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아사세왕녀아술달보살경(佛說阿闍貰王女阿術達菩薩經)

불설아사세왕녀아술달보살경(佛說阿闍貰王女阿術達菩薩經)

서진(西晋)월지국(月氏國) 축법호(竺法護) 한역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열기(羅閱祇)의 기사굴산(耆闍崛山) 중에 대비구승 5백 인과 보살 8천 사람과 함께 계셨는데, 이들은 한 분 한 분이 매우 존귀하였으며 모두 다린니법(陀憐尼法:다라니법)을 얻어서 들어 아는 것이 마치 큰 바다처럼 아무 걸림이 없었다. 이들은 모두 5순(旬:五神通)을 얻어서 미묘한 구화구사라(漚和拘舍羅:方便勝智)와 총지공법장문(摠持空法藏門)에 깊이 들어갔다. 지의(志意)를 버리지 않고 수행에 색상(色想)이 없었으며 법행(法行)을 따라 귀의(歸依)함이 없었다. 또한 행(行)을 짓지 않고 경법(經法)을 설함에 있어 집착하는 바가 없었으며, 모든 것을 위해 스스로 본법(本法)을 관(觀)하고, 인(忍)을 얻어서 10사(事)를 일상적으로 행하였다.

이 때 수미산(須彌山)이라는 보살이 있었고, 또 대수미산(大須彌山)이라는 보살이 있었으며, 또 수미산정(須彌山頂)이라는 보살이 있었고, 또 사자(師子)라는 보살이 있었으며, 또 화가미(和呵未)라는 보살이 있었고, 또 상거수(常擧手)라는 보살이 있었으며, 또 상하수(常下手)라는 보살이 있었고, 또 상정진행(常精進行)이라는 보살이 있었으며, 또 상환희(常歡喜)라는 보살이 있었고, 또 상우념일체인(常憂念一切人)이라는 보살이 있었으며, 또 진보념(珍寶念)이라는 보살이 있었고, 또 진보수(珍寶手)라는 보살이 있었으며, 또 보인수(寶印手)라는 보살이 있었고, 또 집어(執御)라는 보살이 있었으며, 또 대어(大御)라는 보살이 있었고, 또 상지지성(常持至誠)이라는 보살이 있었으며, 또 미륵(彌勒)이라는 보살이 있었다.

이와 같이 열일곱 명이었으며 발타화(陀和) 등 여덟 명은 모두 발타화와 같은 무리였으니, 발타화보살ㆍ보만(寶滿)보살ㆍ복일두(福日兜)보살ㆍ인제달(因提達)보살ㆍ화륜조(和倫調)보살ㆍ상념(常念)보살ㆍ염익어세간(念益於世間)보살ㆍ증익세간공덕(增益世間功德)보살 등 이와 같이 여덟 사람이었다.

이 때 부처님께서 8천 보살과 함께 나열기(羅閱祇)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계셨는데, 국왕과 대신들로부터 존경과 칭송과 준봉(遵奉)을 받았으며 이들은 마치 아버지ㆍ바라문ㆍ가라월(迦羅越:在家佛子)을 존중하듯이 하였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무수하게 모인 대중 속에서 경법(經法)을 설하셨는데, 그 말씀하신 바가 처음의 말씀도 좋았고 중간의 말씀도 좋았으며 나중의 말씀도 좋았다. 말씀하신 바는 모두가 열어 드러나지 않음이 없어서 처음과 중간과 나중의 말씀을 모두 분명하게 깨쳐서 모두 구족하여 첨오(沾汚)됨이 없었다.

그리하여 무한히 정진하였으니, 당시의 사리불(舍利弗)ㆍ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ㆍ마하가섭(摩訶迦葉)ㆍ수보리(須菩提)ㆍ빈누(邠耨)ㆍ나운(羅云)ㆍ여월(蠡越)ㆍ안파유(安波臾)ㆍ우바리(憂波離)ㆍ아난(阿難)이 그러하였으며, 또 이방(異方)에서 온 무리들과 대비구승을 헤아릴 수 없었다.

아침때가 되어서 의복을 정돈하고 발우를 들고 나열기의 큰 성안에 들어가서 분위(分衛:乞食)를 하였다. 이처럼 존귀한 비구들이 성중에 들어가서 거리를 따라 분위하신 다음, 왕이 있는 아사세궁(阿闍貰宮)으로 가니 궁인(宮人)과 관속(官屬)들이 모두 한 곳으로 나와서 묵묵히 걸식에 응하였다.

이 때 아사세왕에게 딸이 있었는데, 아술달(阿術達)[중국말로 무수우(無愁憂)이다.]이라 이름하였다. 나이가 12세였는데, 단정하고 깨끗하며 아름다워서 그 미모가 제일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전세에서 부처님께서 지으신 공덕으로 인해 철저히 수행해서 무수한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렸다. 그러기에 무수우는 아뇩다라삼야삼보심(阿耨多羅三耶三菩心)으로 인해 꼼짝하지않은 채 부왕(父王)의 정전(正殿)의 금상(金牀) 위에 앉아서 이 존귀한 비구를 보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비구들이 찾아왔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부왕의 정전에 앉아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맞이하지도 않으며 인사를 올리지도 않고 또한 앉으라고 청하지도 않으며 분위하지도 않았다. 여러 존귀한 비구들도 역시 가만히 이 딸아이를 보고 있었다.

아사세왕은 딸 무수우가 존귀한 비구에게 공경하여 예를 올리지 않는 것을 보고는 그녀를 돌아보면서 말하였다.

“너는 모르느냐? 이 분은 달살아갈(怛薩阿竭) 아라하(阿羅呵) 삼야삼불(三耶三佛) 존비구(尊比丘)로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어 어떤 두려움도 없으신 분이다. 그 하시는 일이 수승(殊勝)한데 중담(重擔:煩惱)을 버렸기 때문이며, 생사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깊이 미묘한 이치에 드셨다. 그래서 이 분에게 공양하는 자는 그 복을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이 분은 스승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서 자비롭게 생각하여 복덕을 일으켜서 모든 자들에게 보시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이런 분을 보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묵묵히 보기만 하느냐? 너는 무슨 다른 이익이 있어서 이런 존귀한 분에게 인사를 올리지 않느냐?”

딸 무수우가 말하였다.

“왕께서는 일찍이 사자가 작은 짐승들을 위해 인사를 올리고 맞이하여 앉히는 것을 보셨습니까?” “보지 못하였다.”

딸이 다시 물었다.

“왕께서는 일찍이 차가월왕(遮迦越王:전륜성왕)이 작은 나라의 왕을 위해 일어나 맞이하여 예를 올리고 함께 앉았다는 말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또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여러 하늘들을 위해 일어나 맞이하여 예를 올리는 것을 보셨으며, 범삼발(梵三鉢)이 여러 범(梵)들에게 예를 올리는 것을 보셨습니까?” “보지 못하였다.”

딸이 다시 물었다.

“왕께서는 일찍이 큰 바다의 신[大海神]이 자질구레한 못이나 도량이나샘물의 신을 위해 예를 차리는 것을 보셨으며, 수미산이 여러 작은 산들에게 예를 차리는 것을 보셨으며, 해와 달의 광명이 반딧불과 나란히 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딸이 다시 말하였다.

