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륜명월조서상 半輪明月照西床 반달이 밝게 떠서 서쪽 상을 비추는데
소관전다열주향 小鑵煎茶熱炷香 작은 다관에 차를 달이며 향을 피워 놓고
공시조심동일치 共是操心同一致 함께 마음 다잡아 운치를 같이 하니
막장현백착상량 莫將玄白錯商量 검고 흰 것을 가지고 잘못 헤아리지 말라
이조 초기의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은 한때 스님이 되어 절간에 살기도 하였다. 그의 법명은 설잠(雪岑)으로 기록되어 전하며 의상 스님의 『법상게』에 관한 주석서인 『법계도주』 등 약간의 저술도 남아 있다. 단종을 옹위하려다 세상에 대한 울분을 품고 광인처럼 행세하던 그가 불교에 귀의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달랬는지 이 시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경지에 들어 있는 달관자의 한가로움 같은 것이 느껴진다. 반달이 떠서 서쪽 창으로 방안을 비추는데 다관에 차를 달이며 향로에 향을 하나 꽂았다. 이른바 다반향초(茶半香初)의 운치다. 이 속에서는 세상의 시비를 따질 것 없다. 흑백논리로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망상 속을 벗어나면 모든 것은 제 자리에 아무 일 없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적정을 즐기는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에 들면 세상은 모두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