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문화 – 불교공예
불교공예 1.불교공예의 의미 공예란 일반적으로 인류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생활용품 및 도구를 말하는데, 그 가운데 미술적으로 아름답고 뛰어난 것들만에 한정해서 이른바 공예(품)라고 일컫고 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불교공예 역시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종교의례에 쓰이는 것부터 수행자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갖가지 용품과 도구를 말한다.
불교공예는 일반 공예가 지닌 쓰임새와 아름다움에 종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점이 크게 다르다.
다시 말해서 불교공예란 불교라는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이른바 법구(法具) 또는 불구(佛具)라는 신앙의 의미를 지니고 조성되지만, 일반 공예품과 같이 조성 시기에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일반적인 미적 감각과 미술 양식이 반영되기도 한다.
2.불교공예의 종류 불교공예는 조각, 회화, 건축을 제외한 온갖 것을 다 포함할 정도로 범위가 넓으며, 종류 또한 다양하다.
따라서 불교공예의 유형을 분류하는 일은 쉽지 않으며 분류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여기에서는 주로 쓰임새에 따라서 크게 의식법구와 공양구, 장엄구로 구분해보았다.
(1) 의식법구(儀式法具) 의식법구는 불교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법구를 말한다.
사실 불교 공예품 가운데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간에 불교의식이나 행주좌와(行住坐臥)의 수행에 쓰이지 않는 것은 없겠지만, 여기서 의식법구라 함은 그 쓰임새가 불교의식에 직접 쓰이는 법구를 일컫는다.
사찰의 4보(四寶)라고도 하는 ‘사물(四物)’은 절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종, 북, 운판, 목어 네 종류의 법구를 말한다.
① 범종(梵鍾) 절에서 사용하는 종을 범종(梵鍾)이라 부르는데, 범(梵)이 불교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결국은 불교의 종(佛敎鍾)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옛날 큰 불교사원에는 대중들이 많이 모여 살았으므로 단체생활의 필요상 어떠한 약속된 소리로써 하루의 일과를 알려주어야만 했을 것이다.
따라서 종이 사찰의 필수품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히려 그 소리의 신묘함이 종소리를 듣는 중생들의 마음을 깨우쳐 모든 감각기관으로 공덕을 쌓고, 그 공덕으로 인해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까지도 함께 구제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의식을 행할 때마다 종을 울려서 종교적(불교적)인 장엄한 분위기를 북돋고자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범종의 모양은 크게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 종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 종은 이른바 ‘조선종(朝鮮鍾)’이라는 학술 명칭까지 얻고 있다.
형태상 악기로 쓰였던 중국 고동기(古銅器)에서 비롯된 중국이나 일본의 종과는 달리, 옛 청동기시대의 동탁(銅鐸)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 종이 형태나 소리에서 중국과 일본 종보다 훨씬 뛰어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기 725년에 만들어진 상원사 종을 시작으로 해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들이 남아 있다.
먼저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을 이루는 신라 종의 형태를 보면, 중국이나 일본 종과 달리 종 꼭대기에 한 마리 용으로 된 종고리(鍾鄙:單龍鄙)와 소리를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있다.
몸통은 물항아리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처럼 배에 비해 입 부분이 좁아서 소리를 천천히 토해내는 효과가 있다.
음통은 우리나라 범종에만 있는 특징적인 요소다.
종 윗부분과 아래 종구(鍾口)에 잇대어 테두리에는 보상화나 연꽃무늬, 당초무늬,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 등이 새겨져 있다.
종의 어깨 네 곳에는 네모꼴의 연곽(蓮廓)을 마련하여 그 안에 각 9개씩의 연봉우리 모양을 달았다.
종 몸체에는 양쪽으로 서로 대칭을 이루며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비천상과 종 치는 자리인 당좌(撞座)가 배치되어 있어 공간 구성이 뛰어나고 회화성이 넘쳐난다.
② 법고(法鼓) 법고(法鼓)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북소리를 빌어 부처님이 깨치신 진리를 중생에게도 전해주려는 뜻이 담겨 있다.
북소리를 들음으로써 인간을 포함한 모든 축생(畜生)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기쁨을 만끽한다고 믿기 때문에 더 없이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북을 종과 함께 아침과 저녁 예불 또는 종교의식이 있을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치는데, 이 때에는 반드시 법도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절에서 북을 왜 치는지에 대해 《법화경》 <서품(序品)>에서는 “번뇌와 망상, 집착과 오욕의 마군들을 쳐부수고자 설법(說法)의 대군을 몰고 나갈 때, 진군을 독려하기 위함이다.