“이와 같이 대왕께서 뜻을 발하시어 아뇩다라삼야삼보심을 구해서 모든 것을 제도하고자 하여 승나승녈(僧那僧涅)의 큰 갑옷을 입고 대비대애(大悲大哀)를 가지고 사자후(師子吼)를 한다면 무슨 두려움이 있겠으며, 비구로서 대비(大悲)ㆍ대자(大慈)ㆍ대애(大哀)함이 없이 사자후를 떠나 있다면 무슨 예를 차리고 기뻐할 것이 있겠습니까?
왕께서는 일찍이 대법왕(大法王)이 경론(經論)의 가르침 일체를 설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심을 발하도록 하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가 적은 비구를 위해 공경하여 예를 올려야 합니까?”

딸이 임금에게 물었다.

“큰 바다의 물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고 잴 수도 없고 그 끝을 볼 수도 없습니다. 큰 지혜도 이와 같지만 오히려 샘에서 흘러나온 물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마치 소발자국만큼의 물로 스스로 만족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를 큰 바다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이는 바로 생사를 두려워하는 비구인 것입니다. 그 뜻이 멸도(滅度)에 있어서 아뇩다라삼야삼보심을 발한다면 어찌 맞이하는 예를 차려야 합니까?
왕께서는 일찍이 수미산의 최고봉과 같이 높은 큰 지혜를 보셨겠지만 달살아갈(怛薩阿竭:여래)의 법은 존웅(尊雄)이십니다. 그런데 어찌 지혜가 겨자씨만한 비구를 맞아서 예를 차리겠습니까?
왕께서는 해와 달의 광명을 보셨겠지만 그 광명이 비치는 곳을 이루 계산하여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달살아갈의 법의 광명ㆍ지혜ㆍ공덕ㆍ명문(名聞)은 이것의 천억만 배가 됩니다.

마치 반딧불의 빛이 스스로 자신의 몸만을 비출 뿐 모든 사람에게 미치지 않듯이, 뜻이 작은 비구는 스스로 자신의 몸만을 제도하지만 큰 지혜의 법은 삼계를 비춥니다. 그런데 어찌 맞이하여 예를 차리겠습니까?”

딸이 왕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반니원(般泥洹:般涅槃)하신 뒤에도 오히려 이들 비구들을 위해서 예를 차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부처님께서 지금 살아 계시면서 법칙(法則)이 되어 있으심이겠습니까? 왜냐하면 저들 비구에게 예를 하는 것은 이 법을 익히기 위함입니다. 삼야삼불(三耶三佛:正徧知)의 법을 가까이 할 일이며, 삼야삼보(三耶三菩:삼먁삼보리)의 행을 얻을 일입니다.”

왕은 딸 무수우에게 말하였다.

“너에게 저돌적인 마음이 있어서 대비구를 보고도 공경하게 맞아서 손님으로 모시지 않고 널리 온갖 비유를 인용하면서 식사 준비를 할 생각을 않는구나. 너는 무슨 뜻을 구하느냐?”

딸이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참으로 저돌적인 마음이 있으십니까?”

다시 딸이 왕에게 말하였다.

“왕께서는 어째서 나라 안의 초라하고 미천한 거지들을 보고는 예를 차리지 않습니까?” “예를 차리지 않는 것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딸이 말하였다.

“왕께서는 보살과 성문ㆍ벽지불이 같은 종류가 아니라는 생각을 일으키셔야 합니다.”

왕이 딸에게 말하였다.

“나는 보살의 법을 듣고 행하여 모든 거칠고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부드럽고 약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낮추고 굴복한다. 그런데 너는 어째서 이런 연하고 약한 마음이 없느냐?”

딸이 왕에게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항상 독하고 악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살마하살이 자비로써 저들을 보호하여 온갖 독한 것들을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이들 대비구는 모든 번뇌[垢]를 제거하였으며, 이들 비구는 선이 늘어나지 않음을 보며 악이 줄어들지 않음을 보는 것입니다.”

딸이 왕에게 말하였다.

“앞으로 시방세계의 부처님께서 설사 이들 비구들을 위해 심묘(深妙)한 법을 설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그 정진을 증장(增長)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사의 길을 닫아서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비유컨대 이는 마치 병에다 물을 가득 담아서 밖에다 놓아둔 것과 같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더라도 병은 한 방울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빗방울 또한 병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이는 병이 이미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딸이 왕에게 말하였다.

“이들 비구들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만약 시방의 부처님께서 신족(神足)을 나타내어서 변화하여 경법(經法)을 설하시더라도 여래의 삼매[如來三昧]에 체득하여 도달할 수 없으며 공덕에 대하여 증익(增益)하는 바가 없습니다.”

딸이 왕에게 말하였다.

“비유컨대 큰 바다의 물은 사방에서 흘러서 모두 바다로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바다는 광대해서 받아들임을 이루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대왕이시여, 보살마하살이 경법을 설하면 마땅히 이와 같은 소견을 가져서 그 요익(饒益)되는 바가 많으며, 마하연심(摩訶衍心)을 발하여서 받아들이는 바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받아들이는 그릇이 이루 계산할 수 없고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 딸 무수우는 아사세왕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을 설하였다.

무수우란 이름을 가졌으니 
아사세왕의 딸입니다.


5백 명의 비구들이 찾아왔지만 
나는 일어나 예를 갖추지 않았습니다.



이 때 왕께서 꾸짖으시니 
비구스님들께 공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복지(福地)인지 나는 모르니, 
불자는 그런 것을 여의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수우가 게송을 설하니 
내가 설하는 지성스런 말을 들어보십시오.


비구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음은 
인사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입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가 
엽전 한 푼을 취하고 백 푼을 깨뜨립니다.


1백 푼 중에서 한 푼을 취함이 
법해(法海)에 들어가서 이처럼 취함입니다.



누가 만일 임금께 구걸을 한다면 
마치 날아다니는 차가월(遮迦越)처럼 
구걸하는 자가 엽전 한 푼을 구하니 
모자라기 때문에 왕을 따라 구걸함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왕을 기쁘게 해서 
천억의 보물을 왕에게 구걸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보시하고 안온케 하겠다면 
이러한 사람은 총명합니다.



사람들이 시시한 보물을 구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슬기롭지 못합니다.


성문의 법도 이와 같아서 
바다에 들어가서 보물을 스스로 조금만 취합니다.



재물이 많은 부자들처럼 
보살의 지혜가 귀중한 보배이니 
원컨대 법왕(法王)께 공양하고자 하여 
스스로 부처가 되어서 사람들을 제도해야 합니다.



마치 의원(醫員)이 자신만을 치료하면 
모든 사람을 낫게 할 수 없으니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원이 
곧 이름 있는 의사입니다.



마음을 발한 지혜로운 의사가 
자기만 벗어나고 남들은 버리므로 
영특한 자들은 존경하지 않으니 
자기 몸만 고치는 의원과 같습니다.



