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각정심경(發覺淨心經) 02. 하권
그 때에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신 세존이시여, 세간 사람이 모아놓은 말들은 이에 이와 같이 탁한 허물과 근심이 많이 있고 공덕과 화합이 없나이다. 이 세간의 말들은 다만 모든 번뇌를 늘어나 자라게 하여 청정한 법(法) 중에서 허망함만 짓나이다.
세존이시여, 어찌 지혜 있는 보살로 공덕을 구하는 자가 이 세간의 허물과 근심인 말을 듣고 나서 홀로 수행함을 좋아하지 않겠나이까?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이 말 많음을 좋아하면서 다시 모든 근심을 관찰하겠나이까? 보살이 만약 관찰할 때엔 참된 뜻을 즐겨 선택하여 뒤에 다시 후회함이 없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중에서 보살은 마땅히 말 많음을 좋아한 스무 가지 근심을 관찰할 것이니, 어떤 것이 스무 가지인가?
미륵이여, 말 많이 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니, 들은 것이 많기 때문에 아만(我慢)하며 방일(放逸)할 것이요, 말에 대해 사유(思惟)하고는 마땅히 물들어 집착할 것이요, 마땅히 본래의 생각을 잃어버려 자기의 바른 생각이 없을 것이요, 하는 바의 일은 마땅히 바르지 못할 것이요, 위의(威儀)는 몸과 마음을 능히 조복하지 못할 것이요, 행할 바의 곳에서는 몸이 두루 바르지 못할 것이요, 법인(法忍)을 잃어버렸기에 몸과 마음이 굳세고 강하여 돌이키고 굴복하기 어려울 것이요, 사마타(奢摩 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를 멀리할 것이요, 하는 바 말은 때와 절차를 알지 못할 것이요, 말하는 것이 더럽고 추잡하여 마땅히 음식만을 탐하고 성스러운 지혜를 얻지 못할 것이요, 모든 하늘과 용들이 존경하지 아니할 것이요, 말하는 바가 항상 가볍고 천해서 뒤에 마땅히 후회할 것이요, 올바른 행(行)에 머무르지 못하여 마땅히 경솔할 것이요, 능히 모든 의심나는 행을 끊어 버리지 못할 것이요, 행할 때엔 마치 나타(那吒)와 같아서 다만 소리만을 따를 것이요, 마땅히 모든 욕망의 공덕을 수순하여 알음알이도 따라 흘러서 정법(正法)을 비방하리니 참다운 법[如實]을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바라는 바의 곳엔 자주자주 일어나 가지만 움직여야 할 곳엔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아야 할 곳엔 움직일 것이요, 마땅히 공양(供養)을 얻고도 다시 얻지 못함은 마음이 조복되지 않았기 때문이요, 남을 따라 끌려가게 되는 것은 법계(法界)를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요, 모든 번뇌를 따라 끌려가게 되는 것은 모든 감관[根]이 조복(調伏)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미륵이여, 말 많음을 좋아하는 보살에게는 이러한 스무 가지 근심이 있나니, 음성만을 믿고 알아 바른 이치를 관찰하지 못한 것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을 말씀하셨다.
들은 것만 많으면 취한[醉] 것처럼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
수고로이 말만 어지럽혀 의지해 머무니
바른 생각 잊어버려 바른 지혜 없음이여,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안으로 사유함은 매우 멀어지고
몸에 적정(寂定)함이 없고 마음 또한 그러하며
행동거지가 자유롭지 못하나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정법을 사유하매 뜻을 잊어버리고
건조하게 메마를 뿐 윤택함이 없으며
선정(禪定)과 지관(止觀)을 모두 멀리 여의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높으신 이에게 존경하는 마음 없고
항상 말다툼만을 좋아하며
머무르는 곳 견고하지 않아 뜻을 뒤집으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하늘 무리에게 존경 받지 못하고
용과 야차들도 그를 생각하지 않으며
나중엔 모든 변재도 없으리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지혜 있는 이들에게 항상 꾸짖음 당하고
마땅히 증득한 몸이 있다 하여도
그 수명 헛되고 이익 없으리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저가 어리석어 죽을 적에야 후회하되’나는 속았노라, 이제 무슨 말을 하리오’ 하네.
