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무상함 일깨워 주는 경전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고통 가운데 죽음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요? 죽음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는 물론 그토록 집착하던 명예와 권력, 그리고 재산과 소유물 일체를 놓아두고 철저하게 혼자서 가야만 하는 머나먼 길입니다.
수많은 종교 역시 바로 이 죽음이라는 절대절명의 명제 위에서 생겨났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종교와 죽음의 관계는 절박하면서도 밀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놓고 진정 고통스러워하는 쪽은 죽는 당사자보다도 오히려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특히 한 때 세간을 들썩이게 했던 씨랜드 사건에서는 말입니다. 어른들의 방심과 실수로 인해 채 피어나지도 못하고 져버린 꽃잎처럼 화재를 당한 유치원생들의 캠프장 사고는 어느 누구에게인들 이것이 남의 일이고 남의 집 아이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가슴 아파하고 애통하여 할 말을 잊은 참사였습니다.
만일 이러한 고통을 당하고 괴로워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경전이 바로 《소승열반경》입니다. 왜냐하면 이 경전은 바로 삶과 죽음의 무상함을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소승열반경》의 팔리어본 마하파리니바나숫탄타(Mahaparinibbanasuttanta)’는 장부(長部) 제16경에 들어있고, 한역본으로는 《유행경(遊行經)》,《반니원경(般泥洹經)》,《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등이 있습니다.
내용은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1년 전에 제자들과 함께 왕사성을 출발하여 교화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하여 최후의 땅인 쿠시나가라에 이르기까지의 여정(旅程)과 마지막 설법의 모습, 그리고 입멸 후 사리분배가 끝날 때까지 저간의 사정이 사실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부처님은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여름안거(夏安居)를 마치신 후 발걸음을 쿠시나가라로 향하셨지요. 그곳으로 가시는 도중에 제자 바카리를 교화하시고 춘다의 마지막 공양을 받으신 일화는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즉 임종을 앞둔 바카리는 눈을 감기 전에 꼭 한번 부처님을 뵙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를 전해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몸소 바카리의 집으로 가시게 됩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직접 와 주시다니 저는 이제 눈을 감아도 더 이상 한이 없습니다.”라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바카리의 손을 잡고 “바카리여, 나의 이렇게 늙은 육신을 본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오히려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고 부처는 진리와 동일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대장장이 춘다가 올린 전단(梅檀)나무에서 따온 버섯요리 공양은 부처님의 마지막 공양이 되었는데 이로 인해 부처님은결국 병을 얻고 열반에 드시게 되지만, 부처님께서는 좋은 뜻으로 공양을 올린 춘다의 마음이 오히려 다치지 않을까 염려하셨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혹시 깨달은 분이 병에 걸릴 수가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실은 부처님의 열반이야말로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일지라도 영원히 이 세상에 상주(常住)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의 육신소멸로써 분명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모든 것은 항상 변한다’고 하는 불교의 진리를 사실 그대로 입증하심과 동시에 부처라는 깨달음의 경지를 결코 신격화하지 않고 인간적인 표현으로 가감(加減)없이 잘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을 25년간 그림자처럼 시중들던 아난에게조차 고통을 표현하지 않고 병들고 지친 몸으로 묵묵히 걸어서 쿠시나가라까지 도착하셨지요. 거기서 비로소 등이 아프다는 말씀을 하시고 마을 서쪽에 있는 사라(沙羅)나무 숲으로 자리를 옮기신 후, 두 그루의 나무(사라쌍수-沙羅雙樹)사이에 자리를 깔고 누우셨습니다.
부처님의 열반을 누구보다 재빨리 예감한 아난의 슬퍼하는 표정을 읽으신 부처님은 “아난다여, 벌서 잊었느냐?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하고 달래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보다 감격스럽게 하는 것은 당신의 열반을 앞두고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남기신 최후의 말씀입니다. 즉 제자들이 “저희들은 앞으로 누구를 의지하고 또한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라는 물음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하고(自燈明), 법을 등불로 삼아(法燈明) 밝게 비추며 살아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한 인간으로서 석가모니의 존재는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너희들이 인간 석가모니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우리네 범부들이란 누가 조금만 자신을 인정해 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조금 유명해지면 곧 추종하는 무리를 만들어서 자신을 따르라고 말하지만 부처님은 그러한 것들을 철저히 배제하신 분입니다. 세계 어떤 종교보다도 인간 중심의 종교로서 불교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열반하신 부처님의 유해는 다비(茶毘)를 마친 후, 여덟 나라로 분배가 되고 뒤늦게 도착한 두 나라에는 사리를 담은 항아리와 재가 배당되어 결국 열 군데에 사리탑이 세워지게 되었다고 경전은 끝을 맺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