영특한 의사가 처방을 알아서 
무수한 사람들을 치료하므로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니 
뜻을 발한 보살이 이와 같습니다.



마치 열매도 잎사귀도 없는 나무처럼 
세상 사람에게 이익이 없으니 
아라한도 이 나무와 같아서 
이 세상에 이익됨이 없습니다.



마치 전단향 나무처럼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니, 
보살의 법도 이와 같아서 
경법(經法)을 가지고 감로(甘露)를 엽니다.



소 발자국에 고인 물을 가지고 
사람들의 번뇌[垢熱]를 씻을 수는 없지만 
항하수[恒河]는 무수한 사람들을 깨끗이 하니 
항하수가 흘러서 큰 바다를 채웁니다.



성문의 법은 소 발자국의 물이어서 
세간의 번뇌[熱]를 제거할 수 없지만 
보살의 법은 항하수와 같아서 
대천(大千)의 찰토(刹土)를 가득 채웁니다.



마치 때맞은 비가 보배이듯이 
어리석은 자는 엽전 한 푼만 취하지만 
지혜가 있어 더 많이 취한다면 
가난한 자는 큰 부자가 될 것입니다.



불(佛)은 비유하면 진귀한 보석이 비내리는 것과 같고 
성문의 법은 엽전 한 푼을 취함과 같습니다.


보살은 모아서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니 
보살의 보시가 이와 같이 넓습니다.



누가 만일 수미산에 간다면 
온 산이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겠지만 
나머지 토석(土石)의 산들은 
색깔을 황금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보살의 법은 수미산과 같아서 
보살의 은혜로 하늘에 태어날 것입니다.


생사의 고뇌를 여의지만 
성문은 사람들을 제도하지 못합니다.


풀잎의 이슬이 얼마 못 되기에 
이슬이 오곡을 익히지는 못하지만 
흠뻑 내리는 비는 윤택하고 풍부해서 
곡식들을 길러서 풍년이 되게 합니다.



성문의 법은 풀잎의 이슬이고 
보살의 법은 큰 비와 같으니 
대천세계에 모여든 자들을 
법의 비를 내려서 모두를 적셔줍니다.



가수화(迦隨華)는 향기가 없어서 
세상 사람들이 취하지 않지만 
사이화(私夷華)는 사람들이 즐겨 취합니다.


우담발화(優曇鉢華)와 연화(蓮華)도 그러합니다.



성문의 법은 가수화이어서 
성문의 향기가 멀리 가지 못하지만 
보살의 법은 사이화이기에 
모든 사람들을 제도해서 니원(泥洹)에 이르게 합니다.



겁이 많은 사람은 빈 못을 걸어가니 
그것이야 별로 어렵지 않지만 
인간세상의 길은 크게 어려워서 
모든 것을 가지고 생사를 도탈해야 합니다.



성문의 법은 빈 못을 걸어가는 것이지만 
보살의 법은 사람의 길이어서 
미혹한 자들을 생사에서 제도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자들을 인도합니다.


뗏목을 엮어서 건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뗏목을 타고서는 왕복할 수 없지만 
사람들이 큰 배를 만들면 
많은 사람들을 나를 수 있습니다.



성문의 법은 뗏목과 같지만 
보살의 법은 큰 배와 같으므로 
7각(覺)을 가지고 모두를 건네주니 
애욕(愛欲)을 벗어나서 큰 바다를 건넙니다.



갑옷을 입고 나귀를 타고는 
대중들 속에 들어갈 수 없지만 
갑옷을 입고 말[馬象]을 타고는 
싸움에 나가서 원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성문의 법은 나귀를 탄 격이요 
보살의 법은 말을 탄 격이니, 
보리수 아래서 마관(魔官)을 항복시켜 
하늘과 사람들을 구제합니다.



허공에 별들이 가득하지만 
별들은 한 밤을 밝히지 못합니다.


달이 홀로 나와서 크게 비추니 
남녀가 쳐다보고 기뻐합니다.



성문의 법은 별들과 같지만 
보살의 법은 홀로 밝은 달과 같으니 
보살의 은혜는 안온하게 만들어서 
살운야(薩云若:一切智)를 모두에게 말하게 합니다.


어두운 밤에 반딧불이 반짝여도 
사람들은 이것을 밝다고 하지 않지만 
해가 떠오르면 크게 밝아서 
염부(閻浮)의 땅을 이롭게 합니다.



성문의 법은 반딧불과 같은데 
보살의 지혜는 해와 달과 같으니, 
생사의 바다에서 사람을 건네주고 
모든 사람들을 밝아지게 합니다.

이 때 아사세왕은 딸 무수우가 이처럼 게송을 읊는 것을 듣고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사리불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 말이 매우 기이하다. 그 말이 거침이 없으니 지혜로운 자임에 틀림없다. 내가 시험하여 그의 지혜가 환희해서 인(忍)을 얻었는지 알아봐야겠다.’

그러고는 사리불이 왕의 딸 무수우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3승(乘)에서 어떤 것을 추구합니까?”

왕의 딸이 대답하였다.

“대비대자(大悲大慈)의 수레 타는 것을 구합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마하연삼발치(摩訶衍三拔致:大乘發越)를 구하고 싶습니까?”

왕의 딸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구하고자 하여 사자후(師子吼)를 합니까?”

왕의 딸이 대답하였다.

“사리불이여, 그 구함은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구하는 것이 있으면 사자후를 하지 않습니다. 주지(住止)함이 없어야 능히 사자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대 사리불이여, 법을 가지고 취증(取證)하니 어찌 성문과 벽지불의 법이 있겠으며 마하연의 법이 있겠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모든 법의 형상은 없으며 하나일 뿐입니다. 공(空)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왕의 딸이 사리불에게 물었다.

“모든 법이 공한데 어떤 행법(行法)을 지어서 3승(乘)을 설정합니까?”

사리불이 왕의 딸에게 대답하였다.

“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사리불이 다시 왕의 딸에게 물었다.

“불법이 있음과 불법이 없음은 다름이 없습니까?”

왕의 딸이 존자 사리불에게 대답하였다.

“가까운 허공과 먼 허공은 다름이 있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다름이 없습니다.”

왕의 딸이 사리불에게 물었다.

“비유컨대 내공(內空)과 외공(外空)이 다름이 있습니까?” “다름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 불법을 얻었으나 아직 도법(道法)을 얻지 못한 것과 같아서 아무런 다름이 없었다. 왕의 딸이 사리불을 위하여 갖가지로 공공(空空)의 법을 설하니 사리불이 말이 막혀서 이를 반박할 만한 다른 변재를 발휘하지 못하였다. 이 때 존자 마하목건련이 왕의 딸 무수우에게 말하였다.

“여래를 보면 무엇이 다릅니까? 요컨대 성문이나 벽지불은 능히 이를 미치어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왕의 딸이 존자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삼천대천세계의 별들의 수를 능히 알겠습니까?”

목건련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내가 선정(禪定)삼매에 들어서 본제(本際)를 관해야 할 것입니다.”

