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14
아난아!
어찌하여 육입이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오래도록 한곳만
보다가 피로해지면, 허공에서 또다른 헛보이는 꽃이 보일 것이니, 눈과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한곳만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밝음과 어둠의 두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해 보는 것이생겨, 그 중간에
있으면서 물질의 현상[色像]을 흡수하는 것을 ‘보고 깨닫는 성품[見覺性]’
이라고 하니, 보는 것의 밝음과 어둠의 두가지 대상을 벗어나면, 본다는
자체가 없을 것이다.
아난아!
당연히 알아야 한다. 보아 깨닫는 성품은 밝고, 어두운 곳에서 온 것이 아니며,
눈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밝은 데로부터 왔다면, 어두워지면 없어져야 하리니,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어두운 곳에서 왔다면, 밝아지면 없어져야
하리니,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눈에서 생긴 것이라면, 밝음과 어둠이
없으면, 이렇게 보는 것이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온 것이라면, 보는 것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허공이
아닐 것이다. 다시 허공이 스스로 볼 것이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니, 당연히 알아야 한다. 눈으로 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眼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갑자기 귀를 막아, 그것이 오래되어
피로해지면, 머리 속에서 또다른 허망한 소리가 들릴 것이니, 귀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 한곳만 주시하다 피로해져 생긴 현상이니라.
움직이는 것과 고요한 것, 이 두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해, 듣는 것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소리를 받아 들이는 것을 ‘들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듣는 것이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듣는다는
자체가 없을 것이다.
아난아! 당연히 알아야 한다.
들어 깨닫는 성품은 움직임과 고요함에서 온 것이 아니며, 귀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냐 하면, 만약, 움직임에서 왔다면, 고요해지면 없어져야 하리니, 고요함을
듣지 못할 것이며, 만약, 고요한 것에서 왔다면, 움직이면 없어져야 하리니,
움직임을 듣지 못할 것이며, 만약, 귀에서 생긴 것이라면, 움직임과 고요함이
없으면, 듣는 것이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을 따라 온 것이라면, 듣는 것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허공도 아닐 것이며, 또한, 허공이 스스로 들을 것
이니, 너희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당연히 알아야 한다.
귀로 들어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耳入]은 본질이 아니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코로 숨을 급하게 들이켜 오래 있으면, 피로하게
되어, 코 속에 찬 촉감이 있음을 느낄 것이니, 그 촉감으로 인하여, 트이고 막힘과
허하고 실한 것을 분별할 것이니, 모든 향기와 냄새까지도 느끼는 것이니,
코와 피로는 같은 보리로서, 한 곳만 주시하다 피로해져 생긴 현상이니라.
트인 것과 막힌 것, 이 두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해, 냄새를 맡음이 생겨,
그 가운데 있으면서, 모든 냄새를 받아 들이는 것을 ‘맡아 깨닫는 성품’이라
하니, 냄새를 맡는 것이 트이고 막힘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냄새라는
자체가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로 맡아 깨닫는 성품은 트이고 막힌데서 온 것이 아니며, 코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만약 트인데서 왔다면, 막히면 없어져야 하리니, 막힘을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일 막힌 것에서 왔다면, 트이면 없어져야 하리니, 트임을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니, 만약, 코에서 생긴 것이 라면, 트임과 막힘이 없으면 맡는 것의
본래의 자성이 없을 것이니,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 라면, 냄새를 맡는 것이 있으면 자성을 이루리니,
허공이 아닐 것이며, 허공이 스스로 냄새를 맡는 것이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아난아!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혀로 입술을 핥아서 오래오래 핥다가 피로해지면,
그 사람이 만약 병이 있으면 쓴 맛을 느낄것이며, 병이 없는 사람이면,
약간 단 촉감을 느낄 것이다. 달고 쓴 것으로 인해, 혀의 의식이 드러날 것이니,
핥지 않을 때는 담담한 성품이 항상 있으리니, 혀와 피로는 같은 보리로 한곳만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가지의 허망한 대상으로 인해, 맛을 봄이 생겨, 그 가운데
있으면서 맛을 받아 들이는 것을 ‘맛보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나니, 맛을 보는
것이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가지의 허망을 버리면 맛이라는 자체가 없을 것이다.
아난아! 당연히 알아야 한다.
맛을 보아 깨닫는 성품은 달고, 쓴 것에서 온 것이 아니며, 담담한 맛에서 온 것도
아니며, 혀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만약 달고 쓴 것에서 왔다면, 담담하면 없어져야 하니, 어떻게 담담한
맛을 알 것이며, 만약 담담한 것에서 왔다면, 달거나 쓰면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달고 쓴 맛을 알 것이며, 만약 혀에서 생긴 것이라면, 달거나 쓰거나
담담함이 없으면, 맛보는 것의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온 것이라면,
맛을 보는 것이 있으면 자성이 이루어지리니, 허공이 아닐 것이며, 허공이 스스로
맛볼 것이니, 그것이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니, 당연히 알아야 한다. 혀로 맛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舌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찬 손으로 뜨거운 손을 잡았을 때, 찬 기운이 많으면
뜨거운 손이 차가워질 것이며, 만약, 더운 기운이 많으면 찬 손이 뜨거워지리니,
같이 합했을때 깨닫는 촉감은 서로 떨어져도 느낌이 남아 있나니 교섭하는 세력이
이루어진다면, 접촉으로 인한 피로 때문일 것이니, 몸과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
한곳을 보다가 피로해져 생긴 현상이니라.
떨어지고 합하는 두 가지 허망으로 인하여 촉감이 생겨, 그 가운데 있으면서 촉감을
받아 들이는 것을 ‘느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이 느낌이 떨어지고 합하는 것과
배반하고 따르는 두가지 허망을 여의면 느끼는 자체가 없느니라.
아난아! 당연히 알아야 한다.
느껴 깨닫는 성품은 본래 떨어지거나 합해진데서 온 것이 아니며, 어긋나거나 따르는
것에서 온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만약 떨어지는 것에서 온 것이라면, 합하면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합하는 것을 느끼며, 만약 합하는 것에서 온 것이라면, 떨어지면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떨어짐을 느끼겠느냐?
어긋남과 따르는 두가지 현상도 역시 그러한 것이며, 만약, 몸에서 생긴 것이라면,
떨어짐과 합함과 어긋남과 따르는 것이 없으면, 느끼는 것의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느낌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허공도 아닐
것이니라. 또 허공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당연히 알아야 한다.
몸의 접촉으로 인식하는 것[身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