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3장. 제자품(弟子品)
그 때에 장자 유마힐은 생각하기를, ‘내가 이렇게 병들어 누웠는데 자비하신 부처님께서 나를 어여삐 여기시지 아니 하시는가?’ 라고 하자 부처님이 그 뜻을 아시고 사리불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나아가 병을 위문하여라.”
사리불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산 숲나무 아래서 조용히 좌선하노라니 그 때 유마힐이 와서 말하기를,
‘여보시오. 사리불이여, 반드시 앉은 것만이 좌선하는 것이 아니외다. 좌선이란 것은 삼계(三界)에다 몸과 뜻을 나타내지 않는것이 좌선이며 멸진정에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온갖 위의 행동을 나타내는 것이 좌선이며 부처님의 도법을 버리지 않고서 범부의 일을 나타내는 것이 좌선이며 마음이 안에도 머물지 않고 밖에도 머물지 않는 것이 좌선이며 외도의 사견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삼십칠도품을 닦는 것이 좌선이며 번뇌를 끊지 않고서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 좌선이니 이렇게 좌선하는 이라야 부처님이 인가하시는 것이요’ 라고 하였읍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그 때에 이 말을 듣고 잠자코 대답을 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이에게 나가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목건련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목건련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비야리성에 들어가서 어떤 마을에서 거사들을 위하여 법문을 말하고 있노라니 그때에 유마힐이 와서 말하기를,
‘여보시오. 목건련님, 흰 옷 입은 거사들에게 설법하는 것은 당신의 말씀과 같이 말할 것이 아니외다. 설법이란 것은 마땅히 법답게 말하여야 합니다.
법에는 중생이란 것이 없나니 중생이란 때(垢)를 여읜 때문이며 법에는 나라는 것이 없나니 나라는 때를 여읜 때문이며 법에는 목숨이라는 것이 없나니 생사를 여읜 때문이며 법에는 사람이란 것이 없나니 과거와 미래가 끊어진 때문이며 법은 항상 고요한 것이니 모든 형상을 없애버린 때문이며 법은 형상을 여읜 것이니 반연할 것이 없는 때문이며 법은 이름이 없나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때문이며 법에는 말씀이 없나니 생각과 관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법은 형상이 없나니 허공 같기 때문이며
법에는 실없는 말이 없나니 끝까지 공한 때문이며 법에는 내것이 없나니 내 것을 여읜 때문이며 법에는 분별이 없나니 식심(識心)을 여읜 때문이며 견줄 것이 없나니 상대가 없기 때문이며 법은 어떤 원인에 속하지 않았나니 인연관계에 매이어 있지 않기 때문이며 법은 법의 체성과 같으니 법의 체성을 증득하였기 때문이며 법은 진여에 따르나니 따를 것이 없는 때문이며
법은 진실한 자리에 머무나니 있느니 없느니 하는 한쪽가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며 법은 흔들림이 없나니 육진을 의지하지 아니한 때문이며 법에는 과거와 미래가 없나니 항상 어디나 머물지 않기 때문이며 법은 공에 따르고 형상 없는데 따르며 인연따라 지어진 것 없는 것을 순응하며 법은 좋고 나쁜 것을 여의고 법은 더하고 덜함이 없으며 법은 나고 없어짐이 없으며 법은 높고 낮은 것이 없으며 법은 항상 머물고 흔들리지 않으며 법은 온갖 생각하는 경계를 여의었지요.
목건련이여, 법의 참 모양이 이러하거니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이까? 법을 말한다는 이는 말할 것도 없고 보일 것도 없으며 법문을 듣는다는 이도 들은 것이 없고 얻을 것이 없나이다.
