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보계 장자를 찾다
그 때에 선재동자는 거사에게서 깊고 깊은 해탈문을 듣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닦아 익히어 그 복덕 바다에 헤엄치고, 그 복덕 밭을 깨끗이 하고, 그 복덕 나루에 나아가고, 그 복덕 산을 쳐다보고, 그 복덕 광을 열고 그 복덕 바퀴를 굴리고, 그 복덕 법을 보고, 그 복덕 원인을 심고, 그 복덕 힘을 내고, 그 복덕 세력을 더하고, 그 복덕 마음을 기르고, 그 복덕 문을 깨달으면서 점점 남쪽으로 가다가 사자궁성에 이르러서는 두루 다니며 보계(寶?) 장자를 찾았다. 그러다가 저자 거리에 있는 것을 보고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돌기를 수없이 하고 합장하고 서서 말하였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사오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도를 닦는지를 알지 못하오니, 거룩하신 이여, 저를 위하여 보살의 도를 말씀하오면, 제가 그 도를 의지하여 일체지에 나아가겠나이다.”
이 때에 장자는 선재의 손을 잡고 그 집에 이르러 자기의 거처하는 데를 보이면서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대는 우선 내가 있는 집을 보라.”
선재는 그 집을 살펴보았다. 넓고 크고 화려하며, 사면에는 각각 문 둘씩을 내었는데 염부단금으로 만들었고, 백은으로 쌓은 담이 넓게 둘러 있고, 파리로 전각을 지었는데 여러 가지 보배로 장엄하였고, 검붉은 유리로 누각을 지었는데, 자거 보배로 기둥을 세우고 섬돌이나 층층대나 난간이나 창이나 문을 모두 여러 가지 보배로 만들었고, 백천 가지 보배로 훌륭하게 꾸몄으며, 마노로 된 못에는 향수가 넘쳐 흐르고, 사면에 있는 난간은 진주로 얽었으며, 여러 가지 보배 나무들은 두루두루 줄을 지었고, 적진주 마니로 사자좌를 만들었는데, 아승기 보배로 사이사이 장식하고, 비로자나 마니보배로 휘장을 삼았으며, 사자좌 앞에는 좌우로 광채가 찬란한 마니 짐대를 세우고, 여러 가지 빛깔 있는 여의주로 그물을 만들어 위에 덮고 있었다.
그 집에 큰 누각이 있어 높이가 열 층이고, 층마다 여덟 문을 내었다. 선재동자가 들어가서 차례차례 살펴보니, 맨 아래층에는 가지가지 훌륭하고 맛 놓은 음식을 베풀어 놓았고, 둘째 층에는 보배 의복들과 여러 가지 재물을 베풀어 놓았고, 셋째 층에는 모든 보배 장엄거리를 베풀었고, 넷째 층에는 음성이 아름다운 여자들과 마음에 맞는 권속과 그들이 사용하는 훌륭한 보물들을 베풀었고, 다섯째 층에는 오지(五地) 보살들이 구름 같이 모여 있으면서 중생들을 편안케 하기 위하여 묘한 법을 연설하며, 여러 가지 하는 일이 모두 이익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며, 여래의 가장 훌륭한 논리를 성취한 이의 다라니문과 모든 삼매의 바다와, 모든 세간 가지가지 밝은 지혜의 광명인[明智光明印] 행들이었다.
여섯째 층에는 모든 보살이 있으니, 모두 깊은 지혜를 성취하여 법의 성품을 잘 알고 큰 다라니를 얻었으며, 삼명(三明)과 육통(六通)을 모두 구족하고 널리 간직한 문에 들어가고 장애되는 경계에서 뛰어났으며, 둘이 아닌 법에 머물러 부처님의 위의를 나타내며, 말할 수 없이 묘하게 장엄한 도량에 모인 대중 속에 들어가서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반야바라밀문을 분별하여 보이니, 이른바 고요한 광 반야바라밀문과 중생들을 잘 분별하는 지혜인 반야바라밀문과 움직일 수 없는 반야바라밀문과 욕심을 떠난 광명 반야바라밀문과 항복시킬 수 없는 광 반야바라밀문과 중생의 바퀴돌 듯함을 비치는 반야바라밀문과 교법을 따르는 반야바라밀문과 공덕 바다 광 반야바라밀문과 넓은 눈으로 주어 얻는 반야바라밀문과 다함 없는 광에 들어가 따라 수행하는 반야바라밀문과 모든 세간에 들어가는 그지없는 방편인 반야바라밀문과 세간을 따르는 모든 교법에 들어가는 반야바라밀문과 걸림없는 변재인 반야바라밀문과 중생들을 따라 걸림없이 비치는 반야바라밀문과 때를 벗은 광명인 반야바라밀문과 지나간 세상 인연을 살펴 법 구름을 펴는 반야바라밀문 따위의 백만 아승기 반야바라밀문을 말하여, 말할 수 없는 도량에 모인 대중에게 훌륭하게 장엄한 깊은 지혜를 나타내어 보이었다.
