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색가(好色家) 묘우꼬우왕(王) 매음녀에게 현혹되는 대왕
묘우꼬우 왕은 본래 그 성품이 여색(女色)을 좋아했다.
어느 날 많은 아름다운 소년들과 함께 고루(高樓)에 올라갔다. 그들과 더불어 세상만사의 이런 일 저런 일들을 담론하고 있던 중 대왕이 갑자기,
『너희들 중에서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어떤 미인이 있는지를 아는 자가 있으면 말해 보라?』
고 소년들에게 물었다. 소년들은 제각기 대왕의 환심을 사려고 견문과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어떤 자는 곡녀성(曲女城)에 미인이 있다고 대답했고, 어떤 자는 어느 나라에 누가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둥 대답이 백출했다.
최후로 한 소년은 다른 자들이 모두 외국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데 반해 이 성내에 매음녀이긴 했지만 젠켄이라는 미인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용모가 단려하기 비할 데 없고 또한 선녀와 같이 매끄럽고 아름다운 몸매와 고운 목소리를 지녔다고 말씀드렸다. 왕은 자신의 영토 안에 그토록 아름다운 미인이 있다고 듣자 당장 마음이 동했다.
그날 밤, 왕은 화려한 왕의와 관을 벗어놓고 서민들이 입는 허름한 의복으로 바꿔 입었다. 오십만원이란 대금을 몸속에 숨기고 매음녀 젠켄의 집을 몰래 찾아갔다.
매음녀 젠켄은 이것이 국왕의 암행인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다른 손님과 같이 영접을 했다. 하녀에게 우선 손님을 깨끗한 목욕탕에 안내하여 몸을 씻게 했다. 이때 마침 또 다른 손님이 오십만원이란 돈을 가지고 이 집을 찾아 왔다. 물론 젠켄을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때 매음녀들끼리의 불문율로서 뒤에 손님이 오면 앞서 먼저 온 손님을 살해해 버리고 그 뒤에 온 손님과 동침한다는 특별한 사법(私法)이 정해져 있었다. 대왕의 목숨은 마치 풍전등화와 같은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왕의 목을 씻어주고 있던 하녀는 그 손님의 용모가 범상치 않고 또한 어딘지 모르게 고귀한 위덕이 풍기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그를 쿠샤트리아 유(類)의 무사(武士)라고 단정했다. 지금 집에는 뒤에 또 손님이 왔으므로 자연히 불문율에 따라서 주인 젠켄은 잔혹하게도 손님을 살해할 것이다. 참으로 가엾은 일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문득 옷섶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이 광경을 바라본 왕은,
『너는 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느냐? 무슨 근심이 있느냐?』
고 물었다.
『아니예요, 아무 것도…』
하녀는 어물어물 넘기려 했다. 그러나 대왕은 그 하녀의 눈물이 마음에 걸려 자꾸만 이유를 캐물었다.
대답에 궁한 하녀는 마침내 대왕의 신변에 지금 큰 위험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음, 그것은 난처한 일이로구나. 어떻게든 여기를 탈출해야 되겠는데….』
『이 집 주위에는 칼을 잡은 호위인들이 항상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쉽사리 탈출하기는 힘들꺼예요. 만약 변소 쪽에서 몰래 빠져나가려면 그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손님은 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야 일명에 관계되는 경우니까 변소에서라도 탈출해야지. 자아, 빨리 안내해라.』
『하지만 그 변소는 출구를 못으로 박아 두었으니까 그것을 뽑지 않으면 안돼요.』
『그 못도 뽑도록 하지. 자아, 빨리, 빨리….』
『그만한 결심이 있으시다면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대왕은 하녀의 안내를 받아 유일한 탈출구인 변소로 들어갔다. 힘을 다해서 못을 빼려고 했으나 좀체로 못이 빠지지 않았다.
대왕은 죽을힘을 다해서 못을 빼려고 버둥대고 있었다.
황이 이렇게 탈출하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을 때, 이 매음녀의 이웃집에는 별(星)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한 바라문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마침 그 시각에 하늘을 쳐다보며 은하(銀河)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다. 바라문의 아내는 물을 들고 그런 남편 곁에서 그와 함께 서 있었다.
은하를 관찰하고 있던 바라문이 곁에 서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지금 성숙(星宿)을 보고있자니까 묘우꼬우왕의 신변에 위험이 박두하고 있어…』
그는 근심스러운 목소리였다.