왕의 딸이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달살아갈은 일일이 삼매를 지녀 저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사람들의 의념(意念)이 취향(趣向)하는 바를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하물며 저 별들의 수이겠습니까? 이 때문에 달살아갈이 모든 법에 대하여 이를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문이나 벽지불이 능히 이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존자 목건련이여, 시방세계의 모든 불찰(佛刹)들 중에서 몇 개의 천지가 무너지고 몇 개의 천지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알지 못합니다.”

왕의 딸이 다시 목건련에게 물었다.

“그러면 몇 분의 부처님께서 과거에 계셨고, 몇 분의 부처님께서 미래에 오실 것이며, 몇 분의 부처님께서 현재 계십니까?” “알지 못합니다.”

왕의 딸이 다시 목건련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 세상에 탐욕스럽고 음란한 자는 몇 사람이나 되며, 성내고 미워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몇 사람이나 되며, 어리석고 미련한 자는 몇 사람이나 됩니까? 또 이 세 가지 일을 모두 행하는 자는 몇 사람이고, 이 세 가지 일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됩니까?” “알지 못합니다.”

왕의 딸이 다시 존자 마하목건련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몇 사람이나 성문의 도를 구하며, 몇 사람이나 벽지불의 도를 구하며, 몇 사람이나 마하연(摩訶衍:대승)을 구합니까?”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몇 사람이 부처님의 도를 구하며, 몇 사람이 부처님의 도를 믿지 않습니까? 또 몇 사람이 아흔여섯 가지의 도를 믿고 몇 사람이 아흔여섯 가지 도를 믿지 않으며, 아무것도 믿지 않는 자들은 몇 사람이나 됩니까?” “알지 못합니다.”

왕의 딸이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달살아갈은 이런 것들을 모두 다 압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아시는 것이 헤아릴 수 없고 한량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문이나 벽지불은 능히 이를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달살아갈은 모든 법에 대하여 이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존자 목건련이여, 달살아갈께서 신족제일(神足第一)이라 칭찬하셨는데 일찍이 건타하찰토(揵陀呵刹土;중국말로 향결국絜國>이다)에 이른 적이 있습니까? 이 찰토(刹土)에는 7보로 꾸민 나무들이 있으며 온갖 보물들로 나무를 삼고 전단(栴檀)으로 꽃과 향기를 삼고 있다고 합니다.”

마하목건련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들어보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으며 이제야 비로소 듣는 것입니다. 이 찰토의 이름을 일찍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거니와 원컨대 이 찰토의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의 명호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지금 현재 경법(經法)을 설하고 계십니까?”

왕의 딸이 대답하였다.

“이 찰토의 부처님께서는 향결방광명(香潔放光明)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이라 이름하는데, 지금 그곳에서 경법을 설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왕의 딸 무수우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서응삼매(瑞應三昧)를 짓고, 보살이 처음으로 뜻을 발하여 아뇩다라삼야삼불을 구하는 것이 성문과 벽지불보다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향결방광명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께서 광명을 드러내어 모든 성문들로 하여금 찰토를 볼 수 있도록 하고, 그 나라의 전단향의 향기가 이쪽의 찰토에 풍겨오도록 서원하였다.

왕의 딸 무수우가 이 원을 세우자, 드디어 향결방광명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께서 신상(身相)의 광명을 방출하여 이 찰토의 모든 성문들이 모두 저쪽 찰토의 향결방광명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께서 대중들 속에서 보살들에게 경법을 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모든 성문들이 각자 자기의 처소에서 저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을 듣고 모두 부처님의 위신(威神)의 은혜를 입었다. 그리하여 저 향결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께서 60가지의 소리로 법을 설하셨는데, 이것은 마치 왕의 딸 무수우가 설한 것과 다름이 없어서, 처음 뜻을 발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였으며, 이들 무리들은 성문과 벽지불의 경계를 지나갔다.

이 때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전단의 향기가 어느 찰토에서 풍겨오기에 여기에서도 이처럼 향기롭습니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왕의 딸 무수우가 여러 대성문들과 함께 사자후를 하여 이와 같은 좋은 조짐이 있었으므로 저 향결방광명부처님의 찰토에 있는 전단의 향기를 드러내어 이곳 사하(沙呵:裟婆)의 찰토에 가득 채운 것이다.”

무수우 왕의 딸이 존자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공덕의 변화를 드러냄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 자그마한 도에 뜻을 둘 수 있겠습니까?”

왕의 딸이 다시 목건련에게 물었다.

“혹시 건타찰(揵陀刹)이 여기서 얼마나 먼 곳인지 아십니까?”

목건련이 대답하였다.

“알지 못합니다.”

왕의 딸이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목련같은 이는 지금 이 삼천대천의 찰토 중에 가득하다고 하겠으니 비유 컨대 마치 갈대ㆍ뽕나무ㆍ대나무ㆍ곡식들ㆍ초목들과 같습니다. 만약 목련으로 하여금 이들을 하나하나 세게 한다면 설사 한 겁의 세월이 지나더라도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불찰들이 있으며, 이러한 불찰들을 지나가면 드디어 향결방광명부처님께서 다스리는 세계가 있습니다.”

이 때 향결방광명부처님께서 즉시 빛을 거두어서 본토로 돌아가셨다. 그러자 불찰이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목건련이 이와 같은 기이한 변화를 보고는 묵연(黙然)하여 아무 말이 없었다.

존자 마하가섭이 왕의 딸 무수우에게 말하였다.

“혹시 전에 석가문(釋迦文)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보를 뵈었습니까? 부처님의 색신(色身)을 볼 수 있을 경우에 부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의 모양[色]을 보는 자들이나 
나의 말소리를 듣는 자들이 
어리석어 믿지를 않으니 
이런 자는 보지 못함이니라.



법으로 부처님을 본다면 
부처님은 법신(法身)이니라.


법이란 것은 깨치기 어려우니 
이 때문에 볼 수 없느니라.

이 때 존자 마하가섭은 이런 생각을 했다.

“왕의 딸은 일찍이 석가문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을 뵈었습니까?”

그러자 왕의 딸이 가섭에게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을 뵈었습니다. 그러나 이 육안(肉眼)으로 본 것이 아니고, 그 색(色)으로 본 것이 아니며, 무색(無色)으로 본 것도 아니고, 역시 천안(天眼)으로 본 것도 아닙니다. 또한 감각[痛痒]ㆍ생각[思想]ㆍ생사의 식안[生死識眼]으로 본 것이 아니며, 지혜안(智慧眼)으로 본 것도 아니고, 상식(想識)으로 본 것도 아니고, 법안(法眼)으로 본 것도아니고, 역시 몸[身]으로 본 것도 아니고, 불안(佛眼)으로 본 것도 아니며, 명(命)으로 본 것도 아닙니다.

마하가섭이여, 저는 달살아갈을 보았습니다. 이는 마치 존자 마하가섭이 대명(大明) 없이 세간의 삶을 즐기면서 스스로 자신이 있다고 연일각행(緣一覺行)을 하는 자들에게 도를 보도록 하고자 생각하신 것과 같습니다.”