일곱째 층에는 여향인(如響忍)을 얻은 보살들이 가득하게 모여 있으면서 방편 지혜로써 뛰어나는 문을 연설하여 모든 여래의 말씀하신 바른 법문을 듣게 하는 것이며, 여덟째 층에는 물러가지 않는 신통과 지혜를 얻은 한량없는 보살이 그 가운데 모이어 미세한 지혜로 모든 세간을 살펴보고 여러 부처님 세계의 도량에 모인 대중이 환술 같고 아지랑이 같고 그림자 같고 거울 속의 영상 같아서 진실한 성품이 없는 줄을 알며, 모든 여래의 분별없는 경계를 보고 모든 부처님의 두루 가득한 색신(色身)을 나타내며, 한 가지 음성으로 시방세계에 두루 퍼지며, 몸이 모든 도량에 골고루 나아가 끝없는 법계에 두루하지 않는 데가 없으며, 부처님 경계에 두루 들어가고 부처님 몸을 두루 보고, 모든 부처님의 법을 모두 받아 지니며, 모든 부처님 회중에서 우두머리가 되어 법문을 연설함을 보았다.
아홉째 층에는 일생소계(一生所繫) 보살들이 그 가운데 모이었으며, 열째 층에는 모든 여래께서 그 가운데 가득한데, 처음 마음을 낸 때로부터 보살의 행을 닦으며, 나고 죽는 윤회(輪廻)를 뛰어나 큰 서원을 이루며, 훌륭한 신통과 훌륭한 자재를 얻고, 특수한 위력으로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하여 훌륭하게 장엄하며, 시방세계의 도량에 모인 대중에 나타나서 바른 법을 연설하며, 내지 멸진(滅盡)을 보이시며, 오는 세상이 끝나도록 중생들을 교화하여 조복하고 이익케 하여 제도하는 이러한 것을 모두 분명히 보게 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선재동자는 이렇게 기특한 일을 보고 장자에게 물었다.
“거룩하신 이여, 지난 세상에 어디서 어떠한 선근을 심었사옵기에 이렇게 훌륭한 과보를 얻었으며, 이렇게 깨끗한 회중이 있게 되었나이까?” “선남자여, 내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세계의 티끌 수 겁 전에 세계가 있었으니, 이름이 종종색장엄륜(種種色莊嚴輪)이었고, 부처님 이름은 무변광원만법계보장엄왕(無邊光圓滿法界普莊嚴王) 여래(如來)·응공(應供)·정변지(正?智)·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이시다. 백천억 성문들과 함께 계시었는데 지비로자나(智毗盧遮那)가 으뜸이 되었고, 또 백천억 보살들과 함께 계시었으니 지일위덕광(智日威德光)이 으뜸이 되었다.
그 때에 그 나라 임금은 이름이 법자재(法自在)인데, 부처님께서 임금의 청을 받고 마니당장엄(摩尼幢莊嚴) 동산으로 들어가실 적에, 내가 길거리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타고 향 한 개를 살라 공양하였다. 저 여래와 보살들과 성문들이 나의 공양을 받았으므로, 그 향의 연기로 큰 향 구름을 일으키어 허공에 가득하게 그늘 일산이 되어서, 염부제에서 이레 밤 이레 낮 동안을 가지가지 끝없는 모든 빛깔을 가진 중생의 몸매와 미묘한 향 구름을 내리었으며, 또 음악 곡조로 하여금 가지가지 아름다운 음성을 내어 허공에 가득하게 부처님의 헤아릴 수 없고 삼세에 걸림없는 넓고 큰 지혜를 노래하였고, 듣는 이로 하여금 온갖 번뇌의 업장을 소멸하고 온갖 진실한 선근을 자라게 하였으며, 일체지지(一切智智)를 빨리 원만하고 가지가지 신통을 일으키게 하였다.
나는 그 때에 이렇게 공양한 선근으로 세 곳에 회향하였으니, 하나는 빈궁하고 곤란한 것을 영원히 여의려는 것이요, 둘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을 항상 뵈오려는 것이요, 셋은 부처님들의 바른 법문을 들으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이 과보를 받았노라.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보살의 걸림없는 서원으로 두루 장엄한 복덕광 해탈문을 아는 것뿐이니, 저 보살마하살이 헤아릴 수 없는 공덕 보배 광을 얻어서 헤아릴 수 없이 한량없는 공덕을 내며, 분별 없는 여래의 몸 바다에 들어가며, 분별 없는 가장 좋은 법 구름을 뜨게 하며, 분별 없는 공덕을 돕는 도를 닦으며, 분별 없는 보현의 행을 일으키며, 분별 없는 삼매의 경계를 증득하며, 분별 없는 보살의 선근과 평등하며, 분별 없는 여래 머무시는 데 머물며, 분별 없는 삼세가 평등함을 보아서 모든 겁 동안에 고달픔을 내지 아니하고, 깨뜨릴 수 없는 보안(普眼) 경계의 그 공덕의 행을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이 남쪽에 나라가 있으니 이름이 등근(藤根)이요, 그 나라에 성이 있으니 이름이 보변문(普?門)이요, 그 성에 안(普眼)이니라. 그대는 거기 가서 보살이 어떻게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는가고 물으라.”
이 때에 선재동자는 그의 발에 절하고 수없이 돌고 조용히 우러러 보면서 절하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