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본수능엄경(正本首楞嚴經) 05券

정본수능엄경(正本首楞嚴經) 05券

아난아! 그 두 번째 뜻은 너희들이 반드시 보리의 마음을 일으켜 보살승(菩薩乘)에서 큰 용맹을 내어 결정코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을 버리려고 한다면 응당 번뇌의 근본을 자세히 살펴보되 이것이 시작없는 과거로부터 업장을 짓고 삶을 불려왔으니 그 무엇이 업장을 지었으며 그 무엇이 과보를 받는가 생각해 보아라.

아난아! 네가 보리를 닦는다면서도 만약 번뇌의 근본을 자세히 살피지 못하면 허망한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물질이 어느 곳에서 뒤바뀐 것인지를 알 수 없으리니, 그 곳도 오히려 모르거든 어떻게 항복을 받을 것이며 또한 여래의 지위를 얻을 수 있겠느냐?

아난아! 너는 세상에서 매듭을 푸는 사람을 살펴보아라. 맺힌 데를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푸는 방법을 알겠느냐? 허공이 너에게 찢겼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허공은 형상이 없기 때문에 맺히고 풀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너의 앞에 나타난 눈, 귀, 코, 혀와 몸과 마음의 여섯 가지가 도적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 집의 보배를 스스로 빼앗나니, 이로 말미암아 시작없는 과거로부터 중생세계에 얽매이게 하였기 때문에 기세간(器世間)을 초월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난아! 무엇을 중생세계라고 하느냐? 세(世)는 옮겨 흐르는 것이고 계(界)는 방위를 말함이니 지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동쪽, 서쪽, 남쪽, 북쪽과 동남, 서남과 동북, 서북과 위, 아래가 계(界)가 되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세(世)가 되니, 방위는 열이고 흐르는 숫자는 셋이다. 일체 중생이 허망함이 얽히어 서로 이루어져서 몸속에서 바뀌고 옮겨져서 세와 계가 서로 연관이 되나니라. 그 계(界)의 성질이 비록 열 방향으로 설정되었으나 정해진 위치는 밝힐 수 있으니, 세상에서는 다만 동, 서, 남, 북만 지목하고 위와 아래는 위치가 없으며 중간은 정해진 방향이 없나니라. 사방의 수가 반드시 분명해서 세(世)로 더불어 서로 연관이 되어, 三, 四와 四, 三이 완연히 굴러 열 둘이 되어서 흘러 변하는 것이 세 번 거듭하여 一, 十, 百, 千이 되니, 처음과 끝을 모두 묶으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 가운데 공덕이 각각 一千 二百이 있나니라.

아난아! 너는 다시 그 가운데에서 우열을 정해 보아라. 눈은 보기는 하되 뒤는 어둡고 앞만 밝으니, 앞 방향은 완전하게 밝고 뒷방향은 완전하게 어두우며 왼쪽과 오른쪽은 겉만 보는 것이라서 三분의 二니 그 작용을 통틀어 논하면 공덕이 완전하지 못하다. 三분으로 공덕을 말하면 一분은 공덕이 없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은 오직 八百의 공덕일 뿐이니라. 귀는 두루 들어서 시방에 남김이 없나니 움직임에 있어서는 가깝고 먼 것이 있는 듯하나 고요한 상태에서는 한계가 없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는 원만하여 一千 二百 공덕이니라. 코는 냄새를 맡음에 있어 내쉬고 들이쉼을 통해서 냄새를 맡게 되는데, 들이쉬고 내쉼은 있으나 중간에 교체되는 동안엔 끊어지나니, 코에 대하여 증험해 보건댄 셋으로 나눈 가운데 하나가 빠졌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는 八百 공덕이 되나니라. 혀는 말을 함에 있어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를 다하나니 말은 방위와 나누어짐이 있으나 이치는 다함이 없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는 一千 二百 공덕이 원만하니라. 몸은 접촉으로 인하여 느낌이 생기나니 거슬리고 순함을 알아서 합하였을 적에는 알고 떠나면 알지 못한다. 떠나면 하나이고 합하면 둘이니 몸에 대하여 징험해 보건댄 셋으로 나눈 가운데 하나가 빠졌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은 오직 八百 공덕뿐이니라. 뜻은 시방삼세의 일체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묵묵히 포용해서 성인과 범부를 포용하지 않음이 없어 그 끝닿은 데까지 다하였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은 一千 二百 공덕이 원만하니라.

