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식시획오복보경(佛說食施獲五福報經)

불설식시획오복보경(佛說食施獲五福報經)

후한(後漢)안식국삼장(安息國三藏) 안세고(安世高) 한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예”라고 대답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진 이[賢者]의 법이 있다.”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들었다.

“또 어진 이의 법이 아닌 것이 있다. 마땅히 듣되 자세히 듣고 자세히 알고 자세히 생각하여 말하라.” “예.”

비구들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았다.

부처님께서 곧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어진 이의 법이 아닌가? 어떤 비구는 큰 족성(族姓) 출신으로서 도를 좋아하고 도를 배우고자 하는데, 만일 같이 공부하는 다른 비구가 큰 족성 출신이 아니면 그 비구는(자신이) 큰 족성 출신이라 하여 스스로 교만하고 남을 업신여긴다. 그것은 어진 이의 법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어진 이의 법인가? 어진 이는 이렇게 배우고 생각한다.

‘내가 큰 족성 출신이라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꼭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 때로 어떤 비구는 큰 족성 출신이 아니지만, 다만 방편으로 법을 받고 법대로 말하며 이치대로 행하고 법을 따라 행하므로 이름이 난다.

이렇게 법대로 행하고 진리[法諦]를 따르며 스스로 자랑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도 않는 것, 이것이 어진 이의 법이니라.

혹 때로 어떤 비구는 얼굴이 단정한데, 다른 비구가 그렇지 못하면 그는 자신이 단정하다 하여 스스로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긴다. 그것은 어진 이의 법이 아니니라.

그러나 어진 이는 그렇지 않다. 어진 이는 이렇게 스스로 생각한다.

‘얼굴이 단정하다고 내가 꼭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 때로 어떤 비구는 얼굴은 단정하지 않지만 법을 따라 많건 적건 그대로 행하므로 칭찬을 받고 이름이 난다. 이렇게 진리를 배우고 법에 따라 행하며 스스로 자랑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도 않는 것, 이것이 어진 이의 법이니라.

혹 때로 어떤 비구는 말을 잘하고 설명을 잘하는데, 다른 비구가 그렇지 못하면 그는 자신은 말을 잘하고 설명을 잘한다 하여 스스로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긴다. 그것은 어진 이의 법이 아니니라.

그러나 어진 이는 그렇지 않다. 어진 이는 이렇게 배우고 생각한다.

‘말을 잘하고 설명을 잘할 줄 안다고 내가 꼭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 때로 어떤 비구는 말이 아름답지 못하고 잘 설명하지도 못하지만 다만 법대로 가르침을 받고 많건 적건 그에 따라 행하므로 공경을 받고 이름을 얻는다. 이렇게 법을 따르고 법을 배우고 진리를 행하며 스스로 자랑하지도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도 않는 것, 이것이 어진 이의 법이니라.

혹 때로 어떤 비구는 나이 많고 지식이 많으며 복록이 많은데, 다른 비구가 그렇지 못하면 그는 자신이 나이 많고 지식이 많다 하여 스스로 자랑하고 교만하며 남을 업신여긴다. 그것은 어진 이의 법이 아니니라.

어진 이는 그렇지 않다. 어진 이는 다만 이렇게 생각하고 배운다.

‘나이가 많고 지식이 많으며 복이 많다고 내가 꼭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 때로 어떤 비구는 나이도 많지 않고 지식도 많지 않으며 복도 많지 않지만 다만 법을 배우고 법을 따르고자 하며 법을 따라 다소 행하고자 하므로이름을 얻는다. 이렇게 법을 따르고 진리를 따르며 스스로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도 않는 것, 이것이 어진 이의 법이니라.

혹 때로 어떤 비구는 경을 들어 알고 경을 설명하며 계율을 알고 진리를 이해할[入] 줄을 알며 경에 통달하는데, 다른 비구가 그렇지 못하면 그는 자신이 진리를 이해하고 경에 통달했다 하여 스스로 자랑하고 교만하며 남을 업신여긴다. 그것은 어진 이의 법이 아니니라.

어진 이는 그렇지 않다. 어진 이는 다만 이렇게 생각하고 배운다.

‘진리를 이해할 줄 알고 또 경에 통달했다고 내가 꼭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 때로 어떤 비구는 진리에 대한 이해[入]도 없고 경에도 통달하지 못했지만 다만 법을 배우고 법을 따르며 바로 법을 따라 행하기를 구하므로 공경을 받고 이름을 얻는다. 이렇게 법을 지키고 법을 따르고 진리를 행하며 스스로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도 않는 것, 이것이 어진 이의 법이니라.

