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자기와 싸워 이기는 종교입니다 자기와 싸워 이기는 자가 불자입니다
지광스님
■ 불교는 행동의 종교입니다 부처님께서는‘단 하나를 알더라도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나의 제자’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얼마나 공부한 사람인가 하는 것은 그가 하는 행동에 의해 가름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훌륭한 교사는 실천하게끔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가르침에 중요성이 있는 게 아니라 실천하게끔, 행동하게끔 가르치는 데 요체가 있습니다.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들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 공부하는 것을 몇%나 행동으로 옮겨 삶을 의미 있게 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실천하게 하고 또 행동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가 진정으로 중요한 과제입니다.
실행되지 않는 공부, 실천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공부요 죽은 믿음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 성공하려면 생각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실천해야 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공하는 것도 성불하는 것도 모두 행동에 의해서입니다.
불교는 진정 행동의 종교입니다.
불교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 얘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가르침은 추상적 이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바른 ‘행’에 있다고 말입니다.
믿음이란, 신심이란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확고한 마음가짐입니다.
행동만이 믿음을 드러낼 수 있는 시험대입니다.
■ 불교는 순간을 살리는 종교입니다 흔히 깨친 다음 사회로 돌아와 보살행을 한다는 얘기들을 합니다.
그 같은 얘기는 불교의 근본가르침과는 궤도를 달리합니다.
최상의 가르침인 불교를 믿고 따르면서도 세상에 이바지하는 것이 별로 없고 창조적인 사업 하나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지경이라 한다면 무언가 잘못돼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불교는 지금 여기 이 자리를 이 순간을 살리는 종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또 다른 어느 세월을 기다린다는 것 인가요? 지금 이 순간 부처님의 행을 펼쳐보이고 부처님의 말을 하고 부처님의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선사(禪師)들이 흔히 얘기하듯 동정일여(動靜一如)인것입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그 언제 어떤 상황이건 순간순간 부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흔히들 무명중생이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중생들이 끊임없이 미망과 망상 망각 속에 스스로의 본래 진면목을 잊고 살기에 그런 것이지 본래 무명이란 없는 것입니다.
착각일 뿐입니다.
생사거래도 번뇌망상도 본래 허망한 것입니다.
모두가 버릴 것이 없는 도리를 깨달았을 때 진정한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생사와 열반이 하나라 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살리는 것입니다.
죽어서 천당간다 극락간다 하는 것도 모두 방편일 뿐입니다.
극락 천당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극락으로 천당으로 살지 않고 어디에 또 다른 극락 천당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 수행은 자기와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잊지 않아야 될 사실은 이 순간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 순간 몸과 마음을 다해 자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천해야할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생존경쟁이라 부르면서 남을 쓰러뜨리고 짓밟고 넘어뜨리는 것을 경쟁으로 생각합니다.
경쟁은 남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를 이기는 것, 남과 싸우는 것보다 자신과 싸워 이기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 자신과 싸워 이기고 나 자신의 능력을 한 단계 승화시키도록 노력한다면 남들과의 싸움은 저절로 이기게 돼있습니다.
자기의 수준을 높이면 싸움은 저절로 이기게 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갈고 닦으려 하지 않고 갖가지 부정적이고 부조리한 방법으로 상대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갖가지 사회악이 만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는 항상 남들과 싸우기보다 자신과 싸우기를 가르칩니다.
내 마음속의 번뇌와 미망과 싸워 이기는 사람이 참 불자라 가르칩니다.
수행은 다른 게 아니라 자기와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들과 싸우려 하기보다 자신과 싸우는 참 수행자의 길을 간다면 인생은 얼마나 의미로운 세상이 될까 생각해 봅니다.
스스로를 갈고 닦아 수행이 깊어지면 부처님 됩니다.
신이 됩니다.
순간순간마다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나가는 사람이 부처님의 아들 딸이 됩니다.
■ 불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투철히 실천하는 사람 불교를 수행의 종교라 하듯이 불교적 행동의 상징은 보현보살입니다.
보현보살 10종대원은 수행의 준칙입니다.
4대보살 중 행을 가장 으뜸으로 하시는 분이 보현보살이십니다.
대지문수보살 대행보현보살 하는 것처럼 보현행은 불자 수행의 표상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한 동네에도 부유한 자 가난한 자 슬기로운 자 어리석은 자 등으로 나뉘어 집니다.
이 같은 이유는 결국 그들의 정진력 능력 공덕력 지혜력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 이 모두가 현세에 태어나 한평생 거두어들인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진실불허 무실무허(眞實不虛 無實無虛)라 하는 것처럼 우리가 부처님 전에서 몸과 마음을 다해 수행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공덕으로 승화된다는 인과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마음, 영혼들 역시 모두가 각자의 노력과 영적 깨달음의 정도가 다르기에 독특한 영적 진동을 반사합니다.
계향 정향 혜향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다해 열심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미리미리 갈고 닦아 나간다면 부처님께서도 우리를 항상 지켜보시는 가운데 거룩하고 장엄한 부처님의 보살핌을 항상 베푸실 것입니다.
불교는 진정 활동 그 자체이고 부처님 전에서 가득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수행 기도정진 가운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투철히 실천하는 경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