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病)은 종구입(從口入)하고

언제 지구촌에 조용한 날이 있었던가. 요즈음은 온통 신종 인플루엔자A(H1N1)로 난리다. 해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많은 나라들 가운데서도 별나게 요란을 뜨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마치 많은 사람이 모이면 국가나 정부가 어떻게 될까봐 예방책이라도 쓰는 느낌이란다. 정권 출범 초기에 촛불시위로 놀란 가슴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음인지. 좁은 땅덩어리에 너무 많은 인종이 밀집해서 인지. 요 며칠 사이 유럽에서는 ‘신종플루’의 변종이 나와 많은 인명을 앗아갔다는 뉴스도 자주 들린다. 얼마 전 TV에 출연한 모 유명인사로부터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재치기를 두어 번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니 주위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더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직장도 학교도 학원도 연말의 갖가지 행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천병만약(千病萬藥)이라 했지만 항상 새로운 병이 생기고 나면 발병 원인을 찾고, 세균인지 바이러스인지 규명하여 예방백신을 개발하고 치료제를 만든다. 이러니 언제나 치료법이나 약은 병을 뒤따라간다. 이 같은 시간차에 따라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울고 웃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조류독감AI 때는 닭이나 오리, 철새가 수난을 당하고 사육업자나 판매상, 식당 등이 죽을 쑨다. 이번에도 ‘돼지 콜레라’라고 ‘돼지’란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입을 틀어막았으니 관련 분야의 악영향은 덜했지만, 여행업계나 각종 수련회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속만 태운다. 물론 상대적으로 득을 보는 제약업계나 병원, 약국 등도 있겠지만 말이다.

주변에 어린아이를 둔 가정이나 노인을 모시고 사는 집에서는 솔직히 걱정이 많다. 밖에 놀러나가는 것도 신경 쓰이고, 심지어 병원 가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렇다고 집에만 계시라고 할 수도 없질 않은가.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들은 더하다. 아이들을 돌보는 산모나 보호자들도 아이 때문에 속절없이 집안 신세다. 신종플루 때문에 스트레스가 또 다른 병을 만들 수도 있다니 이게 더 큰 문제다.

“병(病)은 종구입(從口入)하고, 화(禍)는 종구출(從口出)이라”고 했다. 동양의 고전인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말이다.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간다’는 뜻이리라. 대개 병이란 거의 대부분이 입을 통해 들어온다는 말이다. 소화기 계통의 병은 물이나 음식을 통해 입으로 들어오고, 호흡기 계통의 병은 코를 통하지만 입과 코는 통해 있으니 입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리라.

굳이 현대의학 지식으로 따진다면 음식은 입으로 들어와서 식도(食道)를 통해 위(胃)로 들어가고, 코로 들이마신 공기는 기도(氣道)를 통해 허파(폐)로 들어가니 확연히 구분이 된다. 그러나 해부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입〔口〕과 코〔鼻〕가 통해 있으니 싸잡아 입이라고 본 것 같다. 그리고 화(禍),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간다고 하였으니 곧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리라. 모든 재앙의 근원은 입을 통해 나가는 ‘말’이라는 것이다.

스페인의 왕사(王師)이자 철학자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생각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말이 되기 때문이다 / 말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라고 한 걸 보면 ‘말’은 생각과 행동의 사이에서 ‘복(福)’과 ‘화(禍)’로 나아가는 갈림길에서 안내 역할을 하니 응당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입으로 들어오는 것도 중요하고, 입을 통해 나가는 것도 소중하니 이 ‘입〔口〕’의 중요함을 무엇과 비기겠는가.

날씨도 점점 추워지고 있다. 정치는 언제나 사회통합을 부르짖고 있지만 요원해 보인다. 계절성 독감마저 기승을 부리니 언제 ‘신종플루’란 말이 사라질지 걱정이다. 별수 없이 병이 들어오는 길목인 ‘입’을 막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회의 양극화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여당과 야당, 주류와 비주류, 사용자와 근로자,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 일하는 자와 실직자 등 사람들은 머리끝까지 신경만 발달해 있다. 자칫 이들 사이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별 수 없이 이 계절의 화두는 단연코 ‘입조심’으로 해야 하겠다.

김형춘 교수님 글. 월간 반야 2009년 12월 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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