그는 마땅히 뭇 고통이 있음을 기억해 말하리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경솔하게 움직임이 풀 위에 부는 바람 같아
있는 모든 의심들을 결단하지 못하며
그는 견고한 마음 없어 안정하지 못하나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마치 나타가 놀이마당에서
그에게 사납고 굳센 공덕을 말한 것처럼
그도 때에 또한 다시 나타와 같나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그는 귀로 듣고 물들기를 즐기며
그는 음성을 좋아하여 바른 지혜 여의기에
사유(思惟)가 있다 해도 바른 도가 아니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그는 아첨하고 왜곡하여 가장 덕망이 없고
다투는 일만 자주 일으키며
성인들의 행에서 더욱 멀어지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헛된 동작과 허망한 생각으로
성인의 덕을 묻되 항상 경솔히 행동하여
마치 원숭이처럼 마음을 조급하게 하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그는 어리석어 남의 부림 받으며
자기의 지혜엔 바르고 안정된 뜻이 없어서
모든 번뇌에 순종하고 돕나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그는 마땅히 눈과 귀와 코를 어지럽게 하며
혀와 몸과 뜻도 또한 다시 어지럽게 하여
모든 감관 일체를 다 어지럽게 행하니
말 많음을 좋아하면 이와 같이 근심하리라.
지혜 없어 구하더라도 말이 많으며
모든 법을 구함엔 게으르지 않으나
그는 마땅히 기쁘고 즐거운 법을 받지 않아서
마음엔 한 생각도 기뻐하지 않네.
사탕수수의 줄기와 껍질은 굳지 않으나
그 속의 맛은 가장 좋으니
껍질을 눌러서 맛있게 한 것이 아니요
그 맛은 사탕수수에서 떠난 것이 아니라네.
껍질과 같이 많은 말도 이미 이와 같고
즙(汁)과 같이 뜻을 생각함도 또한 다시 그러하니
그러므로 많은 말을 즐겨 멀리 여의어서
바른 뜻 사유하여 방일하지 말라.
뜻의 맛과 법의 맛은 딴 맛보다 뛰어나고
해탈(解脫)의 맛도 또한 미묘하니
이것이 바로 맛 가운데 최상의 맛이거늘
어찌하여 지혜 있는 자가 홀로 있음을 행하지 않는가?
이와 같이 많은 말을 깨닫고 나면
이와 같이 뛰어난 뜻의 공덕이니
만일 지혜 있는 자가 도를 배우고자 한다면
저 진실한 뜻을 마땅히 사유해야 하리라.
그러므로 이익이 없는 말 멀리 여의고
진여(眞如)의 뛰어난 이치를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뛰어난 법을 친근히 하여
마땅히 여기에 머물러 뛰어난 도를 증득하라.
그 때에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希有)하신 세존이시여, 이에 능히 말 많음의 허물과 근심을 잘 말씀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올바른 이치를 사유하면 큰 공덕이 있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견고한 이치를 구하려고 한다면 보살은 칼과 투구와 갑옷을 입고자 해서 허망하고 거짓된 말을 마땅히 즐겨 익히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떻게 잠자기를 즐기면서 모든 허물을 관찰하겠습니까? 보살이 관찰할 때엔 마땅히 잠자기를 버리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피곤함을 잊을 것입니다.”
미륵보살이 이렇게 말하고 나니,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그 중에서 보살은 마땅히 스무 가지 잠자기의 모든 허물과 근심을 관찰해야 할 것이니, 무엇이 스무 가지가 되는가?
