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는 것이 없으니

목무소견무분별 目無所見無分別 눈이 보는 것이 없으니 분별이 없고

이청무성절시비 耳聽無聲絶是非 귀는 들어도 소리가 없으니 시비가 끊어졌네

분별시비도방하 分別是非都放下 분별과 시비를 모두 놓아버리고

단간심불자귀의 但看心佛自歸依 다만 마음의 부처를 보아 스스로 귀의할 뿐이네

중생은 듣고 보는 성색(聲色)에서 분별과 시비로 세상을 산다. 객관의 대상을 향해 끊임없이 망상적 분별을 일으키면서 정작 자기 존재의 정체는 잃어버린다. “내가 나를 모른다”고 하는 선가의 말처럼 자아에 대한 탐구는 하지 않고 바깥의 경계를 따라가면서 시비분별에 종사한다는 말이다.

도를 닦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바깥의 경계를 따라가는 것을 멈추라고 한다. 다시 말해 분별과 시비의 굴속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먼 하늘을 바라보듯이 무심히 이런 저런 탓을 하지 말고 망념이 일어나기 이전의 마음 그대로 있으라는 것이다.

부설(浮雪)거사가 남긴 시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불국사의 승려로 있었던 부설스님이 도반 영조(靈照), 영희(靈熙) 등과 행각을 하다가 두릉동에서 구무원(仇無寃)의 딸 묘화(妙花)라는 여인을 만난 것이 숙세의 업연이 되어 그만 환속을 한다. 묘화가 부설스님에 반하여 그만 상사병에 걸려 다 죽게 되자 이를 낳게 하려고 세속의 정을 받아드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조·영희 등의 비난을 무릅쓰고 세속에 남아 공부를 하였으나, 두 도반보다 도를 먼저 이루었다고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이다. 원래 스님의 법호였던 부설이란 이름이 환속한 후에 그대로 불리어 부설거사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3월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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