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성문들로는 알 수 없는 일
이 때에 모든 성문(聲門)들 중에 으뜸되는 지혜 많은 사리불(舍利弗), 신통이 제일인 목건련(目?連), 마하가섭(摩訶迦葉)·이바다(離婆多)·수보리(須菩提)·아누루타(阿樓馱)·난타(難陀)·겁빈나(劫賓那)·가전연(迦?延)·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 들이 모두 서다림 동산에 있었으나, 그들은 이러한 여래의 신통, 여래의 장엄, 여래의 경계, 여래의 유희, 여래의 변화, 여래의 높으심, 여래의 묘한 행, 여래의 위엄과 덕망, 여래의 가피, 여래의 많은 세계를 보지 못하였으며, 또 생각할 수 없는 보살의 경계, 보살의 집회, 보살의 두루 들어가는 일, 보살의 가까이 모심, 보살의 신통, 보살의 유희, 보살의 권속, 보살의 있는 곳, 보살의 사자좌, 보살의 궁전, 보살의 위의, 보살의 삼매, 보살의 두루 살피는 것, 보살의 사자빈신(師子頻申), 보살의 용맹, 보살의 공양, 보살의 수기(授記), 보살의 성숙(成熟), 보살의 청정한 신업(身業), 보살의 원만한 지혜, 보살의 나타내 보이는 원신(願身), 보살의 두루한 색신, 보살의 구족한 몸매, 보살의 원만한 광명, 보살이 놓는 광명 그물, 보살이 일으키는 변화 구름, 보살의 두루한 방편 그물, 보살의 원만한 모든 행, 이러한 가지가지 경계를 하나도 보지 못하였다.
왜냐 하면 선근(善根)이 같지 아니한 때문이며, 저 성문들은 지나간 세상에서 본디 부처님들의 여러 가지 신통을 볼 수 있는 미묘 선근을 닦지 못한 탓이며, 본디 시방세계를 두루 장엄한 깨끗한 공덕을 찬탄하지 아니한 탓이며, 본디 부처님들의 가지가지 신통으로 변화하는 일을 칭찬하지 아니한 탓이며, 본디 나고 죽는 데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지 못한 탓이며, 본디 모든 중생들을 권하여 크고 넓은 보리심(菩提心)에 머물게 하지 아니한 탓이며, 본디 여래의 내림[如來種性]이 끊어지지 않게 하지 못한 탓이며, 본디 온갖 중생들을 부지런히 거두어 주지 못한 탓이며, 본디 보살들의 바라밀을 부지런히 닦지 못한 탓이며, 본디 나고 죽는 데서 중생에게 지혜의 눈을 구하도록 하지 못한 탓이며, 본디 일체지를 따르는 선근을 닦지 못한 탓이며, 본디 여래가 세상에 나신 좋은 선근을 깨닫지 못한 탓이며, 본디 모든 부처 세계를 두루 깨끗하게 하는 신통한 지혜를 얻지 못한 탓이며, 본디 보살이 넓은 경계를 아는 깨끗한 눈을 얻지 못한 탓이며, 본디 세상을 뛰어날 수 있는 구경의 함께하지 않는 큰 선근을 구하지 아니한 탓이며, 본디 모든 보살들의 큰 서원으로 생사를 뛰어나는 지혜를 일으키지 못한 탓이며, 본디 모든 여래의 신력으로 가피하심을 좇아 나지 아니한 탓이며, 본디 온갖 법이 모두 요술과 같은 줄을 알지 못한 탓이며, 본디 보살들의 아는 바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이 모두 꿈과 같은 줄을 알지 못한 탓이며, 본디 보살의 용맹과 큰 뜻으로 깊이 기뻐함을 얻지 못한 탓이니, 이러한 여러 가지가 모두 보현보살의 지혜로 아는 경계이므로, 이승(二乘)들과는 함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저 으뜸가는 성문들은 듣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기억도 못하고 살피지도 못하고 요량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고 증득도 못하고 분별도 못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부처님과 보살들의 신통한 경계를 이승들의 좁은 소견으로는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서다림 동산에 있으면서도 여래의 크고 넓은 신통 변화를 보지 못한 것이다.
