 함께 일에 종사하다가 문득 서로 이익과 손해를 따지다가 재물 때문에 다툰다. 그리고 싸우고 소송하고 분노를 드러내고 원수를 맺으며 돌아가면서 다투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또한 부유하면서도 인색하여 마음을 졸이며 결코 베풀거나 주려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지키고 애착하고 보호하고 탐착하여 인색하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각하고 상념하니, 마음은 괴롭고 몸은 고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