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왕자와 부정한 아내

소지왕자와 부정한 아내

석존께서 왕사성의 영취산(靈鷲山)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설법(說法)하고 계실 때의 일이다.

인도의 어느 나라에 대지(大枝), 부지(副枝), 수지(隨枝), 소지(小枝)라고 하는 네 왕자를 가진 국왕이 있었다.

나라 안도 평온하여 왕자도 모두 무사히 자라서 부왕은 이웃 나라의 왕녀를 맞이해서 각각 네 왕자의 아내로 했다.

지금까지 부왕에 뜻에 따르고 한 번도 거역한 일이 없었던 네 왕자가 각기 아내를 맞이하니 갑자기 부왕에 대하여 위해를 가할 마음을 일으켜서 왕위를 엿보게 되었다.

왕자에게 반역할 뜻이 있는 것을 알게 된 국왕은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라 매우 화가 나서 마침내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이미 알게 된 마당에 그 어떤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후회할 날이 올 것이므로 마침내 네 왕자를 나라 밖으로 추방해서 흉계를 방지하기로 했다.

거역하려는 것이 깨뜨려지고 나라 밖으로 추방 당하게 된 네 왕자는 자학 자득이라고 할까, 너무도 빨리 폭로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각기 아내를 데리고 고국을 등지고 떠나게 되었다.

도보하는데 익숙하지 못한 왕자들은 알지 못하는 타국을 향해 정처 없이 나그네 길을 계속했다.

준비해온 식량도 돈도 점점 줄어서 어느 광막한 황야에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한 알의 식량도 없어졌다.

굶주림은 시시각각으로 더하여서 몸을 괴롭혔고 죽음이 다가올 뿐이었다.

이때 형제들은 비밀로 자기들의 아내를 죽여서 그 고기를 먹어서 이 굶주림을 피하여 이 들판만 지나가기로 서로 의 논했다.

그들도 자기의 아내를 죽이는 것은 인륜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참기 어려운 고통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서 더욱이 이 방법 밖에는 자기들이 살길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형제 세 사람이 이러한 인륜에 어긋나는 행위를 감행하려고 하는 것을 알아차린 막내 동생인 소지왕자(小枝王子)는 듣고 있을 뿐 이 무서운 일에 몸서리쳤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끊어서까지 살 필요가 없다. 자기의 몸을 죽이더라도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따라서 데리고 온 아내를 죽이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가. 아내를 죽이지 않더라도 살 방법이 있을 것이다.)하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형들과 함께 있으면 자기도 그 소용돌이 속에 빠져 들어갈 것이므로 여기서 한시바삐 도망쳐야 한다고 그는 아내를 데리고 어두운 밤에 형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도망쳤다.

아내의 목숨을 끊는 것이 싫어서 아내를 데리고 도망쳐 오기는 했으나 먹을 것을 얻을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굶주림은 한층 더해서 두 사람을 괴롭히게 되어 아무리 완강하게 버티어도 이 방랑자 부부는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힘이 없었다.

『저는 벌써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이제 말도 하기 곤란합니다.』

하고 젊은 아내는 피로한 몸을 길가에 쓰러뜨리고 호흡이 끊어지는 듯 왕자에게 고했다.

이 아내의 애절한 소리를 들은 그는,

(나는 비록 악마와 같은 자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목숨을 보전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하물며 자기의 아내가 죽음에 이르고 있는 것을 보고 버려둘 수는 없다.)

고 생각하여 아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스스로의 다리 살을 베어서 그 고기를 갖고,

『자아 이 고기를 먹는 것이 좋아.』

하고 주면서 이번에는 그 피를 받아서,

『이 피를 마시고 갈증을 면하면 돼.』

하고 입에 넣어 주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에 가득찬 이 한 조각의 다리 고기와 한 모금의 피를 먹고 굶주림과 갈증을 이겨낼 수 있었다.

왕자는 아내가 조금씩 생기가 돋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서 나무 열매나 풀뿌리 등을 채취해서 이를 먹고 왕자 부부는 이슬과 같은 목숨을 이어 나갈 수가 있었다.

이 산과 산 사이에 큰 강이 있었다.

먹을 것을 구하려고 그 강가에 갔던 왕자는 어느 사나이가 도적을 만나 그 손과 발이 끊긴채 강물 속에 던져져 괴로운 소리를 내며 구해 줄 것을 호소하면서 상류에서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자비심이 풍부한 소지(小枝)는 자기가 지금 사경에 빠져 남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지만 재빨리 강물로 들어가서 그 수족이 끊긴 사나이를 등에 업고 강 언덕에 올려 놓았다.

