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님이 누군지 모른다()

일전에 한 시민단체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활동지표를 개발하기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청소년들의 지역사회 관심도를 알아보기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시의 시장 이름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80% 정도가 모르거나 관심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게 나올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그래도 긍정적이다.

시장이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 어른들이 누구를 우리지역사회를 이끌어 갈 일꾼으로 누구를 뽑았느냐도 이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단지 누가 청소년들이 미래 이 사회의 주역으로 자라는데 필요한 호연지기와 풍성한 정서와 건강한 신체를 가꾸는데 적합한 주변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주느냐가 그들의 주된 관심의 대상이어야 한다.

우리보다 몇 세기 앞서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영국 같은 나라에서도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의 상당수가 자기 나라의 수상 이름을 모른다고 한다. 실제 수상 이름을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정치 지향형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국무총리나 부총리, 장관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예전처럼 많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아직도 우리사회에서는 정치의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점차 줄어가고 있는 징조라고 볼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중국의 태평성대를 말할 때 예를 드는 요(堯) 임금이 천자의 자리를 이양하기 위해 백성들의 삶의 현장을 암행하다가 한 농부에게 요즈음 왕이 정치를 잘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농부가 답하기를 “왕이 정치를 어떻게 하는지 알 필요도 없고, 우리 같은 농부는 농사만 잘 지으면 된다”는 답을 듣고는 안심하고 양위를 결심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정치를 잘 할 경우엔 백성들이 그 통치자나 목민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지도자나 목민관이 자기의 재임 중 공적을 나타내기 위해, 또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무리한 시책을 펴거나 자극적인 방법으로 요란하게 행정을 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 주고 순리대로 이끌어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즈음의 우리 사회는 얼마나 규제가 심하길래 그 규제를 막기 위한 기구까지 만들어야 하니 이 또한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바야흐로 대통령을 뽑기 위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요(堯) 임금이 아들 주(朱)를 단연(丹淵)의 제후로 봉해 놓고는, 효자 순(舜)에게 천하를 넘겨 준 것처럼 큰덕〔峻德〕을 가진 요 임금이나 도심(道心)을 가졌던 순 임금 같은 지도자가 어디 없을까.

김형춘 글/ 월간반야 2002년 11월 (제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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