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지금 당신은 행복한가요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요?

-법륜스님-

그때가 좋았다며 그리워하는 그때는 과연 행복했을까? 법륜 스님은 우리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바로 오늘, 우리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법륜 스님이 전하는 인생수업 몇 가지.

왜 사느냐고요? “사람은 왜 살아야 합니까?” 젊을 때 많이 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묻는 시기가 있습니다.

40대, 50대, 혹은 갱년기에 접어들어 ‘사는 게 뭔가, 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들면서 다시 묻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삶이 ‘왜’라는 생각보다 먼저기 때문이에요.

즉 존재가 사유보다 먼저 있기 때문이지요.

살고 있으니 생각도 하는 건데 ‘왜 사는지’를 자꾸 물으니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이미 태어나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이미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한국 사람이 됐지?’ 이렇게 물으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그런 생각을 하면, ‘이렇게 삶의 의미도 모르고 살아서 뭐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왜 사는가’를 계속 묻다보면 자살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메뚜기도 살고 다람쥐도 살고 토끼도 사는구나.

나도 살고, 저 사람도 산다.

모두 살고 있는데 그럼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걸까? 즐겁게 사는 게 좋을까, 괴롭게 사는 게 좋을까? 즐겁게 사는 게 좋다.

그럼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지?’ 풀도 그냥 살고 토끼도 그냥 살고 사람도 그냥 삽니다.

또 때가 되면 죽습니다.

살고 싶어서 살고 죽고 싶어서 죽는 게 아니라, 삶은 그냥 주어졌고 때가 되면 죽는 거예요.

결국 주어진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괴로워하며 살 것인가, 즐거워하며 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예요.

그래서 나에게 인생을 행복하게 할 책임도 권리도 있습니다.

‘왜 사느냐’는 질문으로 삶에 시비를 거는 대신 ‘어떻게 하면 오늘도 행복하게 살까’를 생각하는 것이 삶의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쓰는 길입니다.

그것이 내 인생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지닌 주인으로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 변하느냐고요? 모든 것은 변해갑니다.

그런데 예전 생각만 하고 지난 것을 고집하면 거기에서 괴로움이 생깁니다.

어릴 때 우정으로 뭉쳤던 친구들도 세월이 가면 자기 살기 바빠서 흩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면 예전처럼 모여도 반갑지 못하고 시들합니다.

물론 우정은 있겠지만 어릴 때와 같은 관계는 아닙니다.

그것은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상대방을 내 뜻대로 하려 하고, 내 취향에 맞는지 너무 따지면 인생살이가 피곤해서 병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친구들과 늘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자유로워집니다.

같이 있으면 대화할 수 있어 좋고,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 좋아야 합니다.

그러면 곁에 사람이 있든 없든 아무런 상관이 없고, 언제 만나든 편할 수 있어요.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관계를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라는 게 아니라 주어진 인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사람관계가 변하는 것을 억지로 잡으려고 하지 말고, 떠난다고 아쉬워하지 말며, 집착하지도 않아야 편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인연도 만날 수 있어요.

나부터 살피세요 20대 때는 서른 되고 마흔 되면 더 너그러워지고 대인관계도 유연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이해심이 커져서 남도 더 배려할 걸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나이 들어가니 너그러워졌나요? 30대든 50대든 마음을 열고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너그럽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니까 나이와 상관없이 상대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편안하게 만들어갑니다.

상대를 미워하는 대신 그냥 놓아주면, 상대와 원수질 일 없고 내 인생도 편안해집니다.

부부가 20년, 30년 살다가 이혼하게 되더라도 욕하며 헤어질 게 아니라 서로 절하며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자기를 살피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데,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란만 커지고, 갈등만 깊어집니다.

너그러워지고 이해심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은 바로 내가, 내 인생이 그렇게 변화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연의 매듭을 푸는 것은 상대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바꾸는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기대를 버리세요 결혼하고 1년쯤 지나면 신혼도 끝나고 사랑의 감정도 조금은 식는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23년이 되었는데도 남편만 보면 가슴이 뛰고 긴장된다는 부인이 있습니다.

