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녹모경(佛說鹿母經)

불설녹모경(佛說鹿母經)

서진(西晉) 월지국(月氏國) 삼장법사(三藏法師)축법호(竺法護) 한역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사슴 수백 마리가 무리 지어 살다가 물과 풀을 찾아 차츰차츰 사람들이 사는 곳에 근접하였다. 이 때 국왕이 이곳에 사냥을 나오자 사슴들은 각각 흩어져 달아났다. 그 때 새끼를 밴 어미사슴 한 마리가 사냥꾼에게 쫓겨 도망가다가 굶주림과 피로에 지친 몸으로 짝을 잃고 비탄에 잠겨 있으면서 새끼를 낳았다. 이 사슴은 두 마리의 새끼를 두고 먹이를 찾아 나섰다가 당황하고 놀란 나머지 사냥꾼이 쳐 놓은 덫에 걸리고 말았다. 사슴은 비명을 지르며 빠져 나오려 했으나 빠져 나올 수 없었다. 사냥꾼이 이 소리를 듣고 곧 달려와서는 사슴을 보고 기뻐하며 다가와 죽이려 하였다. 사슴은 머리를 조아리고 애걸하며 말했다.

“조금 전에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아직 어리고 무지하여 겨우 흐릿하게 앞을 볼 뿐 동서를 분간하지 못합니다. 비옵나니, 잠시만 말미를 주셔서 새끼들에게로 돌아가 보살피게 하시면, 새끼들을 물과 풀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살아갈 수 있게 해 놓고 곧 돌아와 죽음을 받겠습니다. 맹세코 신의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이 때 사냥꾼은 사슴이 사람처럼 말하는 것을 듣고 놀라는 한편 매우 기이하게 생각하며 사슴에게 대답했다.

“모든 세상 사람들도 진정한 신의가 없거늘 하물며 너와 같은 사슴의 몸일까 보냐? 죽음에서 풀려나 돌아간다면 어찌 돌아올 기약이 있겠느냐? 끝내 너를 놓아 줄 수 없다.”

사슴이 다시 말하였다.

“저의 부탁을 들어주시면 새끼들이 살고, 저를 붙잡아 두시면 새끼들이 죽게 될 것입니다. 어미와 새끼가 모두 죽으면 살리고 이별할 수 없게 됩니다. 저만 죽으면 새끼는 온전할 수 있을 것이나 저와 새끼 셋 다 죽는다면 너무도 애통할 것입니다.”

사슴은 이어 게송을 읊어 사냥꾼에게 말하였다.

나의 몸이 축생이 되어
숲 속을 떠돌며 살면서
천한 목숨, 살기를 탐내어
스스로 죽지를 못하였습니다.



이제 그대의 덫에 걸렸으니
죽음을 당함이 마땅하건만
더러운 이 몸은 아깝지 않으나
다만 두 새끼가 불쌍할 뿐입니다.

사냥꾼은 사슴의 말을 듣고 매우 기이하게 생각하면서도 사슴을 탐내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 다시 사슴에게 대답하였다.

“간교하고 거짓되어 진실이 없고 간사하게 속여서 믿기 어려우며 온갖 허황한 말로 꾸며대어 교활하기 그지없구나. 대개 몸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목숨을 바칠 이가 드문 법이니, 사람들 가운데 불량한 이들도 이러한 경우에 신의를 지키길 기대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너와 같은 짐승일까 보냐? 풀려나면 어찌 다시 돌아오겠느냐? 절대로 너를 놓아주지 않을 테니, 갖은 수단을 쓸 필요가 없다.”

사슴은 다시 눈물을 흘리며 게송으로 말했다.

비록 이 몸이 미천한 축생이 되어
사람의 올바른 길을 알진 못하지만
어찌 자애로운 은혜를 받고도
한번 떠나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을 받는다 해도
거짓말로 살기를 도모하진 않으나
곤궁한 두 새끼가 너무도 불쌍하여
잠깐 말미를 주시길 비는 것입니다.



세상에 악독한 사람이 있어
비구 스님들과 마구 다투고
탑을 부수고 절을 헐어버리고
아라한을 죽이기까지 하며

반역을 저지르고 부모를 죽이며
형제와 처자까지 죽일지라도
내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죄가 그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이 때 사냥꾼이 사슴의 말을 다시 듣고는 마음속으로 더욱 놀라 곧 탄식하며 말했다.

“아, 나는 세상에 나서 사람이 되었지만 어리석고 몽매하여 은혜를 배반하고 의리에 박절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생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사냥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면서 재물을 얻기 위하여 온갖 거짓말을 하고 탐욕에 빠져 염치를 몰랐으며, 부처님[佛]과 진리[法]와 스님[僧]의, 3존(尊)을 그다지 존중할 줄 몰랐다. 그런데 이 사슴이 하는 말은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맹세하는 가운데 새끼에 대한 근심이 가득하여 진정이 온통 드러나 있다.”

사냥꾼이 곧 사슴에게 다가가 덫에서 풀어놓아 주자 어미사슴은 곧 자기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그리고는 새끼들의 몸을핥으며 한편으로는 슬프고 한편으로는 기뻐 게송을 읊었다.