마하가섭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설사 이 법에 주인이 없더라도 어리석은 자는 삶[生]을 즐기면서 이것은 내 몸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모든 만물이 바로 내 것[我所]이라는 법상(法想)을 가집니다. 그리하여 극단[邊]에 치우쳐 있어 보지 못하니 무슨 방법으로 화생(化生)할 수 있겠습니까?”

왕의 딸이 마하가섭에게 말하였다.

“모든 법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법은 형상[形]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생(生)이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마하가섭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불법 또한 공(空)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왕의 딸이 다시 마하가섭에게 말하였다.

“만일 위없이 바르고 참된 법[無上正眞法]을 보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대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마하가섭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나는 백의(白衣:俗人)의 법도 듣고 싶은데, 하물며 부처님의 도를 듣고 싶지 않겠습니까?”

왕의 딸이 마하가섭에게 말하였다.

“법이란 있음도 볼 수 없고, 없음도 볼 수 없습니다.”

마하가섭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그것은 법이 없음입니다.”

왕의 딸이 다시 마하가섭에게 말하였다.

“모든 법이 공하여 형상이 없으므로 이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불신(佛身)의 모습을 보고자 할 경우, 스스로 깨끗하고 청정하게 수행해서 모든 청정함[淨]을 본다면 드디어 순숙(純熟)하게 될 것입니다.”

마하가섭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어떤 것을 일러 스스로 청정하게 수행하여 순숙하였다고 합니까?”

왕의 딸이 마하가섭에게 말하였다.

“능히 스스로 신공(身空)을 관하는 자는 빠짐없이 모든 법공(法空)에 들며 모든 법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청정함을 스스로 보는 것입니다.”

마하가섭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어떤 것을 일러 신공이라 합니까?”

왕의 딸이 말하였다.

“공이라는 것도 다한 공이며 이것이 몸이 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법의 공함이 역시 이와 같습니다.”

마하가섭이 다시 왕의 딸 무수우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이 법을 듣고 진실하게 믿게 되었습니까? 부처님에게는 두 가지의 인연이 있어서 이를 믿게 되는데, 남들의 선행(善行)을 듣는 것과 스스로 수행을 염하는 것입니다.”

왕의 딸이 가섭에게 말하였다.

“남들의 지혜로운 말을 들을 수 있으며 그리하여 스스로 자신을 살펴보아서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왕의 딸이 마하가섭에게 말하였다.

“자신의 지혜를 가지고 다시 모든 지혜를 본다면 밝음[明]을 스승으로 삼습니다.”

마하가섭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어떤 것을 일러 스스로 자신을 알아서 선(善)을 행한다 합니까?”

왕의 딸이 대답하였다.

“법을 듣고 선을 보는 것입니다. 몸소 선을 실천하는데 선을 보아서 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하가섭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어떤 것을 일러 보살이 스스로 자신을 보아서 선을 행한다고 합니까?”

왕의 딸이 마하가섭에게 말하였다.

“보살의 법은 모든 천하의 사람들과 함께 서로 적합[合適]하여 소원(疏遠)하지 않은데, 이것이 곧 보살이 몸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왕의 딸이 다시 마하가섭에게 말하였다.

“미래의 법ㆍ과거의 법ㆍ현재의 법이 뜻에 늘어남과 줄어듦이 없는 것이 보살의 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마하가섭이 왕의 딸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일러 법이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음을 본다고 합니까?”

왕의 딸이 마하가섭에게 말하였다.

“두 가지가 있는데, 유법(有法)과 무법(無法)입니다.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면 이것이 바로 스스로 신의(身意)의 행을 보는 것이며, 신의의 행을 보면 보고 알고 하는 것이 없게 됩니다. 마하가섭이여, 스스로 자신을 보십시오.”

가섭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어떤 것을 일러 스스로 자신을 본다고 합니까?”

왕의 딸이 말하였다.

“마하가섭처럼 스스로 자신을 헤아리면 모든 사람들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마하가섭이 대답하였다.

왕의 딸이 마하가섭에게 말하였다.

“모든 법은 버리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습니다.”

마하가섭이 입을 다물며 더 이상 대답을 못했다.

이 때 존자 수보리(須菩提)가 이 말을 듣고 너무 어렵다고 여기면서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왕의 딸 무수우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큰 이익[大利]을 얻어서 이처럼 변설(辯說)을 합니까?”

왕의 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이익을 얻은 것도 없으며 이익을 얻지 않음도 없습니다. 지혜도 법을 보지 못하고 법도 지혜를 보지 못합니다. 또한 안으로 관하지도 않고, 밖으로 관하지도 않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법이 있다고 말하면 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존자 수보리가 제일 즐거워하는[第一樂] 공한처(空閑處)와 같은 것입니다. 법이 처소가 있고 교설이 있다고 하면 지혜가 있게 되는데, 지혜는 있는 것이 아니며, 지혜는 설하는 것이 없습니다.”

수보리가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공한처를 가지지 않고 법이 있는 곳에서 지혜를 얻는다고 하면 이러한 법견(法見)은 설할 수 없는 것이며 발출(發出)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왕의 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모든 법이 다 이와 같습니다. 볼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취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큰 이익을 얻어서 지혜가 있다고 합니까?”

수보리가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설사 공하여서 지혜가 없다 하더라도 무슨 근거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왕의 딸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혹시 산골짜기에서 크게 소리를 질러서 그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들은 일이 있습니까? 모든 법이 다 이와 같아서 믿음은 말로 할 수 없으며, 믿음은 이 메아리인 것입니다. 지혜가 있느니 없느니 하지만 본래 지혜라는 것이 없으며, 이것은 메아리가 소리를 따라서 합성(合成)된 것입니다.”

왕의 딸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이처럼 메아리가 생길 경우 메아리에 어떤 형상이 있습니까?”

왕의 딸에게 대답하였다.

“메아리는 형상이 없고 허공을 인하여 생긴 이름입니다. 따라서 모든 법도 이 메아리와 같아서 공을 인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왕의 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모든 법이 법이라고 설하는 것은 공을 따라 생긴 것입니다.”

수보리가 왕의 딸에게 물었다.

“만약 모든 법이 공을 따라 생기는 것이라면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올 부처님이 저 항하의 모래알 수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의 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법이 생기는 곳을 알고 싶습니까?”

대답하였다.

“알고 싶습니다.” “생기는 곳에는 생김이 없으니 생김이 없는 것이 바로 생기는 곳입니다. 수보리여,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의 여래들께서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없으며, 또한 이르는 곳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처가 된 자는 어떤 법도 따르지 않으며 뜻을 발하여도 또한 뜻을 그치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이 설이 제일이니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왕의 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설한 것은 모두가 제일입니다. 가령 설하든 설하지 않든 간에 역시 제일 입니다. 모든 것이 생기는 것이 없으니 설할 수 없으며, 설할 수 없어도 불법(佛法)을 여의는 것이 아닙니다.”

수보리가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집에 있으면서 도를 닦아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온갖 종요(宗要)를 널리 보아서 미묘한 이치에 깊이 들어갔습니다.”