아난아! 네가 지금 나고 죽는 애욕의 흐름을 거슬러서 그 흐름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나고 죽음이 없는 데에 이르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여섯 가지 느껴 작용하는 감각기관이 어느 것이 합하고 어느 것이 떠나며, 어느 것이 깊고 어느 것이 얕으며, 어느 것이 원만하게 통하고 어느 것이 원만하게 통하지 못하는 것인지를 징험해 알아야 한다. 만약 그러한 데에서 원만하게 통한 감각기관을 알아서 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허망함이 짜여서 된 업장의 흐름을 거슬러서 원만하게 통함을 따를 수만 있다면 원만하지 못한 감각기관에 의지하여 닦는 것과는 시간의 흐름이 서로 배가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여섯 가지 맑고 원만하게 밝은 본래 지니고 있는 공덕의 수량이 이러함을 갖추어 나타내었으니, 네가 자세히 선택함을 따라 그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내가 밝혀서 너로 하여금 더 나아가게 하리라. 시방의 여래는 십팔계(十八界)에서 낱낱이 수행하여 모두 원만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여 그 중간에 우열이 없거니와 다만 너는 근기가 하열(下劣)하여 그 가운데 원만하게 자재한 지혜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가 이를 선양해서 너로 하여금 다만 한 문으로만 깊이 들어가게 하겠으니, 한 문으로 들어가 허망함이 없어지면 저 여섯 가지 느낌이 있는 감각기관이 일시에 청정하게 될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한 문으로 깊이 들어가서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일시에 청정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지금 이미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하여 삼계의 중생들이 세간에서 견도문(見道門)을 수행할 적에 끊어야 할 의혹을 없앴다. 그러나 아직도 여섯 개의 감각기관 중에 오랫동안 쌓여서 생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의 허망한 습관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 습관은 모름지기 수도를 통하여 끊어야만 되는 것이어든 더구나 그 가운데에 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분제(分劑)와 두수(頭數)이겠느냐? 너는 또다시 살펴보아라. 앞에 나타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하나이냐 여섯이냐? 아난아! 만약 하나라면 귀로는 왜 보지 못하고 눈으로는 왜 듣지 못하며, 머리로는 왜 다니지 못하고 발은 왜 말하지 못하느냐? 만약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결정코 여섯을 이룬다면 내가 지금 이 모임 중에서 너희에게 미묘한 법문을 말할 적에 너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서 어느 것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저는 귀로써 듣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귀가 저절로 듣는데 몸과 입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입으로 질문할 적에 몸은 일어나서 공경하여 받드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하나가 아니라 여섯이며 여섯이 아니라 하나이니, 마침내 너의 여섯 개의 감각기관과 그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물질이 원래 하나도 아니고 여섯도 아니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여섯 개의 감각기관이 하나도 아니고 여섯도 아니거늘 시작 없는 과거로부터 뒤바뀐데 빠져왔으므로 원만한 맑음에서 一이니 六이니 하는 이치가 생겼느니라. 너는 수다원으로써 비록 여섯 가지는 소멸하였으나 아직 한가지는 없어지지 못하였느니라. 마치 큰 허공을 여러 가지 다른 모양의 그릇에 담아 놓으면 그릇의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허공도 다르다고 하다가 그 그릇을 치우고 허공을 보면 허공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저 허공이야 어떻게 너를 위하여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겠느냐? 더구나 또다시 어떻게 하나다 하나가 아니다 라고 하겠느냐? 네가 아는 여섯 개의 감각기관의 수용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어두움과 밝음 등 두 가지가 서로 나타나므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보는 것을 발생시키나니, 보는 정기가 빛을 비추어서 그 빛이 맺혀져서 눈이 되니 그 눈의 근원은 청정한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졌고, 그러므로 눈의 실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는 마치 포도 알과 같다. 그것은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 기관이라서 빛을 따라서 흘러 달아나느니라.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가 서로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듣는 것이 발생하나니 듣는 정기가 소리에 비치고 그 소리가 말려서 근(根)이 된다.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그를 이름하여 이체(耳體)라 하니, 마치 새로 돋아나는 권이(券耳)의 잎새와 같다. 그것은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 기관이므로 소리를 따라 흘러 치닫느니라. 통하고 막히는 두 가지가 서로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냄새를 맡나니, 맡는 정기가 향기에 비쳐서 그 향기를 받아들여 근(根)이 되니,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비체(鼻體)라고도 하니, 이는 마치 두 개의 오이가 드리운 것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 기관이므로 향기를 따라 흘러 치닫느니라. 그대로 있거나 변화하는 두 가지가 서로 섞여서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맛을 보나니 맛보는 정기가 맛에 비쳐서 그 맛을 짜내어 근(根)이 되니,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설체(舌體)라고도 하니 이는 마치 초승달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 기관이므로 맛을 따라 흘러 치닫느니라. 떠나거나 합하는 두 가지가 서로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것에 붙어 느낌이 생기나니, 느끼는 정기가 접촉에 비추고 그 접촉이 뭉쳐서 근(根)이 되니,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신체(身體)라고도 하니, 이는 마치 장구통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 기관이므로 감촉을 따라 치닫느니라. 나고 없어지는 두 가지가 서로 이어지므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것에 붙어 깨닫게 되나니, 깨닫는 정기가 법에 비추어서 그 법을 잡아서 근(根)이 된다.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의사(意思)라고도 하니 마치 어두운 방에서 보는 것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 기관이므로 법을 따라 치닫느니라.

아난아!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저 밝은 깨달음의 밝음이 있는 밝혀야 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서 그 정밀하고 또렷함을 잃고 허망한데 붙어서 빛을 발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밝음과 어두움을 여의면 보는 실체가 없을 것이고, 움직임과 고요함을 여의면 원래 듣는 바탕이 없을 것이며, 통하고 막힘이 없으면 맡는 성품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여의고 합함이 아니면 부딪쳐 느낌이 반드시 없을 것이며, 나고 죽음이 없으면 깨달음이 어디에 붙어 있겠느냐? 네가 다만 밝고 어두움, 통하고 막힘, 그대로 있고 변함, 합하고 여윔, 나고 없어짐의 열 두 가지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을 따르지 아니하면 마음대로 한 감각기관을 골라서 거기에 집착된 것을 벗겨내고 속으로 굴복시켜서 이를 본래의 참된 상태로 돌아가면 본래의 밝은 빛을 발하리니 밝은 성품이 환하게 밝아지면 나머지 다섯 가지 집착도 선택에 따라서 원만하게 벗겨질 것이다. 앞에 나타난 대상이 일으킨 바 지견(知見)을 따르지 아니하여 밝음이 감각기관을 따르지 않고, 그 감각기관에 의탁하여 밝음이 발생하면 그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서로서로 작용하나니라.

아난아! 네가 어찌 알지 못하랴? 지금 이 모임 가운데 아나율타는 눈이 없이도 볼 수 있고 발난타룡은 귀가 없이도 들을 수 있으며, 긍가신녀는 코가 없어도 냄새를 맡고 교범바제는 혀가 다른데도 맛을 알며, 순야다신은 몸이 없이도 감촉을 느끼나니 여래의 광명 중에 비치므로 잠깐 나타나기는 하지만 본래가 바람의 체질이므로 그 몸은 원래 없으며, 멸진정(滅盡定)을 닦아 고요함을 깨달아 성문이 된 이 모임 가운데에서 마하가섭 같은 이는 오래전부터 의근(意根)이 없어졌어도 원만하고 밝게 깨달아 앎에 있어 마음을 쓰지 아니하나니라.

아난나! 지금 네가 모든 감각기관에서 원만하게 벗어나면 안으로 환하게 광명을 발하여 이러한 부질없는 대상인 물질과 기세간(器世間)의 모든 변화하는 현상들이 마치 끓는 물에 얼음이 녹는 듯해서 생각을 따라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리라.

아난아! 마치 저 세상 사람들이 보는 힘을 눈에 집중시켰다가 만약 갑자기 눈을 감으면 어두운 현상이 앞에 나타나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캄캄하여 머리나 발과 같으리니, 그 사람이 손으로 몸을 따라 더듬으면 그가 비록 보지는 못하더라도 머리인지 발인지는 한결같이 분별하여 깨달아 아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니, 대상을 보는 것은 밝음을 인해야 하고 어두우면 볼 수 없거니와 밝지 않더라도 스스로 발하면 모든 어두운 현상이 영원히 어둡지 않으리니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이미 소멸되면 어찌하여 밝은 깨달음이 원만하고 오묘함을 이루지 못하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처음 수행할 때의 깨닫는 마음으로 늘 머무르기를 구하고자 하거든 과위(果位)의 명목과 서로 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과위 중에 보리와 열반, 진여와 불성, 암마라식과 공여래장, 대원경지등 일곱 가지 명칭이 그 이름은 비록 각기 다르나 청정하고 원만해서 그 자체의 성품이 단단하게 엉김은 마치 금강왕(金剛王)이 항상 머물러서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그 보고 듣는 것이 밝고 어둡고 움직이고 고요하고 통하고 막힘을 여의면 마침내 실체가 없음이 마치 생각하는 마음이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물질을 여의면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장차 끊어 버리는 것을 수행하는 원인으로 삼아 여래의 일곱 가지 항상 머무는 과업을 얻을 수 있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약 밝고 어두움을 여의면 보는 놈이 마침내 공(空)하게 되어 마치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물질이 없는 것과 같으며, 생각의 자성이 없어진 것과 같아질진댄 이리 저리 순환하면서 미세하게 추구하여도 본래 나의 마음과 마음의 처소가 없을지니 장차 무엇으로 원인을 삼아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겠습니까? 여래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맑고 정밀한 것이 원만하고 항상 하다’고 하시더니 그것이 진실한 말씀이 못되고 끝내는 농담 같은 말씀이 되었으니 어떻게 여래가 진실한 말씀만 하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많이 듣는 것만 즐겨 배우고 정기가 새는 것을 모두 다 끊지 못하고 마음속에 다만 뒤바뀐 원인만을 깨닫고 참으로 뒤바뀐 것이 앞에 나타나는 것을 실제로 알지 못하나니, 네가 아직도 진실로 마음속으로 믿어 복종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지금 내가 시험 삼아 티끌세상의 모든 일들을 들어서 너의 의혹을 제거시켜 주리라.”

