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육성 살아있는 초기 경전
출가·재가 수행방법 명쾌한 해답 제시
근래에 접어들면서 《아함경》에 대한 관심이 부쩍 고조되고 있는 것은 늦은 감이 있으나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함경》은 초기불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 기초자료가 되고 또한 부처님의 말씀(직설)에 가장 가까운 경전이라는 점들이 차차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사안을 놓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문제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 때문이듯이, 대승경전을 소홀히 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그 원천이 되고 있는 《아함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대승불교사상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입니다.
《아함경》은 수많은 소승경전들을 집대성해 놓은 것입니다. 무슨 소리냐 하면 《육방예경》,《사문과경》,《숫타니파타》 등의 여러 경전들이 모두 아함경전을 구성하고 있는 단독 경전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함경》은 한 권의 경전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방대한 여러 경전군(群)을 말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아함경전은 초기경전의 전집(全集)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주지하듯이 초기불교시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가르침을 될 수 있는 대로 기억하기 쉽게 게송이나 짧은 산문 형태로 만들고 이것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왔는데, 이렇게 암송하여 구전(口傳)되고 전승된 가르침이라는 의미에서 《아함경》은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아함(阿含)’이란 범어의 ‘아가마(agama)’를 소리나는 대로 한자로 옮긴(音寫)것인데 ‘간다’는 의미인 ‘gam’에다 ‘이쪽으로’라는 뜻을 나타내는 접두사 ‘a’를 붙여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전승(傳承)된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의 초기형태를 찾을 수 있는 경전일 뿐만 아니라, 대승경전도 실은 《아함경》의 기조 위에서 변화하고 발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아함경》은 초기에 설법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엮어 모은 것이기 때문에 그 형태가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전승된 가르침이라는 의미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팔리어본은 5니카야(Panca-nikaya) 즉 오부(五部)로 나누어져 있는데, ①장부(長部)가 34경이고 ②중부(中部)는 152경 ③상응부(相應部)는 7,762경 ④증지부(增支部)는 9,557경 ⑤소부(小部)는 15경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역본은 네 가지로 분류되어 있는데, ①장아함(長阿含 : 22권 30경) ②중아함(中阿含 : 60권 222경), ③잡아함(雜阿含 : 50권 1,362경), ④증일아함(增一阿含 : 51권 472경)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한역본은 한문만이 지니는 묘미와 특색 때문에 경명(經名)만으로도 알 수가 있는데, 즉 내용이 비교적 긴 경전을 엮어 모은 것이 《장아함경》이고, 중간 길이의 경전이 《중아함경》 짧은 길이의 경전이 《잡아함경》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증일아함경》은 법수(法數)와 관련된 경전만을 모아 엮은 것임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위의 5니카야와 4아함을 비교해 보면, 우선 《장부》와 《장아함》은 양과 그 내용이 서로 비슷하고 《중부》와 《중아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상응부》와 《잡아함》은 명칭도 다르고 수량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와서 증감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나 내용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증지부》와 《증일아함》은 양쪽이 다 법수를 다루고 있고, 《소부》는 다른 장경에 수록되지 않은 경전만을 모은 것으로 한역본에는 해당하는 경전이 없습니다.
때문에 한역본이 없는 《숫타니파타》, 《법구경》,《장로니게》 등이 수록되어 있어 자료적인 면에서도 높이 인정받고 있으며 가장 후대에 편찬 된 것입니다. 다만 사분율(四分律)이나 오분율(五分律) 에서《잡아함경(雜阿含藏)》의 내용과 비슷한 부분이 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5니카야와 4아함이 같은 계통의 경전류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번역하였고 그 내용의 요점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함경》은 그 중요성을 입증이나 하듯이 《5니카야(Nikaya)》가 남방불교권에 전해지고 북방불교권에는 《4아함》이 한역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방불교와 북방불교가 상이한 전통과 경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결같이 《아함경》의 근본교설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습니다.