미륵이여, 대저 어떤 보살이 잠자기를 즐긴다면 마땅히 게으름이 있을 것이요, 몸이 무거울 것이요, 피부가 깨끗하지 않을 것이요, 살갗이 거칠 것이요, 모두 크게 더럽고 탁할 것이요, 위덕(威德)이 적어질 것이요, 음식이 소화되지 않을 것이요, 몸에 부스럼이 생길 것이요, 게으름이 많아서 어리석음의 그물[癡網]을 자라나게 할 것이요, 그는 지혜가 박약해질 것이요, 피곤하기 쉬울 것이요, 마땅히 어둡고 어리석음에 떨어질 것이요, 사람들이 공경하지 않을 것이요, 천성(天性)이 어리석을 것이요, 모든 번뇌가 많아서 마음이 모든 사(使:번뇌)로 향할 것이요, 착한 법에 의욕을 내지 않을 것이요, 일체의 청정한 법을 줄어들게 할 것이요, 항상 놀라고 두려운 가운데 있을 것이요, 정진하는 자를 보면 헐뜯고 욕할 것이요, 대중에게 가면 그들에게 가벼이 업신여김을 당할 것이니라.
미륵이여, 보살이 잠자기를 즐기면 이와 같은 등의 스무 가지 근심이 있나니, 만일 보살이 관찰할 때면 마땅히 정진하기를 즐겨 할 것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을 말씀하셨다.
몸이 무거우면 적정(寂靜)함이 없고
게으르고 풀어지면 용모가 단정하지 않으며
피부가 더러우면 청정하지 못하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눈물과 침과 풍병(風病) 등과 황음(黃癊)이
그의 몸에 많이 있으며
모든 계(界)가 요란하여 평등하지 않으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그는 음식을 먹어도 소화되지 않고
몸집은 커도 광택이 없으며
그 음성은 깨진 소리가 나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몸에 많은 부스럼 있음이여
밤낮으로 잠자기를 좋아하면
그 몸엔 많은 고통 생기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게으름 많아 정진함을 여의고
즐거움에서 매우 멀어지고 재물도 없으며
항상 잠에 취해 바른 뜻 없으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항상 어리석음의 그물망을 자라나게 하여
모든 소견이 뒤바뀌어 다스리기 매우 어려우며
그는 바른 생각이 없어서 뜻을 빼앗기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그에게 있는 지혜가 매우 박약하여
모든 법을 줄어들게 하고 선정(禪定)이 없어지며
지혜와 정주(正住)를 멀리 여의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그가 게을러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음을 알아
항상 사람답지 않게 여겨 위덕을 빼앗기며
난야(蘭若)에 머물러 있으면 늘 두려워하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항상 몽매하여 정념(正念)을 잃고
경전 독송도 능하지 못하며
말해준 정법(正法)도 늘 잊어버리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그는 항시 번뇌 등을 도와주어
늘 어지럽고 미혹되어 가볍게 굴다가
그가 뒷날에 후회하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그에게 있던 많은 업(業)이 없어져 다한다 해도
추억을 구할 때면 번뇌가 되살아나서
이 모든 사(使)와 번뇌가 늘어나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착한 일에도 할 의욕이 없고
모든 법에도 구할 마음이 없으며
자주자주 나쁜 법만 행하게 되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곧바로 보리도를 멀리 여의기에
일체의 공덕이 모두 줄어들고
청정한 법이 없어져 어둠 속에 빠지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무외(無畏)로 마음을 장엄함이 없고
일찍이 환희하는 생각을 내지도 않아
잠자는 데 집착하여 태만하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그는 자기의 게으른 곳을 알기에
다른 이의 정진력(精進力)을 질투하여
그는 정진에 대해 좋지 않다고 말하리니
잠자기를 즐긴다면 그와 같이 되리라.
지혜 있는 이가 이런 근심을 안다면
누군들 기뻐하며 함께 잠잘 수 있으리오?