그때에 여래께서 나후라에게 명하여 종을 한 번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지금 종소리가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대답하기를 “저희들이 듣고 있습니다.”

종소리가 없어지자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을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이 함께 대답하기를 “들리지 않습니다.”

그때에 나후라가 또 한 번 종을 치자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은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또 대답하기를 “모두 듣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네가 어떤 것을 듣는다고 하고 어떤 것을 듣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에게 말씀드리기를 “종을 쳐서 소리가 나면 저희들이 듣고 종을 친 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사라져서 메아리까지 다 없어지면 들리지 않습니다.”

여래께서 또다시 나후라를 시켜서 종을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네가 지금 소리가 나느냐 나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대답하기를 “소리가 납니다.”

조금 있다가 소리가 없어지거늘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은 소리가 나느냐 안 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대답하기를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잠깐 있다가 나후라가 다시 와서 종을 치니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 소리가 나느냐 안 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대답하기를 “소리가 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떤 것을 소리가 난다고 하고 어떤 것을 소리가 없다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에게 말씀드리기를 “종을 쳐서 소리가 나면 소리가 있다고 하고 종을 친 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없어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지면 소리가 없다고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지금 어찌하여 스스로 하는 말이 이랬다저랬다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저희들이 지금 무엇을 이랬다저랬다 했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들리느냐고 물으니 너는 들린다고 말하였고, 또 너에게 소리가 나느냐고 물으니 너는 소리가 난다고 말하여 듣고 소리가 나는데 대한 대답이 일정하지 아니하니 그런 것이 어찌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아난아! 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진 것을 너는 들음이 없다고 말하는데 만약 참으로 들음이 없을진댄 듣는 성품이 이미 없어져서 마른 나무와 같으리니 종을 다시 친들 네가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 있음을 알고 없음을 아는 것은 그 들리는 대상인 소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저 듣는 성품이야 네게서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냐? 듣는 것이 참으로 없다고 할진댄 무엇이 없다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듣는 가운데 소리가 저절로 생겼다 없어졌다 할지언정 네가 듣는데 있어서 소리가 생기고 없어짐이 너의 듣는 성품으로 하여금 있었다 없었다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라. 너는 아직도 뒤바뀌어서 소리를 듣는 것으로 착각하나니 어찌 혼미하여 항상한 것을 끊겼다고 여기는 것이 이상한 일이겠느냐? 끝내는 모든 움직임, 고요함, 열림, 닫힘, 통함, 막힘을 여의고서 듣는 성품이 없노라고 말하지 못하리라. 마치 깊이 잠든 사람이 침대에서 한참 자고 있을 적에 그 가족들이 다듬질이나 방아를 찧으면 그 사람이 잠결에 방망이 소리와 절구 소리를 듣고 그때에 갑자기 깨어나서 가족에게 말하기를 ‘조금 전 잠결에 이 소리를 들었다’고 하리니, 아난아! 그 사람은 잠결에 어떻게 움직이고 고요하며 열리고 닫히고 통하고 막힘을 기억하랴마는 그 형체는 비록 잠을 자고 있었으나 듣는 성품은 혼미하지 않았나니, 가령 너의 형체가 없어져서 목숨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 성품이야 어찌 너에게서 없어지겠느냐? 모든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모든 빛과 소리를 따르면서 생각을 좇아 흘러 돌아서 일찍이 청정하고 오묘하고 항상한 성품은 깨닫지 못하여 항상한 것은 따르지 않고 나고 없어지는 것만 쫓아다니므로 이로 말미암아 세세생생에 잡념으로 흘러 돌게 되나니, 만약 나고 죽음을 버리고 항상 참되고 항상함을 지키면 항상한 빛이 앞에 나타나서 감각기관과 그 대상, 그리고 의식하는 마음이 때를 따라 없어질 것이다. 생각하는 현상이 허망한 대상이고 의식하는 마음이 더러운 때가 된다. 두 가지 다 멀리 여의면 너의 법안(法眼)이 때를 따라서 맑고 밝아지리니 어찌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겠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비록 제이의(第二義)의 문을 말씀하셨으나, 지금 관찰해 보건댄 세상에서 맺힌 것을 푸는 사람이 만약 그 맺히게 된 원인을 알지 못하면 저는 이 사람은 끝끝내 풀 수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와 이 모임 가운데 있는 유학과 성문들도 이와 같아서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모든 무명과 더불어 함께 생기고 함께 없어지나니, 비록 이렇게 많이 듣는 하나의 훌륭한 근기를 지녀서 이름만 출가하였다고 할 뿐, 마치 하루씩 거르는 학질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바라옵건대 큰 자비로써 빠져서 헤어나지 못함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오늘 이 몸과 마음이 어찌하여 이렇게 맺혀졌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푸는 것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또한 미래의 고난 받는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를 면해서 삼계(三有)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게 해주소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널리 대중들과 함께 온 몸을 땅에 던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정성을 다하여 여래의 위없는 가르침을 기다렸다.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모임 가운데 모든 배울 것이 있는 자들을 가엾게 여기시며, 또한 미래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세간을 벗어나는 원인을 말씀하시어 장래의 법안(法眼)을 만들어 주려 하사 염부단자금광(閻浮檀紫金光)의 손으로 아난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시니 그때에 시방에 넓은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가지로 진동하며 그 세계에 계시는 모든 여래가 각각 보배의 빛이 그 정수리로부터 나오니, 그 광명이 동시에 그 세계에서 기다림으로 와서 여래의 정수리에 닿거늘 여러 대중들이 지금까지 없었던 일을 보게 되었다.

그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함께 들었는데, 시방의 모든 여래가 다른 입에서 같은 소리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훌륭하다! 아난아! 네가 나면서부터 함께 생긴 무명이 너로 하여금 윤회하고 전전하게 하는 나고 죽는 것이 맺혀진 근원을 알고자 할진대 그것은 오직 너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 때문이요, 다른 물건이 아니며, 네가 다시 위없는 보리가 너로 하여금 편안하고 즐겁게 해탈케 하는 고요하고 편안하고 오묘하고 항상함을 속히 증득하는 방법을 알고자 할진댄 그것도 역시 너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인함이지 다른 물건이 아니니라.”