남편을 쳐다만 봐도 좋은데,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계속 신경 쓰는 자신이 싫고 괴롭다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남편을 덜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지, 자유로운 마음을 갖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단지 남편을 더 사랑하는 게 싫어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걸까요? 남에게 사랑받으려고만 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 항상 괴로움에 허우적거립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사랑받으려면 먼저 사랑해야 하고 칭찬받으려면 먼저 칭찬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사랑하고 자기가 먼저 칭찬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사랑받고 칭찬받습니다.

내가 베푼 만큼 받을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자기가 베푼 만큼 받게 되면 괴로움이 적지만, 베풀고도 못 받으면 베풀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미움의 씨앗이라고 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미워할 일이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때는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자기를 낳아 키워준 부모, 친했던 친구, 사랑하고 좋아했던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바로 기대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바라는 것 없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기대 없이 좋아해보세요.

바다를 사랑하듯이 산을 좋아하듯이.

단풍처럼 아름답게 늙어가세요 새싹은 여름에 무성해지다가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고 결국은 가랑잎이 돼서 떨어집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흔히 ‘떨어지는 가랑잎이 쓸쓸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떨어지는 가랑잎이 쓸쓸한 걸까요? 아닙니다.

바로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쓸쓸한 거예요.

가랑잎을 보면서 ‘찬란했던 내 젊음도 저 가랑잎처럼 스러져가는구나.’ 하고 나이 들어가는 내 인생을 아쉬워하는 겁니다.

봄에 피는 꽃, 새싹만 예쁠까요? 가을에 잘 물든 단풍도 무척 곱고 예쁩니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떨어지면 아무도 주워 가지 않지만, 가을에 잘 물든 단풍은 책 속에 고이 꽂아서 오래 보관하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도 나고 자라고 나이 들어가는데, 잘 물든 단풍처럼 늙어가면 그 인생에는 이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듯 아름답게 물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등바등 늙지 않으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나이 들어가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은 무척이나 편안합니다.

잘 물든 단풍이 아름답듯이 늙음이 비참하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습니다.

순리대로 잘 늙어가는 것입니다.

나이 들면 뭐든지 지나치면 안 되고, 젊을 때처럼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러면 노욕이라고 하는데, 좀 추하게 욕심을 부린다는 뜻이거든요.

나이가 들면 자꾸 일을 벌이고 계획을 세워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게 아니라 정리를 해나가야 합니다.

인생을 포기한다는 게 아니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기 때문에, 잔가지들을 정리하면서 잘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잔소리는 거두세요 나이가 들면 어딜 가든 젊은 사람들에게 훈계하느라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반복하면 듣기 좋아할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왜 잔소리와 간섭이 늘까요? 늘 옛날 기준으로 보니까 못마땅한 것이 많이 보여서입니다.

또 살아온 경험이 많으니 젊은 사람의 미숙함이 눈에 많이 띕니다.

그러니까 자꾸 훈수를 두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러나 보통은 잔소리라고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니 한 번 말하고 안 들으면 입을 꾹 다물어야 합니다.

비가 와서 젖을 걸 뻔히 알아도 한 번 젖고 두 번 젖고 세 번 젖고 그래서 고추농사 망치면 자식들도 그제야 압니다.

이런 경험을 묵묵히 지켜봐줘야 하는데, 어찌될지 알고 있으니까 자꾸 간섭을 하는 거예요.

자식을 생각해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지만, 잔소리를 한다고 자식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귀찮게만 여깁니다.

그러니 입을 다무는 게 좋습니다.

자식이 부모 곁을 떠나고 잘 안 찾아온다면 부모는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좀 잔소리가 많구나.

남의 인생에 간섭을 하는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잔소리와 간섭을 안 해야, 자식과 같이 살아도 늘 보살핌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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