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끝바위

시락리 바닷가, 바람끝바위의 바람 끝자리에 핀

갯메꽃 발그레한 웃음을 엿보며

다닥다닥 붙은 따개비 등에 옹그리고 앉아

바위 끄트머리

아슬아슬한 틈새를 비집고 가느다란 길을 내는

갯고동을 뒤따라가니

오래 전 잊어버렸던 길,

어딘가로 마구 휩쓸려가던 마음길이 보였습니다.

바람의 말, 별의 말들이, 모시조개의

숨소리와 이웃하여

도란도란 주고받는 밀어密語가 들리고

산하대지를 적멸도량으로 삼았던,

옛 어른들의 말씀도 어슴푸레 들렸습니다.

산치대탑에 스며들던 달빛이 내 맘의 문을 열었듯

저 바다 윤슬 또한

그대에게로 가는 길을 엽니다.

마삭줄도 칡넝쿨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길을 내고

말미잘 다시마도

초록으로 넘실대는 향기로운 길을 냅니다.

文殊華 하영 (시인, 반야불교학당) 글. 월간반야 2009년 4월 제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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