아난이 비록 이러한 진리의 말씀은 들었으나 마음에는 아직도 분명치가 못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어째서 저로 하여금 나고 죽음에 윤회하게 하며, 편안하고 즐겁고 오묘하고 항상 하게 함이 모두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요 다른 물건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되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물질이 근원은 같으며 얽매임과 해탈도 둘이 아니며 의식하는 성품의 허망함이 허공의 꽃과 같으니라. 아난아! 대상인 물질로 말미암아 앎을 발하며, 감각 기관으로 인해서 현상이 있나니 현상과 보는 놈이 성품이 없어서 허수아비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제 알고 보는 것이 앎을 성립하면 곧 무명의 근본이고, 알고 보는 것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는 곧 열반으로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끊긴 참되고 청정함이니 어떻게 그 가운데에 또다시 다른 물체를 용납하겠느냐?”

그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하여 게송을 설하셨다.

참다운 성품에는 작위함이 없거늘 인연으로 생기는 것은 허깨비와 같다네.

작위도 없으며 생기거나 없어짐도 없어서 진실 되지 못함이 허공의 꽃과 같으니라.

거짓을 말하여 진실을 나타낸다면 거짓과 진실이 둘 다 거짓이라네.

진실도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거니 어찌하여 보는 놈이다 보이는 물질이다 하겠느냐?

중간에 진실한 성품이 없나니 그러므로 허깨비와 같나니라.

맺히고 풀림이 원인한 바가 같아서 성인과 범부가 두 길이 아니라네.

너는 어우러진 마음속의 성품을 보아라. 허공과 실체 이 두가지가 다 아니니, 혼미하여 어두우면 곧 무명이요 밝게 열리면 곧 해탈이니라.

맺힌 것을 푸는 데는 차례를 지켜서, 六이 풀리면 一도 따라 따라서 없어지리라.

감각기관 가운데 원만한 놈을 선택하면 흐름에 들어가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리라.

아다나(阿陀那)의 미세한 의식은 습기가 사나운 흐름을 이루나니 진실과 진실 아님에 미혹할까 염려하여 내가 늘 말하지 않았노라.

제 마음에서 제 마음을 취하면 환망(幻妄)아닌 것이 환법(幻法)이 되나니 취하지 않으면 환망 아닌 것조차도 없으리라.

환망이 아닌 것도 오히려 생기지 않거든 환법이 어떻게 이루어지랴?

이것을 이름하여 ‘묘연화’, ‘금강왕보각’, ‘여여불삼매’라 하나니 손가락을 퉁기는 사이에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초월하리라.

오직 이 비유할 수 없는 법은 시방 바가범이 오직 이 한 길이 열반에 이르는 문이니라.

이에 아난과 여러 대중이 부처님의 위없이 자비하신 가르침인 기야(祇夜)와 가타(伽陀)가 섞여 엉겼으면서도 정밀하고 밝아 오묘한 이치가 맑게 통함을 듣자옵고 마음의 눈이 밝게 열려서 일찍이 없던 일임을 찬탄하더니, 아난이 합장하여 이마를 땅에 대어 예를 드리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지금 부처님께서 차별 없는 큰 자비로 말씀하신 성품은 청정하고 오묘하고 항상 하다는 진실한 법구를 들었사오나 마음에는 아직도 六이 풀리면 一이 없어진다는 매듭을 푸는 차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하옵건댄 큰 자비를 베푸시와 여기에 모인 무리들과 장래의 중생들을 다시 가엾게 여기셔서 법음(法音)을 베풀어 속에 밴 때까지 깨끗이 씻어주소서.”

그때에 여래께서 사자좌에서 열반증을 정돈하고 승가리(僧伽梨)를 여미신 다음 칠보로 단장한 책상을 끌어당겨서 겁바라천(劫坡羅天)이 바친 화건(華巾)을 가져다가 대중 앞에서 이를 매어 매듭을 만들어 아난에게 보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께 아뢰기를 “그것은 매듭이라고 합니다.”

이에 여래께서 다시 첩화건(疊華巾)을 매어서 또 한 개의 매듭을 만들어 거듭 아난에게 물으시기를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또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그것도 매듭입니다.”

이와 같이 차례로 첩화건을 매어 모두 여섯 개의 매듭을 만들었는데 한 번씩 매듭을 만들 때마다 화건으로 만든 매듭을 들고서 아난에게 묻기를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도 그와 같이 차례로 부처님에게 대답하기를 “그것도 매듭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처음 화건을 맺은 것을 네가 매듭이라고 하였으니 이 첩화건은 앞서의 실제는 한 가닥이었거늘 두 번째 세 번째에도 어찌하여 너희들은 다시 매듭이라고 하는고?”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이 보첩화는 짜서 만든 수건으로서 비록 본래는 하나이나 저의 생각으로는 여래께서 한 번 맺으시면 한 개의 매듭이라고 하고, 만약 백 번 맺으면 백 개의 매듭이라고 해야 할 것이거든, 더구나 이 수건이 다만 여섯 개의 매듭뿐이어서 일곱은 되지 못하였으며 다섯에는 머물지 않았사옵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다만 처음 것만 인정하시고 두 번째 세 번째 것은 매듭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보화건은 네가 아다시피 이 수건이 원래는 하나였으나 내가 여섯 번 매듭을 지었을 때에 여섯 개의 매듭이란 이름이 있게 되었나니 너는 자세히 관찰하여라. 수건 자체는 같은 것이지만 매듭으로 인하여 달라진 것이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처음 맺어서 매듭이 된 것을 첫 번째라 고 말하니 그렇게 하여 여섯 번째 매듭까지 생겼으니, 내가 지금 여섯 번째 매듭을 가지고 첫 번째 매듭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섯 번째 매듭이 만약 있으면 이는 여섯 번째 매듭이지 결코 첫 번째 매듭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제가 여러 생을 두고 끝까지 밝혀본다고 한들 어떻게 이 여섯 번째 매듭의 이름을 바꿀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니라. 여섯 개의 매듭이 같지는 아니하나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하나의 수건으로 된 것인데 섞이게 한다는 것은 마침내 성립될 수 없나니라.

곧 너의 여섯 개의 감각기관도 역시 이와 같아서 필경에는 같은 가운데 마침내 다른 것이 생기나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굳이 이 여섯 개의 매듭이 하나로 이루어지지 못함을 싫어해서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면 다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아난이 말하기를 “이 매듭을 만약 그대로 두면 시비가 벌 떼처럼 일어나서 그 가운데 자연 이 매듭은 저것이 아니고 저 매듭은 이것이 아니라고 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여래께서 오늘날 만약 다 풀어서 매듭이 생기지 않게 하실 것 같으면 곧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하는 일이 없어져서 오히려 하나라고 이름할 것도 없을 것이거든 여섯이 어떻게 성립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섯이 풀리면 하나가 없어지는 이치도 그와 같으니라. 네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마음의 성품이 어지러워짐을 따라서 깨닫고 보는 것이 허망하게 생겨나고 그렇게 생긴 허망함이 쉬지 아니하여 보는 놈이 피로해져서 물질의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이 마치 눈동자가 피로해 지면 곧 허공의 헛보이는 꽃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맑고 정밀하고 밝은 것에 원인 없이 일체 세간의 산과 강, 이 땅덩어리와 나고 죽음과 열반이 어지럽게 일어나나니 이는 모두가 곧 어지럽고 혼란한 피로에서 생긴 뒤 바뀐 헛꽃의 현상이니라.”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 피로 때문에 생기는 현상은 매듭지어진 것과 같은 것이니 어떻게 풀어 없애야 되겠습니까?”