마치 요술하는 사람이 요술로 만든 사람에게 법을 말하는 것 같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법문을 말할 것이며 중생의 근기가 영리하고 아둔한 것을 알아야 하며 수승한 지견으로 걸릴 것이 없어야 하며 자비한 마음으로 대승법을 찬탄할 것이며 부처님의 은혜 갚을 것을 생각하여 삼보를 끊이지 않게 한 뒤에야 법문을 말할 수 있나이다.’ 라고 하였읍니다. 유마힐이 이런 법문을 말할 적에 팔백거사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나이다. 저는 이런 변재가 없아올세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이 큰 가섭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
가섭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가난한 촌락에 가서 밥을 비노라니 그 때에 유마힐이 와서 말하기를,
‘여보시요, 큰 가섭님. 자비심이 있기는 하면서도 넓지 못하여서 부자집을 버리고 가난한 집만 찾아가서 밥을 빕니다 그려! 가섭님 평등한 법 가운데 밥을 비는 것도 차례 차례로 하여야 됩니다. 먹지 않는 법을 위하여 걸식을 할 것이며 인연이 화합상을 파하기 때문에 덩어리로 된 밥을 취하는 것이며 나고 죽음을 받지 않기 위하여 저음식을 받는 것이며
텅 빈 촌락과 같은 생각으로 촌락에 들어갈 것이며 여러 가지 빛깔을 보아도 장님과 같이 하며 소리를 듣더라도 메아리와 같이 하며 냄새를 맡을 적엔 바람과 같이 하며 음식을 먹을 적에 맛을 분별하지 아니 하며 몸에 촉각을 받을 적에 무심정에 든 것과 같으며 모든 현상계가 다 요술로 만들어진 것처럼 제 바탕도 없고 남에게서 얻어진 것도 없는 줄을 아나니 본래 부터 그런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며 지금에도 없어지는 것도 없나니 가섭님, 만일 팔사(邪)를 버리지 않고 팔해탈에 들어가며 삿된 모양 같으면서 정법에 들어가며 한 그릇 밥으로 일체 중생게게 보시하며
여러 부처님과 여러 성현에게 공양한 뒤에 먹을 것이니 이렇게 먹는 이는 번뇌가 있는 것도 아니요 번뇌를 여읜 것도 아니며 선정에 들어간 것도 아니요선정에서 일어난 것도 아니며 세간에 머문 것도 아니요 열반에 머문 것도 아니며 그에게 밥을 베푼 이는 큰 복도 없고 적은 복도 없으며 이익이 될 것도 아니고손해가 될 것도 아니니 이것이 불도에 들어가는 것이요 성문법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니
가섭이여, 이렇게 밥을 먹어야만 남이 베푸는 음식을 공짜로 먹지 아니하는 것이외다.’라고 하였읍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 때에 이 말을 듣고 일찍이 없든 일이라 생각하고 모든 대승보살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아오며 또 생각하기를 이 분은 속인으로서도 변재와 지혜가 이러하거늘 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아니 하랴 하옵고 그 후 부터는 성문법과 연각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권하지 아니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가 없나이다.”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수보리는 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이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그의 집에 가서 밥을 빌었더니 유마힐이 제자루를 받아 밥을 가득 담아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여보시오 수보리님, 만일 먹는데 평등한 이는 법에도 평등하나니 이렇게 걸식을 하여야 밥을 받을 수 있읍니다. 만일 수보리님이 탐심.진심.치심을 끊지 아니하고 또한 그 맘과 함께 하지도 아니하며 이 몸을 그대로 두고 하나의 실상을 따르며 어리석음과 애착을 없애지 아니 하고서 삼명과 팔해탈을 성취하며 오역상(逆相)으로서 해탈을 얻되 또한 풀어버린 것도 얽어 맨 것도 가라구타 가전련.니건타 야제자들이 당신의 스승이어서 그들로 말미암아 출가하여 그들이 잘못 떨어지는 곳에 당신도 따라서 떨어져야만 밥을 받을만한 것이요.