”라고 했다.
이 내용으로 보아 북은 일찍부터 수행정진을 독려하는 데 쓰이는 중요한 의식법구였음을 알 수 있다.
북이 종과 더불어 귀중한 성물로서 그 진가가 높았음은 예부터 항상 법당 앞에 종루(鐘樓)와 고루(鼓樓)가 상대적으로 배치되었고, 두 누각을 따로 세울 수 없을 때에는 종과 북을 한 전각에 두었음을 보아서도 충분히 짐작된다.
북은 크기에 따라 큰북[大鼓], 중간북[中鼓], 작은북[小鼓]으로 나뉘는데, 절의 사물이라고 할 때는 이 가운데 큰북을 말한다.
중간북은 조선시대 이후 제사의식 때 범패나 노래와 함께 장단을 맞추던 일종의 악기로 흔히 사용했다고 한다.
③ 목어(木魚) 사찰 사물 가운데 하나로, 주로 중국 선종(禪宗) 사찰에서 쓰였던 목어는 나무를 깎아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고 안을 텅 비게 파내어, 두드리면 소리가 나도록 되어 있다.
물고기를 비롯한 수중동물들에게까지도 부처님의 가르침[法音]이 전달되어 깨우침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목어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물고기 형상을 충실하게 묘사한 것이고, 또 하나는 몸은 물고기이나 머리 모양이 용머리 형상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이는 물고기가 잠을 잘 때도 늘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 역시 물고기처럼 졸지 말고 오직 정진에만 힘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목어는 오늘날에도 게으름을 쫓는 하나의 상징물이 되고 있다.
④ 운판(雲板) 장판(長板), 화판(火板), 또는 판종(板鍾)이라고도 한다.
운판(雲板) 역시 중국의 선종 사찰에서 애용하던 사찰 사물 가운데 하나로, 주로 청동이나 철을 판판하게 한 다음 구름 형태로 만든 이른바 운형 금속판(雲形金屬板)을 말한다.
운판의 본래 기능은 참선할 때 시작과 끝을 알리고 잠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함께 점차 기능이 확대되어 공양시간을 알릴 때와 대중들을 불러 모을 때, 그리고 재(齋)가 있을 때에 널리 사용했다고 한다.
운판의 형태는 구름 모양이라고 하지만, 이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서 형태미가 돋보이는 불교 공예품의 하나라고 하겠다.
운판의 생김새를 구름 모양으로 만든 것은, 구름이 비를 머금고 있으므로 불을 다루는 부엌에 걸어둠으로써 화재를 막고자 하는 주술적인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⑤ 쇠북[金鼓] 금고는 금구(金口, 禁口), 반자(飯子) 등으로 불리는 쇠북으로, 형태는 마치 농악에 쓰이는 징 모양을 하고 있다.
쇠북은 쇠, 즉 금속으로 만든 북이라는 뜻으로 보통 구리와 금, 은 세 가지 재료로 만드는데, 집결하고자 하는 사람의 숫자에 따라 각기 다른 재료가 쓰였다고 한다.
이는 《현우경(賢愚經)》 권10에 “쉬라바스티(舍衛國)에는 18억의 인구가 살았는데, 동고(銅鼓)를 치면 8억이 모이고, 은고(銀鼓)를 치면 14억이 모이며, 금고(金鼓)를 치면 모든 사람이 다 모인다.
”라는 기록이 있어 확실히 알 수 있다.
즉 구리, 은, 금의 순서에 따라 모이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빠른 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865년에 만들어진‘시공사금구(時供寺禁口)’다.
고려시대 이후에 이르면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
⑥ 경(磬) 경 또는 경자(磬子)라고 하며, 현재 절에서는 경쇠라고 부른다.
예불을 올릴 때나 경전을 독송할 때 쓰는 법구의 하나다.
예불을 올릴 때 엎드리거나 일어서도록 유도하기 위해 경쇠를 치고, 법당에서 독경하면서 부처님 주위를 도는 행도(行道) 의식을 행할 때에도 사용한다.
경쇠를 칠 때는 목탁은 치지 않는다.
생김새에 따라 곡형(曲形)·소라형[螺]·구름형·연화형 등이 있다.
몸통 위쪽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손잡이를 달고 채로 친다.
받침대 위에 놓고 칠 때도 있고 선반에 매달아놓고 치기도 한다.
채는 노루뿔을 주로 사용한다.
⑦ 바라 바라는 사찰에서 의식을 행할 때 쓰는 법구의 하나이다.
발자(津子)·동반(銅盤)·요발(琵津)이라 부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바라라고 부른다.