여래께서 손으로 매듭이 생긴 수건을 잡고서 그 왼쪽을 당기며 아난에게 묻기를 “이렇게 하면 풀리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다시 손을 돌려 그 오른쪽을 당기면서 또 아난에게 묻기를 “이렇게 하면 풀리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손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각각 당겼으나 마침내 풀지 못하였으니 너는 방편을 베풀어 보아라. 어떻게 해야 풀리겠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마땅히 매듭 중심서부터 풀면 풀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나니라. 매듭을 풀려거든 매듭 중심에서부터 풀어야 하나니라.

아난아! 내가 말하기를 ‘불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긴다’고 하였나니 세간과 화합하는 거친 현상들을 취한 것이 아니니라. 여래는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발명하여 그 근본 원인이 인연한 바를 따라 나오는 것을 깨달으며, 이와 같이 항하사처럼 많은 세계 속에 한 방울의 비까지도 그 수효를 알며, 앞에 나타나는 갖가지 현상 가운데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었으며 따오기는 희고 까마귀는 검은 것에 대하여 그 까닭을 모두 알아야 하나니, 그러므로 아난아! 너의 마음 속을 따라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라. 그 감각기관의 매듭이 만약 풀리면 대상인 현상도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모든 허망한 것이 사라져 없어지면 참되지 않음이 어찌 있겠느냐?

아난아! 내가 지금 네게 묻겠는데 이 겁파라수건의 여섯 개의 매듭이 앞에 나타났으니 동시에 매듭을 풀면 한꺼번에 풀릴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그 매듭이 본래 차례로 맺혀진 것이므로 지금도 마땅히 차례로 풀어야 할 것입니다. 여섯 개의 매듭이 본체는 같지만 그 매듭은 동시에 맺혀진 것이 아니므로 그 매듭을 푸는데 어떻게 한꺼번에 풀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으로 인하여 생기는 의혹을 풀어 버리는 것도 이와 같나니라. 그 감각기관이 처음 풀어지면 먼저 인공(人空)을 얻고 허공의 성품마저 원만하게 밝아져서 법의 해탈이 이루어지나니 법을 해탈하고 나서 모두가 공하다는 것까지도 생기지 않아야 이것을 보살이 삼마지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고 하나니라.”

아난과 여러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받자옵고 지혜로운 깨달음이 원만하게 통해서 의혹이 없어짐을 얻고는 일시에 합장하여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하고 아뢰기를 “저희들이 오늘에야 몸과 마음이 밝아져서 걸림이 없음을 쾌히 얻었습니다. 비록 다시 하나와 여섯이 없어지는 이치를 깨닫기는 하였사오나 아직도 원만하게 통한 본근(本根)은 깨닫지 못하였사오니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정처 없이 헤매면서 여러 겁을 외롭게 떠돌다가 무슨 마음 무슨 생각이 부처님의 천륜(天倫)에 참여하게 되었습니까? 마치 어미를 잃어버렸던 젖먹이가 그 어머니를 만난 듯합니다. 만약 다시 이 모임으로 인하여 도가 이루어진다면 얻어들은 비밀스런 말씀이 본래 깨달음과 같아서 듣지 못한 것과 다름이 없겠습니다. 바라옵건댄 오직 큰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에게 신비하고 존엄하신 은혜로서 말씀해 주셔서 여래의 최후의 가르침을 성취하게 하여주소서.”

이렇게 말하고는 온 몸을 땅에 던지고서 물러나와 숨을 죽이고 앉아서 부처님의 은밀한 가르침을 기다렸다.

그때에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의 여러 큰 보살들과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어진 큰 아라한에게 널리 구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보살과 아라한이 나의 법 가운데에서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이루었나니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는데 최초의 발심하여 十八계(界)를 깨달았을 적에 어느 것이 원만하게 통한 것이며 어떤 방편으로 삼마지에 들어갔느냐?”

교진여 다섯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녹야원과 계원에 있을 적에 여래께서 최초로 도를 이루심을 보고 부처님의 음성에서 사제(四諦)를 깨달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물으시므로 제가 먼저 안다고 하였는데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아야다(阿若多)’라고 하셨으니, 오묘한 음성이 은밀하고 원만하였으므로 저는 그 음성으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음성이 으뜸인가 하옵니다.”

우바니사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도 부처님께서 최초로 도를 이루심을 보았더니 청정하지 못한 모양을 보게 하셨으므로 크게 싫어 여의여야겠다는 생각을 내어 모든 물질의 성품을 깨달았나이다. 깨끗지 못한 것과 백골(百骨)과 미세한 티끌을 따라 허공으로 돌아가서 허공과 물질이 둘 다 없어져서 더 배울 것이 없는 도를 이루었으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나사타(尼沙陀)’라고 하셨는데, 색이라는 대상이 이미 다 없어져서 미묘한 물질이 은밀하고 원만하였사오매 저는 그 물질의 모양으로부터 아라한을 얻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색신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향엄 동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여래께서 저에게 모든 작위가 있는 형상을 자세히 살피라고 하심을 듣고서 제가 그때 부처님에게 하직하고 깨끗한 방에서 편안히 생각에 잠겼다가 여러 비구가 침수향 태우는 것을 보았더니 그 향기가 은연중에 코 속으로 들어오거늘 제가 그 향기는 나무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연기도 아니요 불도 아니어서 가도 닿는 데가 없으며 와도 좇아온 데가 없음을 관하였나이다. 이로 인하여 뜻이 사라져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끊어짐을 발명하였사오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향엄(香嚴)’이란 호를 주셨사온데 대상인 향기가 문득 사라지고 오묘한 향기가 은밀하고 원만하거늘 저는 그 향엄으로부터 아라한을 얻었사오니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향기가 으뜸인가 하나이다.”

