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부처님/서옹대선사◆ 아시다시피 지금은 과학문명시대입니다.
과학문명은 과학문명을 비판해서 과학문명을 초월하는 그러한 차원으로 가는 근본바탕이 본래 없습니다.
그 근본원리가 없어요.
그래서 분열과 대립을 면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을 더욱 발전시켜야 하지만 과학문명만으로는 인류가 도저히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위기의 벽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이 벽을 타개하려면 훌륭한 종교의 근원적인 원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과학지성과 모순이 되거나 무조건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종교를 가지고는 저 중세기가 아닌 지금 이 현실에서는 결코 통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과학과 모순이 되는 종교에 절대 복종하고 절대 의지해서 타율적으로 복종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저 중세기로 돌아가자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과학문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종교는 어떠한 것일까요? 과학문명이나 이성과 모순이 되지 않으면서 과학문명을 초월해서 과학문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주 자율적으로 역사를 창조하는 종교라야 이 과학문명의 막힌 벽을 타개해서 인류를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종교와는 달리 우리 불교야말로 인간 속에서 자기 참모습을 개발한 종교인만큼 자주 자율적으로 자유로이 살면서 어디든지 걸리지 아니하고 자유자재하게 새 역사를 창조하며 과학을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불교를 믿거나 혹은 다른 종교를 믿더라도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종교를 믿는다면 그것은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종교는 감성을 초월했을 뿐만 아니라 참이다, 거짓이다, 착하다, 악하다고 비판하는 이성적인 가치까지도 초월한 근본원리라야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믿어도 단순히 감성적인 가치를 위해서 믿는다면 그것은 옳은 불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감성적인 가치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고 이성적 또는 과학적으로 해결해야 풀리는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성이나 과학만으로는 또 한계가 있어요.
우리 인생문제라든가 세계의 깊은 문제는 과학만으로는 해결이 안 돼요.
이성까지 초월한 부처 마음자리, 우주의 근본생명체를 깨닫지 아니하면 해결이 안 됩니다.
그 참모습이, 말하자면 부처님이에요.
부처님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3천 년 전에 인도에 나신 부처님도 훌륭한 부처님입니다.
또 여러분이 모시는 등상불도 훌륭한 부처님이에요.
하지만 이와 같은 부처님은, 말하자면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참다운 부처님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그래서《금강경》에 보면 “만일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색상이나 형상으로 보려고 하거나 음성으로 구하려고 하면 이 사람은 삿된 길을 행하는 것이 되어서 여래를 보지 못한다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고 했듯이 음성이나 형상으로는 부처님을 구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더욱더 깊이 들어가서 부처 마음자리로 돌아가면 그 자리는 우주를 창조하고 형성하는 진리입니다.
단지 등상불을 모셨다 하더라도 더 차원이 높은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법신불,보신불,화신불도 초월한 것입니다.
또 우리의 일거일동도 이 불가사의한 법계의 모든 것을 다 창조해 내는 한량없는 공덕이 되는 것이니 조그마한 불사가 아니라 바로 무한의 부처 마음자리 작용입니다.
그러므로《법화경》에서 말씀하기를 “아이들이 장난삼아 흙덩이로 부처님을 조성하거나 모래로 부처님 탑을 쌓거나 또는 법당에서 한 번 합장하거나 나무불하더라도 이미 성불을 마쳤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한량없는 공덕을 지어서 성불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성불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마음자리에 들어가면 우리는 한량없는 공덕을 벌써 지었고 이미 성불해서 다 구제된 것이 인간의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참모습 바탕에서 인류는 평등하고 또 둘이 아니고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자비심이 나와서 우리는 자비와 화합의 바탕에서 이 세상의 모든 분열,대립,알력을 해결하고 평화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 불교의 자비화합 바탕에서 서로의 대립을 화합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우리 민족도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고 전 인류를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참모습이 진실한 인간상이며, 인간의 참다운 실존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도 여러 가지 차원이 있는데 이에 대한 법문을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풍혈스님이라고 하면 임제종을 크게 일으킨 큰스님입니다.
풍혈스님한테 어떤 스님이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물었어요.
그러자 풍혈스님이 “금사탄두 마랑부(金沙灘頭 馬郞婦)니라”라고 대답했지요.
‘금사탄두 마랑부’란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중국의 협부라는 고을에 화현한 보살상입니다.
협부땅에 어느 날, 천하의 절세미녀가 나타나서 마을의 여러 총각들한테“ 〈보문품〉을 외우면 내가 그 훌륭한 분과 결혼하겠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많은 총각들이 그 처녀와 결혼하려고 〈보문품〉을 다 읽었는데 한 20여 명이나 됐어요.
그런데 아름다운 처녀는 한 사람이고 신랑감이 20여 명이 생겼으니 어떻게 결혼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처녀는 다시 문제를 내서《금강경》을 다 외우면 결혼하겠다고 그랬어요.
그러자 총각들이 또《금강경》을 다 외웠는데 한 10여 명이 되었어요.
그러니 10여 명도 처녀 하나와는 결혼할 수 없으니, 다시 그들에게《법화경》일곱 권을 한 사흘 동안에 다 외워 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총각들은《법화경》을 사흘 동안 읽었는데, 마씨(馬氏) 총각만 다 외웠고 딴 사람들은 낙제가 됐어요.
그래서 그 총각하고 아름다운 처녀가 결혼을 했는데, 뭐 여러 가지 말할 것 없이 첫날밤도 치르기 전에 신부가 죽어 버렸어요.
그래서 마씨가 장사를 잘 지내고 나서 나중에 어떤 노장님이 와서 가르쳐 준 대로 무덤을 파보니 황금 덩어리가 가득 차 있었어요.
이와 같이 관세음보살이 마씨의 부인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마랑부’라고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풍혈스님한테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물으니 “마랑부다”라고 대답했어요.
그러면 ‘금사탄두의 마랑부’라고 하면 화현한 보살상인데 어찌 진짜 부처가 되겠습니까? 보통 차원으로 생각하면 진짜 부처가 될 수 없어요.
그런데 천하의 제일 임제 전통을 이은 정안대종사가 “마랑부가 진짜 부처다”라고 대답했으니,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차원이 깊은 자리에서 초월한 마랑부, 그가 바로 자신을 초월한 자유자재한 진짜 부처입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차원이 높은 데에서는 이와 같이 아무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해요.
보통 세상에서 말하는 경지가 아니라 아주 깊고 높은 부처의 경지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참모습이에요.
이러한 자리라야 오늘날 과학문명의 노예로 전락한 우리 인류를 해방시키고, 자유자재하게 과학문명의 주인공이 돼서 미래의 훌륭한 역사를 창조하고, 인류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훌륭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처 마음자리 불법이라는 것은 우리 생각 또는 생각을 끊은 무의식도 초월해서 그 깨달음의 경지도 초월해서 자유자재한 데 있어요.
그러니까 설명을 할 수 없으니 그 자리를 그대로 한 번으로 말하고 끝마치겠습니다.
한밤중에 해가 뜨고 사방의 한량없는 바닷물이 거꾸로 흐르도다.
저 바깥에 드러난 기둥들, 저 등롱 석등롱, *그러한 등롱이 크게 노래부르고 *등롱(燈籠):등명(燈明)을 밝히는 데 쓰는 초롱.
재료에 따라서 석등롱(石燈籠), 금등롱(金燈籠) 등이라고 하는데 《오분율(五分律)》권18 등에 만드는 법이 설명되어 있다.
노주, 그 드러난 기둥들이 여러 가지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들이 춤을 추도다.
이것은 어떠한 소식입니까? (일본 고려사 봉불식 법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