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땐 그냥 슬퍼하라
-법상 스님-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매 순간 순간 사람들과의 부딪힘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느낌 느낌들을 온전히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온전히 느낀다는 말은 그 느낌을 싫다고 피하려 하거나
좋다고 더 가지려고 애쓴다거나 하는 두 가지 좋고 싫은 분별을
다 놓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충분히 그것을 즐기고
느껴 보라는 말입니다.
느낌 그 자체가 되어 충분하게 젖어보라는 말입니다.
충분하게 그 느낌을 즐기라는 말이지요.
외롭다면 외로움을 흠뻑 느껴 보고, 즐겁다면 즐거움을 흠뻑 느껴 보고,
슬픔이 올 때 그 슬픔의 감정에 충분히 젖어 들어 보고,
질투가 날 때 그 감정을 물샐 틈 없이 지켜보라는 말입니다.
충분히 느낀다는 말은 다시 말해 그 느낌을 충분히 느끼면서
느끼고 있는 것을 잘 지켜본다는 말입니다.
음악치료하는 분들이 그러시데요.
우울할 때 사람들은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오히려 신나는
음악을 들으려 애쓰지만 그러는 것은 우울감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우울할 때는 오히려 더 우울한 노래를 들으라고 그럽니다.
우울감에 충분히 젖어보고 충분히 우울해 보고 슬플 때는
충분히 슬퍼하며 눈물을 흘려 보라는 말입니다.
내 안에서 일어난 감정이며 느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부하면 안에서 자꾸만 쌓이게 마련이고,
좋은 감정도 더 느끼고자 애쓰면 오히려 욕심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저 인연 따라 나에게 다가온 감정과 느낌들에 충분히
충실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슬플 땐 슬퍼하고 기쁠 때 기뻐하기만 하면 됩니다.
외로울 땐 외로움에 몸서리쳐 보고 서러울 땐 충분히 서러워 보고
기쁘고 들뜰 때도 그 기쁨과 들뜨는 마음을 충분히 느껴 봅니다.
그 느낌의 선율에 내 몸을 맡겨 놓고
다만 그러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분별없이 지켜보기만 합니다.
자꾸만 벗어나려고 애쓰면 오히려 더 옭아 매어 질 뿐 벗어나지지 않습니다.
자꾸 덮어두고 잊으려고 애쓰면 그 애쓰는 마음 때문에 더 큰 앙금이 남게 됩니다.
그것은 훌훌 털어 버리고 놓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잊혀졌을 뿐, 잠시 내 안 깊은 곳에 숨어 있을 뿐입니다.
마치 흙탕물을 가만히 놓아두면 물은 맑아지지만 찌꺼기는
그대로 밑에 가라앉는 것처럼 경계가 닥치면 또다시 물은
흙탕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참된 치유가 될 수 없습니다.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느껴 보고 즐기고 바라보게 되면
그 느낌을 느끼는 삼매 속에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을 경험하게 됩니다.
느낌이라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 도무지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 충분히 느끼려고 할 때 그 느낌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그 슬픔에 젖어보면서 슬퍼하는 나를 관찰하게 되면 슬픈 내가 사라집니다.
슬픔이라는 느낌을 찾을 수 없고 결국에 그 슬픔도 거짓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온갖 느낌이라는 것은 인연 따라 잠시 나타난 환영이며 신기루입니다.
관(觀)의 힘은 꿈같은 느낌의 실체를 여실하게 보여 줄 것입니다.
벗어나려고 애쓰지 말고, 더 가지려고 애쓰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충분히 알아차리면서 느끼기만 하면 됩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쉽고 간단한 것이지요.
슬플 때 충분히 슬프기만 하고 아플 땐 그 아픔과 하나되어 아프기만 하세요.
순간 순간의 느낌에 충실하여야 합니다.
순간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것 그것이 바로 최선의 수행이고
지금 이 순간의 최선의 길인 것입니다.
자꾸만 그 느낌을 어떻게 해 보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 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충분히 그 상황과 그 느낌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그 느낌에 따뜻한 눈길을 주시기 바랍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그 느낌을 바라보아 주시면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지금 이 순간 바로 그 느낌에 충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행이고 그것이 관이고 그것이 내 삶의 전부입니다.
내 삶이란 오직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순간도 없고, 지나간 순간도 없고, 오직 지금 이 순간 밀려오고 있는 그 느낌 그것이 전부입니다.
느낌을 느끼고 느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내 삶의 전부를 알아차린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랬을 때 바로 지금 그 느낌의 실체없음도 보게 되고, 공함을 보게 되며, 인연 따라 생겨난 허상을 알아차리게 되고, 분별 지을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고 버리려고도 하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고 인정하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고 아무런 문제 일으킬 것 없이 그냥 그냥 살아가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그냥 여여하게 한결같이 살 수 있는 것이지요.
참 자유롭게 참 행복하고 평화롭게 산다는 수식어를 붙일 것도 없이 그냥 그냥 언어나 수식을 다 놓아버린 채 그냥 살기만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냥도 놓아버리고 침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니 그 말도 놓아버리고 이렇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