『도대체 자네는 어떻게 해서 수족이 끊긴 사나이를 등에 업고 강물에 흘러 내려온 것인가.』

『사실은 상류(上流)에서 한 사람의 도적으로 인해서 돈과 옷을 모두 빼앗겼기 때문에 이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것 참 안됐군. 나도 풀로 엮어 덮은 움막에서 목숨을 이어가는 몸이기 때문에 충분히 도울 수가 없으나 우선 내가 사는 곳까지 가도록 해요.』

『고맙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지왕자(小枝王子)는 부부 두 사람의 식량도 없는 곳에 그 사나이를 안내해 왔다.

그래서 못마땅한 얼굴을 나타내는 아내에게 일의 경위를 이야기 하고,

『그런 까닭에 당신도 위로해 주는 것이 좋다.』

고 말했다.

부부 두 사람의 정성스런 도움으로 그 사나이의 상처도 차차 나아갔다.

아내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이 불구의 사나이를 사모해서 소지가 없으면 그의 곁에 가서 희롱을 하게 되었다.

왕자의 자비심과 위덕으로 인함인지, 이 산속의 풀뿌리나 나무 열매들은 모두가 맛이 좋고 영양이 풍부해서 아내가 그것을 먹음과 더불어 아내의 사심(邪心)은 점점 더 강렬해져서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그녀의 정욕(情欲)은 마침내 공공연하게 그 불구의 사나이에게 말을 걸 수 있도록 되었다.

그렇지만 그 사나이는,

『마나님, 그러한 비행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목숨을 건져준 큰 은인의 아내를 사통하는 것은 인간의 탈을 쓰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할 일이 못됩니다.』

하고 거절했었다.

그러나, 그 아내의 사심은 끈덕지고 아무리 거절해도 거절할수록 점점 더 강렬하게 될 뿐이었다.

드디어 그 사나이도 번뇌의 노예와 정욕의 개(犬)가 되어 불의를 알면서도 은인의 아내와 정을 통하게 되었다.

이 불륜의 관계는 점점 짙어져서 이제는 어떻게 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밤에 그는 왕자의 부인을 향해,

『우리들의 불륜의 관계가 당신의 남편에게 알려지면 두 사람 모두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하고 의논했다.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나에게는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하고 그녀는 무슨 대책이 있는지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이러한 일이 있은지 며칠 지난 어느날 그녀는 고의로 옷을 입은 채 돌을 베고 잠자고 있었다.

산에서 돌아온 왕자는 그 모습을 보더니 놀라서,

『그대는 어디 기분이라도 나쁜가.』

『몹시 머리가 아파서.』

『이거 큰일 났군. 이 산속에는 약이 없는데.』

『제가 성에 있을 때 머리가 아파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은 결과 석백(石柏)을 머리에 바르면 곧 나았습니다.』

『그 석백은 어디에 있는가.』

『저 산 아래에 석벽이 있는 것을 언젠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가, 그럼 빨리 따오겠다.』

『당신 혼자서는 언덕을 내려갈 수 없으므로 저도 함께 가서 제가 줄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줄 터이니 당신은 그것을 잡고 내려 가십시오.』

『두통이 났는데 걸어가도 좋으면 그렇게 해주시오.』

원래 정직하고 조금도 사념이 없는 왕자는 아내를 데리고 그 절벽이 있는 곳으로 석백(石柏)을 따러 갔다.

다리에 줄을 매고 아내에게 그 줄을 끌게 하고 절벽을 차례로 내려 갔다.

절벽의 중턱까지 갔다고 생각 되었을 때에 그녀는 끌어 당기고 있던 줄을 갑자기 놓았다.

그래서 왕자는 절벽에서 바로 물속에 떨어졌다.

다른 사람 같으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곳인데 과보(果報)를 갖춘 왕자는 죽지도 않고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서 모르는 사이에 모국의 왕도에 표류하게 되었다.

한편, 이야기가 바뀌어 네 왕자의 역의(逆意)를 알고 그들을 국외로 추방한 국왕은 그 뒤에 곧 죽게 되었다.

이 때문에 왕위를 이을 왕자가 없고 대신들은 누구를 세워서 왕위를 잇게 할 것인가를 협의한 결과 점사(占師)를 불러서 결정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결정을 보았다.

재빨리 점사를 불러서 점을 친 결과 그 점사는,

『비록 백겁(百劫)을 지나도 지은 바 업(業)은 잊지 않고 인연을 맞이하게 되면 반드시 그 과보(果報)를 스스로 받는다.』

고 하는 말만 부를 뿐 아무도 선정하지 않았다.

이때 표류 해온 소지 왕자는 업(業)이 무르익어서 왕위를 이어야 할 때가 온 것으로 물에서 나와 언덕 위에 쉬고 있는데 그 위덕(威德)을 그리는 때문인지 그 언덕 위에서 이상한 광채가 비쳤다.

이 광채를 빨리 발견한 그 점사는 그 광을 쫓아와 보니 한 사람의 청년이 단정히 앉아 있었다.