또 저 성문들은 이러한 보살들이 닦은 훌륭한 선근이 없는 까닭이며, 이러한 부처님의 신통을 보는 깨끗한 지혜의 눈이 없는 까닭이며, 깊은 삼매로 자세히 살피는 힘이 없는 까닭이며, 큰 신통으로 가피함이 없는 까닭이며, 생각할 수 없는 해탈문이 없는 까닭이며, 자재한 신통이 없는 까닭이며, 큰 세력이 없는 까닭이며, 큰 위엄과 도덕이 없는 까닭이며, 훌륭한 머물 데가 없는 까닭이며, 지혜의 눈으로 행할 경계가 없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얻지도 못하고 두루 알지도 못하고 내지도 못하고 살피지도 못하고 참아내지도 못하고 닦아 행하지도 못하고 편안히 머물지도 못하고 열어 보이지도 못하며, 또 남들에게 널리 연설하지도 못하고, 찬탄하지도 못하고 가리켜 보이지도 못하고 베풀어 주지도 못하고 거두어 붙잡지도 못하고 권하여 나아가게도 못하고 사람들을 가르쳐서 부처님 경계를 닦아 익히게 하거나 편안히 머물게 하거나 증득하게 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저 성문들은 이러한 큰 지혜가 없는 탓이며, 성문법을 의지하여 세상을 벗어난 탓이며, 성문의 도에 들어가 지혜를 얻은 탓이며, 성문의 행을 닦아 만족을 구하는 탓이며, 성문의 과(果)로 구경(究竟)을 삼는 탓이며, 성문의 참다운 지혜[實諦]만을 깨달은 탓이며, 차별 있는 진실[眞實際]에 머무르는 탓이며, 고요한 데 머무르는 것으로 열반을 삼는 탓이며, 세간에 대하여 대자비를 버린 탓이며, 모든 중생 구제하는 일에서 멀리 떠난 탓이며, 자기의 일에만 항상 머물러 고요한 데로 나아가는 탓이니, 그러므로 비록 서다림에 있으면서도 이러한 가지가지 신통 변화를 보지 못한 것이다.
왜냐 하면 본디 여래의 일체지의 성품을 구하지 아니하며 행하여 모으지 아니하였고, 좋아하지 아니하고 내지 아니하고 닦지 못하고 깨끗이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또 여래의 삼매와 신통에 들어가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증득하지 못하였으니, 이러한 경계는 보살의 넓은 지혜 눈으로써 보는 것이요, 성문들의 행할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큰 성문들은 비록 서다림 동산에 있지마는 여래의 가지가지 신통 변화와 가지가지 가피하심과 가지가지 부처 세계와 가지가지 깨끗하고 장엄한 것을 보지 못하며, 또 큰 보살들이 대중 회상에 두루하여 유희하는 신통을 모두 보지 못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항하(恒河)의 양쪽 언덕에 한량없는 백천억 아귀들이 있는데, 벌거숭이로 굶주리고 목말라서 여위어 핼쓱하고, 가죽과 살과 뼈가 안팎으로 타는 듯하고, 바람에 휘몰리고 햇볕에 그을리며, 까마귀·독수리·늑대·이리 따위와 험악한 새와 짐승들이 번갈아 와서 쪼고 할퀴며, 기갈에 쪼들리어 물을 마시려 하지마는, 강 가에 있으면서도 물을 보지 못하고, 설사 본다 하더라도 강이 말랐거나 불과 같거나 뜨거운 재로만 보이는 것과 같다. 그것은 두터운 업장(業障)에 덮인 탓이다.