즉 《아함경》은 불교연구의 출발점이자 불교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출시켜 주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한역본을 중심으로 말씀드리자면, 《장아함경》은 기원 후 413년 불타야사(佛陀耶舍)와 축법념(竺法念)이 공역(共譯)을 하였고, 《중아함경》은 397년 승가제바(僧伽提婆)가, 《잡아함경》은 443년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번역하였는데 경전 성립사적으로 볼 때는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그리고 《증일아함경》은 397년 승가제바(僧伽提婆)가 번역한 것인데 그 내용의 사상적 입장과 법수(法數)의 취급 방법 등이 매우 정연하게 편집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가장 후대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동남아의 불교국가 즉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에서 유통되고 있는 경전들은 모두가 《5니카야》에 속하는 경전들입니다. 또한 서구의 불교학자들은 이 《5니카야》를 중심으로 불교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별도의 문제이지만 《아함경》의 경우 편집 방침을 놓고 후대의 학자들 사이에서 이견(異見)이 있듯이, 팔리어본의 《5니카야》와 한역본의 《4아함》을 비교해 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몇 번인가의 수정을 거쳐서 현존하는 《5니카야》와 《4아함》으로 정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한역의 《4아함》은 여러 부파(部派)의 경장(經藏)이 각기 따로 따로 번역되어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한역본, 즉 총 183권 2,085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 중에는 편집하는 과정에서 중복된 것이라든가 내용은 같고 형식이 다른 것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어떤 이들은 《아함경》은 맨 처음에 공부해야 된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맨 나중에 보아야 된다고들 하는데, 글쎄요. 제 입장에서는 원(圓)과 같은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즉 원을 그릴 때 첫 출발점이 바로 마지막 점과 만나는 곳이듯이 《아함경》은 불교라는 긴 여로에서 제일 먼저 읽어두어야 할 안내서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귀로에서 전체를 다시 점검해보는 확인 필증과도 같다고나 할까요.
그렇다면 《아함경》은 이처럼 방대한 양을 통해서 과연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아함경》에는 다양한 기초교리가 자유롭게 설해져 있고 또한 철학적인 사유 방법과 진리인식의 과정, 그리고 그 결과로 자각된 연기설 등으로 채워져 있지만, 교설의 기본 사상은 사성제(四聖諦)로 집약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노루나 토끼의 발자국이 모두 코끼리의 발자국에 지워지듯이(象足痕喩) 여러 가지 교설은 사성제의 내용에 다 포섭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삼법인을 비롯해서 불교의 체계적 교설과 출가·재가의 수행방법과 그 과보 등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간결하되 깊이가 있고, 소박하되 운치를 잃지 않는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장아함》은 부처님께서 당시 교단 이외의 사람들을 만나 정법을 가르치며 외도(外道)의 그릇된 주장을 논파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며,《중아함》은 부처님과 여러 비구들의 법담이 주 내용이며, 《잡아함》은 아주 짧은 길이의 경들이 주 내용인데 교리적인 내용이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잡아함》에는 참선 수행의 필요성과 방법, 부처님의 수행 모습이 상세히 언급된 많은 종류의 경전이 수록되어 있지요. 한편 《증일아함》은부처님의 가르침을 숫자에 의거하여 수록되어 있는 경전으로 1에서 10까지의 숫자에 관계된 가르침이 차례로 열거되고 있습니다.
특히 《아함경》에서 보이는 부처님은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부처님 상(像)이라는 공통점이 주목됩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에 대한 초월적인 모습이라든가, 부처님을 진리로 보고자 하는 형이상학적인 요소는 거의 배제되어 있고 그야말로 중생들 속에서 그들의 고뇌가 무엇인가를,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부처님의 모습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와는 달리 많은 중생을 위해 참으로 힘든 길을 선택하신 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진솔하게 부처님의 설법을 기록하고 있는 《아함경》을 꼭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