한결같이 어리석은 많은 소견의 그물을 만들어
정법엔 의욕 없고 공덕만 없애리라.
지혜 있는 자라면 누가 정진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괴로움을 없애고 모든 어둠을 맑힐 수 있다면
미래의 악도(惡道)가 모두 다 없어지리니
안락의 근본인 감로(甘露)를 얻으리라.
세상에 있는 모든 재주와
출세간의 모든 법능(法能)을
정진하면 쉽게 얻으리니
지혜 있는 자라면 어찌 힘써 정진하지 않겠는가?
진실로 뛰어난 보리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그들은 마땅히 잠자기의 근심을 알아서
게으름 없이 정진하여 방일하지 않아야 하니
나는 이와 같이 그를 깨우치노라.
그러므로 방일함과 두려워함이 없으며
정진과 선정의 마음 일으켜
모든 근심을 버리고 잠자기를 여의어
보리와 그 씨앗을 수호(守護)할지어다.
그 때에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위해 마땅히 보실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이 잠이 많음의 모든 근심을 듣고도 능히 끊지 못하거나 또한 능히 싫증내어 여읠 마음을 내지 못한다면,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이 신심(信心)을 배우고자 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고자 하면서도 게으름을 피우고, 착한 법을 구하기 위한 까닭에 이와 같이 많은 공덕 중에서 비록 다시 듣고 나서 정진 수행하지 않으오리까?
보리분(菩提分)을 만족하게 하려고 여래께서는 이미 잠이 많음의 모든 근심과 정진을 일으킨 모든 공덕에 대해 잘 말씀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이 모든 업(業)과 모든 근심을 즐겨 짓는 것을 관찰하오리까? 보살이 만약 관찰한다면 마땅히 욕심이 적어지고 만족함을 알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 중에서 보살은 업 짓기를 즐기는 것에 대해 마땅히 스무 가지의 모든 근심을 관찰해야 할 것이니,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미륵이여, 이른바 보살이 모든 업 짓기를 즐기는 것이요, 마땅히 세간 법을 좋아하여 곧 일체의 가장 낮은 업(業) 가운데 머무를 것이요, 가진 것을 독송하여 부지런한 자라도 마땅히 남에게 가벼이 업신여김을 당할 것이요, 가진 것을 홀로 행하여 선정을 부지런히 닦은 자라도 마땅히 남에게 조롱을당할 것이요, 나아가 끝없는 생사(生死)에 돌아다닌 이래로 마땅히 업 짓기를 쉬지 않을 것이요, 신심이 있는 장자(長者)들에게 복전(福田)이 되어 줄 수 없음이요, 항상 탐욕이 있어 모든 물건을 애착하여 마음이 그 속으로 향할 것이요, 애쓰는 힘으로는 항시 가업(家業)을 근심할 것이요, 다른 이의 착한 법을 따르지 않을 것이요, 법으로 가르치는 것을 순종하지 않을 것이요, 생각이 많아서 모든 맛에 물들어 집착할 것이요, 얻은바 정묘(精妙)한 일을 곧 사랑하고 좋아하지 않음이요, 항상 서로 해치는 악업(惡業)을 지을 것이요, 아는 이와 친구를 향할 것이요, 항상 음식만을 생각할 것이요, 항상 다른 사람의 시비장단(是非長短)을 알기를 좋아할 것이요, 항상 합당하지 않는 말로 의논하기를 좋아할 것이요, 모든 범행자(梵行者)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음이요, 항상 남의 허물만을 보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아 남에게 가벼이 업신여김을 당할 것이요, 진리에 부합되는 말은 항상 줄어들어 적어질 것이니, 미륵이여, 만일 보살이 모든 업 짓기를 좋아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은 등의 스무 가지 모든 나쁜 허물과 근심이 있을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을 말씀하셨다.