여러 큰 성문들도 역시 그러하여 비록 서다림 속에 있으면서도 여래의 어마어마한 신통 변화를 보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온갖 것 다 아는 지혜[種智]를 좋아하지 아니하여 무명(無明)의 꺼풀이 눈에 덮인 탓이며, 일체지를 얻을 만한 훌륭한 선근을 심지 못한 탓이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잠깐 졸다가 꿈을 꾸었는데, 수미산 꼭대기에 제석천왕의 선견궁(善見宮)이 있고, 그 궁성 안에 훌륭한 전각과 잘 꾸민 동산이 있으며, 천동(天童) 천녀(天女)들이 백천만억이요, 부드러운 보배 땅에는 하늘 꽃이 널리어 있었다. 그리고 가지가지 의복 나무에서는 좋은 의복이 나오고, 꽃 나무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고, 보배 나무에서는 귀중한 보배가 나오고, 장엄 나무에서는 여러 가지 장식품이 나오고, 음악 나무에서는 아름다운 가락이 흐르며, 수없는 하늘 사람들이 그 가운데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그 사람도 그들과 함께 하늘 옷을 입고 오락가락하면서 쾌락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으면서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 사람의 꿈속에서 보는 경계는 함께 있는 여러 사람들로는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모든 보살이나 세간 임금[世主]들의 눈 앞에 보는 바 온갖 장엄과 신통 변화도 그러한 것이니, 여러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까닭이며, 오래 전부터 선근을 행하여 모은 까닭이며, 일체지를 얻으려는 큰 서원을 세운 까닭이며, 여래의 훌륭한 공덕을 닦은 까닭이며, 보살의 장엄한 길에 머무른 까닭이며, 일체종지(一切種智)의 문을 원만히 갖춘 까닭이며, 보현보살의 행과 원을 성취한 까닭이며, 보살들의 일체지의 땅에 들어가서 청정하게 아는 까닭이며, 보살의 온갖 삼매와 신통 바다에 유희하는 까닭이며, 보살의 온갖 경계를 관찰하는 지혜가 걸림이 없는 까닭에 여래 세존의 헤아릴 수 없이 자재하게 유희하는 신통 경계를 모두 보고 알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성문 제자들도 비록 지혜와 신통이 있지마는 그러한 경계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은 보살의 깨끗한 눈이 없는 탓이다.
마치 설산에 있는 약풀들이 누가 심기나 한 것처럼 간 데마다 많은데, 밝은 지혜를 가진 의사는 약풀의 여러 가지 성질과 공능을 알아서 병을 따라 캐어 쓰지마는, 사냥군이나 마소를 뜯기는 사람들은 그 속에 있으면서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과 같나니, 어떻게 캐낼 수 있으랴.
이것도 그와 같아서 모든 보살들은 모두 여래의 지혜에 들어가서 보살의 여러 가지 유희를 내며, 여래의 삼매 경계를 알지마는 성문 제자들은 본디 일체종지를 닦지 못하였고, 여러 중생을 이익케 하지 않았으므로 서다림 가운데 있으면서도 여래의 삼매로 광대한 신통 변화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마치 땅 속에는 여러 가지 보배가 들어 있고, 백천만억 희귀한 보물들이 간 데마다 그득하여 모든 장엄거리가 없는 것이 없건마는,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노다지 보배가 있는 데를 잘 알기도 하고 그 보배의 가치와 소용되는 것을 잘 알 뿐 아니라, 또 복과 덕이 구족하여 마음대로 캐내서 부모에게 봉양도 하고, 곤궁한 일가 친척들을 구원도 하고, 헐벗고 병난 사람들을 도와 주기도 하며, 하고 싶은 대로 풍족하게 쓰지마는, 복과 지혜가 없는 사람은 비록 보배 있는 데서 앉고 서고 다니고 눕고 하면서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보살들은 널리 보는 깨끗한 지혜 눈이 있으므로 서다림 동산에서 알 수 없는 여래의 깊은 경계에 들어가고 부처님의 엄청난 신통 변화를 보고, 부처님의 가이없는 삼매에 들어가서 부지런히 모든 여래께 공양하며 훌륭한 법문으로 여러 중생들을 깨우치며, 사섭법(四攝法)으로 여러 중생들을 포섭하거니와, 저 성문들은 비록 서다림 동산에 있으면서도 여래의 신통을 보지 못하며, 보살 대중의 모인 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천으로 눈을 가리고 보배가 많은 섬에 가서 앉고 눕고 오고 가고 하면서도, 보배 나무·보배 옷·보배 향·보배 과일 등 많은 보배들의 모양과 용도와 싸고 비싼 것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지마는, 다른 사람은 눈을 뜨고 그 곳에 가서 모든 보배들을 