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권세와 영예를 누리려는 것은 어쩌면 본능적인 욕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잘나고 보아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 인물가치를 평가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잘났다는 것은 매우 속된 말일 수 있다. 남이 하는 짓이 못마땅해 비난을 할 때도 ‘너 참 잘났구나.’ 하고 핀잔을 주는 경우가 있듯이 잘났다고 말하는 것은 도덕적 허물을 두고 탓하는 말이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잘났다는 것은 순수한 말 자체의 본래 의미로 볼 때는 남보다 뛰어났다는 뜻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쪽이 잘난 셈이 되니까 결국 못난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못난 것이 오히려 잘난 것이 되어버리는 역설적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당나라 때 명찬(明瓚)이란 스님이 있었다. 생몰연대가 밝혀지지 않았으나 숭산보적(崇山普寂651~739)의 법을 이은 스님으로 되어 있다. 그가 형악(衡嶽)에 살 때 대중들이 운력(공동작업)을 할 때 그는 같이 일을 하지 않고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등 게으르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하여 대중으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천성이 게으른 그는 대중이 눈치를 주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양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었다. 대중들이 그를 게으른 스님이라 별명을 붙여 나찬(懶瓚) 혹은 나잔(懶殘)이라 불렀다. 나찬은 게을러 음식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이런 스님이었으나 그가 가끔 말을 할 때 매우 뜻 깊은 말을 한마디씩 하곤 했으므로 어떤 이들은 그가 대단한 도인이라 생각했다. 그가 남악사에 있을 때 당시 조정에 있던 이비(李泌)가 모함을 받아 남악사에 와 잠시 은거하고 있었다. 이비가 스님의 행동을 관찰해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침내 밤중에 몰래 스님을 찾아 가르침을 청했다.
“말조심을 하시오. 10년 뒤에 재상이 될 것이오.” 이비가 가르침을 받고 감사를 드리고 물러났는데 명찬의 예언대로 10년 후에 재상이 되었다.
또 그가 남긴 일화에 나찬외우(懶瓚煨芋)의 이야기가 있다. 토란을 굽어 먹은 이야기다. 당시 국왕 덕종이 국사를 모실 스님을 물색하다 나찬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보내 궁궐로 초빙하였다. 형산의 석실에 은거하고 있을 때인데 사신이 찾아와 “천자께서 명령을 내렸으니 마땅히 그 은혜에 감사를 표하시오.” 하였다.
마침 나찬은 쇠똥을 모아 불을 피워 토란을 굽어 먹고 있었다. 입가가 시커멓게 검정색이 되었고 콧물을 길게 흘려 토란과 함께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신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먹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스님을 향해 사신들이 행장을 꾸리기를 재촉하면서 도와줄 것이 있으면 말씀하시라 했다. 이때 스님이 한 말이 “조금 비켜 서 주시오.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 라는 말이었다. 날씨가 추어 사신들의 그림자가 스님을 가렸던 모양이었다. 나찬을 끝내 국사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덕종은 나찬을 더욱 흠모하게 되었다 전해진다. ‘햇빛을 가리지 말라.’는 이 말은 고대 희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BC324)의 말과 우연히 일치된 말이었다.
인도 원정을 가던 희랍의 왕 알렉산더대왕이 디오게네스를 만났다. 마침 디오게네스는 반라(半裸)의 몸으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선생이 훌륭한 철인이라고들 말하던데 무척 가난한 모양이요. 내게 뭐 도움을 청할 것이 없소?” 이때 디오게네스는 일광욕 중이었으므로 알렉산더대왕에게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왕에게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전쟁을 하러 인도로 가는 중이오.”
“전쟁을 해서 무엇 합니까?”
“영토를 넓히고 나라를 더 강하고 큰 나라로 만들 것이오.”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내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좀 쉬어야하지 않겠소.”
이때 디오게네스가 큰 소리로 웃었다.
“쉬려면 지금 당장 나처럼 이렇게 쉬면 되지 전쟁을 하고 나라를 키우고 나서 쉴게 뭐 있겠습니까? 대왕은 쉴 수 없을 것입니다.”
묘한 뉘앙스가 남는 말이다.
때로는 성공주의, 업적주의가 내 인생을 멍들게 하고 망하게 한다.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우리는 편안해지고 밝아져야 한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0년 5월 1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