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 발을 씻고 침상에 올라 자다

귀래세족상상수 歸來洗足上床睡 돌아와 발을 씻고 침상에 올라 자다

곤중부지산월이 困重不知山月移 산 위로 달이 가는 줄 미처 몰랐네

격림유조홀환성 隔林幽鳥忽喚醒 숲 속의 새소리에 문득 눈을 떠보니

일단홍일괘송지 一團紅日掛松枝 소나무 가지에 붉은 해가 걸렸구나

일에 쫓기는 일이 없는 한가로운 여유가 넘쳐나는 이 시는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는 남구만의 시조의 연상케 하고 있다. 어느덧 사람 사는 마을이 도시화되고부터 자연을 벗삼아 한가로움을 즐기는 시대는 이미 지나 가버렸지만 그러나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어 볼 때 대답을 못하면서도 우리는 너무 바쁜 일과에 쫓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산다는 것이, 생활한다는 것이 어쩌면 부담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적 관계에서나 사회 제도에서 오는 심리적 부담 속에 존재하는 자체가 피곤해질 때가 많이 생긴다. 부담스러운 일이 없을 때 선의 세계로 들어가 실컷 마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분명 부담 없는 경기인데 우리는 경기에 임하기 전부터 너무나 많은 부담을 안고 링에 오르는 권투선수처럼 이 세상을 전쟁터로 보고 생존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번뇌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석옥 청공(石屋 淸珙) 선사의 시다. 중국 송(宋)나라 때 스님으로 우리 나라 고려 태고 보우(太古 普雨)선사가 석옥으로부터 법을 이어 받았다. 조계종 법맥의 연원이 이 두스님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산월(山月)이라고 제목이 붙은 이 시는 그윽한 자연 속에 매여진 일상에 쫓기지 않고 사는 한가로운 여유가 넘친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6월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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