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락각시의 영험

홍락각시의 영험 「아니 중국천자는 자기 나라에 여자가 없어서 조선으로 여자를 구하러 보냈나.」 「다 속국인 탓이지요.」 「아무리 속국이기로서니 조정에서 이렇게 쩔쩔매니 장차 나라꼴이 큰일이구려.」 「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누구네 집에 어떤 딸이 있는지 다 알고 있을텐데…」 신통한 묘안이 없어 수심에 잠겨 있는 마을 사람들 앞에 드디어 관원들이 나타났다. 육모방망이를 든 포졸들을 앞세우고, 「얘들아, 마을을 샅샅이 뒤져… 홍락각시의 영험 계속 읽기

혜원비구니의 기도와 후삼국통일

혜원비구니의 기도와 후삼국통일 혜원비구니는 신라 제 46대 문성왕(文聖王) 13년 서기 851년에 계림부(鷄林部)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금성태수 중아손 김융(金城太守 中阿孫 金融)이요, 어머니는 경주 최씨(崔氏)였다. 아버지 김융이 신라 제 48대 임금인 경문왕(景文王)(서기 861~874년)이 승하(昇叢)하여 궁중으로 들어가는 도중 경문왕의 제3비 소생인 용덕왕자(龍德王子 : 弓裔)가 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구출하려고 하다가 상대 위홍(魏弘)등에게 몰려 대역부도(大逆不道)의 역적 누명을 쓰고 죽게 됨에… 혜원비구니의 기도와 후삼국통일 계속 읽기

궁예왕의 불행한 운명

궁예왕의 불행한 운명 고려의 창건한 역사를 자세히 알아보려면 궁예왕에 대한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청룡사 제1세 주지 혜원비구니가 태백산 세달사(世達寺)에서 허담화상을 모시고 있을 때에 궁예도 허담화상을 모시고 그의 상좌로 출가하였으므로 혜원비구니와 궁예는 불문으로 법 형제간이었다. 궁예왕은 세달사에 있을 때에 그의 법형인 혜원비구니의 극진한 애호를 받았으므로 후일 궁예가 철원에 도읍하고 왕이 되었을 때에 혜원비구니를… 궁예왕의 불행한 운명 계속 읽기