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과 저승의 업경대 무차법회 법문 중에서 정 법륜 합장 대왕은 저승으로 사람을 불러들여 살아서 행한 일을 심판하는 왕이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고, 착한 일을 한 사람은 극락세계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염라대왕 앞에 불려오는 사람마다 하나같이 살아서 자신들 이 선행은 많이 하였지만, 나쁜 짓을 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염라대왕에게는 전생을 비춰보는 업경대라는 거울이 있어 그 앞에 서기만 하면 누구든지 한 평생 어떻게 살아왔는지 환히 볼 수 있는 거울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비구니스님 한분이 염라대왕 앞에 왔는데 이상 하게도 옷을 입지 않은 알몸 이었다.
염라대왕이 해괴한 모습에 “어찌하여 그대는 옷을 입지 않고 왔는고? 스님은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대답을 피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소리를 지르며 “어찌하여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그냥 왔냐니까?” 하고 호통을 치자 “아뢰옵기 부끄럽사오나 소승은 욕심이 없어 옷 한 벌 없이 벗은 몸으로 왔습니다.
“ “아무리 욕심이 없어도 정도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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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봐라! 저 여승에게 필시 무슨 곡절이 있는듯하니 업경대를 비추어 보거라.
“ 대왕의 명에 따라 업경대를 비추어보자 엄동설한에 헐벗고 굶주린 여자가 아기를 안고 떨고 있는 것을 발견한 비구니스님이 자신의 승복을 벗어 여인에게 입히고 속옷은 어린 아이를 덮어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여인이 스님 감사 합니다.
이 고마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좋을 지요? 여인은 흐느끼며 고마워했다.
이 광경을 본 염라대왕은“허허 그러면 그렇지 승려의 몸으로 곡절 없이 옷도 입지 않고 그냥 왔을리가 만무하지“하시며 엄동설한에 자신의 옷까지 벗어 걸인에게 보시한 이 여승에게 비단옷을 입히고 음악을 울리며 아미타불이계시는 곳으로 모셔라.
하여 극락으로 왕생 하였다.
그 후 며칠 뒤 대왕의 지시를 받은 저승사자들이 안창 땅 (지금의 고성)에서 이름난 부자 하나를 잡아왔다.
“네가 그 유명한 안창 땅 의 부자인가?” “예 그러 하옵니다.”
“평생 좋은 일 한 것과 나쁜 짓 한 것이 있으면 제다 말해보라.”
“세상을 살면서 좋은 일만 해도 인간의 한 평생이 짧은데 나쁜 짓을 할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너의 선행 한 것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해보라” 나라 안에 불쌍한 사람은 모두 제집으로 오게 하여 옷을 입히고 밥을 먹여 구제 하였는데 매일 걸인이 줄서기를 20리는 족히 되었습니다.
“그 말이 참말이냐” “어느 안전 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여봐라! 이 부자를 업경대 앞에 세우고 그 행적을 살펴 보도록 하라” 하여 이 부자를 업경대 앞에 세워 비추어 보니 한량없는 걸인 들이 대문 앞에 모여들어 밥을 달라고 사정을 하자 하인들을 시켜 발로 마구 차서 내 쫓고 농토를 빌려준 소작인들에게는 도지 쌀로 다 거두어 들여 어린 자식 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서 울부짖는 모습이 그대로 비추어져 보였다.
이 광경을 본 염라대왕이 이런 괘씸하고 짐승만도 못한 놈! 어디라고 거짓말을 늘어놓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이놈이 진 빚을 갚도록 천석 지기 농삿집에 태어나 매를 맞으며 일하도록 소가죽을 씌워 축생계로 보내 거라.
하여 한마디 변명도 해보지 못하고 축생으로 태어나고 말았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염라대왕은 바로 이러한 역할을 하는 왕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도윤회 관으로 볼 때 씨는 뿌린 대로 거두고, 행동은 지은대로 받는다는 인과의 철칙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전에서 말하는 업경대는 저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 가는 우리들 현실속의“업경대“는 바로 내 가슴이요, 나의 양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마다 매일 대하는방안의 거울이 업경대라는 생각을 가지고 외모만을 비춰 볼 것이 아니라 나의행동 나의 마음을 비쳐봐야 한다.
그래야 뿌린 씨앗에서 좋은 열매를 얻고, 지은 행동 모두가 밝고 복된 삶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