왕의 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보살이여, 거가(居家)도 없고 출가(出家)도 없으며, 사문(沙門)도 없고 사문 아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심의(心意)를 가지고 행(行)을 삼으며, 그 행은 지혜로서 최상을 삼고 총명[黠]으로 선(善)을 삼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물었다.

“보살은 몇 곳에나 머뭅니까? 이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왕의 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보살은 여덟 가지 법을 지녀서 머뭅니다. 그러므로 머무는 곳에 바로 머묾이 있으므로 어디에나 머물지 않음이 없는 것으로 성문(聲聞) 중에서 제일입니다.

어떤 것들이 여덟 가지의 법인가? 보살에 머물러서 항상 선의(善意)를 행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구하고 돌아서서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첫째는 큰 자비로써 천상과 천하의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고, 둘째는 대애(大哀)를 버리지 않고 세간의 법을 여의어서 신명(身命)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方便勝智)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행하여 모두 뜻을 발해 부처님을 구하도록 하는 것이며, 넷째는 언제나 용맹을 행하고 견문(見聞)을 싫어함 없이 모든 법을 구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보살의 행처(行處)를 모두 아는 것이며, 여섯째는 모든 사람들의 뜻을 구제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그 지혜를 남들로부터 받지 않고 모든 법을 스스로 증명하여 득인(得忍)하는 것이며, 여덟째는 이대로 하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법을 가지고 그 머문 곳에서 이를 행하면 나한과 벽지불보다 낫게 될 것입니다.”

드디어 수보리는 묵묵히 말이 없었다.

이 때 존자 나운(羅云)이 무수우 왕의 딸에게 물었다.

“이처럼 이해하여 모든 종요(宗要)와 총지지혜를 깨달아 알면서도 어째서 금상(金狀)에 앉아서 스스로를 더럽히고, 겸손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습니까? 그리고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아서 대비구들과 더불어 경법(經法)을 논란(論難)합니까?
내가 일찍이 부처님께 들은 바에 의하면, 사람이 질병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높은 자리에 앉거나 자리에 누워서 경법을 설하고 듣고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왕의 딸이 존자 나운에게 말하였다.

“세간에서 어떤 것을 청정하다 하고, 어떤 것을 부정(不淨)하다고 하는지 아십니까?”

나운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세간에서는 계율(戒律)을 지키고 이를 믿고 받아들여 범하지 않는 것이 청정한 것이고, 만일 이를 범한다면 부정한 것입니다.”

왕의 딸이 나운에게 말하였다.

“그만 하십시오. 이는 아직 분명히 깨치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운이여, 계율을 지니어 믿고 받아들여서 이를 범하지 않으면 이는 곧 부정한 것이요, 계율을 범하면 청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청정한 지혜에 의하지 않기 때문에 청정과 부정이 있는 것으로서 본래 무정(無淨)과 부정(不淨)이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아라한의 소견은 이와 같습니다. 계율을 범하는 자가 청정합니다. 왜냐하면 나운이여, 계율을 여의어서 다시는 배우는 일이 없어야만 무극(無極)의 지혜에 이를 수 있으며, 멀리 악도(惡道)를 여의어서 이 세간을 지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계율을 여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운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사람이 원(願)을 세운 경우와 세우지 않은 경우는 차이가 있습니까?”

왕의 딸이 말하였다.

“존자 나운이여, 비유하면 만약 자마황금(紫磨黃金)을 가지고 구슬고리나 구슬사슬 등 갖가지 물건들을 만든다고 할 때, 만들기 전과 만든 뒤에 색깔의 차이가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운이여,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의심하여 높은 자리에 앉아서 공경하고 겸손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였습니까? 고(苦)란 마음의 수행[意行]이 근본입니다. 나운이여, 옛날에 보살은 땅 위에 풀깔개를 깔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성문(聲聞)의 자리와 범천(梵天)의 자리를 지나가 앉았습니다.”

나운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을 일러 성문의 자리와 범천의 자리를 지나가 앉는다고 합니까?” “인자(仁者) 나운이여, 보살이 보리수 밑에서 풀을 깔고 앉았을 때, 삼천세계 찰토(刹土)의 제석ㆍ범천ㆍ사천왕과 세간(世間)들로부터 위로 33천(天)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과 큰 귀신들이 모두 찾아와 문안하였으며, 보살들이 이 보살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기도 하고, 꿇어앉아 절을 올리기도 하고, 겸손하게 예를 다하기도 하고, 합장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운이여.”

나운이 대답하였다.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나운이여, 보살이 처하는 마음가짐[意]의 높고 낮음이란 그 앉는 자리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문의 자리와 범천의 자리를 지나는 것입니다.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합니다.”

이 때 아사세왕이 딸 무수우에게 말하였다.

“너는 모르느냐? 존자 나운께서는 바로 자기월왕의 종성 중에서 제일 존귀하신 분으로서 도덕을 믿고 실천하여 어릴 때에 벌써 집을 버리고 나와서 사문의 생활을 하신 분이다. 그리하여 자가월 나라를 버렸으며 이 분은 부처님 석가문(釋迦文)의 아들 중에서도 지계(持戒)가 제일이신 분이시다. 그런데도 너는 어찌 도리어 가벼이 여기면서 공경하지 않는단 말이냐?”

딸이 왕에게 여쭈었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신단(神丹)의 진주(眞珠)를 어찌 수정(水精)에 비교하겠습니까? 왕께서는 일찍이 사자가 여우 새끼를 낳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리고 자가월왕의 아들이 어찌 작은 나라의 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될 수 없다.”

딸이 다시 왕에게 말씀드렸다.

“이런 인연을 아신다면 저 나운이 달살아갈을 따르지 않고 부모의 포태(胞胎)를 통해 태어나게 된 것을 아실 것입니다. 달살아갈은 사자행(師子行)을 통해 96가지의 도(道)를 모두 항복받았으며, 그 신통한 지혜를 빠짐없이 구족하여 크게 성스럽고 용맹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법을 모조리 깨달아 알며, 아무런 걸림이 없어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의 생각을 평등하게 이해하고, 미래ㆍ과거ㆍ현재를 모두 깨달아 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큰 의왕(醫王)이 되어서 사람들의 고통을 치료하며, 항상 모든 자들을 권조(勸助)하여 법륜(法輪)을 굴리십니다. 그래서 사리불ㆍ마하목건련ㆍ마하가섭ㆍ수보리ㆍ여월(蠡越)ㆍ나운ㆍ아난 같은 이들이 모두 그 법을 듣고 받들어 행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부처님의 아들은 아닙니다.”

이 때 여러 존귀한 성문들이 대중들 속에 있었으므로 왕의 딸은 이들을 위해 경법을 설하였다.

딸이 왕에게 말씀드렸다.

“과거 아승기겁에 부처님께서 계셨는데 제화갈라(提和竭羅:燃燈佛)라 이름하였습니다. 이 때 바라문의 딸이 있었는데 수라타(須羅陀)[중국말로 선결변(鮮絜辯)이다.]라 이름하였으며, 또 비다위(鞞多衛) 제화갈라달살아갈아라는 바라문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이 때 다섯 송이의 꽃을 사서 부처님 위에 뿌렸습니다.