『어머나! 그건 국가의 일대 중대사입니다. 하지만 잘못 그런 소리를 지껄이면 집에 화근이 미칠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라고 아내가 귓속말로 주의시켰다.
『우리들이 이렇게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도 국왕님의 은덕이요. 대왕의 보호가 있으므로 해서 우 리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는게 아니겠소. 그 국왕께서 지금 고난을 당하시고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이오.』
하면서 바라문은 중간 뜰로 내려와서 멀리 액성(厄星)을 바라보며 열심히 대왕의 고나 배제와 안녕을 위해 기도드렸다.
대왕은 변소 안에서 이 바라문 부부의 대화를 귀담아 들으면서 죽도록 힘을 모아 못을 빼려고 했다. 이윽고 바라문의 기도의 힘으로 못이 빠졌다. 왕은 기쁨에 떨면서 그 변소구멍으로 빠져 나왔다. 의복과 수족이 분뇨에 묻어 엉망이었다. 그러나 대왕은 그것을 돌볼 겨를도 없이 뛰어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다.
천성(天星)은 그때 새로 고쳐졌다.
이것을 바라본 바라문은,
『부인 대왕은 다행히 위난을 모면하셨오. 안심하시오.』
하며 자기 일인 듯 기뻐하는 것이었다.
겨우 위태로운 호구(虎口)를 벗어난 대왕은 몰래 성중으로 들어가 안라크 부인에게로 갔다. 부인은 대왕의 복장이 온통 오물로 더러워진 위에 그 안색이 창백하고 숨결도 허덕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왕전하, 도대체 이게 웬 일입니까?』
라고 물었다.
대왕은 숨김없이 자신의 추한 실패담을 부인에게 고백했다. 이를 들은 부인은 너무나 놀라워 눈물을 흘리면서 대나무 주걱으로 그 오물을 제거하고 향수로 그것을 씻었다. 여러 가지 향수로 대왕의 몸을 씻기고 옷을 갖추어 입힌 후 왕을 친소로 안내하여 그 피로를 풀어 주었다.
동쪽 하늘이 훤하게 트이자 부인은 일어나 정장을 하고 정전(正殿)에 나갔다. 그날 아침 조회에 참석한 여러 신하들을 향해,
『우리나라 안의 모든 점장이나 지상(地相)을 보는 사람으로서 천문성숙(天文星宿)에 정통한 자를 모두 왕궁으로 모이도록 하시오.』
라고 분부를 내렸다.
돌연히 왕비 안라크 부인으로부터 이런 명령을 받은 대신들은 대왕이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행여나 대왕의 신상에 이상이 있는 것인가 크게 걱정했다.
『왕비마마, 대왕전하께서 미녕하시지나 않사옵니까?』
『염려해 주시니 고맙소. 대왕께서는 무사하십니다. 지금 편안히 침상에 계십니다. 어느 곳에 천문역수에 달통한 바라문이 있다기에 그를 부르라는 분부였소.』
『신들도 이제 안심했습니다. 곧 그들을 소집하겠습니다.』
신하들은 매음녀 젠켄의 이웃집에 살고 있는 그 바라문을 호출했다. 그는 갑작스런 소명을 듣고 의복을 고쳐 입고 참내하려 했다.
그러자 그 아내가,
『어젯밤에 우리가 주고받은 말이 새어나갔나 봐요. 당신 혹 엄벌을 받게 되지나 않을지….정말 무서워요.』
하면서 두렵고 근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곧 일진(日辰)을 살펴보았다.
길(吉)이란 점괘가 나왔다.
『염려할 것 없어. 오늘은 상서롭고 좋은 일이 있을거야. 가만히 앉아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라구.』
그는 불안해하는 아내의 마음을 달래준 후 곧 왕궁으로 참배했다.
『잘 왔소. 이리 가까이 오라?』
그는 마음속으로 대왕의 수명장구를 기원하면서 조심조심 옥좌 가까이로 갔다.
『그래, 그대가 천문역수(天文曆數)에 달통한 사람인가?』
『황송합니다. 다소의 연구를 하고 있아옵니다.』
『그럼, 내가 묻겠는데 어젯밤 별은 길(吉)이었는가? 흉(凶)이었는가?』
『죄송하오나 작야의 대왕전하의 별은 대흉이었아오며, 대왕전하께서는 대단히 신고하셨으리라 생각하옵니다. 그러나 대왕전하의 복덕력(福德力) 때문에 간신히 존명을 유지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때 대왕은 여러 신하들을 향해 고쳐 앉았다.
