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종범야삼경 寂寞鐘梵夜三更 범종도 잠이 든 삼경의 깊은 밤에
낙엽수풍작우성 落葉隨風作雨聲 낙엽은 바람 따라 빗소리를 내는구나.
경기척창청불매 驚起拓窓淸不寐 놀라 일어나 창을 여니 잠은 달아나고
만공추월정분명 滿空秋月正分明 하늘 가득 가을 달이 눈 시리도록 밝다.
선심(禪心)에 잠겨 가을밤의 풍경을 그려 놓았다. 산당정야(山堂靜夜)의 깊은 밤에 바람에 날리는 낙엽 소리가 비오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 소리 들으니 정신이 더욱 맑아져 금새 잠이 달아나 버린다. 창문을 밀치고 밖을 내다보았더니 온 산을 비추고 있는 하늘의 달이 눈이 시리도록 밝다. 가을밤의 이 전경이 내 마음속에 들어 있을 때 달과 산과 내가 하나가 아니겠는가? 천지만물이 같은 뿌리라 했다. 그렇다면 천(天)․ 지(地)․ 인(人) 삼재(三才)가 또 다른 나를 구성하는 삼요소가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이 내 몸이고 나는 법성이 되어 시공 위에 앉아 있는 철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시는 취미수초(翠微守初·1590~1668) 스님의 시이다. 조선조 중기의 스님으로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이었던 성삼문의 후손으로 출가한 후 부휴선수의 추천으로 벽암각성의 문하에 들어가 법을 잇고 폈다. 당시의 여러 고승들을 참방하고 유학자들과 폭 넓은 교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문에 능하여 문집 <취미당집>과 함께 <취미대사시집>이 전해진다.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8년 12월 제9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