그런데 이 때 꽃 파는 소녀가 마음의 원[心願]을 발하여 세세생생 그와 부부가 되어서 부처님의 경지를 얻는 데까지 이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발심해서 마하연을 구하였는데, 이 때 과거 아승기겁에서 공덕을 지어서 세세생생 서로 따르면서 모든 하열(下劣)한 자들을 구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부처님을 따라서 원을 구하였으며, 부처님을 따라서 원을 구함도 끝내 공하여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이(俱夷)라는 석가 종족[釋種]의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발하는 것을 크게 즐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구화구사라의 행으로 모든 보살들에게 권하여 처자ㆍ남녀ㆍ노비ㆍ상마(象馬)ㆍ금은ㆍ보물ㆍ마니주 등을 두는 것을 나타내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96가지의 도(道)를 모두 보호하여 보살을 비방하지 말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남자인 왕이 황문(黃門)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세상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어서 이를 참으면서 고생한단 말인가?’ 하고 생각한다면 마땅히 니리(泥犁:地獄) 속에 떨어져서 밤낮으로 받는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살이 제화갈라달살아갈아라하삼먁삼불을 따른 이래로 보살이 수기[別]를 받아서 색에 대한 생각이 없었습니다.”

딸이 왕에게 말씀드렸다.

“그래서 이 때 바라문의 아들 비다위가 제화갈라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을 따라서 지혜를 얻어 6만의 삼매문(三昧門)을 밝혀 항하의 모래알만큼의 다함없는 밝은 다련니(陀憐尼) 법을 체득했습니다. 이처럼 이 수기를 받을 때 종전의 소원이나 소위(所爲)는 다하여 모두 내버리고 인(忍)을 얻어서 말하기를, ‘나운(羅云)은 부처님의 아들로서 부모의 태중에서 태어난 자이다. 이는 여래를 헐뜯는 보살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처자(妻子)와 국성(國城)에 대하여 그 색을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보살은 애욕을 여의고 이러한 세간의 법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딸이 왕에게 말씀드렸다.

“큰 바다에서 불을 구하는 것은 오히려 가능하지만 보살에게서 탐욕ㆍ음란ㆍ진에(瞋恚)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왕께서는 이 법을 아셔야 합니다. 존자 나운은 화생(化生)하였으며 부모의 태중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 화현(化現)은 모두 부처님의 위신(威神)입니다.

보살은 습속을 따라 교화하는데, 모든 어리석은 마음들을 잘 조절하고 보호하여[調護] 마치 환영[幻] 같은 모양을 나타내며, 모든 행위는 항상 삼매(三昧)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현재 어린아이거나, 속인이거나, 거사이거나, 보살이거나, 성문이거나, 천상(天上)의 사람이거나, 인비인(人非人) 등을막론하고, 존귀하거나 비열하거나, 어른이거나 아이거나, 하천(下賤)하거나 기악(伎樂)이거나 궁녀거나 간에 주식(酒食)을 주어서 그들이 건너고자 하는 바에 따라서 가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타나 보이는 곳이 셀 수도 없으며 계산할 수도 없습니다.

모인 무리들 가운데에 마음을 발하는 자 중에서 누가 바로 달살아갈 종성(種姓)의 진정한 아들이겠습니까? 바른 소견을 평등하게 알아서 삼보(三寶)를 끊지 않으며, 7각의(覺意:七覺支)를 옹호하여 그 즐거운 바를 따라서 교화하는 자들이 진정한 부처님의 아들입니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부처님을 위하여 그 참된 아들이 되고자 한다면 마땅히 아뇩다라삼야삼보심을 발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할 때 왕의 후궁(後宮)에 있는 여자들 스물다섯 명이 모두 아뇩다라삼야삼보심을 발하였다.

이 때 천 명의 천자들이 왕의 딸 무수우가 사자후하는 것을 듣고 모두 아뇩다라삼야삼보심을 발하여 동시에 소리를 내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미래의 부처님과 과거의 부처님의 상자(上子)이다.”

이렇게 발심하고 나자 하늘의 꽃이 비 내리듯 하며 나열기의 큰 성을 두루 덮어서 왕의 딸 무수우에게 공양하였다.

이 때 무수우는 금상(金狀)에서 내려와서 여러 존귀한 성문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리고 왕의 딸 무수우가 여러 존귀한 성문들에게 물었다.

“분위(分衛:걸식)의 법을 아십니까?”

여러 존귀한 성문들이 왕의 딸에게 대답하였다.

“지금 안다고 하였는데 무엇을 안단 말입니까?”

대답하였다.

“몸에 4신(神)이 있는데 인연을 따라서 생깁니다. 그런데 언제나 이를 가리어 덮어서 순화(順化)하는데 이것이 무너질까 두려워서입니다. 그래서 밥을 먹는 것이며, 이 몸이 밥을 먹음으로써 존립하며, 밥을 먹지 않으면 편안할 수 없습니다. 이 몸은 마치 망가진 수레와 같아서 바퀴통에 기름을 쳐야만 편안하게 굴러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끼니때가 되면 먹을 것을 먹어서 몸을 지탱하고자 하여 자존심을 접어두고 걸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색상(色相)을 위해서 하거나 탐욕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탐심을 깨뜨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왕의 딸 무수우는 여러 존귀한 성문들이 각각 이에 대해 설하는 것을 들었습니다만, 말을 들어도 기쁘지도 않고 걱정스럽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이 몸은 그 재난 때문에 이처럼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청하건대 성문들은 이 쌀밥으로 공양하시고 식사를 마친 뒤 작별하고 다시 기사굴산 속으로 돌아가서 달살아갈께서 설하는 법을 들으십시오. 저희들도 역시 따라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왕의 딸 무수우는 식사를 마친 뒤 부모ㆍ형제ㆍ종친(宗親)ㆍ후궁ㆍ시녀들과 여러 신하들 및 백성들과 함께 성을 나와 기사굴산 속에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머리를 땅에 대고 부처님께 예를 올린 다음 부처님을 세 바퀴 돈 뒤 물러가 자리에 앉았다. 여러 존귀한 성문들도 역시 모두 선각(禪覺)을 따라와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한쪽에 가 앉았다.

사리불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의복을 정돈하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왕의 딸 무수우가 말한 것이 매우 어려우니, 이는 법의 요체에 깊이 들어간 것이며, 권행(權行)을 통해 사람을 세워줌이 이루 셀 수가 없고, 무엇을 묻든 모두 능히 대답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왕의 딸 무수우는 92억의 부처님께 공양하여 공덕을 쌓았으므로 언제나 구화구사라를 여의지 않는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다면 이 왕의 딸은 어째서 여인의 몸을 버리지 못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 성문들은 이 무수우를 여인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반야바라밀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여 사람의 본래의 자취를 살펴서 그 근본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행하는 바를 평등하게 보아야 한다.

보살은 마음대로 즐기고 기뻐하여 권도(權道)를 통해서 이를 시현(示現)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ㆍ여자라는 제한에 구애받지 않으며, 남자와 여자를 모두 제도하려는 것이다.”

