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장 사상의 단초 제시한 경전
여인성불론등 차별없는 대승의 경지 드러내
부처님께서는 “그의 출생을 묻지 말고, 다만 그의 행위를 물어라”고 하실 정도로 당시의 사회적 신분차별을 부정하고 평등사상을 주장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부처님 당시보다도 2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 그것도 정의와 예의가 지켜져야 할 국회에서 어느 여성의원이 다른 남성 국회의원으로부터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 단식투쟁까지 하고서야 비로소 사과를 받았다는 일화는 참으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실체를 보여주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합니다.
남녀평등이란 각자의 성별에 따른 고유한 영역과 존재가치를 서로가 인정해 주고, 그 인정하에 노력과 최선을 다하자는 뜻일 것입니다. 이러한 평등사상을 대변이나 하듯이 여성불자가 설한 경전이 있는데 《승만경》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경전의 주인공은 부처님도 아니고 출가자도 아닌 승만부인이라는 한 여성의 설법이 이 경전의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승만경》은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유마거사 설법한 《유마경》과 더불어 재가중심의 대승불교를 천명하는 대표적인 경전입니다.
이 경전의 원래 이름은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勝만獅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이지만, 보통 줄여서 《승만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승만부인이 일승의 대방편을 널리 전개시키기 위해 사자후를 한 경전”이지요.
《승만경》의 산스크리트 원본은 완전히 존재하지 않고 현재 단편(斷片)으로 남아 있고, 티베트 번역본은 현존하고 있습니다. 한역본은 모두 2종이 있는데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의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과 보리유지의 《승만부인회》입니다. 이 중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의 번역본이 가장 널리 독송되고 있습니다.
경전의 구성은 전체 15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이 경전의 주인공인 승만은 ‘아유타국’의 국왕 우칭(友稱)의 부인으로 천성이 지혜롭고 마음씨가 고운데다 미모 또한 아름다웠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승만의 부모는 일찍이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행복이 있음을 깨닫고 딸에게 편지를 써서 부처님의 말씀을 일러주었지요. 사실 시집 간 딸에게 친정 부모의 편지는 커다란 반가움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승만은 편지를 받고 단순히 기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동하여 하루빨리 부처님의 설법을 직접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셨는데 신통력으로 승만의 마음을 아시고 곧바로 그녀 앞에 나타나셨지요. 승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진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세까지 구원해주실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부처님은 그녀가 미래세에는 ‘보광여래(普光如來)’가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내려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인성불(女人成佛)’은 물론이고, 돈독한 신심과 수행여하에 따라서는 누구라도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수기를 받은 승만은 부처님 앞에서 십대수(十大受)와 삼대원(三大願)을 세우고,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서원을 굳게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승만이 세운 열 가지 내용은 대승불교의 참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무엇부터 실천해야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원들은 그 하나 하나가 현대사회에서도 있어서도 지켜져야 할 현실생활의 실천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진리를 받들어 끝내 놓치지 않겠다’는 마지막 서원은 이 경전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기본 정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승만은 열까지 서원을 다시 요약하고 정리하여 삼대원으로 함축하였는데, 첫째 정법의 지혜를 얻겠다는 것, 둘째 정법의 지혜를 중생들에게 펴겠다는 것, 셋째 정법의 지혜를 몸과 목숨과 재산을 다 바쳐서 지키켔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보살의 서원은 이 ‘삼대원’에 다 포함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승만은 자신의 정법섭수(正法攝受)가 부처님의 가르침과 조금도 어긋난 것이 없음을 여러 사람들에게 밝히고 싶다는 뜻을 부처님께 말씀드리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즉석에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하시고, 그녀의 설법이 시작되는데 이때의 설법을 일컬어서 ‘승만의 사자후(獅子吼)’라고 합니다. ‘사자후’란 사자가 울부짖음으로 뭇 짐승들을 굴복시키듯이, 진리의 강한 힘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승만은 이 설법에서 모든 사람들은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즉 불성을 갖추고 있다고 역설하였는데, 이 점을 들어 후대에서는 《승만경》을 여래장(如來藏)사상을 설한 경전이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래장은 우리들의 본성이면서 청정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마음 역시 본성상 청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마음은 외래적인 번뇌에 의해 오염되기도 하는데, 자성청정한 마음이면서도 오염된다는 점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승만 역시 고백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마치 구름이 태양을 가리면 어둡게 되지만 그렇다고 태양빛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듯이 근본적으로는 번뇌에 물들지 않는다고 설해 주십니다.
이윽고 승만의 설법이 끝나자, 부처님께서는 그녀를 크게 칭찬하신 후에 ‘내 뜻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라고 증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서 부처님께서는 허공을 밟고 기원정사로 돌아가셨다고 경전은 전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차원에서만 본다면 미상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들이 다른 종교의 경우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단순한 인격적 존재로만 보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주에 충만해 있는 진리 그 자체라고 보기 때문에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중생구제를 평등사상 위에 기저를 두고 본다면 처음부터 남녀의 구별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경전이 바로 이 《승만경》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