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7. 위덕자재보살장

제07. 위덕자재보살장

세 가지 관행법그때 위덕자재보살(威德自在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 처님의 발에 정례하며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두 무릎을 세워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하신 세존께서 널리 저희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원각의 성품에 수순함을 널리 분별하시어 보살들로 하여금 마음의 광명을 깨닫게 하시니 부처님의 원음(圓音)을 받아서 닦아 익히지 않고도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큰 성(城)에 밖으로 네 문이 있어 방소를 따라 오는 이가 한 길에 그치지 않음과 같아서, 일체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하고 보리를 이루는 것 도 한 가지 방편만이 아닙니다.

오직 원하옵니다. 세존께서 널리 저희들을 위하여 일체의 방편 점차와 아울러 수행하는 사람이 모두 몇 종류가 있는가를 말씀하셔서, 이 모임의 보살과 말세의 중생들로서 대승을 구하는 이로 하여금 속히 깨달음을 얻어서 여래의 대적멸 바다에 노닐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며 오체투지하고, 이같이 세 번 거듭 청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위덕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재 선재라, 선남자여. 그대들이 보살들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여래에게 이와 같은 방편을 물으니, 자세히 들어라. 그대들에게 말해 주리라.”

이에 위덕자재보살이 가르침을 받들고 기뻐하며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들었다.

“선남자여, 위없는 묘각이 시방에 두루 하여 여래와 일체 법을 출생하나니, 동체(同體)이므로 평등하여 모든 수행에 실제로 둘이 없지만 방편으로 수순하는 데는 그 수가 무량하나, 돌아갈 바를 원만히 거둔다면 성품을 따라 차별함이 마땅히 세 종류가 있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달아서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 고요함을 취하여 수행을 삼으면, 모든 망념이 맑아진 까닭에 심식[識]이 번거롭게 요동했음을 깨닫고 고요한 지혜가 생겨나서 몸과 마음의 객진(客塵)이 이로부터 영원히 소멸하므로 문득 안으로 적정한 경안(輕安)을 일으키느니라.

적정을 말미암아 시방 세계의 모든 여래의 마음이 그 가운데 나타남이 거울 속의 영상과 같으니, 이 방편은 사마타(奢摩他)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달아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서 심성(心性)과 근진(根塵)이 다 환화로 인한 것임을 지각하고, 곧 온갖 환을 일으켜서 환을 제거하며, 온갖 환을 변화하여 환의 무리를 깨우쳐 주면 환을 일으키는 까닭에 안으로 대비의 경안을 능히 일으키느니라. 일체 보살이 이로부터 수행을 일으켜 점차 증진하나니, 환인 것을 관찰함은 환과 같지 않은 까닭이며, 환과 같지 않다고 관하는 것도 다 환인 까닭에 환의 모습을 영원히 여의느니라. 이 보살들이 원만히 하는 묘한 수행은 흙이 싹을 자라게 하는 것과 같으니, 이 방편은 삼마발제(三摩鉢提)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달아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 환화(幻化)와 고요한 모습들에 집착하지 아니하면, 몸과 마음이 다 걸림이 되는 줄 분명히 알며 지각없는 명(明)은 온갖 장애에 의지하지 아니하여 장애와 장애없는 경계를 영원히 초과하느니라.

수용하는 세계와 몸과 마음이 서로 티끌 세상에 있으나, 마치 그릇 속의 쇠북소리가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이 번뇌와 열반이 서로 걸리지 않으니 안으로 능히 적멸의 경안을 일으키느니라. 묘각이 수순하는 적멸의 경계는 나와 남의 몸과 마음으로 능히 미치지 못하는 바이며, 중생과 수명이 다 들뜬 생각이니 이 방편은 선나(禪那)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세 가지 법문은 모두 원각을 친근하고 수순함이라.

시방의 여래께서 이로 인하여 성불하시며 시방 보살들의 갖가지 방편인 일체 같고 다른 것이 다 이 세 가지 사업(事業)에 의한 것이니, 만일 원만히 증득하면 곧 원각을 이루리라.

선남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거룩한 도를 닦아서 백천만억의 아라한과와 벽지불과를 교화해 성취케 하더라도 이 원각의 무애 법문을 듣고 한 찰나 사이에 수순하고 닦아 익힌 것만 같지 못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위덕이여, 그대는 마땅히 알아라. 위없는 대각의 마음은 본제(本際)가 두 모습 없으나 온갖 방편에 따라서 그 수가 무량하니 여래가 모두 열어 보임에 문득 세 종류가 있느니라.

적정(寂靜)인 사마타는 거울이 모든 영상을 비춤과 같고 환(幻) 같은 삼마제는 싹이 점점 자라남과 같고 선나의 오직 적멸한 것은 그릇 속의 쇠북소리와 같나니 세 가지 묘한 법문이 다 원각의 수순함이니라.

시방의 모든 여래와 대보살들이 이로 인하여 도를 이루나니 세 가지 일을 원만히 증득하므로 구경 열반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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