만일 수보리가 저 삿된 소견에 들어가서 열반의 저쪽 언덕에 건너가지 못하며 팔난중에 머물러서 어려움이 없지 못하며 번뇌와 함께 하여 청정한 법을 여의었으며 당신이 무생삼매를 얻었으면 모든 중생도 그 삼매를 얻을 것이며
당신에게 보시한 이를 복전이라 하지 않고(이하의 법문은 모든 상을 쳐부수고 대승의 역행을 역설함)당신에게 공양한 이가 삼악도에 떨어집니다.’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대답하여야 할른지 알지 못하여 바루를 그냥 두고 그 집에서 나오려 하였더니 유마힐이 말하기를,
‘여보시오, 수보리님. 두려워 하지 말고 바루를 받으시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래께서 요술로 만든 사람이 만일 이런 일로 힐난 한다면 두려워 하겠습니까.’ 하기에 제가 두려워할 것이 없노라고 대답하니 유마힐이 말하기를, ‘모든 법이 모두 요술로 된 것이니 당신은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그 까닭은 온갖 말이란 것이 요술과 같은 모양을 여의지 아니 하였고 지혜있는 이는 말과 문자에 모양이 곧 모든 법이외다.’
유마힐이 이러한 법문을 말할 적에 이백천자가 지혜의 눈을 얻었아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또 부루나 미다라니자에게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부루나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큰 숲속에 어떤 나무 아래에서 새로 도를 배우는 비구들을 위하여 설법을 할 적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기를,
‘여보시오. 부루나님, 설법하려거든 먼저 정(定)에 들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관찰한 뒤에 설법하는 것이니 더러운 음식을 보배 그릇에 담지 마시요. 마땅히 이 비구들의 생각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 유리를 수정과 같다고 하여서는 아니되오.
당신이 중생의 근본을 알지 못하면서 소승법으로서 인도하지 마오. 그가 본래 부스럼이 없는데 상처를 내지 마시오. 한길로 가려는 이에게 샛길을 가리키지 말며 바닷물을 소발자국에 넣으려 하지 말며 햇빛을 반딧불과 같다고 하지 마시오.
부루나님, 이 비구들은 오래 전에 대승 마음을 내었다가 중간에 잊어버린 것이어늘 어찌하여 소승법으로 지도하리이까. 내가 보니 소승들은 지혜 열기가 장님과 같아서 중생들의 근기가 영리하고 노둔함을 분별하지 못하더군요.’ 하면서 유마힐이 삼매에 들어서 그 비구들로 하여금 지나간 세상을 알게 하였으니 그들은 일찌기 오백부처님께 온갖 공덕의 씨앗을 심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로 회향한 인연을 알게 하니 비구들은 즉시에 본래 마음을 도로 얻고 유마힐의 발에 경례하니 유마힐이 그들에게 법문을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다시 물러나지 않게 하였나이다. 제가 그 때에 성문들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지 못하고는 법문을 말하지 않아야 할 줄을 알았아옵기에 그이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또 마하가전연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가전연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옛적에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법문의 요긴한 뜻을 말씀하신 뒤에 제가 다시 그 뜻을 부연하면서 이것은 무상밖에 없다는 뜻이오 이것은 열반의 하였더니 그 때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기를,
‘여보시오, 가전연님. 나고 꺼지는 마음으로 실상법을 말하지 마시오. 가전연이여, 모든 법이 마침내 나는 것도 아니고 꺼지는 것도 아닌 것이 무상의 뜻이며 오음을 사무쳐 보면 공하여 인연따라 일어나는 것이 없나니 이것이 고의 뜻이며 모든 법이 필경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공의 뜻이며 나와 나의 것이 없다는 것이 둘이 아니어야사 이것이 내가 없다는 뜻이며 법이 본래 그러한 것이 아니며 지금도 꺼져 없어질 것이 없는 것이 적泡 비링湧肝마음에 해탈을 얻었나이다. 그러므로 제가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
부처님은 또 아나율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아나율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옛적에 제가 어느 곳에서 거닐고 있노라니 엄정(嚴淨)이라는 범천왕이 일만 범천 사람들을 데리고 맑은 광명을 놓으면서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저에게 묻기를,
‘아나율님, 천안통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멀고 넓은 정도입니까?’ 하기에 답하길 열매를 보는 듯 합니다. 라고 하였더니 그 때에 유마힐이 나에게 말하기를,