<백장청규(百丈淸規)>에 따르면 불전에 향을 올릴 때, 설법할 때, 장례의식을 할 때, 새 주지를 맞이하는 진산식(鎭山式)을 할 때에 바라를 울렸다고 한다.
생김새는 서양 악기인 심벌즈와 비슷하다.
놋쇠로 만들며 둥근 원반이 한 쌍을 이룬다.
각 원반의 중심에 구멍을 내어 폭이 넓은 끈을 꿰어 손잡이로 사용하며, 양손에 나누어 잡고 두 개의 원반을 서로 부딪쳐 소리를 낸다.
바라를 치면서 추는 춤을 바라춤이라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바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곡성 태안사에 있는 것으로 1477년에 만들었다.
⑧ 금강저 산스크리트 바지라(Vajra)를 금강(金剛) 또는 금강저(金剛杵)라고 뜻 옮김한 것이다.
금강지저(金剛智杵), 견혜저(堅慧杵)라고도 한다.
금강저는 원래 제석천의 번개에 붙은 이름이나 점차 여러 신이나 역사(力士)가 지니는 무기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인도 고대에서부터 무기로 사용했으며, 제석천이 아수라를 쳐부쉈다는 전설을 불교에서 수용해서 중생의 무명번뇌를 굳세고 날카로운 지혜로 부숴버리는 것에 비유했다.
금강저는 금, 은, 동, 철 등의 재료를 써서 만든다.
그 형태를 보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자루를 중심으로, 양쪽 끝에 날카롭게 뻗은 갈고리처럼 갈라진 끝의 가닥 수에 따라 하나면 독고(獨納), 세 개면 삼고(三納), 다섯 개면 오고(五納), 일곱 개면 칠고(七納), 아홉 개면 구고(九納)라고 부른다.
끝 가닥이 하나인 독고가 가장 오래된 형식이다.
자루 부분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을 부르기도 하는데, 자루의 중심부 좌우에 불꽃 모양을 새긴 것은 보저(寶杵)라 하고, 탑을 새긴 것은 탑저(塔杵)라 한다.
밀교의 의식에서는 의식단(儀式壇)에 금강저를 봉안하는데, 그 배치법은 탑저를 가운데 두고 사방에 배치하며 이를 오종저(五種杵)라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삼고저나 오고저가 많이 남아 있으며, 칠고저나 구고저 그리고 보저나 탑저 같은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금강저는 번뇌뿐만 아니라 악마를 물리치고 사악한 것을 몰아낸다는 벽사의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만다라나 사경화 등 불화 테두리에 금강저 무늬를 그려넣어 수호신장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⑨ 금강령 금강령은 금강저(金剛杵)와 함께 불교의식에 쓰이던 법구의 하나다.
그 생김새는 자루를 중심으로 아래쪽에는 추가 달린 조그만 종이 있고, 위쪽은 금강저의 반쪽 부분을 닮았다.
종신(鍾身)에는 주로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을 많이 새기는데, 고려시대의 금강령에 가장 널리 쓰인 무늬는 사천왕상이다.
그 밖에 용을 새긴 것도 있다.
금강령도 자루 위쪽에 달린 갈고리 형태에 따라 독고령, 삼고령, 오고령, 구고령 또는 보주령, 탑령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삼고령과 오고령만을 볼 수 있다.
현존하는 금강령으로는 순천 송광사에 있는 금동 금강령(보물 제176호)을 최고로 꼽는다.
⑩ 목탁 목탁은 사물의 하나인 목어가 변해서 생겨난 법구다.
때문에 그 생김새도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다.
다만 목어는 물고기 모양 그대로 몸체가 길쭉한 편이지만, 목탁은 방울 모양으로 둥글넙적하고 추상적이다.
머리 쪽은 가로로 길게 벌어진 입이 끝나는 가장자리에 둥근 구멍이 뚫려 있는데, 물고기의 두 눈을 연상시킨다.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는 둥글게 안을 깎아내 둥근 손잡이를 만들었으며, 물고기에 대비하면 꼬리지느러미를 추상화한 듯 싶다.
(2) 공양구(供養具) 공양구는 불보살께 공양할 때 음식이나 향, 꽃, 차, 불[燈]을 담는 갖가지 그릇을 말한다.
불보살께 올리는 공양그릇이므로 온갖 정성을 들여 최고의 기술과 최상의 재료로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대부분이 당대의 공예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① 향로(香爐) 향로(香爐)는 향을 사르는 데 쓰는 법구다.
불보살께 올리는 공양은 원래 향, 꽃, 등불을 으뜸으로 삼았다.
