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연화부인(蓮華夫人)의 인연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부모에게나 또 부처님이나 그 제자들에게 성을 내어 미워하면,
그 사람은 흑승지옥(黑繩地獄)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되 끝이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모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또는 부모를 공경하거나 존중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선하지 않은 일을 행하면 그것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량없이 먼 지난 세상에 설산 기슭에 제바연(提婆延)이라는 선인(仙人)이 있었는데,
그는 바라문 종족이었다. 그런데 바라문 법에는 사내나 계집애를 낳지 않으면
천상에 나지 못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 바라문은 항상 돌 위에다 소변을 보았는데, 그의 정기가 흘러 나와 돌 틈에 떨어졌다.
어떤 암사슴이 와서 그 소변이 떨어진 곳을 핥아 먹고 아이를 배었다.
달이 차자 사슴은 그 선인이 사는 굴 밑에 와서 한 딸 아이를 낳았다.
어미 태에서 나오면서부터 꽃이 그 몸을 쌌고, 얼굴은 단정하고 뛰어나게 묘하였다.
선인은 그것이 자기 딸임을 알고 그를 데려다 길렀는데,
점점 자라나 걸어다니게 되자 발로 밟은 곳에는 모두 연꽃이 솟아났다.
바라문 법에는 밤에도 늘 불을 묻어 두는데, 우연히 어느 날 밤에는 불이 아주 사라져버렸다.
딸은 남의 집에 달려가 불씨를 빌리려 하였다.
그 집 사람은 그녀의 발자국마다 연꽃이 생기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우리 집을 일곱 번 돌면 나는 너에게 불을 주리라.’
그는 일곱 번 돌고는 불을 얻어 돌아왔다.
마침 오제연왕(烏提延王)이 사냥을 나왔다가,
그 사람 집에 일곱 겹으로 연꽃이 있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물었다.
‘어떻게 너의 집에는 이런 연꽃이 있는가?’
그는 왕에게 대답하였다.
‘산 중에 사는 바라문의 딸이 불을 빌리러 제게 왔었는데,
그의 발 밑에서 이런 연꽃이 났습니다.’
왕은 발자국을 따라 선인이 사는 곳으로 갔다.
왕은 그 여자의 얼굴이 단정하고 뛰어나게 묘한 것을 보고, 선인에게 말하였다.
‘이 딸을 내게 주시오.’
선인은 곧 주면서 왕에게 말하였다.
‘장차 5백 왕자를 낳을 것입니다.’
왕은 드디어 그를 세워 부인을 삼으매 5백 명 미녀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었다.
왕의 큰 부인은 이 사슴 딸을 매우 질투하여 이렇게 혼자 말하였다.
‘대왕이 지금 그를 저처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데,
만일 5백 명의 왕자를 낳으면 갑절이나 사랑할 것이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 사슴 딸은 5백 개의 알을 낳아 그것을 상자 안에 담아 두었다.
그 때 큰 부인은 5백 개의 밀가루 떡을 만들어 알이 있던 곳에 대신 넣어 두고,
알이 든 그 상자는 뚜껑을 덮어 표를 하여 항하에 던져버렸다.
왕이 그 부인에게 물었다.
‘무엇을 낳았는가?’
부인이 대답하였다.
‘순전한 밀가루떡을 낳았습니다.’
왕은 ‘그 선인이 거짓말을 하였구나’ 하고, 곧 부인의 지위를 내리니,
그는 다시는 왕을 보지 못하였다.
그 때 살탐보왕(薩耽菩王)은 항하 하류의 물가에서 여러 미녀들과 놀다가
그 상자를 보고 말하였다.
‘이 상자는 내 것이다.’
여러 미녀들은 말하였다.
‘대왕은 지금 상자를 가지셨다. 우리는 저 상자 안의 물건을 가지자.’
왕은 사람을 보내어 상자를 가져 와서 5백 부인들에게 각각 알 하나씩을 주었다.
그 알들은 저절로 열렸는데, 그 속에는 얼굴이 단정한 5백 명 아기가 있었다.
그들이 자라나자 모두 큰 역사의 힘이 있었으므로 5백 개 역사의 당기[幢]를 세웠다.
그 때 오제연왕은 항상 살탐보왕에게 공물(貢物) 바치기를 요구하였다.
살탐보왕은 공물 바치기를 요구한다는 말을 듣고 근심에 잠겨 있었다.
여러 아들들은 왕에게 아뢰었다.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괴로워하십니까?’
왕은 말하였다.
‘나는 지금 세상에 살면서 남의 모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모욕을 받습니까?’
‘오제연왕이 항상 내게 공물을 바치라고 독촉하고 있다.’
아들들이 아뢰었다.
‘저희들은 능히 염부제의 모든 왕에게 공물 바치기를 요구하여 대왕께 바치게 할 수 있는데,
대왕께서 무엇 때문에 다른 이에게 공물을 바치겠습니까?’
5백 역사들이 드디어 군사를 이끌고 오제연왕을 치려 하자,
오제연왕은 두려워하여 말하였다.
‘한 역사도 당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5백 명 역사이겠는가?
온 나라에 영을 내려 이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자를 뽑자.’
그러다가 다시 생각하였다. 저 선인이면 능히 그 방법을 알 것이다.
그는 온갖 방편을 써서 선인에게 가서 말하였다.
‘나라에 큰 어려움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것을 물리칠 수 있겠소?’
그는 물었다.
‘원수의 도적이 일어났는가?’
왕은 말하였다.
‘살탐보왕에게는 5백 명 역사가 있는데, 그들이 모두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나를 치려 하오.
내게는 지금 그들과 대적할 만한 그런 역사가 없소.
어떤 방법을 써야 그 적을 물리칠 수 있겠소?’
선인이 대답하였다.
‘왕은 돌아가서 연화 부인에게 청하시오. 그는 능히 그 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오.’
‘그가 어떻게 물리칠 수 있겠소?’
선인이 대답하였다.
‘그 5백 명 역사는 모두 당신 아들이오. 그들은 연화 부인의 소생이오.
당신의 큰 부인이 질투하여 연화 부인의 낳은 아들을 모두 강물에 던져 버렸는데,
살탐보왕이 그 강 하류에서 놀다가 그들을 얻어 길러 낸 것이오.
지금 그 연화 부인을 큰 코끼리에 태워 군사들 선두에 두면 저들은 스스로 항복할 것이오.’
왕은 그 선인의 말대로 곧 돌아와 연화 부인에게 사과하고는 부인을 장엄하게 하여
좋은 옷을 입히고 크고 흰 코끼리에 태워 군사 선두에 두었다.
5백 명 역사들은 활을 들어 쏘려 하였으나 손이 저절로 꼿꼿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 때 그 선인은 날라와 허공에서 역사들에게 말하였다.
‘삼가 손을 들지 말고 나쁜 마음을 내지 말라.
만일 나쁜 마음을 내면 모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 왕과 그 부인은 바로 너희들의 부모니라.’
어머니는 곧 손으로 젖통을 눌렀다. 한 젖통에서 2백 50 갈래의 젖이 나와
여러 아들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곧 부모를 향해 참회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였기 때문에 모두 벽지불(?支佛)이 되었다.
왕도 또한 스스로 깨닫아 벽지불이 되었다.
비구들이여, 그 때의 그 선인은 바로 이 나다.
나는 그 때에도 여러 아들들을 만류하여 부모에게 나쁜 마음을 내지 않음으로써
벽지불이 되게 하였고, 지금도 또한 늙은 부모를 공양하는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