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 청정(淸淨)
(788) ‘으뜸가고 병(病)이 없는 청정을 나는 본다. 사람이 아주 깨끗해지는 것은 견해에 달려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을 으뜸으로 알고 청정을 생각하는 사람은, 견해(見解)를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해서 얻는 지혜로 생각한다.
(789) 만일 사람이 견해로 인해서 청정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또 사람이 지식에 의해 괴로움을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번뇌에 얽매인 사람이 바른 길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도 깨끗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을 <편견이 있는 사람>이라 부른다.
(790) 바라문은 바른 길 말고는 본 것, 학문, 계율, 도덕, 사색 중 어느 것도 청정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재앙과 복에 때묻지 않고 자아(自我)를 버려, 이 세상에서 재앙과 복의 원인을 만들지 않는다.
(791) 옛 스승을 버리고 다른 스승을 의지하며, 번뇌의 동요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은 집착을 뛰어 넘을 수 없다. 그들은 잡았다가는 또 버린다. 원숭이가 나무가지를 잡았다가 다시 놓아 버리듯이.
(792) 스스로 맹세와 계율을 가진 사람은 생각에 잠겨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베에다에 의해 알고 진리를 이해하며, 잡다한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793)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해서 보고 배우고 생각한 것을 자제하고 지배한다. 이렇게 관찰하고 덮인 것 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어찌 이 세상에서 망상 분별할 수 있겠는가.
(794) 그들은 망상 분별하지 않고, 어떤 것을 유달리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궁극의 청정>을 말하지도 않는다. 결박되어 있는 집착을 버리고 어떠한 세상 사물에 대해서도 바라는 것이 없다.
(795) 바라문은 번뇌의 범위를 초월해 있다. 그가 무엇을 보거나 알아서 집착하는 일은 없다. 그는 욕심을 부리지도 않고, 또 욕심에서 떠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는 이 세상에서는 이것이 으뜸이라고 부질없이 집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