따라서 이 세 종류의 공양물을 담아 올리는 공양구인 향로, 화병, 촛대를 불단 삼구족(三具足)이라 하고, 향로와 한 쌍의 꽃병과 촛대를 일러 오구족(五具足)이라 한다.
뒷날에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이 이 세 종류에다 차, 과일, 쌀을 더해서 모두 여섯 가지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으뜸가는 공양물은 향이었다.
향로는 쓰임새에 따라서 크게, 불단이나 탁자에 봉안하는 완형향로와 들고 다니면서 의식하는 병향로로 나눌 수 있다.
완향로는 이른바 완이라는 그릇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손잡이가 달리지 않고 굽과 뚜껑이 있는 매우 날씬한 형태이다.
병향로는 완 모양에 손잡이가 있는 것으로, 주로 의식행렬에서 스님이 향을 피워 들고다니는 것이다.
병향로는 삼국시대 마애불 등에 자주 등장한다.
고려시대에는 금속의 표면 장식기법으로 은입사가 널리 유행했는데, 이 은입사로 향완의 표면을 화려하게 장식해서 더욱 품격을 높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향로를 꼽아보면, 최근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금동 대향로를 비롯해서 밀양 표충사의 청동은입사 향완, 통도사 청동은입사 향완 등이 있다.
② 정병(淨甁) 정병은 물을 담는 물병의 하나지만, 형태가 독특하고 관음보살이 지니는 지물로 정착해서 따로 정병이라고 부른다.
이 정병은 산스크리트 ‘쿤디카(Kun·d·ika-)’의 뜻을 새겨 번역한 말이며, 그냥 소리나는 대로 적어 군지(軍持)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법화경에 따르면 정병은 승려가 반드시 지녀야 할 18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 뒤로 불교의식이 진행될 때 쇄수게(灑水偈)를 행하면서 의식을 인도하는 승려가 솔가지로 감로수를 뿌림으로써 모든 마귀와 번뇌를 물리치는 데 사용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정병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점토를 구워 만든 토기나 도자기로도 정병을 만들었지만, 오동(烏銅: 검붉은 빛이 나는 구리)으로 만들고 그 표면에 금이나 은을 박아 무늬를 새긴 입사(入絲)기법을 베푼 작품이 크게 유행했다.
무늬는 대개 물가에 부들이나 버들이 늘어져 있고, 물새가 노닐거나 하늘을 나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무늬, 곧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이라 이름 붙인 것이 가장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청동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국보제92호)과 청자양각 포류수금문 정병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③ 등(燈) 촛대를 포함하는 등은 어둠을 밝히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이다.
등불이야말로 인간의 문명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일찍부터 등불을 매우 귀중하게 여겨왔으며, 심지어는 경외심까지 가졌던 것이다.
대승경전 중의 하나인 《화엄경》에서는 등을 공양구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고 했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마침내 《삼국유사》 권5 <선율환생조(善律還生條)>에는 “망덕사 선율 스님이 지옥에서 환생하여 돌아올 때 한 여자의 부탁으로 불등(佛燈)에 불을 밝혀주어 명복을 빌었더니, 그 여자는 고뇌를 벗어나 극락왕생했다.
”라는 전설이 나올 정도까지 되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연등회라든가 초파일 때 대대적으로 등불을 밝히는 행사를 해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보통 등을 광명등(光明燈)이라 부르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
등은 만드는 재료에 따라 종이등, 베등, 나무등, 구리등, 석등, 자기등, 옥등으로 나뉘며, 쓰임새에 따라서는 수등(手燈), 현등(懸燈), 고정등(固定燈)으로 나뉜다.
그리고 모양에 따라서는 사모·육모·팔모·원형 등과 수박등, 팔각석등, 고복석등, 이형석등으로 구분한다.
이들 가운데 부처님에 대한 공양구면서도 문화재 가치가 있는 것은 옥등(玉燈)이나 고정된 석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④ 사리기(舍利器) 사리(舍利)는 산스크리트 ‘사리라(s´arira)’를 줄여서 쓴 한자말이다.
그 뜻은 사람의 몸인 신체(身體) 또는 뼈[身骨]를 말하며, 몸을 태워[茶毘] 남는 뼈인 유골(遺骨)을 가리킨다.
따라서 불사리(佛舍利)라 함은 부처님의 신체와 유골을 의미하며, 승사리(僧舍利)는 스님의 신체와 뼈를 말한다.
본래 사리를 묻는 곳은 탑으로 탑신(塔身)·기단(基壇)·상륜(相輪), 그리고 심초석(心楚石) 아래 땅 밑에 모시기도 하나, 그 안에 사리만을 넣지는 않는다.
