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을 비는것
-법륜스님-
복을 비는 것이 잘못인가요? 기도할 때 자기가 원하는 바를 내세우면서 108배하는 것이 좋은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원하는 게 있습니다.
“이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건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 사람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 사람은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등 늘 바라는 게 많습니다.
버스 타러 가서는 버스가 바로 왔으면 좋겠고 타고 나면 앉을 자리가 있기를 바라며 시간 맞춰 좀 빨리 갔으면 좋겠다 등 늘 바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대부분 바라는 것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것을 “욕구”라고 하기도 하고, “욕망”이라고도 부릅니다.
바라는 것이 이뤄지면 기분이 좋고 이뤄지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죠.
그런데 안 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습니다.
원하는 것이 안 될 때가 더 많은 건 왜 일까요? 예를 들어 차를 타고 가면 길이 막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길이 막히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막히는 시간에 일어납니다.
한산한 새벽 시간에 나오면서 길이 안 막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지요.
주말이나 출퇴근 시간에 갑자기 어디에 갈 일이 있을 때 오늘도 길이 막혀 늦겠다.
길만 탁 뚫리면 늦지 않게 갈 텐데..
이렇게 바람이 일어납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두고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죠.
공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일어나지요.
결국 하나하나 따져보면 바라는 것은 안 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분이 상쾌하기보단 언짢을 때가 많아요.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어요.
따라서 바람이 크면 괴로움도 크고 바람의 강도가 약하면 괴로움도 적어요.
그러므로 괴로움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바라는 마음 때문에 생긴 것이지요.
길이 막히면 버스가 늦기도 하고 기사가 좀 빨리 가면 일찍 도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생각을 하던 안 하던 일어나는 일인데 그걸 가지고 빨리 갔으면 빨리 왔으면 하고 생각을 일으키고 기대를 합니다.
우연히 맞아떨어지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됐다고 기뻐하지만 그건 내가 원했기 때문에 된 것이 아니지요.
“아,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버스는 때 되면 오는 겁니다.
원하는 바는 사람마다 다르고, 또 상황 따라 달라지지요.
금방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또 금방 맑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사람 마음이 죽 끓듯 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해탈의 길은 일어나는 마음을 따라 집착하지 말고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다만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구나”하는 겁니다 나무를 심으면서 물은 주어야 되겠고 물주기는 싫어서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 순간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그냥 볼 뿐입니다.
한 생각 일어난 것에 집착하면 즉 비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비가 안 오면 괴로워집니다.
그저 “이런 생각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내버려두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그것을 붙들고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생이 괴로워집니다 기도할 때 “이거 해 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 하는 것은 욕구를 따라가는 것이지요.
그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닙니다.
해탈의 길이 아닙니다.
잡고 있다가도 기도할 때는 탁 놔버려야 그게 기도입니다.
그런데 평소엔 가만히 있다가도 기도할 때 도로 잡지요.
그런 것은 올바른 수행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의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 다짐을 굳히는 공부를 할 때는 바람을 분명히 하고 신념을 굳건히 하기 위해 원하는 것은 내세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수행법은 아닙니다.
법륜 스님의 卽問卽說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