『지금 이 대사(大師)의 말과 같이 나는 어젯밤 일명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대 재난을 만났던 것이오. 그런데도 내가 일찍이 믿고 있던 음양사(陰陽師)들은 누구 한 사람 그 재난을 몰랐었오. 무엇으로 봉록을 받고 있는지 녹(祿)을 줄만한 가치가 없는 자들이오. 당장 그들 점사(占師)들의 봉지(封地)를 몰수 하도록 하오.
또한 성내에 사는 매음녀 젠켄은 그 검은 머리채를 말에게 짓밟혀 죽게 하고 계집이 살던 집도 모두 부셔버리라. 그러나 거기 있던 하녀는 성중으로 데리고 들어와 궁성 안에서 일하는 하녀로 하라.』
라고 엄명을 내렸다.
다시 바라문을 향해서는,
『그대는 내 생명의 은인이니까 은혜를 보답하고자 한다, 그대의 소망은 무엇인가?』
라고 그 소망을 물었다.
『황송한 말씀이오나 제 혼자만 대답드릴 수 없아오니 후일 아내와도 잘 의논하여 답을 사뢰올까 하오 니 용서 하시옵소서.』
『그것도 그럴법한 일이구나. 그럼 너희들 부부가 잘 의논한 연후에 대답하도록 해라.』
『성은이 하해 같습니다.』
바라문은 잠시 말미를 얻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의 밝은 얼굴과 기쁨이 넘치는 듯 미소 지은 입모습을 바라본 바라문의 아내는 자신도 기대에 마음이 설레이며 남편의 귀가를 맞았다. 남편은 왕궁에서의 오늘 일어난 일들을 아내에게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대왕께서는 나에게 무엇이든 소망이 있으면 말 하라고 분부하셨소. 나는 일부러 집에 돌아와 당신과 도 의논한 연후에 대답해 드리기로 하고 돌아온 거요. 그래서 모두들 소망이 있으면 한꺼번에 모아서 말씀드리기로 했으니 모두들 무엇이 소원인지 말해 보도록 하오?』
라고 전제한 다음 먼저,
『나는 큰 촌락(村落)을 다섯 채 소망함.』
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아내는,
『나는 암소 백 마리.』
라 하고 장남은,
『나는 좋은 말과 수레.』
라고 하자 누이동생은,
『나는 영락(瓔珞)의 장식품.』
하고 소녀다운 희망을 말했다. 하녀는 조심스럽게,
『저는 마꼬우석(石)을 주셨으면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럼 됐다. 이제 너희들의 희망도 모두 알았으니까 나는 지금부터 다시 대왕전하를 배알하고 소망을 한꺼번에 말씀 올리리라.』
바라문은 다시 왕궁으로 들어갔다.
『저는 원하나니 오봉읍(五封邑)이오,
아내는 바라느니 소 백마리,
자식은 욕심부려 보물마차요,
소녀는 사랑하네 아름다운 구슬을,
하녀는 구하는바 마꼬우석(石)이라.
이러한 소원들을 바라옵건대,
대왕께선 불쌍히 여기시어 내려주소서.』
라고 송(頌)으로 대왕에게 소망을 아뢰었다.
그러자 대왕도 또한,
『그대에게는 오붕읍(五封邑)이오,
아내에게는 소 백마리,
자식에게는 마차,
딸에게는 구슬을,
하녀에겐 마꼬우석을 주리라.
모두 이 소원대로 내리리니
모두들 고루 만족하리로다.』
하고 역시 송(頌)으로써 그의 소망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다시 대신들을 향해서 바라문이 구하는 것을 모두 갖추어 하사하라고 명령했다.
또 다시 바라문에게는,
『바라문아, 그대는 나를 도와 국가를 통치하는데 보필하지 않겠는가? 그대와 같은 인물을 나는 일찍 이 찾고 있었다.』
고 말했다.
『황송하온 말씀이오나 저는 일찍부터 일개 하찮은 바라문 점장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찌 감히 국가 정치를 알 턱이 있사오리까. 하와 이 하명은 부득불 사양하오니 통촉하옵소서.』
라고 그는 굳이 사양했다. 그러나 대왕은 강제로 왕명을 발동시켜 그도 역시 대신의 자리에 앉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