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일심춘불견춘 盡日尋春不見春 날이 다하도록 봄을 찾아도 봄을 보지 못하고
망혜변답농두운 芒鞋遍踏籠頭雲 짚신이 닳도록 이랑머리 구름만 밟고 다녔네
귀래소연매화취 歸來笑撚梅花臭 허탕치고 돌아와 매화꽃이 피었기에 향기를 맡았더니
춘재지두이십분 春在枝頭已十分 봄은 흠뻑 가지 위에 있었네
어떤 사람이 봄을 찾아 나섰다. 들이랑 산골짜기를 온통 쏘다니며 해가 저물도록 봄을 찾았으나 봄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 왔더니 마당가에 있는 매화 가지에 꽃이 피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 향기를 코로 맡다가 온종일 찾아 헤맸던 봄이 바로 꽃향기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가 내면의 자기 마음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상징해 놓은 이야기다. 가령 인간이 원하는 행복이 어디 있느냐 하면 이 행복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객관의 조건에서 행복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나아가서 ‘도(道)다. 진리다’고 하는 것도 우리들 마음을 떠나서 달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 곁에 도가 있고 사람 곁에 진리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이미 내재되어 있는 진리를 찾기가 쉽지 않는 것이 중생이다. 내 곁에 행복이 있어도 그 행복을 모르고 먼 곳을 다니면서 찾는다는 뜻으로 한, “마음밖에 부처를 찾지 말라”는 선가의 말은 수행자들에게 엄격한 주의를 주는 말로 알려져 있다. 마음 빼면 인생이 없고 마음 빼면 우주가 없는 것이다. 세상은 마음에 의해 있는 것이고 마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다만 이 유심(唯心)의 도리를 사람들이 쉽게 알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을 알기까지는 숱한 헤맴과 시행착오를 겪는다는 사실이다. 메틸링크의 파랑새 이야기나 카알 붓세의 산너머 행복 이야기도 이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부정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매화향기에 서 봄을 찾았다고 긍정으로 마무리했다.
이 시의 원작자가 누군지 어느 때 사람인지 알려지지 않은 채 전해져 작자미상으로 간주되는데, 다만 어떤 비구니 스님이 지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어찌 보면 애틋한 서정이 배여 있어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3월 (제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