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를 수행하십시오.

팔정도를 수행하십시오.

# 팔정도에 몸과 입과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팔정도는 붓다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가르침입니다.

팔정도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 가운데 고를 멸하는 방법인 도성제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팔정도는 고를 멸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또한 팔정도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수승한 법 37가지 깨달음의 부분(37조도품) 가운데 하나에 속합니다.

팔정도는 여덟 가지 바른 길로써 적정과 초월적 지혜,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인도하고 진리를 보는 눈을 만들며, 진리를 아는 지혜를 만드는 중도입니다.

그 여덟 가지는 바른 견해(正見)․바른 사유(正思惟)․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이념(正念)․바른 선정(正定)입니다.

바른 소견은 햇빛보다 더 밝아, 평등한 조대하고 미세한 생각은 수레가 되고, 바른 말은 우리의 사택이 되며, 바른 업의 숲에서 유희하나니라. 바른 명은 풍부한 모습이 되고, 바른 방편은 바르게 닦는 길로, 바른 생각은 성곽이 되며, 바른 선정은 자리가 되나니 이 여덟 가지 길은 바르고 평탄하여 나고 죽는 괴로움 벗어나나니 이 길에서 나오는 사람, 할 일을 이미 완전히 마쳐 <이것><저것>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불소행찬≫ 팔정도는 생멸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이요, 중생이 매일 그 길을 찬탄하고 몸과 입과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야 할 길입니다.

불자님, 살아가는 동안 아름답고 바른 길로 다가가십시오. 팔정도와 팔사도의 도로 표지판을 살펴보십시오. 어떤 것이 두 가지 법인가? 이른 바 그릇된 소견과 바른 소견이며, 그릇된 다스림(뜻)과 바른 다스림이며, 그릇된 말과 바른 말이며, 그릇된 업과 바른 업이며, 그릇된 방편과 바른 방편이며, 그릇된 기억과 바른 기억이며, 그릇된 삼매와 바른 사람이다.

≪증일아함경≫ 여덟 가지 바른 길이 팔정도라면 그릇된 길이 팔사도(八邪道)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팔정도와 팔사도라도 하겠습니까? 먼저 정견은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아는 것으로, 고통을 알고, 고통의 원인을 알고, 고통의 멸을 알고, 고통을 멸하는 방법을 아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을 밝음이나 지혜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와 달리 사성제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을 무명(無明), 그릇된 견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정사유는 욕망을 떠남에 대한 사유, 성냄이 없음에 대한 사유, 해치지 않음에 대한 사유를 말하는 것이고, 욕망에 대한 사유와 성냄에 대한 사유와 해침에 대한 사유를 그릇된 사유라고 합니다.

욕망을 벗어남에 대한 사유는 무탐에 대한 사유, 곧 탐내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정어는 바른 말로써 망어, 악구, 기어, 양설을 멀리하는 것으로 진실한 말을 하며, 중생과 이익과 행복을 위한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어는 그릇된 말로써 거짓말, 사악한 말, 허망한 말, 이간질하는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업은 모든 생물을 죽이는 것을 삼가는 불살생, 주지 않는 것을 훔치는 것을 삼가는 불투도, 그리고 삿된 음행을 삼가는 불사음을 말합니다.

사업은 그릇된 행위로 살생, 도둑질,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명은 삿된 생활법을 버리고 바른 생활법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사명은 그릇된 생활법으로 무기판매, 독거래, 인신매매, 술판매 등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정정진은 일어나지 않은 사악한 불선법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정진하고 마음을 유지하고,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불선한 법을 버리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정진하고 마음을 유지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을 일으키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정진하고, 마음을 유지하고, 일어난 선법을 유지하고 증장하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고 정진하고 마음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정진은 그릇된 정진으로 악을 버리고 선을 증장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게으르고 나태할 뿐만 아니라 악을 증장하고 선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념은 몸, 느낌, 마음, 법의 사념처관을 말하는 것으로 몸을 관하고, 느낌을 관하고, 마음을 관하고, 법을 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념은 그릇된 억념으로 몸, 느낌, 마음과 법을 그릇하게 관철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정은 선정에 드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초선, 제2선, 제3선, 제4선에 들어가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사정은 그릇된 선정을 말합니다.

불자님, 팔정도는 부처님의 길이요, 팔사도는 마라의 길입니다.

팔정도에는 부처님의 도로 표지판이 있고, 팔사도에는 마라의 도로 표지판이 있습니다.

불자님, 자신의 몸과 입과 뜻의 자동차로 마라의 길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잘 장식된 마라의 도로 표지판에 눈멀어 그 길로 제발 들어가지 마십시오. 마라의 길에 들어가면 그들의 노예가 되어 고통에 휩싸이게 됩니다.

