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바 없는 마음을 내라” /
지안스님
(조계종 고시위원장)
육조 혜능 선사가 출가 전에 가난한 나무꾼으로 살았다는 것은 선종사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홀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와 저자에 팔아 생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어느 날 나뭇짐을 지고 저자거리에 가서 팔았는데 마침 객주 집 주인이 사서 짐을 지고 따라가 짐을 내려놓고 나오게 되었다.
바로 그때 객사에 투숙해 지내던 어떤 사람이 책을 낭랑하게 읽고 있었다.
무심코 듣고 있던 육조 스님(당시 나무꾼 노씨)의 귀에 “응당히 머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는 말이 들려왔다.
그 순간 귀가 번쩍 뜨이면서 알 수 없는 강력한 느낌이 가슴 속에 와 닿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책을 읽던 사람에게 그 책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이건 불경 가운데 (금강경)이라는 책이요.”
이 일이 인연이 되어 나무꾼 노씨는 드디어 출가를 단행하여 황매산으로 오조 홍인 스님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응당히 머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말은 금강경 ‘장엄정토분 제10’에 나오는 구절이다.
금강경이 중국 선종사에서 중요시 여겨진 동기는 바로 이 구절을 듣고 발심하여 출가한 육조스님과 깊은 관련이 있다.
금강경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터득하고 있었다는 수보리와 부처님이 문답형식의 대화를 전개해 나가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체 관념적인 고집을 없애라는 것이 핵심 대의이다.
경 본문에서는 관념적 고집을 상(相)이라는 말로 표현해 놓고 있다.
이 상을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넷을 들고 또 법상(法相), 비법상(非法相)이라는 말도 나온다.
육조스님 출가동기 금강경의 핵
마음이 없으면 ‘업의 충돌’도 없어
‘머무는 바 없는 마음을 내라’는 것은 일체 상(相)을 벗어난 마음을 쓰라는 뜻이다.
이를 달리 함이 없는 마음 무위심(無爲心)이라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경우 남을 도와준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무심하고 순수한 상태 그대로, 도와 줘도 도와준 것이 없는 마음이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말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있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이때 B라는 사람이 A나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A를 도와주었다라고 자기가 한 일을 남에게 자랑을 하거나 자기의 선행을 고의적으로 업적을 삼으려 하면 도와준 행위야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지만 그걸 자랑하거나 과시하려는 마음은 좋은 마음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큰 도움을 주고도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며 자기의 선행을 끝까지 숨긴다면 이것이 도와준 사람을 더 감동하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관념에 붙들리지 않는 상(相)이 없는 마음이라야 무구청정(無垢淸淨)한 본래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어떤 관념에도 지배되지 않아야 이것이 바로 깨달음에 일치된 마음이다.
이 마음을 내면 중생세계에 업의 충돌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불교신문 2791호/ 2월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