항상 낮고 천한 업에 머무르고
뛰어나고 높은 업은 그를 가장 멀리하며
이 교법 중에선 넓고 크지 못하니
사업(事業)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독송하기 좋아하는 비구들은
그를 가벼이 업신여겨 존경하지 않으며
선정 닦는 사람도 그를 멀리하나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생사의 업 가운데서 항상 수고롭고
해탈할 곳은 멀어 모든 속박에 머무르며
받아 먹는 것은 청정하지 않은 음식이리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항상 모든 업에 나아가며
물건들 취하기를 좋아하지 않음이 없어서
받은 물건들에 대해 항상 탐욕스러우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벗과 동료들에 휩쓸리기를 좋아하여
몹쓸 짓 함께 하며 서로 물들어
마치 나는 새가 그물에 걸려든 것과 같으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가업을 항상 걱정하여
근심 걱정으로 즐거운 적이 없고
말을 해도 받아줄 이 없나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덕으로 가르치는 사람을 따르지 않고
법의 가르침도 받지 않아
저의 계행(戒行)이 구족되지 못하나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항상 근심하여 마음이 불안하고
세속의 사업에 대해 생각 쉬지 않으며
지혜와 선정엔 의욕 없나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그는 항시 하는 일이 많아
온 갖가지 재미에 얽매이고
있는 곳마다 만족할 줄 모르나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딴 모임엔 항상 좋아하기에
지혜 있는 이는 함께 말하기 싫어하며
외설 음탐 좋아함은 마치 나귀와 같나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마음은 항상 성내고 부드럽지 않아
모든 업만 자라나서 다함이 없고
애욕에 물들어 굳게 얽매이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그는 거룩한 이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속가에 기대어 서로 도우며
계를 지키는 이를 보면 비방하나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밤낮으로 별다른 생각 없고
의복과 음식과 와구(臥具)뿐이며
공덕을 말해도 받으려고 하지 않으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세간 사업의 공덕을 묻기 좋아하고
말 잘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며
뛰어난 덕을 힘쓰는 것은 사모하지 않으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친우와 함께 경영하기 탐착하여
자기 세력으로 그들 조복하려고
가지고 있는 악업(惡業)을 저가 문득 지으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항상 남의 허물 보기 좋아하고
자기의 허물은 알지 못하며
저 덕 있는 자를 보면 늘 조롱하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매번 남에게 가벼이 업신여김을 당하며
법을 물으러 오는 자에게
지혜와 방편이 전혀 없나니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이와 같은 모든 허물 관찰하고서
보살로서 이 업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그는 가장 뛰어난 업을 지을 것이며
짓는바 모든 업도 다 허물 없으리라.
천 전(錢) 버리고 1전(錢) 취함은
지혜 있는 자라면 마땅히 꾸짖을 일이나
이와 같은 자는 남이 싫어하니
만약 즐겨 그것을 지으면 천한 업(業)일세.
그러므로 지자(智者)는 방편이 있어서
낮고 천한 업을 내버리며
지자는 좋은 업을 지을 줄 알고 있기에
일체의 부처님께서 찬탄하신 거라네.
그 때에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보살들은 지혜가 적고, 마음과 뜻이 좁고 용렬하여 똑같이 애를 써야[勤勞] 하는 것인데도 가장 뛰어난 법은 버리고 작은 업만을 짓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나는 지금 그대에게 말하노라. 나는 지금 그대에게 명령하노라. 저들 보살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출가(出家)한 것이 아니기에 곧 능히 없애지 못하며, 선정도 없고, 독송함도 있지 아니하며, 다문(多聞)도 구하지 않느니라.
미륵이여, 여래의 교멸지(敎滅智)와 행작지(行作智)의 지혜는 부지런히 애씀을 구족한 까닭에 능히 분별하여 알 수 있으나, 세속의 업으로 비교하고 헤아려서 알 수 없으니, 이는 부지런히 애쓰는 자가 아니요, 생사(生死)에 유전함을 듣기 좋아하는 자이니라. 이른바 세간에서 조작한 바의 세간 재물로써 비교한다 하더라도 그 중에서 보살은 사모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느니라.