약왕과 약상 두 법왕자가 모임 가운데 있다가 오백의 범천(梵天)과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한량없는 세월 동안 세상의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입으로 이 사바세계의 풀, 나무, 쇠붙이, 돌을 맛본 그 가지 수가 무릇 十만 八천이나 되니 이와 같이 쓰고, 시고, 짜고, 담담하고, 달고, 매운 것 등의 맛과 아울러 화합해서 생긴 맛, 함께 생긴 맛, 변하여 생기는 맛과 찬 맛, 더운 맛, 그리고 독이 있고, 없고를 두루 맛보아 알 수 있었습니다만 여래를 받들어 모시면서 맛의 성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며, 몸과 마음에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몸과 마음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으며, 맛의 원인을 분별하여 이로 인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여래께서 저희 형제를 인가하시어 약왕, 약상 두 보살로 이름하여 주심을 받자와 지금 모임 중에서 법왕자가 되어서 맛으로 인해 깨닫고서 보살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맛으로 닦는 것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발타바라가 그 도반인 열여섯 명의 개사(開士)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희들이 앞서 위음불의 처소에서 법을 듣고 출가한 후 스님들과 목욕할 적에 차례를 따라 욕실에 들어갔었는데 홀연히 물로 인하여 깨닫고서 이미 때를 씻은 것도 아니며, 또한 몸을 씻는 것도 아니며, 중간이 편안하여 지닌 것이 없음을 얻었습니다. 숙세의 습기를 잊지 못해서 지금에 와서도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얻었으니, 부처님께서 저를 ‘발타바라’라고 이름하여 주심을 받자옵고 오묘한 접촉으로 밝아져서 불자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접촉으로 인하여 닦는 것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마하가섭과 자금광비구니 등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지나간 세월에 이 세계 속에 있을 적에 세상에 나온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이름이 ‘일월등(日月燈)’이었습니다. 제가 가까이 모시면서 법을 듣고 닦아 익혔더니 그 부처님이 멸도(滅度)하신 뒤에는 사리를 공양하면서 등을 켜 계속 밝혔사오며, 자단금(紫檀金)으로 부처님의 형상에 도금하였더니 그 후부터는 세세생생에 몸에 항상 자금광 빛이 모여 원만하였나이다. 이 자금광 비구니 등은 곧 저의 권속이니 그때 다 함께 발심하였나이다. 저는 세간의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이 변하여 없어짐을 보고서 오직 비고 고요함으로써 멸진정(滅盡定)을 닦아서 몸과 마음이 百, 天 겁을 지내어도 마치 손가락을 퉁기는 기간과 같이 짧았으므로 저는 공(空)한 법으로써 아라한을 이루었으니 세존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두타(頭陀)에 최고라고 하셨습니다. 오묘한 법이 밝게 열려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모두 다 소멸시켰으니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법으로 인함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아나율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 출가하여 늘 수면을 즐기더니 여래께서 저를 꾸짖되 축생의 무리가 된다고 하시므로 저는 부처님의 꾸지람을 듣자옵고 울면서 자책하여 七일을 잠자지 않았더니 두 눈이 멀었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낙견조명금강삼매(樂見照明金剛三昧)를 가르쳐 주셨으므로 저는 눈으로는 시방세계를 보지 못하지만 참다운 정기가 환희 열려서 마치 손바닥에 있는 과일을 보는 듯하였더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아라한을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이유를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보는 것을 돌이켜 근본을 따르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주리반특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외울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많이 듣는 성품이 없었더니 처음 출가하여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듣고서 여래의 비밀하신 게송을 기억하려는데 百일 동안이나 앞에 것을 외우면 뒤에 것을 잊고 뒤에 것을 외우면 앞에 것을 잊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저의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겨 저에게 편안히 있으면서 숨쉬는 것을 조절하라고 하시므로 제가 그때에 숨쉬는 것을 관하여 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모든 행동의 찰나를 미세한 것까지 다 연구하여 그 마음이 환해져서 크게 걸림이 없음을 얻었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없어지는 데까지 이르러 아라한을 이루어서 부처님의 자리 아래에 머물었거늘 더 배울 것이 없음을 이루었다고 인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숨쉬는 것을 돌려 공(空)을 따름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교범바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리기를 “저는 입으로 죄를 지었으니 과거 겁에 스님을 조롱한 탓으로 세세생생에 소처럼 되새김하는 병이 있었거늘 여래께서 저에게 일정한 맛의 청정한 마음의 법문을 가르쳐 주셨으므로 저는 잡념이 없어질 수 있어서 삼마지에 들어가 맛을 아는 것이 실체도 아니고 물질도 아님을 관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생각 동안에 세간에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안으로는 몸과 마음을 해탈하고 밖으로는 세계를 버려서 삼계[三有]를 멀리 벗어남이 마치 새가 새장에서 벗어난 것과 같아서 때와 먼지를 소멸하여 법안이 맑아져서 아라한을 이루었으니, 여래께서 친히 인가하시어 배울 것이 없는 도에 올랐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맛을 돌이켜 지(知)로 돌아감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필릉가바차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으로 발심하고서 부처님을 따라 도에 들어가 자주 여래께서 세간에는 즐길만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자옵고 성중에서 걸식한 적에 마음으로 법문을 생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길에서 독한 가시에 발을 찔리고 온 몸이 매우 아팠습니다. 제가 느낌이 있으므로 이렇게 아픔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비록 깨달음이 있어 아픔을 느끼지만 깨달음의 청정한 마음에는 아픔과 아픔을 느끼는 것이 없으므로 제가 또 생각하기를 이 한 몸에 어찌 두 개의 깨달음이 있으랴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가다듬은 지 오래지 아니하여 몸과 마음이 문득 공(空)해져서 三, 七일 동안에 모든 번뇌가 다 없어져서 아라한을 이루고서 친히 인가하심을 받아 더 배울 것이 없음을 발명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깨달은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순수하게 깨달아 몸을 버리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오랜 겁(劫 이전부터 마음에 걸림이 없음을 얻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많았음을 스스로 기억합니다. 처음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비고 고요하다는 것을 알았더니 이와 같이 시방에 이르기까지도 공(空)하여졌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공한 성품을 증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께서 깨닫는 성품이 참으로 공한 것임을 밝혀 주셔서 공한 성품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아라한을 증득하고, 여래의 보명공해(寶明空海)에 들어가 부처님의 지견(知見)과 같아졌거늘 더 배울 것이 없음을 이루었다고 인가하시어 해탈한 빈 성품에 저보다 더할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깨달은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모든 현상이 아닌데에 들어가고 능히 아니라는 것과 아니라고 여겨질 대상이 다하여 법을 돌리어 없는데로 들어가는 방법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사리불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오랜 겁으로부터 마음으로 보는 것이 청정하여 이렇게 세상에 태어난 것이 항하사와 같사오니, 세간과 출세간에 갖가지 변화를 한번 보면 통달하여 장애가 없음을 얻었습니다. 