이에 왕의 딸 무수우는 사리불의 의심[狐疑]을 풀어주기 위해 몸을 나타내어야겠다고 원을 세웠다. 그리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모두 남자로 보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곧장 대중들이 무수우의 몸을 보니 바로 남자이며, 여자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이 때 무수우는 공중으로 뛰어올라서 땅으로부터 70길이나 되는 허공에 머물렀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보라. 지금 무수우가 남자가 되어서 높이가 70길이나 되는 공중에 뛰어올라 머물러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예, 보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무수우는 앞으로 7백 아승기겁 후에 마땅히 부처님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 부처님께서는 비갈유(鞞竭兪)[중국말로 이수(離愁)이다.]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이라 이름하고 찰토를 비말구료해(鞞末拘遼害)[중국말로 무구탁광염(無垢濁光炎)이다.]라 이름할 것이며, 십만 겁의 수명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이 부처님께서 반니원(般泥洹)한 뒤에는 경법(經法)이 십 겁 동안을 끊어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찰토의 땅은 모두 고운 유리와 같이 되어 있으며, 이 찰토의 8 방에 매 방향마다 모두 길이 하나씩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다니시는 길이다. 여기서는 7보로 나무를 삼고, 각종 보석으로 난간을 만들며, 하늘 비단으로 일산을 만들며, 이름난 향으로 향을 피우고, 더럽고 지저분한 돌조각이나 파편 조각들이 없고, 순전히 구슬과 보석만으로 모든 물건을 삼을 것이다.

이 찰토에는 지옥[泥犁]이나 짐승이나 가시덩굴이 없고 다만 보살과 하늘들과 사람들이 있어서 마치 도리천왕(忉利天王)이 사는 궁궐과 같을 것이다.”

이 때 대중들과 아사세왕은 기뻐 날뛰면서 모두 매우 좋다고 하였다.

아사세왕의 정전(正殿) 부인은 전라합(旃羅廅)[중국말로 월명조(月明照)이다.]이라 이름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한 채 스스로 찬탄[嗟歎]하면서 마음속으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다시 제가 품어 기르기는 어렵습니다. 이 보살이 더욱 분발하여 이러한 공덕으로 해서 발심하여 아뇩다라삼야삼불을 구하고 발심하여 원을 세워서 지금 부처님께서 이 무수우에게 보살의 지혜를 주시어 후세에 마땅히 겁이 다하도록 부처님이 되게 되었으니, 원컨대 저로 하여금 그 다음에 저 찰토 안에서 부처가 되게 해 주소서.’

이 때 부처님께서 왕의 아내인 월명(月明)의 마음속 소원을 알아차리시고,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왕의 아내 월명을 보았느냐?”

사리불이 말하였다.

“왕의 아내 월명을 보았습니다.” “이 공덕을 지음으로 인해 마땅히 여인의 몸을 버리고 남자가 되어서 도리천에 태어나 하늘이 되어서 보제일(寶第一)이라 이름할 것이며, 미륵불이 하생(下生)할 때 가당(呵當)이라 이름하는 국왕의 태자가 되어서 종호(終好)라 이름할 것이다.

그리하여 수명이 다할 때까지 미륵불에게 공양할 것이며, 그 뒤에는 마땅히 미륵불을 위해 사문(沙門)이 되어서 처음에 설한 법[上法]을 기억하여 지니고 중간에 설한 법[中法]을 기억하여 지니고 나중에 설한 법[下法]을 기억하여 지니어서 이를 모두 발타겁(陀劫)의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께 공양할 것이다.

또 보살의 법을 행하여 저 이수(離愁)달살아갈이 부처님이 될 때 보제일(寶第一)은 마땅히 이 찰토에서 자가월왕이 되어서 보풍(寶豊)이라 이름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땅히 달살아갈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길 것이며, 형체와 목숨이 다한 뒤에는 반드시 그 부처님을 이어서 차례에 따라 부처가 되어 보명(普明)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이라 이름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땅히 이 무구탁염명(無垢濁炎明) 찰토를 교화할 것이며, 이 찰토의 일은 이우(離憂)달살아갈이 다스리는 곳과 같아서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왕의 아내 월명이 부처님의 이와 같은 수기를 듣고는 더욱 스스로 분발하여 스스로 찬탄하였다. 그리고는 몸에 지녔던 값어치가 백만 냥인 마니주 구슬을 풀어서 부처님께 바치고 아사세왕을 따라 5계(戒)를 구하여 지니어 따로 일정한 곳에서 이를 지켰다. 그리하여 음욕의 행을 여의고 모든 것을 청정하게 수행했다.

그러자 비로소 무수우보살이 허공에서 내려와서 합장한 채 부처님 앞에 멈추어 섰다.

“원컨대 제가 부처가 될 때 저의 찰토의 모든 보살들이 저절로 화생(化生)하여 큰 법좌(法座)에서 장성(長成)하며, 몸에 가사가 저절로 입혀지고 노소의 구별이 없이 스무 살의 팽팽한 얼굴을 갖게 하여 주소서. 지금 사문이 되기를 스스로 원합니다.”

그러자 저절로 법의(法衣)가 입혀져서 곧 그대로 시현(示現)되었다.

무수우보살이 왕에게 말하였다.

“법에는 견고함이 없어서 허공을 따라 서고, 허공을 따라 앉으며, 염(念)과 불념(不念)의 그 중간에 서서 그 뜻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기록하여 두는 것이 없으며 작위(作爲)하는 바도, 속하는 바도 없습니다.

왕께서는 이것을 보셨습니까? 하루 동안에 저는 여인에서 남자의 모습으로 변하였으며, 다시 비구승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입니까? 이 곳이든 다른 곳이든 사람의 몸에는 3독(毒)이 있는데, 세 가지 약으로 3초(焦)를 치료하면 모든 독을 없앱니다. 이런 법을 알기 때문에 대왕께서는 법이 아닌 행을 해서는 안 되며, 자주 부처님을 친견해야 합니다. 문수사리 동남(童男)보살이 능히 사람들의 번뇌[垢]를 없애고 공덕을 늘려서 제도하지 못한 자를 제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나라에 일이 많으시니 가시면 생각대로 하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수우보살이 수기를 받고 그 이치를 이해하여 능히 이를 지니어서 설한다. 그러니 마땅히 모두를 위하여 경법을 자세하게 설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부처님의 도리를 구하고자 하여 이 삼천대천의 찰토(刹土)에 7보를 가득 채우고, 이것을 달살아갈아라하삼야삼불께 보시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 경을 듣고 믿어 비방하지 않음으로 해서 얻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공덕만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더구나 목숨이 다하도록 이를 받들어 행하고, 비단과 꽃과 당개(幢蓋)와 기번(旗幡)으로 공양한다면 이로 하여 얻게 될 공덕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비구들이 가르침을 받았다. 이에 무수우보살은 기뻐하였으며, 아사세왕과 왕의 아내 월명, 아난존자, 모든 대중들, 모든 하늘과 용신(龍神)과 아수륜(阿須倫:아수라)이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경을 듣고 모두 기뻐서 앞으로 나와서 이마를 땅에 대고 부처님께 예를 올린 뒤 돌아갔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