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광우병과 조류독감에 대한 공포가 온 나라 사람에게 번지고 있다. 경제적·사회적으로 그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의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흔히들 말하는 ‘냄비 근성’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의식이 문제인가. 과학적 지식이나 이론에 근거하지 않고 일부 언론이나 소수의 견해를 과장하고 왜곡하는 설들이 확산되어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도 같다. 주범이 어디에 있던 무엇이든간에 이번 조류독감 사태로 우리는 발생과 확산단계에서부터 대처하는 정부정책이나 뒤늦게 불을 끄려고 알량한 애국심에 호소하여 축산농가나 농민을 위해서, 국가경제를 위해서 안심하고 먹으라고 쇼를 하니 분명히 문제는 있다.
조류독감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단 먹거리에 대한 불안이나 공포가 확산되는 것은 사실이다. 음식이나 물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일차적 조건이기 때문에 그 불안의 정도는 실제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광우병 소식이 전해지면서 푸줏간이 문을 닫고, 비브리오 소식이 들려오면 횟집이 휴업을 하고, 구제역이나 돼지콜레라가 발생하면 돼지고기 집이 문을 닫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연중행사처럼 반복되는 일이건만 터졌다 하면 언론은 무자비하게 실상을 파헤쳐 보도하고, 정부와 방역당국이 두들겨 맞고, 농어민이 목을 매고, 뒷북치는 조치가 취해지고, 정치인이나 유명인사, 심지어 개그맨까지 동원하여 먹어도 괜찮다고 쇼를 하는 것으로 끝낸다.
이런 사건이 생겼다 하면 으레 외국산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하고 중국산 깨에 콜타르를 칠해 국내산 검은깨가 되는 등 농산물 유통에 대한 불신이 따르고, 단속하는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눈을 감는가 하면, 제나라 농산물을 지켜야 할 농협이 외국산 농산물을 국내산으로 속여 팔고, 정치는 제 밥그릇 챙긴다고 눈이 멀어 있다고 믿으니, 우리가 경험하는 불안의 원인은 이런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꼭 짚고 갔으면 하는 건 우리의 의식중 지나치게 감성적(感性的)이고 정적(情的)인 태도다. 매사를 좀 신중하게 이성적(異性的)으로 합리적(合理的)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감정(感情)이 앞서는게 문제다. 하나의 사건이 터지면 좀 신중하게 대처하여 사건의 전개나 그 파장을 생각하고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를 고민한 연후에 터뜨리고 대처를 했으면 한다.
다음으로는 우리의 문명, 지식의 토대가 그리 튼튼하다고는 믿지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사회 어느 분야에서든 전문가들이 산재해 있고,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사태든지 발생하면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 전문가들의 견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섣부른 판단이나 소수의 견해가 왜곡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무작정 터뜨려 놓고 나서 감당할 수 없어 코미디언 등을 동원해서 알량한 애국심에 호소하는 쇼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굳이 ‘인연과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의 입으로 들어 갈 식품을 두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죄악을 저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무리 피할려고 해도 결국 그 자신도 그 음식을 직간접으로 먹게 될 것이니까.
김형춘 글. 월간반야 2004년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