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스님─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

광덕스님

참으로 참되고, 행복하게 되고,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진리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 부처님이 원하시는 바입니다.

내 생명에 깃든 부처님의 진리광명이 나타나서 이 세상을 밝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은혜가 내 생명에 깃들어서 우리들이 은혜롭게 살고, 진리로서 살고, 밝게 살고, 역사를 빛내며 사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우리 생명 속에 깃든 부처님의 진리가 그렇게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혹해서 그 뜻을 모르고 다른 데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존재가 단순히 내 원대로 생각대로 내 업대로 사는 존재가 아니고 보다 큰 사명을 지니고 있고, 부처님에 있어서도 중요한 존재이며, 우리가 참되고, 우리가 밝아지고, 우리가 행복하고, 우리가 진리에 순응하는 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은 나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이 세계가 잘 되는 것입니다.

이 땅 이 세계가 잘 되면 이 땅에 태어나는 사람들이 모두가 잘 됩니다.

이 땅에 공산주의 제도가 틀이 잡히면 이 땅에 태어나는 사람은 공산주의자로서 불가불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반야바라밀 진리가 설정되면 이 땅에 태어나는 사람은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반야바라밀을 행함으로써 이 역사를 꾸미게 됩니다.

그런 만큼 부처님께서 우리들의 존재를 중요한 존재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진리의 문을 열어서 우리 스스로 값있는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대와 역사가 함께 값있는 시대와 역사가 되어서 부처님이 참으로 원하시는 바 빛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본래 사명 무엇이 큰 사명인가.

큰 사명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행복해지는 것인가.

바로 자기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굳세지고 지혜로워지고 보다 밝아지고 보다 용기 있고 진리로 더욱 성장하는 것입니다.

진리로 성장하는 것이 자기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진리로 성장하면 등불이 밝아지는 것 같아서 나만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 내가 가는 곳, 내가 있는 터가 다 한꺼번에 밝아집니다.

내가 밝아지면 나라가 밝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큰 사명을 완수한다 함은 반야바라밀 수행을 바르게 하고 반야바라밀의 믿음을 가져서 우리의 행과 우리의 생각 하나하나가 진리의 실현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되겠다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우리들이 부처님께 받은 큰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필경 이렇게 해서 성불하자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현상 저 너머로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보고 듣고 느끼는 데 매달려서 마음이 거칠어지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화가 납니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화가 나면 자기 마음만 불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집안 식구가 불행해집니다.

이웃도 불행해지고 사회 전체가 불행해집니다.

자기 혼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되면 자기 집안도 한꺼번에 따라오고 우리 이웃도 우리 사회도 한꺼번에 따라옵니다.

그래서 국민 전체의 마음이 밝아지고 한 사람 한 사람 기쁘게 살고 우리 법등이 더욱더 커져서 더욱더 큰 힘으로 성장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점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다행히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저는 우리들의 현상이 아무리 어둡다 하더라도 현상에 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밝은 것을 생각하고 밝은 것을 꿈꾸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밝은 것이 미래에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생명 속에 이미 부처님의 은혜로 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 저 너머에 이미 와 있는 광명에 눈을 둬야 합니다.

이렇게 하고 기도를 해야 기도성취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그냥 기도해가지고는 일심무념이 되어서 그런 생각들이 다 무너지기 전에는 성취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불법을 배우고 지혜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러한 방법을 배워서 진리의 광명이 빛나는 것을 봐서 끊임없이 마음의 눈으로 지켜보고 감사하고 그 진리가 온 세계에 퍼지고 있는 것을 염하고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정진을 하면 좋겠습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말을 보면서 우리 불광 형제들마다 제 각기 보는 것이 다를 것입니다.

부처님의 형상으로서 여기 나타나신 것도 나타나신 것이 되고 부처님의 법문을 만나는 것도 부처님이 나타나신 것으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부처님을 만나고 부처님의 법문을 만난다고 하는 것, 이것은 매우 희유한 일입니다.

우리들은 다행히 부처님 법문을 만났기 때문에 금생에 설사 깨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믿음을 한 번 냈거나 계를 한 번 받은 공덕으로 마침내는 성불합니다.

불법 인연을 맺어준 사람은 모두가 선지식 우리들은 어쨌거나 인연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불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에 태어나서 나이가 50이나 되는 분이 불교가 전연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 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모르는 것인가 하고 보니까 종교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생활에 묻혀서 살았지 깊은 진리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아마 저도 병이 나지 않았으면 불법을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불법 아닌 다른 종교를 가까이 하거나 아니면 다른 학문에 매여 있거나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성격으로 봐서는 궁극적인 밑뿌리를 파지 않으면 못 견디는 그런 성질이 마침내는 돌고 돌아서 불법을 만났겠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하여튼 불법을 만난 것은 희유한 일입니다.

불법 만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불법 인연을 맺어준 사람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불법에서 선지식은 무상도를 깨달은 큰스님만이 선지식이거나 부처님이나 도인만이 선지식이 아닙니다.

나에게 아미타불 일구를 가르쳐주거나, 관세음보살 일구를 가르쳐주거나, 나를 법회 장소로 인도해주었거나, 법문을 들을 수 있게 해주었거나, 독경할 수 있는 법등 모임에 불러주었거나 불법 인연을 맺어준 사람은 다 선지식입니다.