미륵이여, 가령 부지런히 애쓰는 보살과 비교한다면, 칠보탑(七寶塔)을 만들되, 이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에 가득 차게 한다 하여도 나를 기쁘게 하지 못하리니, 나를 공양함이 아니며, 나를 받들어 섬김이 아니니라.
미륵이여, 만일 어떤 보살이 14구(句) 게(偈)를 받아 지녀 읽고 외워서 바라밀과 서로 응한다면, 그는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한 것이며, 마땅히 나를 공양한 것이며, 마땅히 나를 받들어 섬긴 것이니라. 왜 그런가 하면, 미륵이여, 많이 들었기 때문이며, 모든 여래의 보리는 모든 물건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미륵이여, 만일 어떤 보살이 사업에 부지런히 애쓴다면 읽고 외우기를 부지런히 닦는 보살의 처소에서는 근심거리만 될 것이니, 사업을 닦으면 죄장(罪障)만 많아지고 복(福)이 쌓이는 일은 없으리라.
왜 그런가 하면, 세 가지 뛰어난 복은 모두 지혜로부터 일어나니, 그러므로 사업에 부지런히 애쓰는 보살은 부지런히 읽고 외우는 여러 보살들에게 마땅히 장애가 되지 말아야 하느니라.
미륵이여, 비유컨대 염부제(閻浮提)에서 사업을 경영하는 자가 모두 그 안에 가득 차서 그 수효가 한량없더라도, 부지런히 읽고 외우는 한 보살의 처소에서 마땅히 부지런히 받들어 섬겨야 하는 것과 같으며, 비유컨대 염부제에 부지런히 읽고 외우는 여러 보살들이 모두 그 안에 가득 차 있어도 마땅히 한 명의 선정(禪定)에 든 자를 받들어 섬겨야 하는 것과 같으니, 나는 이와 같이 그들에게 보살을 잘 받들어 섬기라고 말하노라.
저 사람은 이미 한량없는 복더미[福聚]를 지었으니, 왜 그런가? 이는 최고의 얻음이 될 것이니, 이른바 제일의(第一義) 지혜와 서로 응하여 위없는 것을 증득하여 알았기 때문에 일체의 세간에서 가장 좋으며 가장 뛰어나며 가장 높으니라.
미륵이여, 이러한 까닭으로 선정(禪定)과 정진(精進)을 취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지혜의 업을 익힐 것이며, 마땅히 반야(般若)가 머무르는 곳에 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그 때에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이미 여러 보살들을 위하여 세간의 말을 좋아하는 모든 근심과 말 많음을 좋아함과 많은 잠을 즐김과 많은 업을 짓는 것의 모든 근심을 말씀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마땅히 어떻게 희론(戱論)을 좋아하는 것을 관찰하오며, 관찰할 바와 같이 하고 나서는 마땅히 어떻게 적정행(寂靜行)에 나아가야 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 희론(戱論)이란 것은, 간략히 말하면 스무 가지 허물이 있나니, 마땅히 관찰해야 할 것이요, 만일 자세히 말한다면 끝없이 많으니라.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미륵이여, 희론이 많은 보살은 현재 법을 보고 있으면서도 수행하기를 좋아하지 않음이요, 인욕(忍辱) 중에도 다시 줄어들어 적어짐이요, 성냄을 훈습함이요, 아직 생기지 않은 선근(善根)을 능히 생기지 못하게 함이요, 이미 생긴 선근을 능히 줄게 하여 덜어냄이요, 마땅히 싸워야 할 원수가 있을 것이요, 마땅히 단명함을 얻을 것이요, 얼굴이 단정하지 못할 것이요, 언어가 어눌하여 껄끄러울 것이요, 만일 누가 법을 가르치더라도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요, 아직 경법(經法)을 말하지 않았기에 앞에 나타나지 못함이요, 선지식들이 모두 다 멀리함이요, 악지식(惡知識)과는 마땅히 빨리 화합할 것이요, 마땅히 괴로움의 길에 들어갈 것이요, 일체의 때에 희론만을 들을 것이요, 태어나는 곳에선 항상 의심의 그물에 떨어질 것이요, 8난(難)에 가까울 것이요, 청정한 법 중에서 부지런히 배울 곳을 구하여도 장애가 많을 것이니라.