혹 때로 어떤 비구는 스스로 구하고 아는 이를 좇아 구하지 않되 일곱 집을 넘기지 않고 한 자리에 앉아 한 번 먹고 그 뒤에는 먹지 않는데, 다른 비구가 그렇지 못하면 그는 자신이 한 번 먹은 뒤에는 먹지 않는다 하여 스스로 자랑하고 교만하며 남을 업신여긴다. 그것은 어진 이의 법이 아니니라.

그러나 어진 이는 그렇지 않다. 어진 이는 다만 이렇게 배운다.

‘한 번 먹은 뒤에는 먹지 않는다고 하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 때로 어떤 비구는 한 번만 먹지 않고 먹은 뒤에 또 먹지만 다만 법을 배우고 법을 따르며 바르게 법을 배우고 따르므로 공경을 받고 이름을 얻는다. 이렇게 법과 진리를 다르며 스스로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도 않는 것, 이것이 어진 이의 법이니라.

혹 때로 어떤 비구는 굴 속이나 무덤 사이에 살면서 다만 세 벌 가사[三領衣]만 가진다는 명성이 있는데, 다른 비구가 그렇지 못하면 그는 (자신은 3의만 가진다는) 명성이 있다 하여 스스로 자랑하고 교만하며 남을 업신여긴다. 그것은 어진 이의 법이 아니니라.

어진 이는 그렇지 않다. 어진이는 다만 이렇게 생각하고 배운다.

‘세 벌 가사만 가진다고 내가 꼭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 때로 어떤 비구는 세 벌 가사만 가진다는 명성은 없지만 다만 법을 배우고 법을 따르는 데 바르게 법을 배우고 따르므로 공경을 받고 이름을 얻는다. 이렇게 법과 진리를 따르며 스스로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도 않는 것, 이것이 어진 이의 법이니라.

혹 때로 어떤 비구는 한데 머무르고, 혹은 나무 밑이나 혹은 빈 늪이나 무덤 사이에서 머무르는 곳이 곧 침구인데, 다른 비구가 그렇지 못하면 그는 자신이 그렇다 하여 스스로 자랑하고 교만하며 남을 업신여긴다. 그것은 어진 이의 법이 아니니라.

그러나 어진 이는 그렇지 않다. 어진 이는 다만 이렇게 생각하고 배운다.

‘한데나 나무 밑이나 빈 늪이나 무덤 사이에서 지낸다고 내가 꼭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 때로 어떤 비구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다만 법을 배우고 법을 따르는 데 바르게 법을 배우고 따르므로 공경을 받고 이름을 얻는다. 이렇게 법과 진리를 따르며 스스로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도 않는 것, 이것이 어진 이의 법이니라.

혹 때로 어떤 비구는 이미 제1선을 얻었는데, 다른 비구가 그렇지 못하면 그는 자신은 제1선을 얻었다 하여 스스로 자랑하고 교만하며 남을 업신여긴다. 그것은 어진 이의 법이 아니니라.

그러나 어진 이는 그렇지 않다. 어진 이는 다만 이렇게 배운다.

‘제1선에 대해, 부처님께서, (내가 그렇다고 알면 그것은 수(受)이다.’

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진리다. 이렇게 스스로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것이 어진 이의 법이니라.

혹 때로 어떤 비구는 제2선의 덕과 제3선의 덕, 혹은 제4선의 덕이 있지만, 제1선을 얻은 때처럼 말한다. 이것이 어진 이의 법이니라.

혹 때로 어떤 비구는 허공 경계의 뜻을 알고, 때로는 의식 경계의 뜻을 알며, 때로는 덧없는 경계의 뜻을 알고, 때로는 생각이 없기도 하고 생각이 있기도 한 경계의 뜻을 아는데, 다른 비구가 그렇지 못하면 그는 자신이 생각이 있기도 하고 생각이 없기도 한 경계를 얻었다 하여, 스스로 자랑하고 교만하며 남을 업신여긴다. 그것은 어진 이의 법이 아니니라.

그러나 어진 이는 그렇지 않다. 어진 이는 다만 이렇게 생각하고 배운다.

‘생각이 없기도 하고 생각이 있기도 한 경계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내가 이것을 가졌다라고 생각하면 이것은 수(受)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이치를 따르며 스스로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이 어진 이의 법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어진 이의 법과 어진 이의 법이 아닌 것을 말하였다. 비구들이여, 스스로 어진 이의 법을 생각하고 어진 이의 법이 아닌 것을 생각하라. 그것을 생각한 뒤에는 어진 이의 법은 행하고 어진 이의 법이 아닌 것은 버려라. 어진 이의 법을 배우고 그 법을 따르라. 비구들이여, 이렇게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그것을 받들어 명심하고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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