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전유경(箭喩經) – 독화살의 비유

일의 선(先)·후(後) 일깨우는 지혜의 경전
화살의 비유 들어 사변적 문제 배제

“우리 인간은 무엇때문에 착하게 살아가야 하고, 또한 악과 고통은 왜 존재하는가”하는 질문은 모든 종교의 본질적인 존재이유이자 풀어가야 할 당면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질문에 납득할 수 있도록 속시원히 대답을 해주고 있는 종교는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

원래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각 종교의 교주들은 한결같이 우리네 범부와는 달리 말씀을 아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완전한 것은 미완성처럼 보이고 가장 긴 직선은 조금 굽은 것처럼 느껴지듯이, 그분들의 참된 가르침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20세기의 대표적인 웅변가로는 영국의 처칠이 손꼽히고 있는데 그는 언젠가 어느 초선(初選) 국회의원의 처녀연설을 경청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청산유수와 같이 유창한 연설이었지요.

그러나 처칠은 그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고 합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듬거리게”라고…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일화라고 생각됩니다.

《전유경》에서도 이와 같은 예를 볼 수가 있는데, 이 경은 《중아함(中阿含)》에 수록되어 있는 아주 짧은 경전이지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즉 부처님께서 화살(箭)의 비유(喩)를 들어서 제자로 하여금 인간 실존의 철학적인 의문을 풀어가게 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은 팔리어로 마룬캬풋타(Malunkyaputta)인데, 한역에서는 만동자(만童子)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바라문 출신인 마룬캬풋타는 출가한 지 6년밖에 되지 않은 수행자였는데 어느 날 생각하기를, “부처님은 6년만에 깨달음을 얻으셨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였는가? 깨달음은 고사하고 내가 안고 있는 의문조차 제대로 풀지 못하는 너무 절망적인 내 모습이 아닌가? 그래 나의 이러한 의문들을 부처님께 여쭈어보고 속시원히 말씀해주신다면 계속 수행을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미련없이 이곳을 떠나기로 하자”라고 다짐하고 부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는 긴장된 어조로 질문했지요. “부처님 우주는 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세상에 종말은 옵니까, 오지 않습니까? 영혼과 육체는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만약 둘이라면 육체가 죽은 후 영혼은 어디로 갑니까?” 숨돌릴 틈도 없이 물어오는 제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부처님은 “마룬캬풋타여! 내가 너에게 한가지만 물어 봐도 좋겠느냐?”라고 물으신 후, 제자에게 양해를 얻고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여기 지나가는 한 나그네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어디선가 독화살이 날아와 그의 가슴에 박혀버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독화살을 뽑으려고 하자, 정작 화살을 맞은 사람은 화살을 뽑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이 화살은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누가 쏘았는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무슨 이유로 쏘았으며, 어느 방향에서 쏘았는가? 화살의 독은 어떤 성분의 것이며, 화살의 깃은 매털인가 닭털인가? 이 모든 문제를 알기 전에는 결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자, 나그네의 목숨은 어떻게 되겠느냐? 마룬캬풋타는 “그는 독이 온 몸에 퍼져서 죽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렇다, 그는 자신의 의문이 채 풀리기도 전에 죽고 말 것이다. 그에게 있어 가장 급선무는 무엇보다도 우선 독화살을 뽑아내는 것이다. 그처럼 이 우주가 끝이 있든 없든 종말이 오든 오지 않든 간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너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윤회의 세계로부터 해탈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너에게 있어 가장 급선무일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려 주십니다.

즉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에만 얽매여 있는 제자를 나무라신 것이지요. 사실 독화살에 맞은 사람에게 제일 급한 것은 독화살을 뽑는 일이지 독화살의 실체를 밝히는 데 있지 않음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명한 일인 줄 알면서도 곧바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바로 중생들의 고통으로 연결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유경》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일의 선후(先後)를 정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것을 일깨워주는 경전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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