‘여보시오, 아나율님. 천안통으로 보는 것은 보겠다는 생각에서 보는 것입니까? 보겠다는 생각없이 보는 것입니까? 가령 보겠다는 생각이 있어서라면 외도들의 얻은 오통과 같은 것이요. 만일 보겠다는 생각이 없이라면 곧 무위의 법이니 본다는 것이 있을 수 없을 것이외다.’ 하더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에 아무 말도 대답하지 못하였사오나 범천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일찍이 보지 못한 일이라고 기뻐하면서 유마힐에게 예배하고 묻기를, 이 세상 내어 유마힐의 발에 경례하고 홀연히 보이지 아니 하더이다. 그러므로 저는 그이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
부처님은 다시 우바리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우바리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옛적에 두 비구가 계율을 범하고는 부끄러워서 부처님께는 묻지 못하고 저에게 와서 묻잡기를, 여보시오 우바리님, 우리가 계율을 범하였는데 부끄러워서 부처님에게 여쭐 수가 없아오니 바라건대 우리의 의혹과 뉘우침을 풀어주어 허물을 면하게 하여 주시요. 하기에 제가 그들을 위하여 법대로 말하여 주었더니 마침 유마힐이 와서 말하기를,
‘여보시오, 우바리님. 이 비구들의 죄를 더 보태게 하지 마시오. 바로 죄를 없애줄지언정 그 마음을 요란하게 하지 말 것이요. 왜냐하면 그 죄라는 성질이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외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마음에 때가 끼이므로 중생이 때 끼인 것이요 마음이 깨끗하므로 중생이 깨끗하거니와 마음이란 것은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닌 것처럼 죄도 그러하고 모든 법도 그러하여 진여의 바탕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요.
만일, 우바리가 마음으로 해탈을 얻었을 적에 어찌 번뇌의 때가 있더이까? 하기에 제가 그렇지 않다고 하였더니 유마힐이 또 이르기를,
모든 중생들이 마음에 때가 없는 것도 그러한 것이요. 우바리님, 망상이 이 때이고 망상 없는 것이 깨끗한 것이며 제 정신 바로 갖지 못한 것이 때이고 나에 집착하지 않으면 깨끗한 것이외다. 우바리님, 모든 법이 났다, 없어졌다 하여 잠깐도 머물지 않는 것이 요술과 같고 번개와 같으며 모든 법이 모두 허망하게 보는 것이어서 마치 꿈과 거울 속에 나타나는 형상과 같아서 다 허망한 생각으로 생기는 것이니 이런 줄을 아는 이는 계율을 잘 지니는 것이며 이런 줄을 아는 이는 바로 아는 것이외다. 라고 하였나이다. 그 때에 두 비구가 말하기를, 훌륭한 지혜로운 이여! 우바리로서는 미칠 수 없는 일이며 계율 지니는 이 가운데 으뜸 가는 이로서도능히 말하지 못하였던 것이외다.
내가 대답하기를, 여래를 내어 놓고는 어느 성문이나 보살들도 이 변재를 따를 수 없으며 그 지혜의 밝은 것도 그러하다고 하였더니 두 비구가 즉시에 의심과 뉘우침이 없어지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 원을 세워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모두 이러한 변재를 얻어지이다. 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 할 수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또 라후라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라후라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옛적에 비야리성에 있는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저에게 와서 예배하고 말하기를,
‘여보시오, 라후라님, 당신은 부처님의 아들로서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았으니 출가하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나이까? 하기에 제가 법과 같이 출가한 공덕을 말하였더니
그 때에 유마힐이 와서 나에게 ‘여보시요, 라후라님. 출가한 공덕의 이익되는 것을 그렇게 말하지 마시요. 왜냐하면 이익된다, 공덕된다 할 것 없는 것이 출가입니다. 이 세상의 법은 이익이 있다, 공덕이 있다고 말할 수 있거니와 이 세속을 벗어나는 법은 이익이 있다, 공덕이 있다라고 할 수 없나이다. 라후라여, 출가하는 것은 저것도 없고 이것도 없으며 또한 중간도 없으며 육십이견을 여의고 열반에 머물러 있으니 지혜있는 분이 수용하는 것이고
성인의 나갈 곳이며 모든 마군을 항복받고 오도 중생을 제도하고 다섯 가지 눈을 깨끗이 하며 다섯 가지 힘을 얻고 다섯 가지 근기를 세우며 다른 이를 시끄럽게 하지 않고 온갖 나쁜 짓을 여의었으며 외도를 굴복시키고 헛된 이름에서 초월하여 진흙창에서 벗어 나와서 온갖 결박됨이 없으며 내것이랄 것이 없고 받아들일 것도 없으며 마음에 시끄러운 것이 없어서 안으로 기쁨을 품으며 남의 뜻을 잘 보호하고 선정을 따라 모든 허물을 여의는 것이니 능히 이렇게 하면 이것이 참말 출가하는 것이외다. 라 하고
또 유마힐이 여러 장자의 아들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정법 가운데 함께 출가할 것이니 왜냐하면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 할 때를 만나기가 어려운 때문이니라.’