그 관상을 보니 왕이 될 길상(吉相)을 갖추고 있으므로 급히 왕궁으로 돌아와서,

『대신, 왕위를 이을 대인(大人)이 나타났습니다. 급히 맞이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고했다.

점사의 급보를 받은 대신들은 서둘러서 성 아래를 장식하고 왕을 맞이해서 즉위식(卽位式)을 거행할 것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그래서 마침내 소지왕자(小枝王子)를 옹립(擁立)해서 국왕으로 했다.

대신들은 왕비를 구하기 위하여 모든 나라의 귀족들에게 명령해서 지혜와 용모를 겸비한 부인을 구하도록 했다.

각 나라의 귀족들은 제각기 스스로의 딸을 단장하여 왕도에 데리고 와서 왕의 뜻에 맞는 여자를 아내로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자기 아내 때문에 쓰라린 경험을 얻은 왕은 여성 그 자체에 대하여 전혀 좋지 않은 기분을 가지고 있는 때였으므로 아름다운 단장을 갖춘 젊은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대왕님, 국모(國母)가 없을 때는 왕의 후예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많은 사람 중에서 마음에 드시는 분을 왕비로 맞이하시도록 바라옵니다.』

하고 대신들은 왕에게 권했다.

『그러나, 여자란 요사스런 것이므로 나는 아내를 맞이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고 왕은 왕비를 맞이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소지 왕자를 절벽에서 떨어뜨린 그의 부정한 아내와 불의의 사나이는 도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왕자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불의의 환락에 빠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나 할는지 왕자의 모습이 그 산에서 없어짐과 동시에 지금까지 꽃과 나무 열매와 뿌리에도 모두 맛과 영양이 갖추어 있던 것이 갑자기 그 기운을 잃고 꽃도 피지 않거니와 나무 열매도 맺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록 나무 열매가 드물게 열렸다고 하더라도 쓰거나 떫거나 맛이 없어서 먹을 수 없는 것뿐이었다.

불의의 즐거움에 빠진 두 사람도 먹을 것이 나빠짐으로 그들의 신체는 점점 약해져서 생명을 이어갈 수 조차 없었다.

부득이 부정한 아내는 불구의 몸인 정부를 등에 업고 마을에 나와 걸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수족이 부자유스러운 사나이를 등에 업고 걸식을 하고 있는 이상한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은

『등에 업고 있는 사나이는 당신과 어떻게 되오.』

하고 모두 물었다.

그때마다

『이 사람은 저의 남편입니다. 불구의 남편과 함께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이 나라의 국법으로는 남편에게 시중들고 정조관념이 철저한 여자들은 존경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열녀의 거울이라』

고 그녀를 존경하여 먹을 것을 많이 주게 되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먹을 것에 구애를 받지 않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면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걸식하면서 드디어는 왕도(王都)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왕도의 사람들도 또한 그들에게 경의를 표시하게 되었고 그 열녀의 이야기는 왕도 안에 퍼졌다.

그 소문을 들은 대신들은,

『왕은 앞서 여자에게는 요사함이 많아서 자기는 아내를 맞이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세상에는 이와 같은 열녀도 있으므로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고 서로들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조를 간판으로 해서 생활하고 존경을 받고 있는 그녀는 드디어 왕궁의 문 앞에 와서 걸식을 했다.

그들의 소문을 들어서 살고 있는 문지기는 이 일을 국왕에게 말씀드렸다.

『그러한 정숙한 여자가 있으면 들어오게 하라.』

하고 명했다. 안내되어 온 부인을 한 눈으로 본 왕은 미소를 띄우면서,

『나의 고기를 먹고 굶주림을 면하고,

나의 피를 마셔서 갈증을 풀고,

이제 고깃덩이를 등에 업고 다니는 사람,

언제 본적이 있는 것 같군.

석백(石柏)을 따겠다고 거짓말하고

나를 절벽에서 떨어뜨리고

이제 고깃덩이를 업고 다니는 사람

언제 본듯도 하여라.』

하고 읊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노래를 들은 그녀는 마음을 뉘우쳐 고개를 떨구었다.

곁에 있던 대신들은 왕이 읊은 시(詩)의 뜻을 몰라서,

『대왕께서 지금 읊으신 시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 것이옵니까.』

하고 물었다.

대신들의 질문에 따라 소지왕(小枝王)은 이와 같이 열녀로 가장한 부인에 대한 과거사를 자세히 이야기 했다.

왕의 말씀에 따라 사정을 알게 된 대신들도 또 성 아래 사람들도 그녀의 부정한 행위에 놀람과 동시에 지금까지 그녀를 존경하던 것을 뉘우치며,

『이 더러운 여자.』

하고 나무라며 그녀와 그 사나이를 밖으로 추방하고 말았다.

소지왕은 지금의 석존이요, 부정한 부인은 데다밧다의 전신이다.

<根本設一切有部毘郡耶破憎事十六>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