저는 길로 다니다가 가섭파 형제가 인연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무한함을 깨닫고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보고 깨닫고 하는 것이 밝고 원만해서 큰 두려움이 없음을 얻어 부처님의 장자가 되었으니, 부처님의 입을 좇아 났으며 법을 쫓아 화생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이유를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 광명을 발하여 그 광명이 극에 달한 지견(知見)이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보현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이미 일찍부터 항하의 모래알 같이 많은 여래의 법왕자가 되었사오니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보살근기(菩薩根機)가 있는 제자들을 가르칠 적에 보현행을 닦으라고 하셨으니 이는 저의 이름을 따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음으로 듣는 방법으로써 중생들이 지니고 있는 지견(知見)을 분별해서 만약 다른 곳의 항하사 같이 많은 세계에 어떤 한 중생이라도 마음으로 보현행을 발명하는 자가 있으면 저는 그때에 육아(六牙)의 코끼리를 타고 백억의 몸으로 분신하여 그들이 있는 곳마다 찾아가겠사오니, 비록 그 사람이 업장이 깊어서 저를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저는 몰래 그 사람의 이마를 만지며 옹호하고 편안하게 위로해서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는 본래의 원인을 말하겠사오니 마음으로 듣는 것이 밝게 발하여 분별이 자제한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손타라난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에 출가하여 부처님을 따라 도에 들어가서 비록 계율은 갖추었으나 삼마지에서 마음이 항상 흐트러지고 움직여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없음을 얻지 못하였더니 세존께서 저와 구치라를 시켜서 코 끝의 흰 부분을 관하게 하시거늘 저는 처음부터 자세히 관해서 三, 七일을 지나서야 코 속의 기운을 보게 되었는데 들고 나고 하는 것이 마치 연기와 같다가 몸과 마음이 안으로 밝아져서 세계에 원만하게 통하고 두루 비어서 청정해진 것이 마치 유리처럼 맑으니, 연기와 모양이 차츰 사라지고 코의 숨이 희게 되면서 마음이 열리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겨서 들고 나는 숨이 변하여 광명이 되어서 시방세계를 비추어서 아라한이 되었으니 세존께서 저에게 수기(授記)하시기를 보리를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오래도록 숨이 사라져서 광명을 발하고, 광명이 원만하여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없어지게 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부루나미다라니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오랜 겁으로부터 말 재주가 뛰어나서 괴로움과 허공에 대하여 말하고 실상을 깊이 깨달았으며, 그처럼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여래의 비밀스러운 법문을 제가 대중 가운데서 미묘하게 열어 보여 두려움이 없음을 증득하였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큰 말재주가 있음을 아시고 음성륜(音聲輪)으로써 저로 하여금 발양(發揚)하게 하셨는데 저는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을 도와 법륜을 굴리면서 사자후(獅子吼)로 인하여 아라한이 되었으니, 세존께서 저를 인가하시기를 설법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법음으로 악마와 원수를 항복받고 모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소멸시키는 방법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우바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친히 부처님을 따라 성을 넘어 출가하여 여래께서 六년동안 괴로움을 견디시며 모든 마구니들을 항복받고 외도들을 제압하여 세간의 탐욕 따위 외 모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에서 해탈하심을 친히 보시고서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율을 받들어 이렇게 三천 가지 행동과 八만 가지 미세한 성업(性業)과 차업(遮業)이 모두 청정해졌으며 몸과 마음이 고요해져서 아라한이 되었사오니, 저는 여래의 대중 가운데 규율을 세우는 책임을 맡았으므로 부처님께서 저의 마음을 인가하여 계를 지키고 몸을 닦는데는 대중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몸을 단속하여 몸이 자재하게 되고, 다음에는 마음을 단속하여 마음이 통달한 연후에 몸과 마음이 모두 통하여 이롭게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대목건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에 길에서 우루빈나와 가야, 나제인 세 가섭을 만나 여래의 인연법에 대한 깊은 이치를 말하는 것을 듣고 제가 갑자기 발심하여 크게 통달하게 되었으니, 여래께서 저에게 가사가 몸에 입혀지고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시방세계에 돌아다녀도 걸림이 없었으며 신통을 발휘함이 으뜸임을 미루어 아라한이 되었사오니 어찌 세존뿐이겠습니까? 시방의 여래들께서도 저의 신통력이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맑은 데로 돌아가 마음의 빛을 발함이 마치 흐린 물을 가라앉혀서 오래되면 맑고 깨끗하게 되는 듯함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오추슬마(烏芻瑟摩)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항상 과거를 생각하니 오랜 겁전에 탐욕스러운 성품이 많았더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는데 그 이름이 ‘공왕’이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음욕이 많은 사람은 맹렬한 불덩이리가 된다’고 하시며 저로 하여금 백해(百骸)와 사지의 따뜻한 기운을 두루 관하라고 하시거늘 신비한 광명이 안에서 엉키면서 많은 음심이 변하여 지혜의 불을 성취하니, 그로부터 여러 부처님께서 저를 ‘화두(火頭)’라고 부르셨는데 저는 화광삼매(火光三昧)의 힘으로 아라한이 되었으니, 마음에 큰 서원을 발하여 모든 부처님께서 도를 성취하려 하시거든 제가 역사가 되어 마구니와 원수를 친히 항복받겠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 몸과 마음의 따뜻한 감촉이 걸림이 없이 유통함을 자세히 관하여 모든 정기가 새는 것이 이미 소멸되어서 큰 보배의 불꽃이 생겨나서 위없는 깨달음에 오르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지지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생각하니 지난 옛적에 보광여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셨는데 제가 그때 비구가 되어서 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길목과 나루에서 산과 길이 험악하고 좁아서 여법(如法)하지 아니하여 수레와 말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손상시켜서 제가 모두 메워서 평탄하게 하며 혹은 다리를 놓기도 하고 흙과 모래를 져다 메우기도 하면서 이렇게 노력하기를 한량없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할 때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중생이 복잡한 곳에서 삯군을 얻어 짐을 지우려고 하면 제가 먼저 짐을 지고 그 목적지까지 가서 짐을 내려놓고는 곧 돌아오고 삯은 받지 않았으며, 비사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적에는 여러 해 동안 흉년이 들었는데 저는 그때에도 짐군이 되어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일전만 받았으며, 또 수레를 멘 어떤 소가 흙구렁에 빠지게 되면 저의 신통력으로 그 바퀴를 밀어 주어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때 국왕이 부처님을 맞아 재를 베풀었는데 제가 그때에 길을 평탄하게 닦아놓고 부처님을 기다렸더니 비사여래께서 정수리를 만지시며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평탄하게 가지면 온 세계의 땅이 다 평탄해질 것이라’고 하시므로 제가 곧 마음이 열려서 몸에 있는 미세한 티끌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미세한 티끌과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보아서 미세한 티끌과 자성이 서로 접촉되지 않았으며, 마침내 도병(刀兵)까지도 접촉됨이 없어서 저는 법의 성품에서 무생인(無生忍)을 깨달아 아라한이 되었나이다. 그리고 지금은 마음을 돌리어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서 여래께서 묘연화의 불지견지(佛知見地)를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제가 먼저 증명하여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깨달은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몸과 세계의 두 미세한 티끌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어서 본래 여래장에서 허망하게 미세한 티끌이 생긴 것임을 자세하게 관찰하여서 그 미세한 티끌이 사라지고 지혜가 원만하게 되어 위없는 도를 이루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월광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해 보니 지난 옛적 항하사 같이 많은 겁(劫) 이전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 하셨으니 그 이름이 ‘수천(水天)’이었습니다. 