마라의 길에 들어서는 것은 소매에 붙은 불과 같아 언제 몸에 옮겨 붙어서 온몸을 태울지도 모릅니다.

불자님, 마라와 부처님의 길, 마라와 부처님의 도로 표지판을 아십시오. 마라의 길, 마라의 도로 표지판을 알고, 부처님의 길, 부처님의 도로 표지판을 아는 사람은 바로 지혜로운 중생입니다.

불자님, 마라의 길에 잘못 들어갔으면 빨리 빠져 나오십시오. 마라의 길은 극단적인 향락과 고행의 길입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극단의 길을 만들지도 않고 그곳으로 가지고 않습니다.

극단에 치우쳐 팔사도를 행하는 사람은 서둘러 부처님의 길인 팔정도를 행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팔사도를 버리고 팔정도로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팔정도를 행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최소한 팔사도를 행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슴도치와 선인장의 가시가 자신을 보호하듯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방어하기 위해서 팔정도를 행할 능력이 없다면 팔사도를 행하지는 마십시오. # 팔정도는 삼학(三學)입니다.

불교에서 배워야 할 세 가지가 바로 계학(戒學)과 정학(定學)과 혜학(慧學)입니다.

이것은 삼발이와 같이 세 개가 함께 있어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팔정도를 배운다는 것은 삼학을 배우는 것이요, 삼학을 배우는 것은 바로 팔정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팔정도와 삼학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팔정도에서 바른 소견과 바른 사유는 지혜 즉, 혜학을 말하고, 바른 말, 마른 행위, 바른 생활은 계, 즉 계학을 말하며, 바른 정진 바른 기억, 바른 선정은 정, 즉 정학을 말합니다.

삼학을 배운다는 것은 바로 팔정도를 배우는 것이며 배운다는 것은 바로 팔정도의 실천을 위한 첫 걸음입니다.

첫 걸음을 내딛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보고 내딛은 땅을 바르게 보아야 합니다.

유아들이 수세기를 배우고 나서야 더하기와 빼기를 하는 것과 같이 팔정도라는 수를 헤아릴 줄을 알아야 여러 가지 수행과 방편 그리고 지혜를 증장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팔정도는 불교인이 배워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고 입는 것처럼 팔정도를 배우는데 정진하십시오. 팔정도는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배우라고 한 삼학입니다.

팔정도의 차에 올라 원하는 정류장에 내리십시오. ≪중아함경≫에 말하기를 바른 소견은 바른 뜻을 낳고 바른 뜻은 바른 말을 낳고 바른 말은 바른 업을 낳고 바른 업은 바른 명을 낳고 바른 명은 바른 방편을 낳고 바른 방편은 바른 기억을 낳는다.

현명한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마음에 바른 정이 있어 갑자기 사음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다하고 현명한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바른 마음이 해탈하여 갑자기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다운 모양을 안다.

라고 하였습니다.

불자님, 여기 팔정도라는 차가 있고 팔정도라는 정류장이 있습니다.

원하는 곳에 이르도록 돕기 위해 부처님은 정류장을 만들고 쉼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견이라는 차에 오른 사람은 정견의 정류장에 이르고, 정사유의 차에 오른 사람은 정사유의 정류장에 이르게 하는 방법으로 마침내 정정의 차에 올라 정정의 정류장에 이르게 되어 그곳에서 얼마 남지 않은 부처님의 거주처가 보입니다.

그곳으로 들어가십시오.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 먼저 정견의 차에 올라보십시오. 정견의 차에 올라 자신과 주위를 바르게 살펴보십시오. 버스 번호를 보고 운전기사를 믿고 그분에게 가는 방향과 내릴 곳을 말씀하십시오. 또한 자신이 운전을 한다면 도로교통 지도를 보고 차근차근 달려가십시오. 여기 지도가 있습니다.

먼저 지도를 바르게 보고 그려진 방향에 따라 나아가십시오. 지도는 하나의 안내도입니다.

지도를 보고 운전을 하는 사람은 바로 팔정도의 지도를 보고 부처님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길에 익숙한 사람은 바로 팔정도의 길을 통해 부처님의 길에 이를 수 있습니다.

# 생활 속에서 팔정도를 살펴보십시오. 봉사가 봉사를 길 안내할 경우 두 가지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길에 익숙한 훌륭한 봉사를 만나 잘 안내 받을 경우도 있고 다른 경우는 안내할 수 없는 봉사에 이끌리어 수렁에 빠지든지 차 사고가 나든지 아니면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에 도달하든지 말입니다.