그렇게 해서 불법을 만나는 것은 생사에서 해탈하는 길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중요합니다.

불법을 만나면 언젠가는 성불합니다.

불법 만났다가 불법을 욕하고 갔다 하더라도 불법인연으로 해서 다음 다음 생에 가서 불법 만나서 마침내 깨달아서 성불합니다.

불법을 비방하더라도 좋으니 불법 만난 그 인연으로 성불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불법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불법 인연을 심으리 저도 언젠가 어려운 일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종단 관계 일을 하고 있을 때인데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봉은사 땅이 압류 당해서 공매처분 당한 일이 생긴 적이 있습니다.

제가 총무원 총무부장 책임을 지기 전에 있던 일인데 제가 와보니까 누가 책임을 져도 책임을 져야 되는 일이었지요.

제가 보기에는 천년고찰이 세금으로 인해 가지고 압류 당해서 공매처분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그 때가 섣달 그믐께인데 공매 날짜가 1월 12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열심히 기도를 하고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긴다는 생각과 그리고 ‘최후에 가서 만약 집행이 된다고 한다면 내 주장을 분명히 이 세상에 남겨놓고 이 땅을 하직하겠다.

내가 한 말을 역사 앞에 증거로 남겨놓을 것이다.

지금 천년 고찰이 어떠어떠한 일로 인해서 터가 없어졌다 하고 증거를 남기고 끝내겠다.’ 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 때 기도를 했는데 낮에는 바빠서 뛰어다녀야 하고 밤이면 8시나 9시에 들어와 법당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다가 이런 생각이 났어요.

‘내가 기도를 왜 하느냐.

며칠 후에 일이 안 되면 죽을 테니 죽기 전에 이 세상에 남아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불법 인연을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놓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목탁을 들고 종로 거리로 우미각 골목으로 무교동 골목으로 시청 뒤로 해서 돌았습니다.

그 해가 대연각 호텔에 불이 났던 해입니다.

대연각 호텔 불난 터로 해서 남산 밑으로 돌아서 시내 골목을 목탁을 치고 염불하며 돌았습니다.

‘법당에서만 목탁 치고 염불할 것이 아니다.

밤거리 어둠의 거리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는 이 거리에 가서 가사입은 사람이 목탁을 울리고 염불하면서 지나가면 나를 보고 비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욕 안 해도 좋다.

욕해도 좋다.

어떻게든 욕하든지 말든지 나를 보고 한 생각 일으킨 사람들에게 불법 인연이 심어질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공개합니다.

나의 뒤를 하루 동안 따라다니면서 같이 기도해 주신 거사님이 한 분 계신데 대구에 계신 윤갑진 거사님입니다.

그 겨울에 내 뒤를 따라다니며 합장하고 염불해 주셨는데 지금 고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흥교 스님이 내 사제인데 밤에 목탁을 들고 거리에 나가니까 내 뒤에 합장하고 따라오면서 염불해주셨고 그 외에는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인연을 만났다고 하는 것 그렇게 해서 불법 인연이나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심어놓고 가겠다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랬더니 12월 30일이 되니까 사태가 풀렸습니다.

종교단체 과세에 대해서 적절한 처우에 대한 담화가 나오고 공문이 재무부로 나가고 해서 1월 6일 거의 확정되었습니다.

그래서 6일 밤에 봉은사에 왔습니다.

제가 62년부터 65년도 까지 봉은사에 있었습니다.

봉은사 주지로 있으면서 부처님 모시고 기도했던 도량인데 그 도량이 공매처분된다고 하니 눈물이 났었습니다.

그 때 6일 저녁에 부처님 가호력으로 문제가 해결되었고 저도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부처님 앞에 가니까?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부처님의 인연을 만났다고 하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가사를 입고 밤거리에 목탁을 치고 다니고 술 먹고 주정꾼들이 오락가락하는 그 무교동 거리에서부터 우미관 골목으로 사람 많은 데만 목탁을 치고 다녔으니까 사람들이 별사람 다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불법 인연을 심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고 죽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 혼자서 조용히 법당 안에서 목탁 치다가 여의치 않으면 죽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설사 불교를 비방하더라도 그 인연으로 성불한다고 합니다.

여기 모인 형제들은 다행스런 가운데서도 다행스러운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나시어서 깨달음의 가르침을 여시고 법을 설하십니다.

깨달음의 가르침, 이것이 중요합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입니다.

깨달음은 미혹한 것을 없앤다는 뜻입니다.

미혹을 없애면 어떻게 되는가 진리 세계로서 자기 자신이 진리 덩어리라고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천당이면 천당 1가, 천당 2가, 천당 3가쯤 보내준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완성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신이 되는 것입니다.

완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통해서 진리 자체로 자기 회복을 시키는 것입니다.

불교의 특징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의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은 그 이전에 편안함을 구하고 불행에서 벗어나기를 구하고 안락을 구합니다.

그래서 진리에 가까이 가면 저절로 그런 것이 오기 때문에 먼저 복을 받는 것부터 시작을 하지마는 나중에 진리를 깨달아서 생사가 없는 도리를 요달하여 진리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불교는 깨달음을 가르치는 것임을 우리 형제들은 아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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