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광스님─지금 이곳에 있는 무한 풍요를 느껴라

지금, 이곳에 있는 무한 풍요를 느껴라

-지광스님-

화엄에서는 허공을 부처님의 몸과 마음이라 부른다.

부처님께서는 부족함이 없으시다.

무한 풍요와 완전 원만함이 부처님의 대명사다.

허공은 무한 풍요와 무진장의 세계다.

모자람이 없다.

그 가운데 존재하는 인간은 왜 이다지 부족함을 느끼고 괴로운 것일까? 업장중생이기 때문이다.

이기심따라 지은 죄업 때문에 그러하다.

무명업장 중생들이지만 우리들도 부처님 전에 나오면 평안해진다.

왜일까? 부처님께서 법당을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전당이라 하셨다.

우리의 수행은 칠흙 같은 무명의 암흑으로부터 광명의 세계를 향해 나가는 길이요, 해탈의 길, 혁명의 길이다.

업장소멸의 길 역시 부처님 전 밖에서는 찾을 길 없다.

현실 속에 열반을 구현하는 길이 부처님 전을 만나는 길이다.

모든 것은 변해가고 있고 구르고 있다.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는 계속 움직이고 있다.

제행무상의 현실 가운데 부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삶은 유한이고, 유한의 세계는 상대가 있다.

상대성의 세계는 항상 불안하다.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부처님 전에 나가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부처님께서도 이 길밖에 열반은 없다 하셨다.

불안하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죄를 짓고 빚을 진 것에 대한 불안함으로 항상 괴로운 것이 인간이다.

부처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한자와의 만남이고, 영원한 풍요와의 만남이다.

우리가 왜 부처님을 만나야만 하는가? 왜 법당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인생도정에는 항상 위험이 입을 딱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고난을 앞두고 등을 돌리면 불행은 항상 그대의 뒤를 따른다.

위기가 닥쳐오면 겁내지 말라.

그대의 앞길에 고난의 길이 펼쳐져 있다 하더라도 위험을 앞두고 대담하게 행동하면 험난한 길도 평탄하게 느껴지고 발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어떻게 시련을 이겨낼 것인가? 어떻게 삶의 혼돈을 헤쳐 나갈 것이며 어떻게 이 고통을 이겨낼 것인가? 어떻게 청정해질 수 있을 것인가? 부처님을 만나 신심으로써 시련을 견뎌야 하며 성실과 신의로써 소용돌이를 건너야 한다.

부처님을 따라 고통을 극복해야 한다.

부처님의 지혜와 가피로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나의 근원이신 부처님을 따르지 않는 것은 크나큰 잘못일 수밖에 없다.

자신도 죄악에 빠지고 남들도 빠지게 한다.

부처님 따라 기도하는 가운데 진리를 믿고 들으며 그것을 실천할 때 부처님의 지혜가 함께한다.

부처님 가피로 고난의 시기가 끝날 때 축복의 문이 열리는 법이다.

고통극복의 비결은 항상 부처님을 만나는 것이고, 법과 기도와 만나는 것이다.

괴로움에 직면했을 때 가장 아픔이 덜한 방법은 기도하며 정진하며 부처님 가르침 따라 사는 것이요, 아무리 힘겹더라도 부처님과 함께 가야만 한다.

인생은 끝없는 고난의 연속이고, 우리는 불완전한 상태인 채로 비틀거리며 걷고 있다 인생길에 만나게 되는 모든 고난들은 모두가 우리들의 미래를 축복하는 디딤돌이라 생각하라! 성장의 가능성은 항상 고통 속에 감추어져 있다.

보람 있는 일을 위해서 시련은 필수요건이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시련은 주어지지 않는다.

극복될 수 없는 고통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힘들다고 포기한다면 언제나 고통의 바다위에 표류할 수밖에 없다.

고통스런 체험들은 모두 인생행로에 많은 보탬이 되는 것들이다.

광활한 우주는 진정 부처님의 몸과 마음이요, 풍요와 완전 원만성취의 상징이다.

부처님과 함께 하면 극복되지 못할 고통은 없다.

부처님과 고통의 나 사이의 간격을 좁혀나가는 길, 그 길이 정진의 길이고 수행의 길이다.

그 길을 극복할수록 부처님의 가피력은 점차 강해지고 죽음이 나를 덮친다 하더라도 부처님 마음은 하나가 된 만큼 완전원만의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는 지금도 무량한 부처님의 가피력과 보살핌 가운데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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