모든 보살들을 가르치셔서 물의 정밀한 성품을 닦고 익혀서 삼마지에 들어가되 몸속에 있는 물의 성품이 서로 빼앗음이 없어서 처음으로 눈물과 춤으로부터 진액, 정액, 피와 대변, 소변에 이르기까지 몸속에 돌아다니는 모든 물의 성품은 동일한 것임을 관하여 그 물이 몸속에 있는 것과 세계 밖에 부당왕찰(浮幢王刹)의 향수해와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보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에 처음 그 관법을 이루어서 다만 물만 보았을 뿐 몸이 없어짐은 얻지 못하여 비구가 되었으므로 방 안에서 편안히 참선을 하고 있었는데 저의 제자가 창문을 뚫고 방 안을 엿보더니 맑은 물만 방에 가득할 뿐이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거늘 어린 것이 무지하여 자갈을 가져다가 물 속에 던져 소리가 나게 하고는 힐끔힐끔 돌아보며 떠나갔습니다. 제가 선정에서 나온 뒤에 갑자기 가슴이 아프기가 마치 사리불이 원한의 귀신을 만난 것과 같았으므로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지금 나는 이미 아라한의 도를 얻어서 오래전부터 병의 인연을 벗어났는데 어찌하여 오늘 갑자기 가슴이 이렇게 아픈가? 아마도 퇴보하여 잃게 되는 것이 아니려나 하였는데 그때 동자가 제 앞에 와서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일을 말하였습니다. 저는 곧 말해주기를 ‘네가 다시 물을 보거든 즉시 문을 열고 그 물 속에 들어가서 자갈을 건져내라’고 하였더니 동자가 시키는 대로 하여 다음에 선정에 들어갔을 적에 다시 물을 보니 자갈이 완연하거늘 문을 열고 건져 내었더니 제가 그 다음 선정에서 나오니 몸이 처음과 같았습니다. 그 후 한량없는 부처님을 만났으되 산해자재통왕여래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몸이 없어져서 시방세계의 모든 향수해로 더불어 성품이 참다운 허공에 합하여 둘도 없고 차별도 없으므로 지금 여래에게 ‘동진’이란 이름을 얻어 보살의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물의 성품이 한결같이 흘러 통하여 무생인을 얻어서 보살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유리광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날 항하사 겁 이전에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는데 그 이름이 ‘무량성’이었습니다. 보살께서 본래 깨달으신 오묘한 마음을 열어 보이시되 이 세계와 중생의 몸이 모두가 허망한 인연인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임을 관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에 경계가 편안히 성립된 것과 시간이 흘러가는 것과 몸의 움직이는 형상과 마음이 움직이는 생각을 관하였으되 모든 움직임이 둘이 아니어서 평등하여 차별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때에 이 여러 가지 움직이는 성품이 와도 쫓아 온 데가 없고 가도 갈 곳이 없어서 시방의 미세한 티끌 같은 뒤바뀐 중생들이 다같이 허망해서 삼천 대천의 세계속에 있는 중생들은 마치 한 그릇 속에 담아놓은 백 마리의 모기가 앵앵거리고 시끄럽게 울면서 분촌만한 속에서 고동치고 발광하며 소란스럽게 구는 것과 같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을 만난지 오래지 아니하여 무생인을 얻었는데 그때에 마음이 열려서 동방의 부동불국(不動佛國)을 보고서 법왕자가 되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섬겼으며 몸과 마음이 광명을 발하여 환하게 통해서 걸림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바람의 힘이 의지할 데가 없음을 관찰하여 보리심을 깨닫고 삼마지에 들어가 시방의 부처님과 합해서 오묘한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허공장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여래와 함께 정광 부처님 처소에서 끝이 없는 몸을 얻었습니다. 그때에 손에는 네 개의 큰 보배구슬을 들고서 시방에 미세한 티끌 같이 많은 부처님 세계를 비추어 허공으로 변화시켰으며, 또 스스로의 마음에 크고 둥근 거울을 나타내서 그 속에서 열 가지 미묘한 보배 광명을 발하여 시방의 끝없는 허공의 모든 세계를 비쳐주고는 거울 속으로 들어왔고 내 몸에 들어와서는 몸이 허공과 같아서 서로 방해하거나 걸림이 없으며 몸이 작은 먼지 같이 많은 국토에 들어갈 수가 있어서 널리 불사를 행하여 크게 순하게 따름을 얻으니, 이 큰 신비한 힘은 네 가지 원소는 의지한 데가 없어서 허망한 생각으로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라서 허공과 다름이 없으며, 불국과 본래 같은 것임을 자세히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같은 데에서 발명하여 무생인을 얻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허공이 끝이 없음을 관찰하여 삼마지에 들어가서 오묘한 힘이 원만하고 밝게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미륵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해보니 지나간 옛적에 미세한 티끌처럼 많은 겁 이전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으니 그 이름이 ‘일월등명’이었습니다. 저는 그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게 되어서 마음에는 세상의 명성을 소중하게 여겨 족성(族姓)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저로 하여금 유심식(唯心識) 선정을 닦아 익혀서 삼마지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겁을 지나면서 이 삼매로써 항하사처럼 많은 부처님을 섬겼더니 세상의 명성을 구하겠다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 없어졌고, 연등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기에 이르러서는 제가 위없이 오묘하고 원만한 식심 삼매를 증득하여 허공에 가득한 여래와 국토의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것까지가 모두 제 마음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러한 것이 오직 심식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의식의 성품이 한량없는 여래를 배출하나니 지금 수기를 얻어서 부처님 지위를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시방이 오직 의식으로 인하였음을 자세히 관하여 의식하는 마음이 원만하고 밝아져서 원만하게 성취한 진실에 들어가 의타(依他)와 변계 집을 멀리 벗어나서 무생인을 증득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대세지보살이 그의 동료 쉰둘이나 되는 보살들로 더불어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항하사 겁에 어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니 그 이름이 ‘무광량’이었으며, 열 두 분 여래가 일겁(一劫)동안 계속하여 나셨는데 그 마지막 부처님의 이름이 ‘초일월광’이었습니다. 그 부처님이 저에게 염불삼매를 가르치시기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은 기억하기를 전념하나 다른 한 사람은 잊어버리기를 전념하면 이러한 두 사람은 만약 서로 만났더라도 만난 것이 아니며 보았더라도 본 것이 아니거니와 두 사람이 서로 기억해서 이렇게 기억하는 두 생각이 깊으면 이와 같이 이생에서 저생에 이르도록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서로 어긋나지 않으리니, 시방 여래는 중생을 가엾게 생각하심이 마치 어미가 아들을 생각하듯 하시나니 만약 아들이 도망하여 간다면 비록 생각한들 무엇 하겠느냐? 아들이 만약 어머니를 생각함이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할 때처럼 한다면 어미와 아들이 여러 생을 지내더라도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만약 중생의 마음이 부처님을 기억하면서 염불하면 지금이나 뒷세상에 반드시 부처님을 보게 되어 부처님과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방편을 빌리지 않고서도 저절로 마음이 열려지는 것이 마치 향기를 물들이는 사람의 몸에 향기가 밴 것과 같을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향광엄장(香光嚴蔣)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본래의 인지(因地)에서 염불하는 마음으로 무생인에 들어갔고, 지금 이 세계에서도 염불하는 사람을 이끌어다가 정토에 돌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특별한 것을 가림이 없어서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모두 단속하면서 깨끗한 생각이 서로 계속하여 삼마지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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