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것

“물소리는 밤중에 듣는 것이 좋고 산색은 석양에 보는 것이 좋다.”는 말처럼 보고 듣는 것도 적당한 타이밍이 있는가 보다. 만추의 서정이 산색 속에 느껴지더니 어느새 겨울의 문턱을 넘어 잎 진 나무 가지들이 허허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루의 석양처럼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다가오는 산의 모습을 석양 속에 바라보았다. 어쩐지 무상하고 쓸쓸한 감회가 생기며 벌써 겨울을 알려 주는 산의 모습에 공연히 애틋한 연민 같은 것도 느껴진다.

흘러가는 강물의 어귀처럼 세월에도 계절에도 어귀가 있어, 이 어귀에 맞춰진 타이밍이 저무는 석양에 산을 보면서 쓸쓸해져 보았다. 40여 년을 산거인山居人을 자처하고 산에 살아 왔으면서도 또 산이 주는 뭉클한 서정에 관산청수(觀山聽水)의 산락(山樂)이 또 다른 이런 저런 회포로 번진다. 차라리 산에 푹 빠져 자연과 동화되고 싶어진다.

사람과 자연이 가장 친해질 수 있는 것은 역시 산 속에서 산을 보고 물소리를 들을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순간을 가장 자연적이고 인간적이라고 표현해 보면 어떨까? 엄밀히 말하면 사람이 사는 것도 자연일 텐데, 왜 현대에 와서는 사람과 자연이 멀어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나친 인공의 문화가 소박하고 순수한 자연의 이치를 어기고 있기 때문인가?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은 진리 그대로이며, 사람은 결국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우며 사는 것이다. 아무리 문명의 치장을 많이 하고 산다하여도 사람에게도 본래 가지고 있던 자연의 모습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이 불편하고 힘들 때나 허영과 사치가 지나칠 때 사람은 자연을 거스르면서 살아가게 된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중에 절로 자란 몸이니 늙기도 절로절로 하리라.”

조선조 중엽의 문인 김인후(金麟厚)가 지은 자연가(自然歌)라는 시조이다. 산수를 따라 절로 산다는 이 자연의 노래는 자연의 삶 속에 인간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노래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자연이 없으면 사람의 행복도 있을 수 없는 것일 것이다. 때문에 사람은 자연을 사랑하면서 행복을 누려야 한다.

어쩌면 이 세상에 자연을 사랑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자연의 사랑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예를 들면 꽃을 꺾는 것과 같은 일방적으로 욕망을 채우려는 이기적 생각으로 자연을 대하는 것은 순수한 자연 사랑이 아니다.

자연 앞에서 나라는 아상(我相)을 세우고 내가 자연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자연에 대한 실례요, 모독이다. 나와 자연이 동격이 되어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 속으로 들어가야 자연과 내가 만나지는 것이다.

사람의 생활이 기계문명의 위력에 눌리고부터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순수성이 사라지고 있다. 톱니바퀴가 서로 물고 돌아가는 것처럼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문명이 자꾸 자연과의 거리를 멀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물자의 생산에 바쁘기만 하여 시간에 쫓기면서 인공의 속력증가가 가장 우선시 되면서 자꾸 시계의 바늘을 보아야 하는 바쁜 시대가 되었다. 산업의 발달이라는 미명아래 자연적이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생활이 이제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마저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L.A.세네카는 이런 말을 하였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다.” 이 말을 반대로 말해보면 자연을 등지고 사는 것은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자연적이라는 것이 가식과 위선이 없는 본래의 순수한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자연적인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 와 닿는 행위를 인간적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세속적인 것을 멀리하는 것을 인간적이라 하는 경우도 있다.

도연명(陶淵明)은 시를 지어 이렇게 말했다.

“초막을 짓고 인가 근방에 살아도 거마(車馬)의 시끄러움을 모르겠더라. 그대에게 묻노니 어째서 그런가? 마음이 속세에서 멀어지면 어디서 살 던 외딴 곳이요. 동쪽 울타리 밑에 핀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니 산의 기운은 아침저녁으로 아름답고 새들은 물물이 날아든다. 여기에 자연의 이치가 있으니 말하고자 하여도 말할 수가 없노라.”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0년 12월 121호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