장자의 아들들이 말하기를, 부처님 말씀에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할 수 없다 하지 않았읍니까?
유마힐이 대답하되 ‘그렇다. 너희들이 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되면 그것이 곧 출가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구족계를 받는 것이니라.’고 하더이다. 그렇게 말할 적에 장자의 아들 설흔 두명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으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 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다시 아난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아난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옛적에 세존께서 약간 병환이 계시어 우유를 쓰게 되옵기에 제가 바루를 들고 바라문의 집에 가서 문앞에 서 있었더니 그 때에 유마힐이 와서 내게 말하기를,
여보시오,아난님. 어찌하여 이 이른 새벽에 바루를 들고 여기 있나이까? 하기에 저는 세존께 약간의 병이 나시어 우유를 쓰게 되었으므로 여기 와 있노라고 대답하였더니 유마힐이 또 말하기를, 그 무슨 말씀이오, 아난님. 그런 말씀 마시오 여래의 몸은 금강과 같은 몸이라 모든 나쁜 짓은 이미 끊어졌고 여러가지 선한 일만 모이었거늘 무슨 병이 있으며 무슨 괴로움이 있으리요, 잠자코 가시오. 아난님, 여래를 비방하지 마시요.
다른 사람이 이 추한 말을 듣지 않게 하며 큰 위덕을 지닌 하늘 사람들이나 다른 정토에서 온 보살네로 하여금 이런 말을 듣게 하지 마시오. 아난님, 전륜성왕은 적은 복력을 가지고도 오히려 병이 없는데 어찌 하물며 여래의 한량없는 복력과 많은 공덕이겠오. 어서 가시오. 아난님, 우리들로 하여금 이런 수치를 받게 하지 마시오.
외도와 바라문들이 이 말을 들으면 생각하기를 소위 스승이라고 하면서 제 병도 고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병을 고치리요. 하리니 가만히 어서 가서 다른 사람으로 알지 못하게 하시오. 아난님, 부처님의 몸은 법의 몸이시고 애정과 탐욕으로 된 것이 아니며 부처님은 이 세상에 가장 높은 이어서 삼계에서 뛰어 나셨으며 부처님 몸은 생사에 빠지지 아니 하시므로 모든 번뇌가 이미 없어졌으며 부처님의 몸은 세간을 뛰어났으므로 나고 죽음에 떨어지지 아니 하시나니 이러한 몸으로 무슨 병이 있겠오.’ 하더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때에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잘못 듣지나 않았는가 하였더니 공중에서 소리가 있어 외치기를 ‘아난이여, 거사의 말과 같건마는 오탁악세에 나셨으므로 이런 일을 나타내어 중생을 구제하려 하시는 것이니 부끄러워 하지 말고 어서 우유를 가지고 돌아가시오.’ 하더이다. 세존이시여, 유마힐의 지혜와 변재가 이와 같으므로 저는 그이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이렇게 오백제자들이 제각기 지난 일과 유마힐이 하던 말을 부처님께 사뢰고 모두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