미륵이여, 이와 같은 등이 간략히 말한 스무 가지 근심이니, 희론이 많은 보살을 위해서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을 말씀하셨다.
현재 법에서 괴로움을 얻어 좋아하질 않고
인욕을 멀리하여 성냄을 조장하며
저 원가(怨家)들은 항상 기뻐하나니
희론을 행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나쁜 마왕이 그를 위해 기뻐하며
마의 권속들도 또한 다시 그러하여
갖고 있던 착한 곳도 모두 내버리니
희론을 행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저 착한 행동 하고 싶다 한들
그는 방일하기에 하지 못하며
그는 방일하다 나쁜 길로 향하니
희론을 행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믿음 없어서 마음 조복 못하고
낮고 천한 집에 태어나 업신여김 받으며
그의 혀는 항상 더듬거리나니
희론을 행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그를 위해 설법하나 듣지 않기에
그 법이 앞에 나타나지 않으며
모든 선지식들이 다 그를 멀리하니
희론을 행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모든 악업과 항상 어울리고
모든 승(乘)에선 청정하기 어려우며
법문 듣고도 좋아하지 않으니
희론을 행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그는 모든 착한 법에 장애가 많고
행하는 일에도 원수가 많으며
그가 움직일 때에는 장애가 많나니
희론을 행하는 자에겐 이런 허물 있다네.
이와 같은 근심을 지자(知者)는 알고서
일체의 희론을 마땅히 멀리하리니
희론을 행하는 자는 도를 얻기 어렵기에
그러므로 희론에 머물지 않느니라.
유순(由旬)에 다시 유순만큼 달아나
희론과 언쟁 멀리해서
난 이제 이곳에 있지 않으리니
순식간에 번뇌가 생길 곳이라네.
나 이제 출가하여 덕을 구할 것이요
투쟁 일삼아 악심(惡心) 내지 않으며,
농사짓고 장사하지 않을 것이니
무엇 때문에 싸움을 일으키리오.
아내와 자식 또한 하인과
집과 모든 재산 있지 않고
그 걸림 없이 자유로운 곳으로
이미 출가했으면 싸울 것이 없으리라.
이미 가사(袈裟)를 입었으므로
성인과 신선들이 인가하는 바이니,
너희들은 이 공덕 구족했기에
희론 버리고 인욕 닦을지어다.
마음이 독사나 나찰 같으면
지옥ㆍ아귀ㆍ축생에 태어나니
희론 행하는 자는 그곳이 분명하기에
그러므로 해탈하길 정진해야 하네.
갖고 있는 모든 괴로움과 해치며 묶여 있는 곳에
원수와 꾸짖음과 타박들로
얽혀 모여 서로 투쟁하나니
세간에 있는 것은 모두 여기 머무르네.
화합하면 원수 있을 수 없고
화합한 자는 명망이 높아지며
화합한 자는 경애를 받으니
지자(智者)가 어찌 화합하지 않으리오.
허물 엿보려 해도 빈틈이 없고
권속도 일찍이 파괴되지 않으며
그의 벗들도 흩어지지 않나니
희론을 멀리하면 가르침을 따를 수 있네.
안락한 승(乘) 가운데 청정함 얻어
업장을 벗어나 남은 것이 없고
마왕과 마군의 무리를 항복시켜
저의 비방과 훼손을 당해도 참는다네.