사리는 곧 부처님의 몸이자 믿음을 나타내는 상징물로서 겹겹으로 차림새를 갖추고 공들여 모신다.
아울러서 장엄을 겸한 여러 부장 공양물들도 함께 넣는다.
이와 같은 부장 공양품들과 사리 그릇을 함께 일러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또는 사리장치라고 한다.
사리를 넣는 사리기는 대개 외함(外函)과 내함(內函), 그리고 그 안의 사리병이나 사리호(舍利壺)가 한 세트를 이루고 있다.
외함과 내함은 금, 은, 동 등의 귀중한 재료로 가마 모양이나 4각 및 6각형 모양으로 만든다.
여기에는 불·보살·천녀·신장·주악비천·당초·보상화·연꽃 같은 온갖 무늬를 조각해서 매우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이다.
사리병이나 사리호는 금, 은, 동, 돌, 자기, 유리, 수정의 칠보를 중심으로 한 보배로 만든다.
사리병은 주둥이가 없는 물병 모양과 흡사한데, 불국사 석가탑 사리병이나 왕궁탑 사리병 같은 것은 날씬한 그릇 모양과 청정한 푸른색 등 신비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 장엄구(莊嚴具) 장엄구란 불보살이 머물고 계시는 법당을 종교적 분위기가 나도록 장엄하게 꾸며주는 여러 가지 불구들을 말한다.
특히 사찰 법당은 예배 대상을 모시는 성스러운 곳[聖殿]으로, 언제나 오색구름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미고자 최선을 다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요즈음에도 절을 크게 지어 내부와 외부를 치장하고, 단청을 화려하게 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다.
불단(佛壇)과 천개(天蓋) 같은 내부 치레에서부터 불감(佛龕), 법상(法床), 목패(木牌), 번(幡) 등에 이르는 모든 불구들이 이에 해당하며, 이것들은 곧 사원의 분위기를 부처님의 세계답게 꾸며주는 구실을 한다.
① 불단(佛壇) 불단의 기원은 부처님이 앉으셨던 자리, 곧 불좌(佛座)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불단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들이다.
그 기본 구조를 보면 상대·중대·하대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는 불단의 몸체를 받드는 부분이다.
상(床)에 대비하면 족대에 해당한다.
중대는 불단의 몸체에 해당하며, 다시 상·중·하단으로 나뉜다.
이 3단으로 나뉜 몸체에는 여러 가지 장식무늬가 베풀어져 불단을 한껏 장엄하고 있다.
상대의 중심부에는 물론 불보살상을 모시지만, 앞쪽에는 공양물인 불기, 향로, 촛대, 화병 등을 놓기 위해 턱을 덧대기도 했다.
곳에 따라서는 이렇게 불상이 놓이는 부분과 공양물이 놓이는 부분을 구별하기 위해 가리개를 설치하기도 했다.
현재 불단 가운데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로 경북 영천의 백흥암 주불전인 극락전 불단이 있다.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이란 이름으로 지정된(보물 제486호) 이 불단은 세부 장식무늬의 화려함과 투각기법이 한층 돋보여 조선시대 불단 가운데 으뜸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② 천개(天蓋) 법당의 본존불 머리 위 천장에 머리 장엄을 하기 위해서 치레한 것을 천개라고 한다.
모양은 4각, 6각, 8각, 원형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구름이 피는 듯하게 나무를 중첩해서 지붕 모양을 이루고, 각 모서리에는 번(幡)을 내려뜨렸다.
또한 구슬을 달고 장막이나 보망(寶網)을 치며, 갖가지 무늬를 채색하는 등 화려하게 꾸민 것이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천개 모습이다.
③ 불감(佛龕) 집[堂]의 축소형으로 보각(寶閣)이나 주자(廚子)와 비슷하다.
불감은 안에 불상을 봉안하기 위한 것인데, 작은 것은 이동하기 쉽도록 닫으면 동그랗게 되는 것도 있고, 집 모양으로 된 것도 있다.
재료로는 동이나 나무가 많이 쓰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나무로 된 불감이 많았다.
송광사의 불감 등은 매우 정교하다.
④ 번(幡) 일종의 깃발로 여러 형태가 있다.
당번(幢幡)은 긴 장대에 매단 깃발을 말하며, 옥번(玉幡)은 옥으로 꾸민 것이다.
권정 때 쓰는 권정번 등도 있는데, 갖가지 수를 놓기도 하고 여러 가지 보배 등으로 구슬을 만들어 늘어뜨리는 등 화려하게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