길에 익숙하지 않은 봉사는 먼저 봉사가 아닌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봉사의 도움을 받을 경우에는 길에 익숙한 봉사를 만나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인생길을 인도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삶에 숙련된 사람을 만나 인생길은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불자님, 우리같이 아주 눈먼 사람은 능력있는 봉사를 만나든지 아니면 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능력있는 봉사와 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팔사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과 팔정도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팔정도의 길로 안내하는 사람은 가시없고 편안한 길로 중생을 안내하여 원하는 곳에 이르게 하지만 팔사도의 길로 안내하는 사람은 가시가 많고, 길 아닌 길, 불편한 길로 중생을 안내하여 고통으로 이끕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피로하게 하고 빠져 나오지 못하는 수렁에 빠지게 합니다.

바른 길로 가면 살아서 행복을 얻고 죽어서도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으며 마침내 해탈 열반에 이르게 됩니다.

중생은 인연으로 살아갑니다.

부처님은 중생을 팔정도의 그물로 윤회의 바다 속을 헤매는 중생을 낚아 올립니다.

빨리 그 그물에 들어가십시오. 지금은 무섭지만 반드시 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그물입니다.

부처님의 팔정도의 그물을 피하지 마십시오. 팔정도는 생사의 공포로부터 중생을 건져내는 그물입니다.

이러한 여덟 가지 길의 인연은 죽고 나는 공포를 모두 멸함이니 이미 모든 업을 모두 멸하고 나면 영원히 일체 생을 다시 받지 않으리라. ≪불본행집경≫ 가로수 옆을 지날 때에는 어두운 밤일지라도 가로등불이 있어서 길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팔정도의 길에는 언제나 지혜의 등불이 밝혀져 있기 때문에 누구나 그 길을 환히 보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불자님, 길을 잃으면 길을 묻거나 교통지도를 보듯이 인생길을 잃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나 팔정도의 길을 가거나 간 사람에게 길을 물으십시오. 또는 팔정도의 지도를 펼쳐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요. 팔정도의 지도는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계를 지키고 선한 마음을 내기만 하면 바로 팔정도의 지도를 구할 수 있습니다.

지도를 살 돈이 바로 계를 지키고 선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불자님, 부서진 그릇에 물을 담으면 모두 새어나가는 것처럼, 그릇된 가르침이라는 그릇을 지니면 지혜의 물이 새어나가게 됩니다.

먼저 부서진 그릇을 메우든지 부서지지 않은 올바른 그릇을 구해 물을 담아 보십시오. 원하는 만큼의 물을 담을 수 있듯이 정도의 그릇에 지혜를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장엄경론≫에 다음의 그릇된 길에 의지하는 자 뭇 고뇌와 환란을 겪고 바른 길에 의지하는 자 신심과 명칭을 증장하나니, 슬기로운 사람으로선 그 그릇됨과 바름을 잘 관찰해야 한다.

라고 말한 것처럼 그릇됨과 바름을 잘 관찰하여 지혜의 물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십시오. 불자님, 고속도로를 달릴 때 가운데 길로 가는 것이 중도가 아니고 정도가 아닙니다.

서울로 가는 이는 4차선의 상행선에서 어느 길을 택할 지라도 무사히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것이야말로 중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과속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여 사고 내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바로 중도입니다.

팔정도의 길은 이미 만들어진 길입니다.

새롭게 길을 닦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가기만 하면 됩니다.

내 길, 내가 만든 길이 아니라고 해서 새롭게 만들려 하지 마십시오. 다만 누구에게나 알려진 그 길을 가기만 하면 됩니다.

팔정도라는 길은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가신 길이기에 그분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길입니다.

불자님, 이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불설해의보사라소문정인법문경≫에서는 분별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그 모든 치우친 소견을 여윔은 바른 소견이고 일체의 음성에 들어가 평등히 깨달음은 바른 고찰이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법을 여윔은 바른 말씨이고 모든 하는 일을 다 경안(經安)하게 함은 바른 업이고 높거나 낮음이 없음은 바른 생명이고 선한 법을 자라게 하고 불선한 법을 제거하되 그 시설(施設)에 따라 평등하게 머묾은 바른 노력이고 마음에 반연된 것을 다 평등하게 깨달음은 바른 생각이고 고요히 지식(止息)하는 경지에 머묾은 바른 선정이다.

라고 팔정도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자님, 절대자에게 의지하거나, 미신에 의지하거나, 주술에 의지하지 말고 지혜에 의지하면서 팔정도의 깃발을 높이 들고 마라의 군대를 물리쳐야 합니다.

마라의 군대는 팔정도의 깃발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생활 속에서 깃발을 높이 걸어 두십시오. 마라의 군대가 다가올 조그마한 틈도 주지 않기 위해서 방어벽을 높이 쌓고 승리할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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