보기도 하고 알기도 하는 것과 같나니, 보살들도 이와 같아서 여래의 법 보배 섬에 가서 훌륭한 공덕의 장엄을 모두 분명하게 보지만, 성문 제자들은 비록 서다림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여래의 자재한 신통과 삼매의 경계를 보지 못하며, 널리 장엄한 보살 대중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성문들은 부처님의 지혜에 상응하지 못하는 탓이며, 무명이 눈을 가리운 탓이며, 보살처럼 걸림없는 지혜가 없는 탓이며, 차례대로 법계에 들어가지 못한 탓이니, 그러므로 여래의 자재한 삼매와 차별 있는 신통 변화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무구광(無垢光)이란 약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든지 눈에 바르면 눈이 밝아져서 모든 어두운 것이 그 눈을 가리우지 못하므로, 그 사람은 어둔밤에 여러 백천 명 군중 속에 있더라도 여러 사람의 얼굴과 행동을 모두 보지마는, 그 사람의 얼굴과 행동과 오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도 그와 같아서, 저 보살들은 여래의 밝은 지혜 눈을 성취한 것이어서 모든 세간의 일을 분명히 보지마는, 그 보살의 나타내는 삼매와 신통의 큰 경계와 모든 보살 대중의 둘러 있는 것을 성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어떤 비구가 대중 가운데서 변처정(?處定)에 들었는데, 이른바 땅 변처정·물 변처정·불 변처정·바람 변처정·푸른 변처정·누른 변처정 붉은 변처정·흰 변처정·하늘 변처정과 그리고 가지가지 중생의 몸 변처정, 음성과 말소리 변처정, 온갖 반연할 변처정 등이니, 이 변처정에 든 사람은 그 반연하는 땅이나 물 따위의 광명이 두루하며, 내지 온갖 반연할 경계를 두루 보지마는, 다른 대중들은 모두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도 그와 같아서, 여래께서 나타내시는 헤아릴 수 없는 삼매와 신통의 많은 경계를 보살만은 들어가 보지마는 모든 이승들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몸을 감추는 약을 구하여 몸에 바르면 몸이 가리워져서 대중 가운데서 앉고 서고 오고 가더라도 보는 이가 없지마는, 이 사람은 대중의 하는 짓을 모두 보는 것과 같다.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지혜 눈을 성취하고 세간에서 뛰어났으므로 세간을 보는 데 장애가 없어서, 나타내는 삼매와 신통의 경계는 성문들로서는 알지 못하고, 다만 일체지(一切智)의 경지에 나아간 보살들만이 보는 것이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처음 날 때에 두 천신(天神)이 함께 나나니, 하나는 동생(同生)이요 둘은 동명(同名)이다. 이 두 천신이 항상 이 사람을 따라다니는데, 천신은 이 사람을 보지마는 이 사람은 천신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여래도 그러하여, 헤아릴 수 없는 일체지지(一切智智)에 머무른 삼매와 신통의 경계와 모든 보살 대중이 장엄한 것을 성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비구가 자재한 마음으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모두 없어지고 육근(六根)으로 짓는 업도 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은데, 그것이 열반은 아니지마는 세상의 변천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멸진정의 힘으로 가피한 까닭이다.
저 성문들도 이와 같아서 비록 서다림 가운데 있으면서 육근이 구족하지마는, 여래의 자재한 신통과 넓은 경계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가지 못하며, 또 보살 대중의 삼매와 신통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여래의 경계는 세밀하고 깊고 비밀하고 크고 넓어서, 보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모든 세간과 출세간(出世間)을 뛰어나서 생각할 수도 없고 깨뜨릴 수도 없으며, 성문이나 벽지불로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래의 자재하신 신통으로 나타내는 경계와 헤아릴 수 없는 권속의 장엄과 보살 대중과 서다림 동산이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에 두루한 것 등의 일을 모든 이승들은 보지 못하나니 보살의 넓은 그릇이 아닌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