희론이 있다면 근심이 많으나
희론이 없다면 덕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나는 이와 같은 등을 보여 주어서
보리를 얻고자 인욕하게 하려는 것이네.
그 때에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내지 여래께서도 이 모든 번뇌를 일으켜 깨움을 말씀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자못 이들 여러 보살들도 이후에 이와 같이 모든 번뇌를 일으켜 깨움을 듣는다면, 마땅히 이를 싫어하겠습니까? 번뇌행(煩惱行) 중에서도 마땅히 능히 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미래의 세상엔 마땅히 보살승(菩薩乘)을 행하는 부가라들이 적을 것이니, 만일 뒤로 5백 세 때에 마땅히 번뇌행을 끊는다 하여도 굳세고 강함이 많아서 마음으로 공경함이 없고, 아만(我慢)으로 스스로를 높여 모든 분별을 지어서 능히 닦고 익히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마왕 파순(波旬)이 비구의 모습을 하고 와서 그들 앞에서 이와 같이 파괴를 조성하되, ‘이들 수다라는 다른 사람의 문장이요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이 수다라에서 말한 모든 공덕에는 나와 남이 없느니라’라고 하거든, 그래서 저 무리들은 파괴를 당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수다라에 대해 마땅히 의혹을 내어 언쟁을 일으키고, 기꺼이 받아 지니지도 아니하며, 또한 다른 이를 위해 말해 주지도 않고, 또한 닦아 익히지도 않느니라.
그러나 저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러한 줄 알지 못하고, ‘이는 모든 업의 과보이니, 우리들은 마땅히 이와 같은 공덕을 증득할 수 없다’고 하느니라.”
그 때에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아미타여래의 열 가지 발심(發心)을 찬탄하시되, 그 가운데서 각각 생각을 따라 발심하여 만약 저곳에 나고 싶다고 생각하면 마땅히 곧 그 세계에 태어난다고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열 가지 발심이오며, 그곳에 태어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저러한 등의 발심은 작은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요, 저 발심은 바로 큰 일[大事]인 것이니, 아미타 국토 가운데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자비심(慈悲心)을 발하고 성내고 원망하지 아니하면 마땅히 아미타여래의 불국토에 태어날 것이며,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자비로운 마음을 내는 까닭에 마땅히 그곳에 나리라.
죽이고 해침을 떠나 정법(正法)을 받아 지녀서 이 마음을 일으킨 까닭에 마땅히 그곳에 날 것이며, 몸과 목숨을 버리고서 발심하여 일체의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마땅히 그곳에 날 것이며, 매우 깊은 인욕행과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니, 이 마음을 일으킨 까닭에 마땅히 그곳에 나리라.
명문(名聞)과 이익과 일체의 지보(智寶)에 물들지 않고 이 마음을 일으킨 까닭에 마땅히 그곳에 날 것이며,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귀히 여기고 존경함을 내어 마음을 일으켜 잊어버리지 않는 까닭에 마땅히 그곳에 날 것이며, 범부의 말을 놀래지도 두려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으니, 이 마음을 일으킨 까닭에 마땅히 그곳에 날 것이니라.
보리분(菩提分)의 갖가지 선근에 들어가 이 마음을 일으킨 까닭에 마땅히 그곳에 날 것이며, 그러나 염불(念佛)을 떠나지 않고 이 마음을 일으킨 까닭에 마땅히 그곳에 날 것이니, 모든 상(相)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니라.
미륵이여, 이 열 가지 발심에서 만약 보살이 생각을 일으켜 하나라도 구족한다면 마땅히 저 아미타 부처님 국토에 태어나리니, 만일 태어나지 못한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그 때에 장로(長老)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내지 여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심은 본래 여러 보살들을 일으켜 깨우기 위한 것이옵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장로 아난을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아난이여. 그러므로 보살은 이 법을 본래 일으켜 깨달아 마땅히 이와 같이 지녀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