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연기

Paṭicca-samuppāda(緣起)                                    선운사 불학원장(재현)스님 글 Ⅰ. 서언 심오한 이해가 필요한 연기 청정도론을 저술한 붓다고사스님은 연기를 설명하는 편에서 “오늘 나는 조건의 구조를 설명하기를 원한다.

마치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든 사람처럼 그 발판을 찾지 못하는 구나!” 라고 표현했다.

또 총명한 아난 존자가 D15 Mahānidāna-sutta(대인연경)에서 연기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한데 대하여 세존께서 연기는 참으로 심오하다고 말씀하셨다.

  Ⅱ. 본론 연기에 대한 여러 가지 고찰 1. 언어적 측면에서 고찰   연기의 빠알리 원문은 paṭicca-samuppāda를 번역한 단어다.

분해하면 다음과 같다.

  1) paṭicca: paṭi(~에 대하여)+√i (to go)+ya(ger 접미사)     가. 직역: ~에 대해 다가간 후에     나. 의역(부드러운 표현): 대상에 다가가서.     다.

중국에서는 緣(인연 연, 말미암을 연)   2) samuppāda = sam(함께, 연계해서)+ud(위로)+√pad(가다)     가. 직역: 그것과 연계해서 위로 가다.

    나. 의역: 연계해서 일어나다.

    다.

한역: 起(일어날 기)   3) 언어적 측면에서 요약해 보면 ‘무언가에 연계해서 일어나는 것(생기는 것).’ 이것이 바로 paṭicca-samupādda(緣起)인 것이다.

  2. 전통적인 12연기의 설명   1) 12연기의 각지: avijjā(無明)-saṅkhārā(行)-viññāṇa(識)-nāmarūpa(名色)-saḷāyatana(六入)-phassa(觸, 닿다.

부딪히다)-vedanā(受)-taṇhā(愛)-upādāna(取, 가지다.

취하다.

)-bhava(有)-jāti(生)-jarāmaraṇa(老死)가 바로 그것이다.

  2) 연기는 dukkha의 순관 역관 또는 유전문과 환멸문이나 발생 구조와 소멸 구조를 밝히는 것으로 역대 과거 칠불이나 연각불들이 사유했던 연기의 명상법이다.

  3. Nikāya(니까야)에서의 연기의 고찰   본 글에서는 saṁyutta-nikāya(상윳다 니까야)의 12인연상윳따와 맛지마 니까야 9번 경인 sammādiṭṭhi-sutta(正見輕) 와 D15인 대인연경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saṁyutta-nikāya』의 제12주제인 「인연 상윳따」(Nidāna-saṁyutta, S12)에 포함된 93개의 경들     가. 첫 번째 품        ① 12연기의 발생과 소멸 구조를 말씀하시는 법문이 제일 처음에 위치해 있다.

       ② 그 다음 각 연기의 조건을 자세히 분석하시고        ③ 다음으로 부처님을 포함한 역대 칠불이 연기의 역관, 발생. 소멸 구조를 관하시고 깨달음을 얻으신 내용이 나온다.

    나. 두 번째 음식품        ① 음식은 누가 먹는 것이 아니고 조건이 된다.

       ② 識食이 名色의 조건이 된다.

       ③ 음식을 먹는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연기 즉 조건이라며 노사우비고놔까지 설명        ④ 유무 단상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유무가 아닌 조건 생 조건멸임을 보여 주시고 이것의 실례로 12연기를 설명.     다.

세 번째 십력품: 연기의 게송         Imasmiṁ sati idaṁ hoti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         Imassuppādā idaṁ uppajjati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         Imasmiṁ asati idaṁ na hiti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         Imassa nirodhā idaṁ nirujjhati(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

) 가 등장하면서 오온의 바르게 앎. 일어남. 소멸을 설명하고 이어서 12연기의 발생 구조와 소멸 구조를 설명하신다.

    라. upanisā-sutta(기반경)에서는 오온을 바르게 앎. 일어남. 소멸을 바로 알 때 번뇌 멸진의 지혜가 일어나고, 이것의 기반은 해탈이고, 해탈의 기반은 이욕(virago)이고, 이욕의 기반은 염오(nibbidā)이고, 염오의 기반은 여실지견(如實智見)이고, 여실지견의 기반은 삼매(sāmādhi)이고, 삼매(sāmadhi)의 기반은 행복(sukha)이고, 행복(sukha)의 기반은 경안(passaddhi)이고 경안(passaddhi)의 기반은 희열(pīti)이고, pīti의 기반은 pāmojja(환희)이고, pāmojja의 기반은 saddhā(믿음)이고, saddhā의 기반은 고(苦, dukkha) …… 행(行, saṅkhārā)의 기반은 무명(avijjā)이 라고 설명하고 다시 이를 거꾸로 설명하며 조건(연, paccaya)이 아닌 기반(upanisā)로 해서 확장의 이해를 보여 주고 있다.

      마. aññatitthiya-sutta(외도경)에서는 외도들의 업을 설함에 고(苦, dukkha)를 남이 짓는다.

내가 짓는다.

우연히 발생한다는 견해에 어떤 경우든 촉을 조건으로 일어난다.

고 표현하시며 연기일 뿐임을 보이신다.

이에 아난다가 자세히 설해도 되겠냐고 여쭈면서 누가 dukkha를 물어 보면 생~무명이라는 조건을 생을 물어 보면 …… 행을 물어 보면 무명이 조건이라는 식으로 12연기로 상세히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여기서 연기의 확장 설명이 12연기임이 유추될 수 있다.