일체의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사이는
모두 인연으로 만난 것,
만나면 이별이 있게 마련이니
무상하여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이제 내가 너희 어미가 되어
스스로 보호하지 못할까 늘 두려웠는데
세상살이 두려운 일이 많아
목숨은 아침 이슬 마냥 위태하구나.

바로 어미사슴은 두 새끼를 데리고 좋은 물과 풀이 있는 곳을 보여주고는 두 줄기 눈물을 흘리며 게송을 읊었다.

내가 오늘 아침길에 불행히도
그만 사냥꾼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 몸은 즉시 도마 위에 올려져
난도질을 당해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너희가 염려되어 애걸하여 여기에 왔으나
이제 다시 죽으러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너희 외로운 새끼들아,
노력하여 스스로 살아가거라.

어미사슴이 게송을 읊고는 새끼들을 버려두고 떠나자, 새끼 두 마리는 슬피 울며 어미를 찾아 뒤쫓아 가다가 땅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곤 했다. 곧 어미가 돌아보고 명령하였다.

“너희는 돌아가 따라 오지 말아라. 어미와 새끼가 함께 죽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죽는 것은 달게 받겠지만 너희를 죽게 할 수는 없다. 세상은 무상하여 모두 이별이 있게 마련이다. 내 자신이 박명(薄明)하고 너희가 박복(薄福)한 것이니, 어찌 슬퍼하여 부질없이 근심만 더하리오. 다만 순리대로 행동하여 죄업을 끝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곧 어미는 다시 새끼들을 위해 이렇게 게송을 읊었다.

내가 전생에 탐욕과 애착에 빠져
금생에 축생의 몸을 받고 말았다.


세상에 나면 모두 죽게 마련이니
끝없는 이 근심, 벗어날 이 없다.



마음을 다스려 오직 탐욕을 떠나면
그런 뒤엔 곧 크게 안락하리.


차라리 신의를 지켜 죽는다 해도
끝내 남을 속여 살지는 않겠네.

새끼들은 그래도 여전히 슬피 부르며 어미가 그리워 덫이 있는 곳까지 와서 동서로 찾아 다녔다.

이윽고 사냥꾼이 나무 아래 누워 있는 것이 보이자, 어미사슴은 그 앞에 서서 게송을 읊어 사냥꾼의 잠을 깨웠다.

앞서 놓아 주셨던 사슴이
이제 죽으러 돌아 왔습니다.


미욱한 축생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어
두 새끼를 만나 작별할 수 있었습니다.



새끼들을 데리고 가서 물과 풀을 보여 주고
이별하는 괴로움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남은 한이라곤 전혀 없으니
은혜를 생각함에 어찌 감히 저버리겠습니까?
사냥꾼이 곧 홀연히 잠이 깨어 깜짝 놀라 일어나자, 사슴이 다시 사냥꾼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거듭 게송을 읊어 말했다.

그대가 앞서 나를 놓아 주셨으니
그 은덕 천지보다 무겁기에
자애로운 사랑을 입은 미천한 축생이
약속대로 죽으러 돌아 왔습니다.



어진 마음에 감동하여 은혜를 잊기 어려우니
감히 분부하신 뜻을 저버리겠습니까?
천 가지로 보답할 길을 생각한다 해도
끝내 은혜를 다 갚진 못하겠네.

사냥꾼은 사슴이 의리에 죽으리만큼 신의가 두텁고 곧은 절개와 깊은 정성이 있어 자애로운 행실이 진심에서 우러나왔을 뿐더러,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삶을 버리고 죽음을 택했으며 어미와 새끼가 슬퍼하고 연모하여 서로 찾아서 온 것을 보고는 그 사랑에 감동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머리를 숙여 사죄하여 말하였다.

하늘이 이렇듯 신령스러운 그대를 내셨으니
믿음과 의리가 이토록 오묘합니다.


두려워 마음이 송연(悚然)한데
어찌 감히 해칠 수 있으리오.



차라리 스스로 어버이를 죽이고
자신과 처지를 다 죽이더라도
어찌 차마 신령한 그대를 죽이겠다고
털끝만한 생각이라도 일으키리오.

그리고 사냥꾼은 즉시 사슴을 놓아주어 돌아가게 했다. 이에 사슴 모자는 한편으로 슬프고 한편으로 기뻐서 흐느끼는 목소리로 게송을 읊어 사냥꾼에게 사례했다.

미천한 축생이 세상에 나서
마땅히 푸줏간에 들어가
즉시 삶겨질 운명에 놓였는데
아량을 베풀어 새끼들을 이별하게 해 주셨네.



하늘같은 어진 마음으로 거듭 축생을 사랑하여
다시 놓아서 돌려보내 주시니
보살펴 주신 그 은덕 한량이 없어
입으로는 이루 다 말하지 못하겠네.

이 때 사냥꾼이 이 일의 전말을 모두 왕에게 아뢰니,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서 사슴의 자비로운 사랑과 신의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리하여 사슴의 어진 행동이 의리를 일깨웠다고 경탄하지 않는 이가 없게 되자 마침내 왕이 사냥을 금지하였다. 그렇게 되자 사슴들은 다시 무리와 짝을 지어 함께 어울려 놀며 저마다 편안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를 마친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