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회를 그리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영토가 넓은 나라, 석유와 구리 등 지하자원의 매장량이 손꼽히는 나라, 초원과 빙하와 폭포와 만년설이 관광객을 연중 손짓하는 나라, 인구밀도가 약 3.3명/㎢ 으로 도심을 벗어나면 주민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나라, 65세 이상이면 모든 국민이 연금을 받고 모든 국민의 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책임지는 나라, 그러기에 술과 담배의 판매나 음주장소, 흡연 장소가 극히 제약을 받는 나라, 공항이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노인(?) 이라 불릴 정도의 노인 천국이라는 인상을 받는 나라가 캐나다이다.

온도계의 수은주는 우리나라의 한 여름과 비슷한데 땀이 나지 않는 나라, 국내 여행을 하면서도 시계를 몇 번 고쳐야 하는 나라, 항공회사의 구조조정에서 젊은 사람들을 내어 보내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은 나라, 국립공원 안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취사장과 땔감을 쌓아 놓은 나라, 외국의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돈이나 기술이나 사업능력 등 국익에 보탬이 되면 어떤 종족이든지 환영하는 나라이다.

그 중 내가 가장 의아해 한 것은 두 항공사를 합병하여 ‘에어캐나다’라는 국영에 준하는 회사를 만들면서 노동조합의 요구로 젊은 사람들을 내보내고 나이 많은 사람들을 남게 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오사카에서 캐나다로 갈 때부터 기내의 승무원들을 보고 왜 저런(?) 사람들을 고용 하는가 의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밴쿠버공항에서부터 일하는 항공사 직원들은 거의 노인들뿐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었다. 젊은 사람들은 이 직장을 그만두고 나가서 다시 기술을 익히든지 하여 다른 직장에서 또는 다른 직업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겠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이 직장에서 그만두면 아마 다시 직장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IMF이후 구조조정에서 원칙은 오직하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나이순으로 목이 달아나지 않았는가. 하기야 우리사회는 청년실업의 문제가 더 큰 고민이긴 하지만. 언제 우리 사회도 노인들이 편안히 연금을 받으며 노후를 즐길 수 있을까. 누구나 경제적인 고민을 하지 않고 병을 치료 받을 수 있을까.

이즈음 집안일로 고향엘 가끔씩 다녀온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30호 가까이 되던 마을이 이젠 절반으로 줄었다. 문제는 그 가운데서도 절반이 노인 혼자 또는 노부부가 사는 집이다. 대부분이 노인인 이 마을에서 몸이 건강한 사람 또한 별로 없다. 다들 노인성 질환이나 성인병으로 고생하며 산다. 그러면서도 다들 어쩔 수 없이 농사일을 한다. 새벽에 눈 뜨면 들로 나가고 어두워야 들어온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 노인세대는 일제 침략기를 전후해서 태어났고, 광복 후의 어려움과 전쟁을 겪은 세대이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고 나니 이제 남은 것은 질병과 늙음과 외로움뿐이라는 점이다. 누가 이들을 어떻게 보상해줄 수 있을까. 이즈음 나라꼴을 보면 크게 기대하기도 힘들 것 같고. 그러나 어쩌랴. 복지사회를 향한 우리의 기대를 꺾을 수는 더욱 없고. 바깥을 향한 우리의 관심보다는 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이웃. 노인세대에 좀 더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김형춘 香岩(반야거사회 회장, 문성고등학교 교장) 글. 월간반야 2005년 9월 제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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