    여타 다른 품과 경전에서도 12연기가 다 나오기도 하고 부분만 나오기도 하고 확장 간략히 설명하며 여러 각도로 조건법과 사성제 식의 이해 등 여러 가지와 접목이 나온다.

  2) majjhima-nikāya(맛지마 니까야)의 sammādiṭṭhi-sutta(M9)에서의 고찰     가. 여기서는 바른 견해를 사리붓따 존자가 설하는 경이다.

    나. 여기서 사리붓따 존자는 정견을 갖추는 법으로         ① 선(善, kusala)와 불선(不善, akusala)         ② 네 가지 음식         ③ 사성제         ④ 12연기         ⑤ 무명 다음에 āsava(번뇌)의 꿰뚫어 앎, 일어남을 꿰뚫어 앎, 소멸을 꿰뚫어 앎, 소멸로 인도하는 수행방법을 꿰뚫어 아는 것이 정견(正見, 바른 견해)이라고 가르침을 주고 있다.

    다.

여기서도 연기적으로 고찰하고 연기적으로 발생하고 소멸인 사성제의 틀로 아는 것이 정견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라. 마지막 부분에 무명(無明, avijjā)의 원인이 번뇌(āsava)이고 āsava의 원인이 무명[1]이라는 설명이 참 멋있는 부분 같다.

    마. 북방에서는 근본 무명이라 하여 무시 이래로 생긴 무명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무명은 마치 모든 조건의 근본 인양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무명도 조건 생임을 이경에서는 여실히 보여 준다.

    바. 필자의 생각은 작은 잘못된 흐름들이 큰 무명이 일어나는 조건이 되고 그 큰 무명이 다시 작은 잘못된 흐름들이 일어나는 조건이 되는 순환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런 설명을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3) Dīgha-nikāya(디까 니까야)의 D15 Mahānidāna-sutta(대인연경)의 고찰     가.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연기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표현하자 연기는 참으로 심오하다면서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 기존 12연기와는 약간 다르게 노사-생-취-갈애-느낌-촉-명색-식-명색의 순으로 역관의 발생을 말하고     다.

명색-식-명색-촉-수-갈애-취-생-노-사의 순으로 순관의 발생을 말하면서        ① 명색과 촉사이의 육입의 조건이 빠지고        ② 또 명색과 식을 서로 조건이 되는 관계로 설명하신다.

    라. 여기서 식이 모태에 들어야 명색이 확립된다고 설명함으로써 재생 연결 식의 개념이 옅보인다.

    마. 또한 이 생성된 명색이 확립되어야 식이 발전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명색을 기반으로 한 의식의 발달을 표현하고 계신다.

    4) 종합적으로 고찰해 봄     가. 위와 같이 여러 방면으로 고찰해 보았을 때 연기는 일체를 유무 단상(有無 斷常)이 아닌 조건으로 봄으로써 잘못된 산냐를 극복하여 고(苦)를 소멸하는 방법으로 보인다.

    나. 즉 열반이나 고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 조차도 조건생. 조건멸이라고 설명하시는 방법이 바로 연기인 것이다.

    다.

우리는 마치 업이 있는 것 마냥 아니, “내가 있어서 업을 받으니 선업을 많이 지어서 내가 좋아져야지”, “어떤 존재하는 열반을 성취해야지”, “어떤 존재하는 깨달음을 성취해야지.” 라고 하는 환상에 젖어 사는 존재들임을 인정해야 한다.

아니 우리라 하면 아닌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그냥 이 글에 기분이 상한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 그냥 나라고 표현해야 할까?     라. 부처님의 법수 하나하나는 절대로 이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법수 모두가 실천할 수 있는 실천해야만 하는 실천하면 유익한 것들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연기나 사성제는 성인들의 이야기마냥 부처님의 생각마냥 나하곤 관계없는 먼 나라 이론으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마. 우리는 오래 공부할수록 왜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지 왜 수행을 하는지 왜 출가 생활을 하는지 망각하게 되고 그냥 성직자가 되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배운 부처님 법으로 남을 위한 상담 내지는 남을 위한 시비의 잣대로 사용하기 일수다.

    바. 우리는 왜 출가했는가? 출가할 때 꼭 물어 보는 말이다.

굳이 답한다면 괴로워서 출가했다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괴로워서 이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괴로움을 격렬하게 느끼는 사람만이 진짜 벗어나려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 지금 괴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망각한다.

Sati(念)의 부재라 할 수 있다.

괴로운가! 그러면 괴로움의 원인을 알라! 괴로움의 원인을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연기이다.

괴로울 수 밖에 없는 괴로움의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조건으로 가득 찬 내 삶을 보도록 만드는 것이 그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연기인 것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조건을 구족 하는 기준이 바로 연기법인 것이다.

  Ⅲ. 결어   조건생 조건멸인 세상에서 결국 괴로움의 소멸 즉, 열반이라는 것도 열반의 조건을 갖추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열반이 있어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조건을 갖추면 되는 수동적인 것이다.

직접적으로 열반을 쥘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십만 팔천리 멀어 진 나라는 생각과 열반은 존재한다는 상견이 결합한 윤회로 이끄는 걸작품인 것이다.

우리는 열반을 불러오는 조건을 갖추고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바로 연기는 그것을 알게 해주는 가르침이자 그것을 깨달으신 부처님의 진수라고 생각한다.

  부디 이 작은 이해가 나를 포함한 괴로움을 겪는 모든 이들의 고(苦, dukkha)가 소멸되는 조금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원하며 연기에 대한 졸렬한 이해의 글을 마치는 바이다.

[1] 고통으로 이끄는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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